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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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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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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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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57. 시즌 결산

DUMMY

2014/15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수상 내역.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득점왕

1. 아담 루니(애버딘) / 22골

2. 잭 마틴(로스 카운티) / 20골

3. 크리스 둘란(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 16골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도움왕

1.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 14도움

2. 아론 도란(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 11도움

3. 셀소 보르헤스(셀틱) / 10도움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올해의 팀

1. 아담 루니(애버딘)

2.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3. 셀소 보르헤스(셀틱)

4. 리차드 브리튼(로스 카운티)

5. 윌프리드 자하(셀틱)

6. 로스 드레이퍼(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7. 리 월리스(로스 카운티)

8. 폰투스 얀손(로스 카운티)

9. 버질 반다이크(셀틱)

10. 아메드 델샤드(로스 카운티)

11. 마크 브라운(로스 카운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올해의 팀 / 4-1-4-1]

FW : 아담 루니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셀소 보르헤스 / 리차드 브리튼 / 윌프리드 자하

DM : 로스 드레이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버질 반다이크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베스트 일레븐을 파란색으로 물들여 놓겠습니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가 작년에 감독상을 받으면서 꺼냈던 소감이었다.


작년 2위란 성적을 거뒀음에도 올해의 팀에 아무도 뽑히지 못했던 선수들. 그래서인지 수상을 하면서 기쁨보다 언짢음을 드러냈던 그였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지금, 정말로 로스 카운티의 군청색이 올해의 팀 절반 이상을 물들여 놓았다.


2년 차에 스코틀랜드 전역을 놀라게 하겠다는 선언을 그대로 이행해낸 것처럼 이번에도 내뱉은 말을 확실하게 지킨 셈이다.


저 이탈리안이 매번 초인적인 대담함을 보일 수 있는 건 계획을 실행하는 과감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그 모든 것을 가능케 만드는 능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임대를 제외한 세 명의 영입생만 봐도 그러했다.


당시 공격진 보강을 경시하면서 수비수만 데려오는 이적 시장 행보에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고, 제법 많은 비판까지 오갔었다.


하지만 그 세 명이 합류한 수비진은 리그 최소 실점을 기록하며 셀틱보다 더 단단한 요새를 구축했고, 로스 카운티를 더블이란 영광으로 이끄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급기야 베스트 팀에도 전부 이름을 올렸다.


지금이야 이 감독의 선택에 누가 반기를 들겠냐만, 어쨌든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또 한 번 입증한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합리적인 결과였지만, 올해의 팀 선정에 전부가 순응한 건 아니었다.


셀틱 팬들은 프리미어십의 터줏대감인 스콧 브라운이 빠진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지역 라이벌 캘리 시슬 팬들은 폰투스 얀손보다 제이크 맥라렌이 좀 더 나았다며 불평하기도 했다.


심지어 후반기에 데뷔한 키어런 티어니의 임팩트가 리 월리스를 뛰어넘는다는 무모한 주장까지 펼친 이들도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 물론 저들은 로스 카운티와 대척점에 서 있는 팀을 응원한다는 공통점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단지 소수가 부르짖는 아우성일 뿐.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한 선수만큼은 차마 건드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PFA 선정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FWA 선정 스코틀랜드 올해의 선수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최우수 선수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작년 셀틱의 크리스 커먼스와 하이버니언의 리암 크레이그로 갈렸던 올해의 선수상은 모두 한 명에게로 향했다.


골닷컴이 선정한 ‘세계가 주목하는 슈퍼 루키 50인’에 포함된 유일한 로스 카운티 소속, 제임스 블랜차드의 3관왕.


수상자가 나뉘지 않고, 모든 기관에서 만장일치로 뽑았다는 건 그만큼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는 뜻이다.


[프리미어십 33경기 30공격 포인트, 통산 51경기 41공격 포인트. 작년 성인팀에 데뷔하여 겨우 2년 차를 넘긴 선수의 스탯입니다. 놀라운 기록을 쌓은 이 선수의 포지션은 미드필더입니다. 공격수가 아니라요.]


도움왕에 등극한 14어시스트와 그보다 더 많은 16개의 득점.


블랜차드의 활약상을 거론할 때 유로파 리그를 빼놓을 순 없겠지만, 프리미어십에서 발휘한 영향력만으로도 이견이 나올 수 없는 수상이었다.


괴물 같은 수준의 공격 포인트뿐만 아니라 경합 성공률이나 볼 탈취 등 수비 쪽의 지표도 우수하니 선정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


딩월을 ‘에너지’의 대명사라 설명한다면, 블랜차드는 ‘만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선수였다.


적어도 스코티시 내에서는 최고의 육각형 미드필더로 확고히 올라섰으며, 더 나아가 높은 스탯 생산력까지 가진 유니크한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개인상을 쓸어버려 놓고서 덤덤한 표정으로 상을 받는 그의 성격 또한 만만치 않게 특이하긴 했지만.


“그냥 뛰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심플하기 짝이 없는 멘트. 그의 심드렁한 인터뷰를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기에 다들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네, 인터뷰 감사합니다. 그럼······.”


“그리고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갑자기 무슨 생각에선지 다시 입을 여는 블랜차드. 기대를 아예 내려놓았던 기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시즌 중반에 몇 번 나오지 못했을 때. 제 입지가 흔들린다는 기사가 꽤 나왔었죠? 지금도 가끔 불화설 같은 루머가 뜨던데.”


“······.”


“다 끝났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말할게요. 제가 이 상을 받은 건 오히려 그 일 덕분이에요.”


“네? 그게 무슨 소린지······.”


“자만에 빠질 수 있었던 타이밍에 자극을 제대로 받았거든요.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고 달리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었어요.”


평소 인터뷰를 할 때마다 단답형으로 응하던 블랜차드가 열변을 토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제껏 잘해왔어도 내일 당장 부진하다면 바로 선발 명단에서 제외될 겁니다. 감독님은 모두에게 공평하거든요. 편애 따위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구분하죠. 우리 선수들은 그저 열심히 뛰기만 하면 돼요.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라오니까요.”


“······그렇군요.”


“제가 일시적으로 부진했을 때 감독님은 메시지를 던져준 거예요. 정해진 주전은 없다고. 그건 일정한 폼을 유지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특권이라고. 저는 그 뜻을 받아들여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


“마지막으로,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전 어떤 상황에서도 감독님을 거스를 생각이 없습니다. 그는 항상 옳으니까요. 이 상을 받은 것도 감독님 덕분이고요. 그러니······ 기사로 절 흔들어 보려는 건 소용없는 짓입니다.”


“네······. 잘 들었습니다.”


블랜차드치고는 꽤나 긴 장문의 인터뷰. 그것만으로도 매우 희귀한 소재거리를 얻은 셈이었으나, 몇몇 소수의 기자들은 기뻐하지도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져만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공개 석상에서 단순히 소감만 꺼낸 게 아니라 간간이 나돌던 불화설마저 일축해버렸으니 말이다.


블랜차드가 구단에 쏟은 헌신을 쭉 지켜봐 온 대다수 사람은 믿지도 않는 소문이었지만, 아예 본인이 직접 나서서 루머라 언급했으니 사실상 확인 사살이었다.


이제 블랜차드를 가지고 허위 기사를 뽑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될 테니까.


“저 녀석은 소감을 말하랬더니 감독 찬양문을 읊고 앉았네.”


멀리서 지켜보던 스콧 보이드는 피식 웃음을 뱉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PFA 선정 스코틀랜드 올해의 유망주

에이든 딩월(로스 카운티)



올해의 유망주는 다른 팀에서 배출된 경쟁자가 몇 명 붙긴 했으나, 결국은 둘의 싸움이었다.


프리미어십 전 경기를 출전하면서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에이든 딩월과 엄청난 폭발력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한 건씩 해줬던 앤드류 톰슨.


PFA에서는 리그 최다 출전 수와 줄부상으로 인한 포지션 공백을 훌륭히 메운 공적까지 반영하여 딩월의 손을 좀 더 높이 들어 주었다.


최근 자신에 대한 여론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걸 보고서 내심 올해의 선수까지 살짝 기대해봤던 딩월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가 3관왕을 휩쓸어버린 괴물인데.


딩월은 여전히 블랜차드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다음은 모두가 예견하다 못해 이미 확신하고 있는 결과.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올해의 감독

안토니오 델 레오네(로스 카운티)



감독 부문은 3관왕을 석권한 블랜차드보다 더 일방적인 몰표가 쏟아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애당초 그 블랜차드와 딩월을 발굴하여 1군에 데뷔시키고, 올해의 상을 받을 만큼 키워준 인물이니까.


그냥 지금의 로스 카운티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이니까.


셀틱을 끌어내린 리그 우승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이상의 것을 해냈으니 논란의 여지조차 없었다.


게다가 2년 연속 올해의 감독 수상.


이대로 쭉 간다면 현역 최고의 프리미어십 감독을 넘어 스코티시 리그 역대 감독 라인에 거론될지도 모른다.


상을 받아 든 이탈리안은 어두웠던 얼굴의 작년과 다르게 환한 미소를 만면에 띤 채로 짧은 소감 한마디를 꺼냈다.


“드디어······ 우리 선수들이 제대로 인정받게 되었군요.”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올해의 골

소피앙 부팔(로스 카운티 / 셀틱전)



올해의 골은 셀틱과 붙었을 때 나왔던 부팔의 골로 선정되었다.


중앙선 아래부터 출발해 무려 70미터의 장거리를 드리블로 질주하며 셀틱의 진영을 초토화시켰던 과정, 반드시 이겨야 정상에 오를 수 있는 1위 결정전에서 이뤄낸 값진 역전 골.


퍼포먼스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이를 능가할 후보군은 없었다.


“올 시즌은 확실히 로스 카운티의 해라는 걸 새삼 다시 한번 느낍니다. 트로피부터 상까지 전부 싹쓸이하고 있으니까요. 그럴만한 활약상을 펼치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대단합니다.” - 축구 분석 프로그램, 스코티시 풋볼 데이 사회자 ‘스티브 맥멀런(Steve McMullen)’ -


올해의 선수 3관왕부터 시작해 올해의 감독, 올해의 유망주, 심지어 올해의 골까지. 작년에 대접받지 못했던 설움을 제대로 풀어내는 결산이었다.


컵 대회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여러모로 아쉬웠을 것이다. 둘 다 4강의 문턱에서 미끄러졌으니.



2014/15 Scottish Premiership 우승팀

로스 카운티


2014/15 League Cup 우승팀

셀틱


2014/15 Scottish Cup 우승팀

인버네스 캘리도니언 시슬



자국에서 열린 세 개의 대회는 제각기 다른 팀이 하나씩 우승컵을 가져가며 마무리되었다.


로스 카운티에게 왕좌를 빼앗긴 셀틱은 리그 컵을 들어 올리는 데에 만족해야만 했고, 인버네스는 스코티시 컵 결승에서 세인트 존스톤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간신히 트로피 하나를 추가할 수 있었다.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우승만으로도 두 팀이 로스 카운티에 견줄 바는 못 되겠으나.



2014/15 UEFA Europa League 우승팀

로스 카운티



이 기록까지 존재하는 이상 더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안방을 벗어난 유럽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며 더블을 달성. 스코티시 팀이 우승한 기록을 찾아보려면 수십 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할 테니까.


시상식은 따로 열지 않았지만, UEFA 측에서도 곧장 대회 결산을 발표했다.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팀

1. 카를로스 바카(세비야)

2. 예우헨 코노플리얀카(드니프로)

3. 에베르 바네가(세비야)

4. 케빈 더브라위너(볼프스부르크)

5. 제임스 블랜차드(로스 카운티)

6. 리차드 브리튼(로스 카운티)

7. 도메니코 크리시토(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8. 라울 알비올(나폴리)

9. 다니엘 카히수(세비야)

10. 아메드 델샤드(로스 카운티)

11. 마크 브라운(로스 카운티)


SUB

12. 세르히오 리코(세비야)

13. 파우치 굴람(나폴리)

14. 그제고시 크리호비아크(세비야)

15. 루슬란 로탄(드니프로)

16. 소피앙 부팔(로스 카운티)

17. 에이든 딩월(로스 카운티)

18. 헐크(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팀 / 4-2-3-1]

FW : 카를로스 바카

AM : 예우헨 코노플리얀카 / 에베르 바네가 / 케빈 더브라위너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DF : 도메니코 크리시토 / 라울 알비올 / 다니엘 카히수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우승이라서 그런 걸까?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처럼 올해의 팀 절반을 로스 카운티의 이름으로 채우는 일은 없었다.


득점왕은 7골을 넣은 세비야의 카를로스 바카, 도움왕은 6어시스트를 한 비야레알의 루시아노 비에토.


로스 카운티의 최다 득점자는 5골인 블랜차드. 확실히 눈에 띄는 개인 기록을 바탕으로 우승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팀, 조직력을 무기로 내세운 느낌이 강한 챔피언이었다.


거기에 덧붙이면 감독의 전술까지.


“유로파 리그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와 감독은 8월 말에 발표됩니다. 선수 쪽은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습니다만, 감독은 결승에서 만난 둘로 좁혀지겠죠. 에메리도 훌륭한 감독이긴 한데, 체급이 크게 차이 나는 팀끼리 호각으로 싸웠던 걸 생각하면 결과가 어느 정도 보이긴 합니다.” - 카탈루냐 라디오 방송국 ‘Rac1’ -


*******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축제의 연장선이었던 시상식이 끝난 뒤 찾아온 작별의 시간.


“마음 한편으론 여기에 남고 싶은데······.”


“말하지 않아도 되네, 소피앙. 다 이해하니까.”


감독은 부팔과 가볍게 포옹하며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로스 카운티의 더블 우승 신화에 적지 않은 공적을 세운 소피앙 부팔.


하지만 그는 임대 신분이고, 돌아가야만 한다.


유럽 대항전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서인지 원소속팀 앙제 SCO는 벌써 여러 구단에게 오퍼를 받느라 한창 전화통에 불이 나는 중이었다.


따라서 재임대 요청은 받지 않겠다고 미리 못 박아놓은 상태.


부팔을 다시 쓰려면 구매를 해야만 하는데 쉽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본래 LOSC 릴에서 이 모로코 테크니션을 3m 파운드(약 50억 원)에 단독 입찰하는 분위기였으나, 갑작스레 잉글랜드 프리미어 구단들이 개입하면서 판돈이 커지고 있는 상황.


부팔을 꾸준히 모니터링 해왔던 사우샘프턴(Southampton)이 협상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이어, 에버튼(Everton)도 영입 경쟁에 참전.


익명의 구단 두 곳이 추가로 끼어들면서 9m 파운드(약 150억 원)까지 불어나 버렸으니 이를 앙제 SCO가 놓칠 리 만무했다.


이번에 프랑스 리그 앙으로 갓 승격한 팀이 목돈을 만질 기회가 언제 또 오겠는가?


그리고 이건 로스 카운티가 유로파 리그 예선전과 조별 리그를 거쳐 우승까지 달성하면서 벌어들인 총상금 7.1m 파운드(약 118억 원)를 전부 털어도 살 수 없는 금액이었다.


설령 모든 재정을 쥐어짜 내서 살 수 있는 돈을 마련하더라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손길을 뿌리치는 건 부팔에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세계적인 무대다. 선수라면 누구나 꿈꿔 오던.


이런저런 이유로 그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날 수밖에.


“알아서 잘하리라 믿지만, 부디 자네를 잘 다룰 줄 아는 감독을 만났으면 좋겠군.”


“감독님 같은 분은 만나기 어렵겠죠. 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네요.”


프리미어 리그에 비하면 한참이나 동떨어진 스코티시 리그를 두고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 역시 델 레오네 같은 인물을 다시 볼 수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유소년 시절부터 부팔은 지독한 볼 호그(Ball Hog : 팀워크를 망칠 정도로 볼을 오래 소유하는 타입)로 유명했다.


그를 지도하던 감독과 코치들은 안 좋은 습관이라며 지적하거나 처음부터 방치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며, 고쳐지지 않는 걸 보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탈리안 감독은 무조건 억제하려고만 들지 않았다.


아예 부팔을 위로 끌어올려 배치해놓고 팀의 전개 과정에 참여하기보다 피니셔의 역할에 더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상대 수비를 한쪽으로 끌어들인 다음 빠르게 반대편으로 전환하여 만들어진 공간에 일대일로 드리블을 시도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했다.


부팔은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와 기술만 선보이면 되었다.


잘 짜놓은 시스템으로 그의 단점을 가리고, 장점만 부각시켜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탈리안은 지적만 늘어놓던 다른 지도자와 달리 가진 능력을 칭찬하며 꾸준히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긍정적인 기운과 체계적인 시스템 속에서 뛰다 보니 조금씩 팀워크에 대한 묘미도 깨달았다.


그의 밑에서 몇 년 더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많은 것들을 깨우칠지도 모르는 일인데.


“잉글랜드 가서도 잘해. 잘할 수 있을 거야.”


“고마워요, 주장.”


“그룹방은 나가지 마. 가끔 우리랑 메신저로 연락해야지.”


“그래, 알았어.”


헤어지고 싶지 않은 은사를 뒤로하고 부팔은 일 년 동안 값진 추억을 쌓았던 팀원들과 차례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드리블······ 아직 더 배울 게 많은데······ 아쉽네요.”


“······아니야. 넌 더 이상 배울 게 없어.”


톰슨의 말에 부팔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드리블러가 될 수 있을 거니까. 내가 보장할게.”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너에게 제일 부족한 건 자신감이야, 앤드류. 내 말 믿어 봐.”


“······.”


부팔은 톰슨을 향해 웃어 보이더니 크게 심호흡하며 그동안 정들었던 로스 카운티 식구들을 돌아보았다.


“그럼······ 이만 갈게.”


“잘 가!”


“고마웠어!”


팀원들은 그가 자그마한 점이 되어 안 보일 때까지 자리에 머물러 손을 흔들어 주었다.


*******


그로부터 며칠 후.


두 건의 소식이 발 빠른 기자들에 의해 보도되었다.



[ The Scotsman ] 맷슨 클락, 고국인 네덜란드로 복귀 임박


[ Scotland Sunday ] 에레디비시로 승격한 NEC 네이메헌, 클락 영입


[ Scottish Sports ] 클락의 이적료는 분할 지급 포함, 12만 파운드(약 2억 원)로 추정



컵 대회에서 고정적인 선발 출전 기회를 약속 받았던 6인의 후보. 그중 한 명인 맷슨 클락.


그의 방출은 소리 소문도 없이 진행되어 선수들도 당일이 돼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본인도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맴돌기만 했으니 부팔처럼 송별식을 받는 건 영 껄끄러웠던 모양이었다.


로스 카운티의 주전 미드필더로 뛰는 원대한 꿈을 품긴 했으나, 그 여섯 명의 후보 사이에서도 인상 깊은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던 클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즌 막바지에는 잔부상으로 고생하면서 만회할 기회조차 얻어내지 못했다.


감독은 날아오는 언론의 공격을 손수 막아 주며 그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뒤로는 가차 없이 낙제점을 매긴 듯했다.


“역시 최후통첩이 맞았잖아.”


방출 소식을 접한 스티브 샌더스는 기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후보 선수가 보장받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임과 동시에 마지막 기회.


까딱하면 자신도 클락의 뒤를 따라야 했을 터다.


다음 시즌에 바짝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곧 따라가야 할지도.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고 싶진 않아······.”


샌더스는 잔잔하게 떨리는 손목을 부여잡으며 밖으로 나가 아스팔트를 달리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


[ Daily Mirror ] 또 한 명의 네덜란드 선수가 로스 카운티를 떠난다



뒤이어 보도된 소식도 방출에 관한 기사였다.


맷슨 클락이 떠난 시점에서 네덜란드 국적의 로스 카운티 선수는 한 명뿐.



[ Scottish Sports ] 에드빈 데 루어, 하일랜드의 집을 매각하는 중


[ Daily Telegraph ] SC 헤이렌베인의 전력 보강 목표가 된 데 루어



뜻밖의 이적이었다.


준주전의 입지가 확고했다가 나폴리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시즌 아웃의 불운을 겪었던 데 루어.


이번 건은 선수 본인이 원해서 일어난 거래였다.


작년만 해도 에레디비시 팀의 오퍼를 단칼에 거절하며 잔류 의사를 표명했던 선수가 왜 떠날 결심을 하게 된 걸까?


복귀하면 여전히 로스 카운티에서 쓰임새가 많을 텐데. 팬들로서는 섭섭하면서 아쉬운 이적 소식이었다.



“막상 떠나려니 좀 그리워질 것 같긴 하네.”


같은 시각. 데 루어는 빅토리아 파크의 라커룸에 들어와 혼자서 적막한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감독을 만나 충분히 대화를 나눴고, 짐도 다 싸서 돌아갈 채비는 마쳤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추억을 되새겨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럼 가볼까.”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데 루어는 짧게 한숨을 뱉으며 라커룸을 나섰다.



“에드빈!”


클럽 하우스 밖으로 나온 데 루어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톰슨이 서 있었다.


“메신저로 모두와 인사까지 다 끝냈는데 뭘 여기까지 찾아왔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정말 떠나는 거예요?”


“그렇게 됐네.”


데 루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막판에 뛰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나름대로 이룰 것도 이뤘고. 전환이 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해서.”


“······.”


“우리 팀 업적에 내가 아무런 비중도 없었던 건 아니잖아?”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 나 역시 만족하고 떠날 수 있는 거지.”


“그래도······.”


“왜 우울해하는 거야? 내가 없으면 넌 더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을 텐데. 오히려 좋은 거잖아?”


“함께해왔던 동료잖아요.”


“동료이기 전에 경쟁자이기도 하지. 넌 너무 착하다니까.”


데 루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떠나는 이유는 너 때문인데.”


“네?”


“앤드류 톰슨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버거워서 패배를 인정했단 소리야.”


“당치도 않아요. 제가 무슨······.”


“농담 아니야. 난 거대한 벽을 느꼈거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결국엔 주전 자리를 뺏길 테니 그 전에 알아서 물러나려는 거지.”


“······.”


“그렇다고 너에게 악감정이 있는 건 아냐. 진심으로 잘 됐으면 좋겠어. 다만 나는 스물일곱 살이야. 선수로서 전성기를 보내야 하는 나이고. 후보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어. 이해하지?”


“모르겠어요······.”


“제임스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가는 중이고. 어휴, 측면이나 중앙이나 무서운 놈들투성이야. 괜히 치이기 전에 어서 발 빼야지.”


우스갯소리인 건 알지만, 톰슨은 웃을 수 없었다.


데 루어도 웃음을 거두며,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넌 다음 시즌에 더 대단한 선수가 될 거야. 장담할 수 있어.”


“소피앙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말하네요.”


“너를 옆에서 지켜봐 온 사람들이라면 다 그렇게 말할걸.”


“부담스럽기만 해요. 난 그런 수준이 아닌데······.”


“너만 모르는 거야, 앤드류. 자신을 좀 믿어 봐.”


“······.”


“넌 너무 착해. 마음이 여리고. 그래서 문제야. 어느 정도는 독기가 필요해.”


“······.”


“계속 움츠러들기만 하면 네가 가진 재능을 배신하는 거야. 그건 너와 함께했던 동료이기 전에 축구인으로서 용납 못 하겠다.”


“에드빈······.”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 이제 가야 해. 네덜란드로 가서 할 게 많아. 계약도 해야 하고. 새로 살 집도 알아봐야 하고.”


데 루어는 톰슨의 적갈색 머리에 손을 얹어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내 몫까지 열심히 뛰어라, 꼬마야.”


“이젠 꼬마가 아니에요.”


“글쎄. 네가 깨닫지 못하면 넌 나에게 평생 꼬마일 뿐이야.”


“······.”


“그럼 간다. 잘 있어.”


데 루어는 마지막 인사와 함께 등을 돌리며 손을 흔들었고, 톰슨은 그가 저 멀리 사라진 뒤에야 나지막이 대답했다.


“잘 가요.”


작가의말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두 시즌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네요.

나머지 이야기까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짱짱가 님

foir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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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7. 동기부여 (3) +8 23.04.09 1,246 52 22쪽
176 176. 동기부여 (2) +5 23.03.26 1,270 41 22쪽
175 175. 동기부여 +4 23.03.13 1,294 45 27쪽
174 174. 꿈의 무대 (3) +4 23.02.26 1,334 46 23쪽
173 173. 꿈의 무대 (2) +7 23.02.13 1,326 48 22쪽
172 172. 꿈의 무대 +6 23.01.29 1,477 49 23쪽
171 171. 이적 시장 종료 +7 23.01.14 1,427 46 27쪽
170 170. 더 높은 곳의 하늘 +7 22.12.30 1,472 47 27쪽
169 169. 스코티시 레벨이 아니다 (2) +7 22.12.10 1,528 50 26쪽
168 168. 스코티시 레벨이 아니다 +4 22.11.24 1,487 52 27쪽
167 167. 개막전 첫 경기 그리고 +10 22.11.07 1,611 48 24쪽
166 166. 잉글랜드 원정 (3) +8 22.10.19 1,579 58 24쪽
165 165. 잉글랜드 원정 (2) +8 22.09.28 1,576 48 23쪽
164 164. 잉글랜드 원정 +5 22.09.15 1,646 55 26쪽
163 163. 또 한 번의 개혁 (2) +4 22.08.29 1,702 62 23쪽
162 162. 또 한 번의 개혁 +9 22.08.11 1,711 60 21쪽
161 161. 로스 카운티의 이적 시장은 (3) +12 22.07.27 1,755 77 23쪽
160 160. 로스 카운티의 이적 시장은 (2) +6 22.07.14 1,731 62 21쪽
159 159. 로스 카운티의 이적 시장은 +7 22.07.01 1,885 66 21쪽
158 158.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8 22.06.18 1,918 80 26쪽
» 157. 시즌 결산 +8 22.06.05 1,920 75 24쪽
156 156. 14/15 시즌 종료 +12 22.05.18 2,056 73 24쪽
155 155. 이탈리안의 말은 틀렸다 +15 22.04.24 2,107 78 36쪽
154 154.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6) +10 22.03.23 1,970 59 35쪽
153 153.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5) +12 22.02.23 1,858 76 24쪽
152 152.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4) +8 22.02.08 1,816 76 25쪽
151 151.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3) +12 22.01.24 1,881 72 29쪽
150 150.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2) +14 21.12.31 1,903 75 24쪽
149 149. 두 번째 시즌의 마무리 +14 21.12.04 2,028 75 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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