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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파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 아카데미의 망나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진파스
작품등록일 :
2021.01.14 00:41
최근연재일 :
2021.02.09 13: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20,284
추천수 :
429
글자수 :
177,197

작성
21.01.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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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운명 혹은 우연(2)

DUMMY

어둑한 밤하늘을 뚫고 매섭게 비바람이 쏟아졌다.

질척거리는 흙탕물을 느끼며 윤성이 빠르게 발을 놀렸다.


‘이거 어디까지 간 거야.’


이미 대파산 초입을 지나섰다.

얼마 못 갔으리라고 생각했는데 향이 길게 이어졌다.

무턱대고 빠르게 쫓기에는 비가 쏟아지는 탓에 향이 자꾸 흩어져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이러다 시체도 못 찾겠는데.’


윤성이 시야를 어지럽히는 빗물을 훔쳐내고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기간을 확장했다.

이 정도는 이제 익숙했다.

그 순간.


까앙.


저 멀리서 희미하게 검날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내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찾았다.’


윤성이 발걸음을 죽이고 빠르게 소리의 근원지로 다가갔다.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들려오는 신음.

제대로 찾은 듯했다.

지척까지 다가간 그가 근처 풀숲으로 숨어들고는 전방을 바라봤다.


까앙!


일곱의 검은 무복을 입은 인원들이 자신이 찾던 사내를 공격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환 공격.

윤성의 뇌리로 객잔에서의 전투가 스쳐 갔다.

동일한 놈들이었다.


‘저놈, 역시 여기 있었네.’


자신을 향해 망설임 없이 죽이라고 명을 내린 사내.

한총관이라 불린 놈도 같이 있었다.

도합 여덟.

그리고 자신이 구해야 할...

아니 도와야 할 인원은 둘.

정확히는 여인 하나.

상황을 정리한 윤성이 조용히 검을 빼 들었다.

고민 따위 더 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전장은 한쪽으로 승기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



“이 악귀 같은 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장우산이 한총관을 노려봤다.

저 죽일 놈이 멀쩡히 이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형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월산 형님.....’


그 생각에 저 밑바닥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형님을 남겨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저 무인들을 뚫고 한총관의 모가지를 베어낼 수 있을까.

자신의 상태를 보건대 어려운 일이었다.


“기회를 주지. 곱게 아가씨를 넘기게. 그러면 내 목숨을 구명해주지.”


한총관이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달콤한 제안을 걸어왔다.

장우산이 그 모습에 일갈을 터뜨렸다.


“닥쳐라. 그 혀를 잘라버리기 전에.”


한총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혀를 찼다.

어차피 목표는 장우산이 아니었다.

그가 그 너머의 여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어차피 여기를 벗어날 방도는 없습니다. 그만 포기하시죠.”


“한총관.”


이윽고 빗소리를 뚫고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우산의 뒤편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

그녀로부터 스산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리 가문의 가훈이 뭐죠.”


여인의 물음에 한총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의는 목숨처럼. 은원은 철저하게.....”

“본녀, 결코 오늘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인의 한기 가득한 목소리에 한총관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협상은 틀어졌다.

한총관이 뒤로 한발 물러서며 명을 내렸다.


“죽여.....”


그때였다.


푸욱!


한총관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뚫고 이질적인 소음이 그의 귓가에 박혀 들었다.

이내 시선을 돌린 그의 눈에 칠흑의 검날이 들어왔다.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다.

이게 무슨.....


털썩.


한총관이 그 어떠한 단말마도 더 남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사고가 정지한 듯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순간.

그것을 노린 칠흑의 검의 주인.

윤성이 빠르게 시신으로부터 검을 빼내며 몸을 움직였다.


촤악!


미처 대비를 못 한 살수 하나의 목숨이 부지불식간에 끊어졌다.

순식간에 전장의 양상이 달라졌다.

갑자기 난입한 윤성으로 인해 살수들의 움직임에 흐름이 끊겼다.

장우산이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푸욱!


일곱이 다섯이 됐다.

그 순간 정신을 차린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살수들을 뒤로 물렸다.

주검이 돼버린 한총관을 스쳐 윤성을 향한 시선에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웬 놈이냐.”

“그건 알 거 없고.”


윤성이 거칠게 말을 자르며 장우산의 옆으로 다가섰다.

그가 경계의 눈으로 검을 치켜드는 것을 보며 윤성이 전음을 날렸다.


- 장표두, 그에게 부탁받았소.


윤성이 품속에 갖고 있던 명패를 꺼내 보였다.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것을 받아든 장우산이 그것을 조심스레 품속에 갈무리했다.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더이상의 말은 무의미했다.

모든 것은 일단 살아남고서.


“...”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윤성이 뒤를 흘끗 돌아봤다.

면사 너머로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누구지. 웬만하면 좀 높은 신분이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목숨을 건 이상 얻는 이득은 높을수록 좋았다.


“놈, 죽여버리겠다.”


고개를 다시 돌리니 우두머리가 원한 가득한 목소리로 살의를 뿜어왔다.

윤성이 그와 동시에 장우산을 향해 공격 신호를 보내며 도약했다.


‘말 참 많네. 살수 놈이.’



***



“허억, 허억.”


옆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윤성이 고개를 들었다.

죽다 살아났다.

그 표현이 정확했다.

배에서 아려오는 고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크윽, 아프네.’


얕게 베이긴 했지만, 복부에 검상을 입었다.

끈질기게 늘러붙던 놈들을 겨우 모두 처리했지만, 그 또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내력을 너무 많이 소비했다. 이제 심안은 어렵겠는데.....’


속이 텅 비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목숨이 경각에 달리다 보니 쓸데없는 내력 낭비를 많이 했다.

아직은 좀 더 효율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 했다.

윤성이 숨을 한차례 몰아내고는 장우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오.”

“괜찮소. 크윽.”


안 괜찮아 보인다.

꿀렁꿀렁 넘어오는 핏물이 장삼을 적시고 있었다.


“장호위님.”


그때였다.

면사 여인이 장우산에게 다가왔다.


“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

“한총관이 끝이 아닐 거에요. 아마도 작은아버지, 그분이겠죠. 이중 삼중의 추적이 있을 거예요.”

“.....젠장.”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윤성의 시선을 느꼈는지 여인이 돌아봤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그것보다 이 분 치료가 시급한 듯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어느새 그치고 있었다.

내리는 빗물을 하얀 손으로 털어내며

여인이 가리고 있던 면사를 벗어 던졌다.


“.....”


베일듯한 콧날과 날카로운 눈매가 새하얀 피부와 어우러져 차가운 분위기를 풍겨왔다.

설중화.

달빛에 비친 아름다운 용모가 눈 속에 핀 한줄기 꽃처럼 그녀의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분명 처음 봤다면 말문이 턱 막혔을 테지.

그러나 머릿속을 스쳐 가는 한 기억이 윤성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어떠한 아름다운 것들도 한낱 배경으로 전락시켜버리던 여인.

모용수연.

그 강렬한 기억이 의도치 않게 윤성에게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연비라고 합니다. 존함을 여쭤도 될까요.”

“하윤성입니다.”

“무슨 연유로 저희를 도와주신 지 모르겠으나.....”

“형님이 보내셨습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장우산이 윤성을 대신해 대답했다.

그 저번에 깔린 의미를 알아챈 연비가 작게 한숨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듣겠습니다. 저희를 계속 도와주실 수 있으신지요. 소협.”


윤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여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미 피로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하지만.


‘연씨 성이다. 분명 가문의 직계.”


처음 듣는 이름이니 네임드 캐릭터는 아니겠지.

허나 저 대륙 전장의 직계라면 자신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다.

거기다 목숨을 구해 준 사이라면 더더욱.


‘조용하게, 안전하게는 개뿔 ....’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다.

더욱이 대륙전장.

도박을 걸어볼 만 했다.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여인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어둠을 뚫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이 허언은 아닌 듯싶었다.

그 모습에 윤성이 그녀의 지난 말을 떠올렸다.

분명 그녀가 말했다.

신의는 목숨처럼.

그리고 ‘은원’은 철저하게.


“곧 추격대가 따라붙을 겁니다. 일단 이동하시죠.”


연비의 말을 들으며 윤성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깊게 어둠이 내려앉은 밤.

동이 트려면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



타다다닥.


머리 위로 지나가는 발자국을 느끼며 윤성이 숨을 참았다.

연비의 예상대로 금세 추적이 따라붙었다.

아슬아슬하게 추격을 벗겨내며 작은 전투를 벌이길 여러 번.

밤은 깊고 깊어져 어느새 달빛조차 희미해져 갔다.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내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윤성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극도로 긴장한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됐습니다.”

“크윽.”


윤성의 말에 장우산이 참고 있던 신음을 뱉어냈다.

윤성과 연비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장우산의 상태는 심각했다.

다른 것은 괜찮았지만, 복부에 뚫린 검상.

그 상처로부터 나오는 출혈이 문제였다.

이미 운신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아가씨.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제가 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함께 갑니다.”


벌써 몇 번째 실랑이인지 모르겠다.

분명 눈물겨운 장면이나,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내 고개를 돌린 윤성이 주변을 경계하며 머리를 굴렸다.

추격은 대파산 전역에 걸쳐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 넓은 지역을 인력으로 모두 매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 구멍을 파고들며 겨우 추적을 따돌리긴 했으나,

자신들의 상태로 보건대 앞으로는 더 어려울 게 분명했다.


‘버텨야 해. 사천까지.’


목적지는 사천이었다.

대파산은 사천과 섬서의 경계에 있는 산맥.

그들은 그 산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연비의 말에 따르면 사천 땅까지만 무사히 당도하면 자신들은 살 수 있다고 했다.


‘얼마나 남은 거지.’


상인인 연비는 산맥을 가로지르는 가장 짧은 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파르고 험한 길.

다행히도 무공이 약한 연비가 경공 실력은 뛰어나 일행은 할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산맥을 내달렸다.

그러나 장우산의 상처와 조여오는 포위망이 점차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 길, 소저 말고 그 작은 아버지인가 하는 작자도 안다고 했죠.”


윤성의 물음에 연비가 돌아봤다.


“예, 맞아요.”


윤성이 그녀의 대답에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툭툭 쳤다.

그렇단 말이지.

가는 길목마다 놈들이 있었다.

빙빙 돌아 들어간다 해도 중요한 길목에서는 피할 수가 없다.


“차라리 정면 돌파하죠.”

“예?”

“어차피 지금 상태로 사천 땅을 무사히 밟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


의식적으로 꺼내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모두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정적이 흘렀다.

이내 윤성이 침묵을 깨고 정리한 생각을 펼쳐냈다.


“승부를 걸어야 할 때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길을 빙빙 돌아간 덕분에 중요 길목을 제외하고는 놈들을 마주친 적이 거의 없습니다.”

“.....”

“이제 눈치챘을 겁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턱밑까지 쫓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


윤성이 연비와 장우산에게 다가가 흙바닥에 직선을 그어 보였다.


“그러니 정면 돌파하죠. 연비소저와 그 작은 아버지란 사람이 안다는 이 최단 길.”


윤성의 눈이 빛났다.


“잘하면 무혈 입성할 수 있습니다.”


예상이지만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최소한의 피해로 빠르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추적이 붙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의미는 이제 자신들의 움직임을 예상한다는 것.

그러니 반대로, 적의 뒤통수를 칠 때이다.

적도 알고 우리도 알지만, 현재는 자신들을 사냥하려 모두 흩어져 최소한의 인원만 남아있을 그 길목으로.

정면 돌파해서 벗어난다.


“잘못되면 모두 죽습니다.”


연비가 굳은 목소리로 윤성에게 말했다.


“어차피 이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성이 대답했다.

셋의 시선이 얽혔다.

어차피 막다른 길목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돌파해야 한다.

다음 행동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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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새로운 출발(3) +2 21.01.23 695 15 13쪽
12 새로운 출발(2) +8 21.01.22 704 15 12쪽
11 새로운 출발(1) +2 21.01.21 777 16 14쪽
10 나는 살아있다(4) +2 21.01.20 797 15 12쪽
9 나는 살아있다(3) 21.01.19 71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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