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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벤 님의 서재입니다.

검은용은 사랑을 모르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헤르벤
작품등록일 :
2019.05.26 18:45
최근연재일 :
2022.11.19 12:09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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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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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156,753

작성
22.11.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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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노예(3)

DUMMY

오물에 처박힌 눈을 느리게 끔뻑였다. 잘린 발. 얼려진 노예의 발에는 빛무리를 잃은 검은 족쇄가 박혀있었다.


고문관이 왼발을 우악스럽게 잡아 철장 틈으로 꺼냈다. 족쇄를 네 몸에 이식할 마법사는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저걸 새기면 고문은 끝날 것이다.


고문관들이 돌연변이를 제압하기 위해 채찍이나 곤봉을 휘두를 필요가 없어질 테니. (몸이 자연 치유되는 동안 돌연변이들은 온전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들이 널 귀인 대접할 리 없지만, 죽은 눈을 한 혼종들처럼 독방에 갇히리라. 너는 숙부가 언급한 악몽에서 공주를 기억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흉흉한 마력을 뿜어내보지만, 마법 낙인이 찍힌 이마에서 피가 왈칵왈칵 쏟아질 뿐이었다. 불도장에 특수한 마법이 걸려 있던 모양이다.


자작이 만든 성노의 증표는 문을 열 때마다 마력 일부를 삼켜 이마에 새로이 글귀가 새겨졌다. 네가 힘을 사용하려 들 때마다, 그것은 종마에 불과한 네 주제를 상기시켰다.


벌어진 입안에선 모래가 씹혔다. 너는 그 험한 꼴을 당하고도,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마녀의 눈이 붉게 물들자, 그녀는 불길한 주문을 외웠다. 그녀의 마력이 네 전신을 훑자, 순간의 고양감이 널 감쌌다.


“끝났나?”


여인이 네 몸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눈이 본래의 평범한 갈색으로 돌아왔다.


“족쇄의 각인이 불가합니다. 이미 다른 세뇌가 걸린 몸이에요.”


그녀는 오물이 묻은 로브의 밑단을 오만하게 털었지만, 여전히 네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세뇌가 불가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문을 망가뜨리는 거죠. 물론 상위개체는 문을 파괴해도 생명 석을 도려내지 않는 한 재생되죠. 결국, 정기적으로 문을 닫는 약을 먹이는 게, 저 아이를 무력화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신이 문을, 내 문을 닫을 수 있어?”


너는 기어가 마녀의 로브 자락을 쥐었다. 네 발악에 고문관이 곤봉을 휘둘렀다.


그런 약이 있다면 호진이 구해주지 않았을 리 없지만, 암시장의 물건이라면 그가 몰랐을 수도 있었으리라.


여인의 눈은 색소가 번지듯 순식간에 붉어졌다. 고문관을 저지한 그녀가 허리를 획 꺾곤 네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귀한 영혼이시여. 당신께선 주어진 운명을 따라가실 겁니다. 미천한 소신은 당신의 길을 막을 수도, 당신의 정신을 헤할 수도 없습니다.”


‘고귀?’


너는 헛웃음을 쳤다. 그녀가 노예 아이를 놀린다 확신했다.


그녀의 농락과 별개로 약에 관해 자세히 묻고 싶었던 너는 로브를 붙든 손을 놓지 않았다.


고문관이 괘씸한 노예의 팔꿈치를 발로 짓이겼고, 네 얼굴이 다시 흙탕물에 처박혔다.


고문관이 정신계마법사를 옆 우리로 데려가자, 그녀는 붉은 악마는 제 능력 밖이라며 천막에서 물러났다.


‘만약 그런 약이 있다면, 에일 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너는 불순물이 잔뜩 섞여 쓴 침을 삼켰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다. 철장을 쥐고 일어선 너는 억척스레 소리쳤다.


“전 공주의 사람이에요!”


입 밖에 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이 실낱같은 희망이 흩어질 것만 같았다.


“공주는 제 몸값보다 더 많은 금화를 사례로 건넬 거예요.”


“이놈이 실성했나, 안 닥쳐!”


고문관이 녹슨 철장을 곤봉으로 두들겼지만, 너는 물러서지 않고 절절히 주장했다.


“날 놔줘요, 날 루시안으로 데려가요! 난 공주의···, 공주의 친구란 말이에요!”


손가락의 손톱이 덜컹댔지만, 너는 개의치 않고 땅을 파 숨겨뒀던 종잇조각을 꺼내 들었다.


두 인물의 형체만 흐릿하게 남은 그림을 가슴 안에 파묻었다.


“절 에일에게, 공주에게로 돌려 보내줘요!”


흐릿한 시야로 푸른 머리카락이 일렁였다. 널 놀리듯 신기류는 흩어지고, 네 앞엔 다시금 쇠창살만 남았다.


겹쳐진 우리 너머 죽은 눈의 아이들이 다가왔다. 소년과 소녀의 눈동자가 횃불을 따라 일렁였다.


오싹한 시선들이 일제히 널 쫓아 전신을 난도질했다. 도망치던 너는 몇 걸음 못 가고 벽에 머리가 부딪쳤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과연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 호커스라면, 그라면 어떻게 했을까?


숙부가 내던졌던 사내들의 인영이 시야에서 튀어 다녔다. 형용할 수 없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검은 짐승이 녹슨 철장에 몸을 들이박았다. 지치고 망가진 육신이 통제에서 벗어나 종잇조각처럼 흐느적댔다.


하지만 철장의 울림과 파열음은 병든 정신을 희열로 물들였다.


쾅! 쾅! 쾅!


‘철장도 피를 흘리나 봐.’


쇠창살이 경기하듯 흔들리며 두 개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뭉쳐진다.


골이 흔들렸고, 구멍이 난 이마와 코밑이 축축했다.


너의 발작에 고문관이 동료를 불러왔고, 그들이 우리 문을 열어젖혔다.


‘저곳으로 나가야 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지만, 쇠몽둥이가 네 등에 내리꽂혔다.


“이 새끼가 미쳤나? 죽고 싶어!”


사내들의 욕지거리가 곤봉 휘두르는 소리에 묻혔다. 무리 중 하나가 네 목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날 죽이려고?’


기대감에 입꼬리가 올라가지만, 그가 남긴 작은 틈으로 잔인한 숨이 들어왔다.


그들은 벽에 고정된 구속 구로 너의 사지를 결박했다. 두 발이 허공에 떴고 가죽이 찢어진 왼손을 제외한 다른 부위는 가죽끈에 단단히 매여 살갗이 하얗게 일어났다.


주먹과 얼굴은 피범벅. 손에 쥔 종이가 눅진하게 젖었다. 굳건한 쇠기둥 위로 제단의 재물처럼 싱싱한 피가 흩뿌려졌다.


몸은 고통에 무뎌졌지만, 너의 정신은 점점 어긋나고 있었다. 두 뺨을 타고 비릿한 피가 흐르며 철장 너머 다른 아이들이 붉게 칠해졌다.


표정없는 모습이 도리어 평온해 보였다.


‘에일, 보고 싶어.’


일렁이는 푸른 머릿결이 시야를 덮었다. 미라의 붕대처럼 고독감이 몸을 칭칭 둘러 네 숨을 질식해왔다.


“방법을 찾았는데, 돌아갈 수가 없어···.”


‘너무 늦었나 봐.’


네 흐느낌에 어떤 시선이,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천진한 눈길이 와 닿았다.


턱을 돌리자, 겁에 질린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등에 달린 다섯 쌍의 날개는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호기심이 깃든 힐긋대는 눈동자가 그토록 사랑스러울 수는 없었다. 너는 아이를 통해 네가 미치지 않았음에, 그와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름이 뭐야?”


이질적인 저음이 네 목에서 흘러나왔다.


“······로운.”


아이는 야수의 입으로 사람 흉내를 내듯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 발음했다. 반뿐인 자유가 이리도 유용할 줄이야.


너는 손에 들린 종이로 능숙히 학을 접어 아이에게 미련 없이 건넸다. 그것을 받은 아이의 볼이 붉게 상기됐다. 아이는 족쇄에 묶인 손으로 그것을 꼭 그러쥐었다.


‘그래, 로운. 우린 이곳을 나갈 거야.’


*


이곳에 갇힌 지 닷새가 지났다.


아니지, 네가 잠들라치면 그들이 눈가에 횃불을 들이밀어 정확하진 않다.


고문관들은 이교도인 네 가슴팍에 카를레 교의 상징과 문장이 조각된 불도장을 마구 찍어댔다. 희미해진 화상과 채찍 자국 위로 또 다른 상흔이 뒤덮였다.


고문 의자에 앉으면 이성이 녹아내렸다. 그 순간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고통이며, 그 위에 앉은 너는 울부짖는 짐승으로 변태했다.


감은 두 눈으로 푸른 신기루가 넘실거렸다. 가학적일 만치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 소녀의 탈을 쓴 악귀가 물었다.


‘호우야, 이제 만족해?’


“제발, 제발! 그만!”


감각을 받아들이는 뇌가 녹아 사고는 마비됐다.


너의 습관적인 애원에도 사내들은 철퇴를 휘둘렀다.


오물을 빨아먹던 소년은 제게 배급된 음식으로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 제대로 먹지 못한 너는 아사 직전이었다.


‘저걸 먹으면 죽지 못해!’


우리 안에 나무 수통과 수프가 놓여 있었다. 입술을 씹어보지만, 피를 머금은 입안에 침이 그득 고였다.


힘겹게 수프에서 시선을 떼자, 이번엔 수통이 널 유혹해왔다.


‘하지만, 물은, 물은···.’


정신이 아찔했다. 스스로 뺨을 치던 와중 다른 손이 수통을 낚아챘다.


한 모금, 두 모금.


목울대를 타고 뭔가가 넘어가는 느낌에 넌 환호했다. 게걸스럽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았다.


빈 수통을 던진 손이 이번엔 수프를 향해 뻗어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자 너는 손등을 깨물었다. 경련이 온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참아, 호우. 참아, 호우!’


그 이름이 이젠 네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만 참으면, 오늘만 참으면 넌 죽을 수 있어!’


지이잉. 이명과 함께 머리가 울리며 시야가 흔들렸다.


상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수프를 향하던 손이 그릇을 쳤다. 식사가 엎어진 꼴을 보고 절망하는데, 온몸에 힘이 빠졌다.


이마가 수프가 쏟아진 바닥에 부닥쳤다. 음식과 닿은 혀가 환희하다가, 두 눈이 감겼다.


*


차가운 액체가 몸에 닿았다 떨어지는 느낌에 너는 정신이 들었다. 만성적인 두통이 일고 속이 매스꺼웠다.


냇가에서 사내들이 네 몸을 씻기는 듯했지만, 자꾸만 눈이 감겼다. 피로를 누르고 눈을 반쯤 뜨자, 주위가 흐렸다.


이상했다. 시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시야가 오른쪽으로 편향돼 보였다. 오른 눈을 감자, 충격이게도 암흑이었다.


“내 눈! 내 눈에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두 사내가 널 나눠 붙들고 있었지만, 네 발버둥에 그들이 널 물가에 빠뜨릴 뻔했다.



다 죽어가던 작은 몸에서 아직도 이만한 힘이 나온다는 것에 두 사내는 잠시 경악했다.


“뭐가, 인마!”


복구에 주먹이 박혔다. 순간 숨이 막혔지만, 너는 멈추지 않았다.


“내 눈!”


너는 손가락 끝으로 왼 눈을 가리켰다.


“안 보여! 안 보인다고. 나한테 대체 뭘, 뭘 먹인 거야!”


호족 아이가 울부짖으며 발버둥을 쳤다. 죽기로 한 주제 한쪽 눈을 잃은 게 뭐 대수라고.


“문이 닫히는 약인데, 시력을 잃었어?”


그들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지 얼굴에 놀란 기색들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네 몸을 거칠게 문질렀다.


네가 자꾸 몸을 비틀자, 그들이 다시 고문실로 끌려가고 싶냐며 을러댔다.


하지만 평소처럼 곧장 무기를 꺼내 들진 않았다. 네 몸의 물기를 대충 닦아낸 그들은 네게 회색 옷이 아닌 다른 정장을 입혔다.


도망칠 기회였음에도 너는 힘없이 그들에게 몸을 맡겼다. 괴성을 지르는 것 말곤 모든 기능을 상실한 몸이 축축 늘어졌다.


외눈박이가 됐다는 사실도 더는 네게 충격을 주지 못했다. 실밥이 삐져나오고 바느질이 고르지 못한 싸구려 옷이었지만, 각이 잡힌 옷매가 퍽 이질적이었다.


정장은 입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날 때부터 회색 옷만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그들이 끌고 간 천막에는 구석엔 나무판이 세워져 있었다. 그들은 과녁판에 널 진열품처럼 묶었다.


네가 인상을 쓰자, 너의 팔다리에 채워진 가죽끈이 더 조여졌다.


“여긴 어디예요? 날 어떻게 할 거예요?”


제대로 닫히지 않은 천막의 문틈으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졌다.


창고의 용도로 보이는 천막엔 천에 쌓인 곽들이 높이 쌓여있었다. 너는 상자의 손 구멍으로 빠져나온 검자루를 발견했다.


백작 가의 문장이 그려진 네 보물이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그 지옥에서 나갈 수 있을 거다.”


그들의 제안이 같잖았다. 너는 갈라진 입술이 찢어지도록 입꼬리를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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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3) 22.11.05 16 0 12쪽
26 노예(2) 22.10.29 22 1 12쪽
25 노예(1) 22.10.22 17 0 11쪽
24 잿빛 왕도(4) 22.10.14 21 0 12쪽
23 잿빛 왕도(3) 22.10.10 18 0 11쪽
22 잿빛 왕도(2) 22.10.07 21 0 11쪽
21 잿빛 왕도(1) 22.10.03 22 0 12쪽
20 숙부(2) 22.09.30 20 0 12쪽
19 숙부(1) 22.09.26 20 0 13쪽
18 소년은 절망했다(3) 22.09.23 19 0 12쪽
17 소년은 절망했다(2) 22.09.19 25 0 11쪽
16 소년은 절망했다(1) 22.09.16 20 0 11쪽
15 소녀는 사랑에 빠졌고(2) 22.09.12 26 0 11쪽
14 소녀는 사랑에 빠졌고(1) 22.09.09 18 0 11쪽
13 인어의 눈물(2) 22.09.05 22 0 11쪽
12 인어의 눈물(1) 22.09.02 42 0 12쪽
11 대련 22.08.29 18 0 11쪽
10 대부(3) 22.08.26 22 0 11쪽
9 대부(2) 22.08.22 18 0 11쪽
8 대부(1) 22.08.19 22 0 12쪽
7 하리오의 후예는 사랑을 모르고(3) 22.08.15 22 0 13쪽
6 하리오의 후예는 사랑을 모르고(2) 22.08.12 18 0 12쪽
5 하리오의 후예는 사랑을 모르고(1) 22.08.08 33 0 12쪽
4 페렐레(2) 22.08.06 2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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