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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검 님의 서재입니다.

자서전까지 썼는데 회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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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혼문
작품등록일 :
2020.11.14 21:0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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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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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7,177

작성
20.11.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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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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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프롤로그]한 많은 인생이었다.

DUMMY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어떻고 저떻고...


이후로 60년이 지났다.


2080년. 지하 1km 아래의 벙커에서 나는 최후를 직감했다.


"......."


싸늘하다. 깊은 적막이 내려앉은지 수십 년이 지나면서 아예 퇴적층처럼 쌓여버리고 말았다.


침묵은 나의 친구, 나의 동반자가 되어버렸다.


친구와 함께 창고로 가서 남은 재고를 확인했다.


무기한 보존식의 재고는 1인 기준 9년분이 남았고, 끌어쓰던 지하수는 이미 바닥났지만 저장해둔 식수가 석 달치 남았다.


"후우...."


어제 결심한 것이 있는만큼 커다란 대야를 가져와서 피보다 귀한 식수를 콸콸 쏟아부었다.


차가운 물이 가득 담긴 대야에 몸을 담궜다.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고 희게 산발된 머리카락과 수염을 말끔하게 손질했다.


이게 목욕. 언제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치스러운 행위다.


"......."


욕조에서 일어나자 몸 곳곳에 남은 끔찍한 흉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딜 봐도 정상은 아닌 몸이었다.


물기를 닦고 하얀 수의를 입었다.


"......."


미리 챙겨둔 보존식을 종류별로 까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분에 넘치는 목욕과 만찬.


말세에 즐기기에는 무척이나 호화로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행복한지 잘 모르겠다.


"......."


거동조차 힘든 몸을 움직여서 간신히 책상에 앉았다.


미리 준비해둔 두꺼운 노트와 펜, 그리고 두 개의 단검과 길다란 사슬 다발이 눈에 띈다.


다 낡고 녹슬어서 퇴역한지 한참 지난 군인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나처럼.


"......."


두꺼운 노트를 펴고 펜을 들었다.


인류는 멸망했다.


그렇다면 유일한 생존자인 나야말로 역사를 기록할 책임이 있다.


의미가 있겠냐만은.......


책이라고 하면 응당 제목을 정해야한다.


{2080년에서 내려다본 2020년.}


주의사항도 적어두자.


{본 서적은 주관적인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분명하게 있었던 사실만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득히 먼 과거를 떠올려보자.


{필자의 이름은 김용명이다. 올해로 85세나 금년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 작금으로부터 1갑자, 그러니까 60년 전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한다. 당시 내 나이 25살 꽃같은 청춘이었다. 대기업인 그린메카 전자에 입사해서 막 워커홀릭 라이프를 즐겨보려던 찰나였다.}


아직도 생생하다.


{갑자기 대격변이 발생했다. 하늘, 지상, 지하, 심해, 화산 등을 가리지 않고 온세계를 향한 침공의 시발점이었다. 쏟아지는 몬스터 사이에서 나는 생존자 무리에 합류해서.......}


그날은 악몽이었다.


{가족의 시체를 확인했다. 친구들도 죽었고. 그들의 한결같은 '너라도 살아남아라'는 유언 때문에라도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다. 강해져야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독한 노력과 행운이 어찌어찌 아귀가 떨어지면서 제법 강력한 플레이어가 됐다.}


재능도 있었던 게 분명했다.


{최후의 최후에 와서는 가장 강한 10명의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됐다. 국가 하나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멍청했다.


{우리는 각종 이권 다툼과... 예상치 못한 2차, 3차에 이어서 색다르고 경이롭게 인류를 말살시키려는 4차 대격변을 극복하지 못했다. 인류는 끝내 멸망했다. 나는 미리 만들어놓은 멸망대비용 벙커에 들어왔고, 여기서 10년을 살았다.}


60년 동안의 이야기를 가능한 기억나는대로 모조리 써넣고보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상으로 내 근황에 대해 남겨보려 한다. 나는 최후의 전투에서 입은 치명상으로부터 살아남긴 했지만, 후유증으로 창을 드는 것조차 못하는 몸이 됐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인류의 마지막 유산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도 다 기록해두었다. 나는 글렀지만... 부디 이 기록이, 실날같은 가능성을 뚫고 생존한 인류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


피로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에서 펜을 놓았다.


양손으로 주름진 얼굴을 문질렀다.


눈이 침침해서 이제는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쉬, 어야겠어...."


비틀거리면서 침대로 가다가, 힘이 풀리면서 넘어졌다.


몇 시간? 아니, 몇 달이 넘는 긴 집필 시간이었다.


완성한 자체가 기적이었다.


늙은 몸뚱어리에 남아있는 힘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타다 남은 숯의 잔불마저... 꺼지기 직전이었다.


"아아......."


아직은 안 된다.


엉금엉금 기어서 침대 위로 힘겹게 올라갔다.


바르게 누운채 천장을 보았다.


"......."


끝이라고 생각하자 후회가 밀려왔다.


지키지 못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이제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


"......아아, 모두들 안녕......."


흐릿하게 먼저 보낸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야 너희와 다시......."


인류를 멸망으로 이끈 재앙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던 남자 김용명의 마지막이었다.


'참으로 한 많은 인생이었다.'


눈을 감았다.



□□□□□□□□



눈을 떴다.


"이봐, 용명 씨. 회의 시간에 졸아? 미쳤어?"


"???"


이게 무슨 일이지.


"나가!!!"


얼떨결에 회의실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니, 저게 나가란다고 진짜 나가네! 허, 참! 요즘 젊은 것들은 말이야!"


김용명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넥타이가 눈에 들어온다.


"...꿈인가?"


'그럴 리가.'


입으로 묻고 속으로 부정했다.


이 지나치토록 현실적인 감각은 꿈에서 느낄 수 없는 부류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영락없는 회사다.


'인류는... 멸절됐을텐데.'


회의실 맞은편에 있는 탕비실로 걸어들어가서 거울을 살폈다.


"!"


탱탱한 피부, 살아있는 얼굴선. 젊을 때의 김용명이었다.


저절로 시선이 달력으로 향했다.


2020년 5월 31일.


'회춘. 과거.'


수많은 가능성이 모이면서 하나의 답을 도출해냈다.


"...회귀?"


온갖 생각이 휘몰아쳤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시간이 없다'였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6월 1일, 당장 내일 대격변이 발생한다.


'집에 가야겠다.'


사무실로 가서 대충 짐을 챙긴 후에 바로 밖으로 빠져나왔다.


'식량부터.'


은행에 가서 가능한 대출을 모두 긁어서 3천만 원을 마련했다.


바로 식자재마트에서 대량으로 보존식을 구매해서 당일 배송으로 붙였다.


이어서 발전기를 비롯한 각종 생존 물품을 주문했고.


마지막으로 회귀 전에 습득했던 정보를 토대로 태백산에서 한 대장장이를 찾았다.


"당신이... 바라던 세계가 올 겁니다. 검과 창과 활이 전쟁을 지배하는 세계가요."


오직 그만이 간직하고 있던 신념과 각종 정보를 넘겨주고 두 자루 단검과 특수 제작한 쇠사슬과 와이어를 받았다.


하루종일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탕진한 대출금과 비자금처럼 방전된 체력 때문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안심이네.'


뮬자가 조금이라도 쌓여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출근길에 나섰다.


출석 체크를 하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사내 카페에서 커피도 뽑아 마시고, 총무과에 가서 청소한다는 명분으로 비상계단 열쇠도 받아왔다.


사무실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를 킨채 가만히 공기를 느꼈다.


아름다운 공기다.


평화와 안정이 가득하다.


"저기, 김 사원님."


"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임 대리님."


내 감상에 끼어든 임 대리는 평온을 부수기보다는, 부각시키는 여인이었다.


나와는 동갑이지만 훨씬 일찍 입사했고 능력을 인정받아 대리로 고속 승진한 회사 내에서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한 팔방미인이다.


"어제 왜 그렇게 나간 거에요? 이 부장님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시던데......."


생각해보면 대격변이 일어나기 전까지 나는 입사한 사원이었고, 임 대리님은 나를 많이 챙겨주셨다.


"어서 가서 잘못했다고 해요. 회사 생활이라는 게... 조금 더럽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만, 응? 내가 같이 가줄게요."


이 사람은 천사가 분명했다.


"김용명 사원 왔어!?"


사무실 문이 쾅 열리면서 이 부장이 나타났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


"따라나와!"


쿵쿵거리면서 밖으로 나가는 걸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오전 9시가 되기 1분 전이었다.


"임 대리님, 다녀오겠습니다."


이 부장은 날 싫어했다.


회귀 전에도 뭣도 아닌 것들을 가지고 나를 갈궜다.


심지어 자기가 잘못한 일도 하급자가 상급자를 잘 챙기지 않았다면서 역으로 혼나기도 했다.


"가, 같이 가요!"


이유는 어렵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대격변 직후에 회사 사람들과 생존팀을 꾸렸었는데, 나는 젊고 체력이 좋아서 수색팀이었다.


"빨리 빨리 안 와!? 김 사원! 어디 회사원이 회의 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그리고 무단으로 집에 갔지!"


어느날 수색을 진행하다가 같은 수색대원들에게 칼을 맞고 버려졌었다.


"이 부장님! 한 번만 봐주세요. 어제는 김 사원도 많이 취했었나봐요. 충분히 자숙하고 있고, 저도 따로 벌을 내릴게요."


쓰러진 내 앞으로 걸어온 이 부장이 침을 퉤 뱉으며 하던 말이 글쎄.


지금이랑 똑같았다.


"아이참! 임 대리는 너무 김 사원을 감싸서 탈이라니까."


54세 이 부장은 25세 임 대리를 연모한다.


"운이 좋으시군요, 이 부장님."


"...뭐? 김 사원,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일주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고 정신을 잃기를 반복하면서 간신히 회복한 몸뚱어리를 끌고 도착한 캠프는... 피바다였다.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줄 알았던 이 부장의 머리통이 조잡한 창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를 찔렀던 수색대원들의 머리와.


임 대리의 머리도 함께.


'슬슬 됐으려나.'


시계를 보니, 초침이 정각에 이르기 직전이었다.


앞으로 10초면 대격변이 일어나는 오전 9시가 된다.


"이거 받으시죠."


품에서 미리 써둔 사표를 내놓았다.


"뭐? 너 이러려고...!"


거슬린다. 누렇게 익은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튀기며 감정을 떠벌리는 저 아가리가.


사표를 들어서 이 부장의 입에 구겨넣었다.


"받으시라고요."


그러고는 가볍게 뒤로 밀쳤다.


이 부장이 잔득 붉어진 얼굴로 퉤퉤 사표를 뱉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그 순간.


'시작된다.'


세계의 시간이 멈춘듯 날아다니던 먼지도, 창밖의 새들도, 이 부장의 입도 굳었다.


시간이 멈춘채 시간이 흘렀다.


아이러니하지만 10초 가량이 흘렀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부장의 입이 꾹 닫혔다.


"...방금 나만 느낀 거야?"


"시, 시간이 멈춘 듯한...."


"꺄아아아아아아악!!!!!"


소름이 돋는 하이톤의 비명 소리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홀린듯 회사 테라스로 나가서 창문을 연 순간.


"살려줘!!! 괴물이다!!!"


"이게 뭐야!!!"


털이 난, 피부가 녹색인, 개를 닮은, 파충류가 분명한 등등의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괴물들이 도시 곳곳에 나타나 있었다.


괴물들은 인간들을 보는 족족 때리고 죽이고 잡아먹기 시작했다.


할로윈 밤의 악몽처럼.


"이,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 1차 대격변이 시작됐습니다.


- 당신은 몬스터존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강해지거나 살아남으세요.


"으악!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


시스템이다. 왜 안 나타나나 했네.


경악하는 이 부장의 앞에, 그것이 나타났다.


양손으로 테라스 난간을 잡고 기어올라서 얼굴을 내밀었다.


눈이 하나뿐인, 외눈박이 사이클롭스다.


"사, 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이 부장.


임 대리가 손을 뻗어서 김용명의 손을 잡고 끌지만, 역으로 잡혀서 붙들렸다.


"요, 용명 씨?"


"임 대리님, 가만히 계세요. 위험하지 않으니까."


회귀 전에는 무던히도 도움을 받았었다.


어느정도는 갚아야겠지.


"제 곁에만 꼭붙어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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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수도 대구(2) 20.12.18 91 1 13쪽
19 신수도 대구(1) 20.12.17 90 1 11쪽
18 용명 길드(5) 20.12.16 89 1 11쪽
17 용명 길드(4) 20.12.15 107 1 12쪽
16 용명 길드(3) 20.12.14 99 1 13쪽
15 용명 길드(2) 20.12.13 98 1 11쪽
14 용명 길드(1) 20.12.13 100 1 10쪽
13 진 마에아시(3) 20.12.06 109 1 12쪽
12 진 마에아시(2) 20.12.05 108 2 11쪽
11 진 마에아시(1) 20.12.02 1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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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QP전자(2) 20.11.19 200 4 12쪽
2 QP전자(1) 20.11.16 252 6 13쪽
» [프롤로그]한 많은 인생이었다. +3 20.11.15 316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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