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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파스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 아카데미의 망나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진파스
작품등록일 :
2021.01.14 00:41
최근연재일 :
2021.02.09 13: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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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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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글자수 :
17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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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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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새로운 출발(2)

DUMMY

무한검.

그 묘리는 끊이지 않는 무한의 검로.

마치 거미줄처럼 하나의 줄기에서 시작해서 수십, 수백 가닥으로 뻗어 나가는 연환검의 진수.

그러나.


‘내가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지.’


윤성이 검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선택하고 보이면 행동할 뿐.

하지만 그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심안.

순리를 거스르는 비틀림을 포착하는 눈.

분명 하상천의 무한검은 완벽하다.

아니 완벽에 가깝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단 하나의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무슨 말이냐. 무한검은 이미 완성됐다는 게.”

“말 그대로입니다.”


하상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님도 이미 알고 계십니다. 다만 본인께서 그 한계를 그어 놓고 계실 뿐인 거죠.”


윤성이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검을 빌릴 수 있을까요.”


윤성의 손을 잠시 쳐다보던 하상천이 들고 있던 검을 건넸다.

검을 받아든 그가 하상천을 지나쳐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갔다.


“소자의 실력은 분명 아버님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허나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윤성이 무한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제 일검.

모든 연격의 시작.


후웅.


좌에서 우로.


후웅.


위에서 아래로.

일련의 동작이 물 흐르듯 펼쳐진다.

그리고 그 하나의 검로는 이내 둘, 셋으로 퍼져간다.

하상천이 굳은 얼굴로 윤성을 지켜봤다.

하나의 검이 둘로 나뉘고, 두 개의 검이 세 개로 나뉘는 연검이 느릿하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상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턱.


마침내 윤성이 검무를 갈무리했다.


“이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대답입니다.”

“...허허, 허허허.”


하상천이 허탈한 듯 웃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구나.”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이죠.”

“시작이라...”


하상천이 윤성에게 다가갔다.

윤성으로부터 검을 돌려받은 그가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한번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무한검.

다시 한번 달빛 아래 환상적인 연환검이 펼쳐졌다.

윤성을 통해 벽 너머를 보게 된 하상천이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도움이 됐으려나.’


윤성이 보인 것은 단순한 것이었다.

가야 할 길에 자연스럽게 검을 옮긴다.

그리고 다음 길이 보이면 또다시 검을 옮긴다.

하지만 하상천은 달랐다.

그에게 무한검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검.

대성하여 완벽하게 모든 검로를 익힌 그는 어디로 검을 놓아야 할지 모두 알고 있었다.

해서 그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가야 할 길을 정해놓고 검을 펼쳤다.

무한검의 묘리는 한계가 없는 연격.

그러나 모든 검로를 미리 그려놓는 하상천의 무한검은 완벽했으나 한계가 명확했다.

그 비틀림이 윤성의 눈에는 보인 것이다.


‘300포인트나 쓴 보람이 있네.’


자신의 수준에서 하상천의 빈틈을 포착한 것만 해도 천운이었다.

막연한 도박이었는데 다행히 그 작은 비틀림이 보인 것이다.

만약 포인트를 모두 쏟아붓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저 아저씨 오늘 밤새겠구만.’


이미 윤성이 뇌리에서 지워진 듯했다.

할 말이 있었는데 오늘은 글렀다.

윤성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연무장을 벗어났다.



***



“어찌할 생각입니까. 가주.”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본채 가주실에는 세가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중 가장 상석의 가주를 향해 옆에 앉아있던 정화정 부인이 물었다.


“윤성, 그 아이를 정말로 보낼 생각입니까.”


가주가 대답을 종용하는 어머니의 눈빛을 받으며 낯빛을 굳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이미 결말은 정해졌다.

윤성은 하상천과의 내기에서 이겼고, 약속대로라면 윤성은 차기 가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천도학관의 입관서를 받고 가문을 떠나야 했다.

그러나 모두의 뇌리에 박히고 떠나지 않은 어제의 일.

예상을 넘어선 엄청난 기백과 무공을 보인 가문의 첫째, 하윤성에 관해 가문 내 많은 이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미 세가 내 많은 이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어떻게 그 아이가...”


답답하긴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이미 가주는 많은 이들 앞에서 말을 번복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일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가주 직계 장자.

가주의 자리를 이을 첫째 아들이 모두의 예상을 깨부수고 뛰어난 모습을 보여줬다.

그 모습이 진정 그의 진면목이라면 굳이 가계를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한참을 말이 없던 가주가 이내 입을 열었다.


“윤성은 약속대로 떠날 것이다.”

“가주!”

“가주님!”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냈다.

염화정 부인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정화정 부인은 노한 얼굴로 가주를 닦달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 시끄러움 사이로 가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원하는 일입니다.”


가주의 씁쓸한 목소리에 장내가 순간 조용해졌다.


“저는 더 이상 그 아이게서 무언가를 뺏을 수 없습니다. 약속대로 가주의 자리는 다른 이가 이을 것이고, 윤성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강호로 나설 것입니다.”



가주의 단호한 의지에 침묵이 이어졌다.

윤성의 운명이 결정됐다.



***



“아아, 좋은 아침이야.”


상쾌했다.

어제 잠도 잘 잤고, 자신이 원하던 모든 것도 얻어냈다.


- 진정 떠날 것이냐. 네가 원한다면 내 어제 했던 말을 거둘 수도 있다.


이른 아침.

아직 동이 트기도 전에 가주가 윤성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윤성에게 물어왔다.

아니 선택권을 줬다.


-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일은 묻지 않으마. 네가 천도학관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다 해도 나는 들어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주가 아주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사실 그 저변에 무언가 오해가 끼어 있는 듯했지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굳이 그것을 정정해 줄 필요성을 윤성은 느끼지 못했다.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천도학관 입관서면 충분합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주 좋은 결말이었다.

가문에서의 축출을 피하고.

극악의 난이도를 비껴갈 스토리의 변경.

자신이 목표했던 두 가지를 모두 이뤄냈다.


- 성장 포인트 : 500


그리고 저만큼 포인트가 쌓였다.

이제 확실히 하나의 사실을 알았다.

이 칼부림이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은 강해져야 한다.

그 방법은 오로지 저 포인트를 쌓는 것뿐이다.

포인트는 모두 자신을 향해 닥치는 위기를 헤쳐나갈 때 발생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해. 여기서 멈추면 죽음이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위험한 길은 피한다.

윤성이 일주일이 다 되는 기간 동안 파악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좋구나.”


기분 좋은 흥얼거림과 함께 윤성이 막 처소를 정리하려 할 때였다.


- 하윤설입니다.


생각도 못 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하윤설이요.”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난다.

무슨 일이지.

저 여자가 급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자신을 먼저 찾을 리가 없는데.

윤성이 잠시 고민했다.

지금 자신은 하루를 아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는 상태다.

굳이 왜 지금, 이 시간에...


‘후우.’


윤성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내 그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


천천히 문이 열리며 하윤설이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윤성과 눈이 마주치자 미간을 찌푸린다.

저럴 거면 왜 왔는지.


“무슨 일이야.”

“...”


분명 용건이 있어 찾아왔을 것이다.

달싹이는 입이 열리락 말락 한다.


“...당신.”

“저번부터 생각한 건데.”


윤성이 어렵게 열린 하윤설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한테 당신이 뭐냐.”

“...”

“왜 맞잖아. 오라버니.”


표독스러운 눈이 날카롭게 쏟아졌다.

남이라 생각하면 싫어질 게 분명한데, 왜인지 윤성은 그녀가 싫지 않았다.

여인에 대한 감정이라기보다는 분명 여동생, 그것에 가까웠다.

보면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계속해서 꿀렁꿀렁 올라왔다.


“됐고,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딱딱하기는.”

“언제부터였나요.”

“...?”


표독스러웠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지난밤 하윤백과의 대화가 스쳐 갔다.


“언제부터 우리를 속이고 혼자서···. 그렇게 산 거죠.”

“...”


윤성이 작게 한숨을 뱉었다.

가주 하상천, 하윤백, 그리고 하윤설까지.

모두들 물어왔다.

왜 그랬냐고.

그러나 윤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겪어온 일이 아니었기에.

그가 알고 있는 하윤성의 삶은 텍스트 몇 줄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이 세계에서 그가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아갔는지, 그리고 저들이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하윤성을 바라봤는지, 윤성은 알지 못했다.

거짓으로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성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만큼 그에게 작지 않은 의미였다.


“다 과거다. 뭐가 중요하다고.”

“중요해요, 저에겐.”


그녀의 눈빛이 너무도 진지했다.

윤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부터다. 내 삶이 변한 건.”


하윤설이 고개를 떨구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은 했지만, 본인에게 사실을 직접 들으니 밑바닥부터 감정이 요동쳤다.

그동안 자신이 바라봤던 그의 모든 모습이.

실망하고, 또 실망해 결국에는 미워하게 된 그의 모습이 기억 속에서 뒤죽박죽이 됐다.

모두가 거짓이었다.

그가 자신을 숨기기 위한.


“왜 그렇게까지...”

“너는 똑똑하니까 잘 알겠지.”

“...”

“나는 혼자였어. 그리고 어렸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모든 의미를 알아들은 하윤설이 숨을 삼켰다.


“나는···. 당신이 싫었어요.”

“알아.”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당신이, 누구보다 빛났던 당신이 큰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하윤설.”


윤성이 하윤설을 불렀다.

이번이 세 번째 마주침이었지만 아마도 10여 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녀는 수도 없이 많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성은 알지 못한다.

그가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이제 떠난다. 하씨성을 갖고 살아가겠지만, 가문에 돌아올 일은 거의 없을 꺼야. 내가 있으면 다음 가주가 될 자가 불편할 테니.”

“...”

“그러니 그런 볼썽사나운 얼굴하지 말고, 너는 지금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 남 눈치 보지 말고. ”


그의 말에 하윤설이 말없이 윤성을 바라봤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하윤설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그녀로부터 처음으로 적대감이 사라진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래.”


역시 그냥 말을 말 걸 그랬다.

윤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입을 열었다.


“가라.”

“안 그래도 갑니다.”


하윤설이 돌아서 처소를 나서려다 멈칫했다.

무언가 결심이 선듯 이내 돌아선 그녀가 하윤성에게 선심 쓰듯 말을 걸어왔다.


“앞으로 가문에 누를 안 끼치면 좀 고민해보도록 할게요.”

“뭐를?”

“그 오라버···. 그거요. 여튼. 갑니다”


돌아서 당당하게 걸어 나가는 그녀의 등 뒤로 햇살이 쏟아졌다.

언뜻 비치는 귓불이 새빨개져 있었다.


“웃기는 녀석일세.”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 때문일까.

인연을 만들면 안 되는데 자꾸만 감정이 움직인다.

하윤설. 하윤백. 하상천...


“아, 모르겠다. 일단 짐이나 정리하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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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운명 혹은 우연(2) +6 21.01.25 673 15 12쪽
14 운명 혹은 우연(1) +2 21.01.24 679 15 12쪽
13 새로운 출발(3) +2 21.01.23 695 15 13쪽
» 새로운 출발(2) +8 21.01.22 705 15 12쪽
11 새로운 출발(1) +2 21.01.21 777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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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는 살아있다(3) 21.01.19 71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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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용수연(3) 21.01.17 736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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