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겸욕의 서재입니다.

어느 날 내 소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겸욕
작품등록일 :
2024.05.11 22:27
최근연재일 :
2024.05.14 23:59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4
추천수 :
0
글자수 :
21,648

작성
24.05.11 23:00
조회
8
추천
0
글자
13쪽

아스델 (1)

DUMMY

어느 날 내 소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흔적도 하나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


“잠깐만, 이건 아니지. 내가 아이디를 잘못 들어갔나? 아닌데, 이 아이디 맞는데······.”


사라져버렸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문장 하나, 글자 하나까지도 남은 것이 없었다.


항상 소설을 올리던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봐도, 내가 쓴 소설은 제목조차 보이지 않았다.


“파일, 파일은 남아 있겠지.”


행여나 실수로 날려 먹을까 백업도 3중으로 했다. 하드, USB, 그리고 웹 드라이브.


쿠당탕탕!


파일을 저장했던 모든 곳을 뒤져보았지만, 쓸데없는 파일들만 있었다.


“없어, 없다고!!! 뭐지? 내가 뭐, 잘못 다운받았나? 랜섬웨어는 아니고, 해킹당한 것도 아닌데. 어디로, 어디로 사라진 거냐고!!!”


쾅!!


차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키보드를 내리치지 않은 것은 거금 30만 원을 주고 샀었던 키보드의 할부가 아직 한 달 정도 남았으니까.


“아니야, 여기는 있을 거야. 여기는 있어야 해. 보는 사람이 더럽게 없어도 10년이나 썼단 말이야······.”


울먹거리며 정신없이 소설을 찾아다녔다.


하드디스크에는 당연히 없고, 중간까지 백업한 USB도, 웹 드라이브에도 메일로 보냈던 흔적까지


단 한 글자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렸다.


중2병 가득했던 중학생 때부터, 성인이 되고도 몇 년이나 쓴 소설이었다.


인기는 없었어도 오랫동안 써 온 소설 자체에 대한 애착은 엄청났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틈틈이 써서 완결만 업로드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은 한 번에 올리고 싶어서 15편에 해당하는 분량을 전부 쓴 후, 축배를 들다가 필름이 끊긴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필름이 끊긴 사이에 실수로 날려 먹었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써온 모든 소설을 한 번에 날리는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짜, 진짜로 없어진 거야?”


처음 소설을 썼던 날.


중학교 2학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실의에 빠져 있던 내게 위로가 되어준 것은 판타지 소설이었다. 우연이었지만, 주인공 또한 어머니를 잃고, 강해지기로 다짐한 후 최강의 소드 마스터가 되어서 행복하게 산다는 지금 와서는 흔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흔한 이야기가 내게는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많이 읽어봤으니까,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조회수는 잘 나오지 않았다. 회차가 늘어날수록 조회수는 올라갔지만,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으니, 봐 주는 사람이 더욱 적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조회수가 빵 터졌을 때는 기뻐했지만, 어딘가의 커뮤니티에 [편수가 1000편이 넘는데, 조회수가 1500인 소설이 있다]는 조롱의 글이 퍼져서 올라간 조회수였다.


수많은 댓글이 조롱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처음으로 휴재를 했다가, 댓글 창을 닫아버리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딱 한 명.


나를 제외한 단 한 명의 독자가 계속 이 소설을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나는 연재를 중단할 수 없었다.


때로는 늦을 때도, 때로는 바빠서, 때로는 업로드를 까먹어서 올리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소설을 썼다.


‘마지막은 그래도 한 번에 보는 게 좋겠지?’


그런 생각에 공지를 올리고, 연차를 써서 완결까지 달렸는데!!!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 믿기 힘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아니, 그저 인정한 것이다.


긴 시간이 걸려서 이제야 ‘소설’ 같은 소설이 된 내 작품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푸하하하하하하하!!!!”


그저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래. 끝이구나.


“이게, 어쩌면 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결말일지도.”

다만 한 가지 미련이 남는 것이 있다면, 마지막 화를 기다리고 있을 정체불명의 독자 한 사람뿐이었다.


내가 봐도 재미없는 초반부를 넘어서 성장한 주인공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후반부는 솔직히 볼 만했다. 초반부를 수정하고 싶은 생각도 처음에는 있었지만, 몇백 개나 쌓인 분량을 다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어려운 순간을 묵묵히 따라와 준 그 독자를 위해서라도 마지막 완결만큼은 보여주고 싶었는데······.


“제목을 똑같이 하고, 뒷부분만이라도 다시 써서 올릴까?”


머릿속에는 전부 내용이 남아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15화 정도면 다음 주까지는 어떻게든 다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연차를 쓰고, 3일 만에 다 썼으니까, 다시 쓰는 건 남은 이틀로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분명 볼 거야. 응. 갑자기 10년 넘게 읽던 소설이 사라지면 검색이라도 할 거야. 그래. 일단, 제목이라도 올려놓고 공지라도 써놓자.”


마음이 정해졌으면 행동으로 옮겨야지.


신규 작품 연재 버튼을 누르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소설의 제목 [작은 소년 기사 사가]를 입력했다.


트렌드에 맞지 않는 제목이지만, 그렇다고 ‘신들에게 선택받아 시련 10000배를 당한 소드 마스터’ 같은 제목을 붙이기엔 너무 옛날 소설이기도 하고.


표지는 기본.


작품 소개란을 눌러서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한 편지를 썼다.


[10년이 넘는 시간, 꾸준히 따라와 준 당신을 위한 작은 소년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길고 긴 이야기의 마무리만큼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회차가 몇 페이지가 넘어가던 소설은 이제는 아무것도 없이 단순히 작품 소개만 있는 소설이 되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에휴. 빨리 써야겠다.”


슬퍼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농담처럼 말하는 작가님 건강보다 연재가 중요합니다. 라는 말처럼, 지금은 연재가 최우선이다. 부엌으로 가 냉장고에서 앞으로의 마라톤을 위한 준비물을 챙겨왔다.


다량의 초콜릿, 에너지 드링크, 2L 분량의 아메리카노.


이걸로 나는 다시,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탁탁. 탁!


“끄어어어어어. 다······썼다.”


밥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붓고, 커피와 담배로 정신을 부여잡고 쓴 마지막 이야기가 끝이 났다.


23시간 39분.


잠도 자지 않고,


다행스러운 것은 세상에서 사라진 소설이지만, 내 머릿속에는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마치 신들린 것처럼 손이 움직여서 평소의 두 배가 넘는 속도로 집필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라진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시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흐흐흐흐흐흐흐흐흐. 흐흐흐흐.”


반쯤 풀린 눈동자와 뻐근하다 못해 감각이 없어진 것 같은 손으로 마지막 화를 올렸다.


10만 자.


하루 만에 썼다고 믿기지 않는 분량을 업로드한 것을 확인했다.


1화. 완결


웃긴 말이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어차피, 이건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나의 헌정이었으니 이걸로 만족이다.


부디 꼭 찾아내서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까무룩 몰려오는 졸음에 몸을 맡겼다.


그래서 확인하지 못했다.


오후 10시 30분.


조회수 1


댓글 2


⌞ [시련의 성공을 확인하였습니다. 관측자의 격을 상향 조정, █ █ █ █ █의 파편을 확인, 오류 발생, 오류 발생, 오류 발생.]


⌞ [작은 소년 기사의 사가를 복원합니다.]


파아아아아앗!!


기진맥진한 상태로 잠에 빠진 남자의 방에 환한 빛무리가 어렸다. 우주에서 볼 법한 수많은 작은 별들처럼 생긴 무언가가 잠든 남자의 주변을 맴돌다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쏴아아.


수백, 아니 수천이 넘는 작은 빛의 조각들이 잠든 남자의 몸으로 전부 빨려 들어가는 것은 찰나였다.


한 톨의 조각도 남기지 않고 모든 조각이 남자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간 순간.


순식간에, 남자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몸을 감췄다.


쌓여 있는 쓰레기들과 아직 할부가 끝나지 않은 키보드만이 그 방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


고풍스러운 느낌이 드는 방.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영화 속에서나 본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소품들. 혼자만 시대를 뛰어넘은 미래 지향적인 안마의자 같은 무언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난 내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메이드였다.


그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진짜 메이드.


밑도 끝도 없이 나한테 누군가의 이야기를 완결시키라는 소리를 하는 메이드에게 나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재미없는 소설의 완결을 봤다는 소리인가요?”


“네. 나름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데, 저보고 이걸 완결시키라는 말은 왜 하는 거죠?”


“당신이 쓴 소설의 배경이 된 세상이니까요. 정확히는 당신이 쓴 ‘작은 기사 사가’가 이 세상을 배경으로 지어진 소설이죠.”


선후가 바뀌었습니다만, 그리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하고 덧붙인 메이드에게 또다른 질문을 날렸다.


“제가 쓴 소설을 똑같이 진행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 비스무리한 세계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저보고 진행하라는 소리인가요?”


“이해가 빠르셔서 참 다행입니다. 정확히는 ‘주인공의 의문의 조력자’가 되어주시면 되겠습니다.”


“근데 왜 제가 해야 하죠? 안 하면 안 되나요?”


“선택은 주인님의 몫입니다만, 성공의 보수가 원하는 어떠한 소원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 실패 시 보수에 걸맞은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죽기 싫으면 알아서 기라는 소리네요. 사람을 함부로 데려와 놓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죽는다는 표현은 조금 어폐가 있습니다. 주인님은 이제 쉽게 죽지 못하는 몸이 되었으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죠?”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메이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미인은 높낮이가 거의 없는 평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신이 쉽게 죽지 않는다는 상식부터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 내용은 내 작은 평범한 머리통으로는 아득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꿈이길 바라 마지않았지만, 자연스레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존재하는 메이드의 향기와 앉아있는 쓸데없이 고급스러운 침대의 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신이 되었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내게 되었다.


“수련하실 시간입니다.”


“······벌써?”


알람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로 일어나는 것이 어색했던 것도 처음뿐, 이제는 익숙해졌다. 건네받은 세숫물로 직접 얼굴을 닦고, 조금 남은 잠기운을 지워냈다.


내가 지금까지의 몸이 아닌 신이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성 피로로 무거웠던 머리!


매일 같이 일하고, 글을 쓰느라 뻐근했던 어깨!


자고 일어나면 쑤시던 허리!


이 모든 게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익숙해진 무거운 몸뚱이가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을 때의 그 쾌감은 생각보다 신도 나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강제로 주입되는 상식과 교양, 그리고 전투 기술은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것도 모르십니까?’


하는 눈초리로 말이 압박해오는 메이드, 아스델에게 반항하는 것은 어려웠다. 매 끼니 나오는 맛있는 식사가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는 더욱.


사실 한 번 반항했다가 정체불명의 과일 하나랑 음료수 하나로 끼니를 때우게 됐을 때, 다시는 거스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일 뿐이다.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겨 쓸데없이 넓기만 한 저택을 가로질러 뒤뜰의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수련장에 도착하자 이미 준비를 마친 아스델이 커다란 대검을 손에 쥔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스프레용 무기인가 싶을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저 대검이 진짜 무기라는 것은 요 한 달간 뼈저리게 몸으로 겪을 수 있었다.


아스델이 준비해 놓은 장검을 들었다. 손에 쥔 거대한 장검을 휘둘러 내게 겨눈 아스델이 언제나처럼 평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살살 부탁해.”


세상에서 내 소설이 사라진 어느 날. 나는 그렇게 신이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어느 날 내 소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만남 (2) 24.05.14 1 0 12쪽
3 만남 (1) 24.05.14 2 0 11쪽
2 아스델 (2) 24.05.12 3 0 12쪽
» 아스델 (1) 24.05.11 9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