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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욕의 서재입니다.

어느 날 내 소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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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욕
작품등록일 :
2024.05.11 22:27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9
연재수 :
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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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648

작성
24.05.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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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스델 (2)

DUMMY

쨍!


날카로운 소음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정면으로 받아치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한 순간에 손목을 비틀어 커다란 대검의 검면을 쳐내는 것으로 빗나가게 한다. 능숙한 흘리기에 당황할 법도 한데, 신비로운 금빛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고, 다음으로 이어간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자신 앞의 모든 것을 분쇄하겠다는 기세로 폭풍처럼 몰아쳤다.


쾅! 콰앙! 쾅! 쾅!


검과 검이 만들어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소음. 저 커다란 대검에 비해 얇디얇은 검이지만, 옆으로 흘리고 빗겨낸다면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다.


빠르게 움직이는 공방, 대검을 휘두르는 그 속도는 실로 섬광과 같았다. 충격에 먼지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인다.


부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드는 대검을 운 좋게 한 걸음 물러나 피하자 실낱같은 틈이 생겼다. 그 잠깐을 놓치면 또다시 연격에 휩싸일 것은 자명했다.


방어에 급급했던 얇은 검이 뱀처럼 날카롭게 빈틈을 내질렀다. 대검을 쓰는 사람이라면 회피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완벽한 순간의 일격이었다.


깡!


그러나, 그 공격이 상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날카로운 검의 끝은 대검의 손잡이에 정확하게 가로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놀랍군요. 생각보다 많이 느셨군요.”


“쉬지 않고 굴린 사람이 누군데 그래. 그걸 막아버리면 내가 뭐가 되니?”


“저는 주인님보다 검을 연마한 시간이 훨씬 깁니다만.”


“얼마나 했는데?”


“여인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고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아직 상식은 멀었나 보군요.”

공격을 막기 위해 살짝 굽혀졌던 무릎이 폭발적으로 뻗어 나가며 허리를 후려쳤다.


“커어억!”


“검술은 이제 합격입니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으시겠네요.”


땀을 흘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아스델의 얼굴은 평온 그 자체였다. 치마를 입고도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니 ‘메이드의 소양입니다.’ 같은 말만 반복하니, 더는 묻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어느 틈에 준비해 온 건지 젖은 수건을 건네는 아스델에 눈인사로 감사를 표했다. 묻은 먼지와 땀을 닦아내니 상쾌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운동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될까?”


“사용하실 ‘몸’의 준비가 끝이 났으니, 이틀 후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어.”


마법, 교양, 검술.


앞으로 내가 활동해야 하는 ‘무대’에서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능력이었다. 만능 메이드 아스델의 가르침으로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이 되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처럼 과로와 피로로 점철된 몸이 아닌 생생하고 싱싱한 몸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마법은 의외로 재능이 있어서 생각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신이라 더 편한 것도 있겠지만 이 정도면 인간치고도 나쁘지 않은 습득력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내 소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세계라 역사는 얼추 알고 있었고,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귀족들의 예법이나 문화를 공부하기만 해서 상대적으로 편했다.


검술이 가장 문제였다. 잘 보이는 눈으로 잘 처맞았다.


말 그대로 어디서 어떻게 공격이 날아오는지 보고 느낄 수 있는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피하지를 못했다.



길었던 수련이 끝이 났다. 이제 진짜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가게 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제 그러면 밖으로 나가도 되는 건가?”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만, 마음이 급하시군요.”


“이런 곳에 갑자기 떨어졌는데, 계속 수련만 하고 있다고 생각해봐. 밖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궁금한 게 당연한 일 아니겠어?”

“이 축복받은 환경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군요.”


“너 메이드 맞지?”


“이 옷과 저의 업무, 그리고 제 마음이 저를 메이드라 하는 데, 어찌 그런 말을 하시나요?”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메이드의 교양이 언제 마법과 검술까지 익혀야 하는가에 약간의 궁금증은 남았지만, 자세한 것은 생략했다.


쏴아아.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예스러운 욕탕에 어울리지 않는 샤워기는 내 부탁으로 생겨난 물건이었다.


처음에는 투정이었다. 의심도 들었고, 나를 왜 데려와서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시키는 것인가에 대한 반항이었다.


하지만 유능한 메이드는 그 모든 것을 전부 처리했다.


샤워기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말하니 샤워기가 생겼고,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햄버거가 나왔다.


말 그대로 바라는 것은 전부 이루어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스델이 내게 바라는 것은 단지 단련하고 앞으로 이야기를 완성 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것. 단지 그뿐이었다.


생각보다 마법은 재밌고, 검술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이대로만 한다면 앞으로도 괜찮게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스델이 데리고 온 초록 피부에 돼지머리를 달고 있는 이족보행 생명체를 쇠사슬에 묶어서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쿵!


“꾸이이익!!!”


질질 끌려오다시피 온 초록 괴물은 아스델이 쇠사슬을 놓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오크입니다. 지금 주인님이라면, 순식간에 죽일 수 있습니다만, 마법을 쓰지 않고 검으로만 죽이는 것이 과제입니다.”


“나랑 얘랑 싸우라고? 얘 많이 화난 거 같은데.”


아스델하고는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오크 녀석은 살기 등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안심하십시오. 지금은 제가 힘을 많이 빼놓았지만, 주인님이 싸울 때는 만전의 컨디션이 될 수 있도록 치유마법을 걸 예정입니다.”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주인님의 실력은 객관적으로 오크 부족 하나는 검 하나로 아니, 맨몸으로도 다 깨부술 수 있는 정도입니다만, 생명을 빼앗는 경험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 아닌데······?”


“예?”


“군대라는 곳이 참 별의별 일을 많이 겪게 하더라고.”


“군인이셨군요. 그렇다면 이건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네요. 이미 살인을 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에게······.”


대한민국의 군인은 살인보다는 노동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아니, 그건 아닌데 계급이 낮은 군인은 말이야, 다양한 부조리를 겪기 마련이거든. 거대한 멧돼지를 총으로 쏴 죽인 적은 있어. 일단은.”


새벽에 경계근무를 서다 배가 고파서 뜨끈한 라면을 끓여 먹다가 냄새에 이끌려서 저 멀리서 거대한 멧돼지와 마주쳤던 사건이 있었다.


부사수는 패닉에 빠졌고, 긴 대치 끝에 음식을 포기하지 않고 초소로 달려드는 멧돼지에게 나 또한 방아쇠를 연달아 눌렀고, 운이 좋게도 머리에 몇 발을 맞은 멧돼지는 몇 걸음을 더 달려오다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며칠 뒤 예정된 식단에 없었던 제육볶음이 나온 것은 아마······.


“그렇다면 잘 준비했군요. 검으로 직접 베어야 알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요.”


“나 화장실 좀 갔다와도 될까? 갑자기 배가 아픈데.”


“한 번도 화장실을 안 갔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셔도 되겠습니까?”


“이럴 때는 참 아쉽네. 신이라는 건 참 이상한 존재야.”


먹기는 먹는데, 나가는 게 없다니. 어떻게 되먹은 몸일까.


“아픈 게 싫으시다면, 알아서 잘 피하시길.”


찰칵!


“잠깐, 잠깐, 잠깐, 잠까아안!!!”


자물쇠가 풀리고 아스델이 손가락을 튕겼다. 초록색 빛무리가 묶여있던 오크에게 떨어지자, 기운을 회복한 듯, 방금까지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양손으로 잡고 붕붕 휘두르기 시작했다.


속박을 위한 도구는 어느새 자유를 위한 무기가 되었다. 점점 속도를 더하는 쇠사슬이 바람을 가르며 날카로운 소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쐐애액!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쇠사슬이 내리쳐졌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렇게 긴 무기를 원하는 대로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 그 오크를 묶고 있던 쇠사슬은 원래 스스로가 쓰던 무기입니다. 겁 없이 달려들길래 뺏어서 중량을 더하는 마법을 걸고, 묶어버렸죠.”


“어쩐지 잘 쓰더라.”


그동안 해왔던 단련이 무용지물은 아니었는지, 오크의 날카로운 공격은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뻔히 보였다. 본능적으로 검을 내지르면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빈틈도 계속 보였지만, 그 한 번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쾅! 쾅! 쾅!


이리저리 내리치는 쇠사슬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는 것을 반복하자, 자신을 농락한다고 느낀 오크가 분노에 휩싸였다.


“꾸이이이익!!!”


뜨거운 열기가 오크를 감싸고, 초록색 피부가 심장에서부터 점점 붉게 물들었다.


콧김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피어오르며 아지랑이가 보였다.


쉭!


펑!


무거운 쇠사슬이 음속을 돌파했다. 강한 충격파에 바닥이 깨지며, 점점 움직일 곳을 없애기 시작했다.


“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오크는 야만적입니다만, 원시적인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지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샤먼들의 시술을 통해, 일시적으로 평소보다 3배 정도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됩니다만, 이성을 잃고 휘두르는 공격이라고 해보았자, 잡스러울 뿐이지요.”


“이런 건 조금 다른 부분이구나.”


내 소설에서 오크가 이런 기술을 쓰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샤먼은 있었지만, 말 그대로 불덩어리를 날리는 주술 같은 것을 쓰는 존재였지, 전사를 강화하는 주술을 몸에 새길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시간이 꽤 많이 흘러서 생긴 겁니다. 문명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밖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저도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은 드릴 예정입니다. 이대로면 어렵겠지만요.”


“그래?”


“이대로면 죽기는 하겠지만, 시험의 목표는 주인님이 직접 목숨을 끊어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함입니다.”


“에휴. 알겠어.”


한 걸음. 채찍을 휘두르며 만든 거리의 장벽은 발을 내딛자 순식간에 좁혀졌다.


“잘 가.”


찰나의 순간. 부드럽게 뻗은 손은 날카로운 검을 쥐고 있었고, 아무런 저항 없이 오크의 목을 꿰뚫고 다시 빠져나왔다.


굵고 붉은 목에 난 작은 구멍이 오크의 마지막 숨결을 토해냈다.


“꾸이이이······.”


“미안.”


시험은 끝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오크는 죽을 것이 확실했다. 살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귀엽지도 않은 오크를 살릴 필요가 어디 있을까.


그래도, 조금은 편하게 죽었으면 했다.


화륵.


손가락 끝에 검은 불꽃이 작게 타올랐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불길하다고 말할 것이고, 두 번째 보는 사람은 이 불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보는 사람은 이 불꽃에 스스로의 몸을 던지리라.


유혹하는 불꽃.


고통 없는 죽음을 위해 개발된 마법이었다. ‘작은 소년 기사 사가’의 조연의 자주 쓰는 마법이었다.


어깨에 닿은 불꽃이 순식간에 번져 커다란 오크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나는, 밝은 목소리로 아스델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은 생선으로 부탁해!”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아스델과 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평소처럼 단련을 했으며, 평소처럼 잠에 들었다.


오크 한 명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을 제외한다면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조금 더 강해졌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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