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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WA샷
작품등록일 :
2017.01.22 00:26
최근연재일 :
2017.03.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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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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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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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마리의 숲(2)

DUMMY

과일이 달려있던 키 작은 나무 하나가 땅속에서 뿌리를 뽑아 올렸다. 그 모습이 기괴했지만, 위협적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뿌리를 모아 다리처럼 디디고 선 그것이 한걸음씩 다가왔다. 무성한 잎에 노란 열매가 가득 열린 나무가 아장아장 걸어오는 모습이 꼭 어린아이 같다.


”캬~ 판타지야 판타지! 난 이런 게 보고 싶었다고.“


마리도 신기했는지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야! 조심해.“


입을 벌리고 보던 마리가 샬럿이 미처 말리기도 전, 갑자기 나무에게 다가갔다. 마리는 나무의 잎사귀를 어루만지며 해맑게 웃었고, 나무도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데? 공격할 것 같지는 않아.“


”그러게요...“


”일리아의 선택을 받은 아이라서 그런가?“


”글쎄요. 제 생각엔 마리에게서 적의를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민우에게 나무의 내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몬스터이거나, 인간 같은 지성은 없는 존재이려나?


”오빠! 나 친구랑 좀 놀면 안돼요?“


이젠 나무를 끌어안다시피 붙어 있던 마리가 커다란 눈망울로 물었다.


“하아...?”


민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마리의 기분을 망칠 용기가 없었다. 안된다고 하면 울면서 떼를 쓸 작정이었으니...


”어차피 오늘내로 계곡을 빠져 나갈 순 없을 것 같은데... 여기서 야영할까?“


”여기에서요? 위험하지 않겠어요? 아직 정확한 파악도 안 되는데...“


”마리 눈 봐. 너 안 된다고 할 수 있겠어?“


샬럿도 어쩔 수 없겠다 싶었는지, 순순히 동의했다. 야영지는 금세 준비됐다. 나무들이나 풀들이, 알겠다는 듯 적당한 공간을 두고 물러나 주었기에 편히 쉴 자리가 마련됐다.

그사이 마리는 나무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잘댔고, 나무들도 잎과 줄기를 떨며 반응했다. 마치 진짜로 무슨 대화라도 나누는 분위기다. 조금 큰 나무가 다가왔을 땐 샬럿이 긴장했지만, 이내 줄기를 늘어트려 마리가 놀 수 있는 그네를 만들어 주었다. 정말로 놀고 있었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질 때쯤엔 온갖 풀 나무들이 민우 일행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었다. 샬럿은 이 상황에서 공격을 받을까 싶어 내내 불안해 했지만 민우는 여유만만이다.


”걱정도 팔자다. 저렇게 잘 노는데 뭔 일 있겠어? 너도 이거나 먹어.“


민우는 나무가 떨어트려준 열매 하나를 샬럿에게 던져주며 안심시켰다.


”원래 판타지는 괴물만 있는 게 아니라고. 이렇게 신비한 것도 있는 거지. 엘프가 없다는 게 아쉽네. 남자들의 로망인데 말이야.“


이 세계에 온 뒤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민우의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샬럿도 조금씩 경계심을 내려놓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문득 나무들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날이 어두워져 그러는데 합류해도 되겠습니까?“


거리를 맞추며 따라오던 상인이었다. 민우 일행이 멈추니 혼자 야영하기가 불안했나보다.


”그러세요. 이쪽으로 오세요.“


샬럿의 허락 뒤 간단하게 소개한 상인이 불가에 앉았다.


”혼자 야영하긴 불안했나 봐요?“


뻔히 알고 있는 민우는 퉁명스레 뱉었다.


”네? 그게... 거리계산을 잘못해서 이곳에 들어왔는데 날이 저물어 버렸네요.“


”상인이라는 분이 거리계산을 못하셨다? 여길 하루 이틀 다니신 것도 아닐 텐데 말이죠?“


”사실... 이쪽 루트로 장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확실히 장사랑은 안 맞는 분이네요.“


모로 누워 다리를 까딱거리며 민우는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았다. 그런 민우를 흘겨보던 샬럿이 물었다.


”왜 그래요? 이젠 기본예의조차 잊었어요? 처음 보는 분도 아닌데, 같은 마을 여관에서 봤던 분 인거 몰라요?“


”알아.“


민우는 샬럿에게 미리 알려주지 못한 게 생각났다. 알려주자니 설명하는 게 귀찮았기에...


”근데 틀린 말은 아니잖아? 암브라스로 가신다는데 우리가 온 길이 빠른 길도 아니고, 오는 동안 죄다 조그만 마을뿐이었잖아. 다른 루트가 훨씬 빠르고 큰 마을도 있는데 말야. 누가 봐도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온 걸로밖에 안 보이는데? 안 그래?“


민우의 말을 들어보니 샬럿도 의문이 들긴 했다. 분명히 장사루트로는 맞지 않은 길이었으니까. 샬럿도 슬쩍 자신을 바라보자 당황한 상인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절대 아닙니다. 사실 다른 루트에 요즘 도적들이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리고 중간에 괴물들이 나오는 구역도 있는데, 저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그쪽으론 갈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반은 맞습니다. 기사님이 계셔서 뒤쫓아 가면 조금 안전하지 않을까 싶었던 건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 미리 양해를 드리지 못한 점은...“


”아니에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저흰 괜찮습니다.“


상인의 말을 들은 샬럿이 의심을 풀고 웃으며 말했다.


”하하! 순발력이 좋으시네? 그냥 장사 계속하셔도 되겠어.“


”사람이 왜 그래요? 무례하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배배꼬여서.“


”넌 대체 누구편이냐?“


”적어도 그쪽 편은 아니네요.“


”그쪽? 오빠라 부르라고! 버르장머리 없게 그쪽이 뭐냐?“


”헛소리 할 거면 가서 물이나 떠와요.“


샬럿은 민우를 무시하고, 상인의 잠자리를 준비해 주었다.


”와... 가시나 진짜. 같이 밤을 보낸 게 몇 날인데,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야!“


가방에서 말린 누르 고기를 꺼낸 샬럿이 상인에게 전해주었다.


”아직 식사 못하셨죠? 저 사람은 신경 쓰지 마세요. 좀 많이 아픈 사람이니까요.“


”아 예,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샬럿의 말에 단단히 삐진 민우는 담요를 뒤집어쓰며 말했다.


”몰라. 나 밥 안 먹어.“


”그러시던가.“


속에서 울화통이 터져 맘 같아선 ‘저 새끼 간첩이야!’라고 소리치고 싶어도 지금상황에선 샬럿이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상인 놈도 흑심을 드러내질 않으니 민우만 속이 끓었다. 도저히 화를 가라앉힐 수 없던 민우가 담요를 박차고 말했다.


”어이! 상인나리. 우리가 돈을 받은 것도 아닌데, 당신 경호를 할 이유는 없잖아? 내일은 당신이 먼저 출발하쇼. 이제껏 우리가 경호했으니까 이제 당신차례잖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람 정떨어지게 진짜!“


샬럿이 소리쳤지만, 민우도 배짱이다.


”떨어질 정이나 있었냐? 정 맘에 안 들면 니가 모시고 암브라스까지 가던가. 난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앞에 가면서 총알받이 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말을 마치고 휙 돌아누운 민우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샬럿이, 상인에게 사죄했다. 도와주고 싶어도 민우가 저렇게 나오면 샬럿입장에선 어쩔 방도가 없었다. 마리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전 괜찮습니다. 저분 말씀이 틀린 건 아니니까요. 처음부터 양해를 구했어야 했는데, 제가 좀 이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알긴아시네. 영 양심 없는 분은 아닌가봐? 하긴, 장사꾼이면 주고받는 게 확실해야지.“


돌아누운 민우가 지껄이자 샬럿은 오만정이 다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또한 상인역시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어색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 속엔 시뻘건 불이 넘실댔다.

해는 이미 떨어졌고 계곡의 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늦도록 놀다 지쳐 잠든 마리를 안고 샬럿도 벌써 잠들었다. 낮 동안 계속 주변의 나무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러나 상인은 잠들지 못했다. 속에서 치미는 화를 견딜 수 없음이다. 내려진 명령에 반하는 부분은 있었지만, 죽이지 말라는 말은 못 들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결심을 굳힌 상인이 슬그머니 일어나 숲속으로 들어가고, 잠든 척하던 민우는 슬쩍 보더니 이제 진짜로 자버렸다.


아침이 되자 다시 숲이 깨어났다. 일찍들 잠들어서 그런지 다들 일찍 일어났고, 마리는 벌써부터 새로 생긴 친구들에게 아침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샬럿은 개울로 향했고, 상인도 일어나 여장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민우만 여전히 담요 안에서 목만 쏙 내밀고 있었다.


”좀 드시겠습니까?“


상인이 민우에게 빵을 내밀었다.


”됐어요. 침 뱉어 놨을지 누가 압니까? 근데 출발 안 해요? 대충 먹었으면 좀 갔으면 좋겠는데... 멀리 안 나갑니다.“


”아, 예... “


돌아누운 민우를 향해 이를 갈던 상인이 짐을 짊어 메자 샬럿이 다가왔다.


”벌써 출발하시게요? 식사라도 같이 하고 가시지...“


”아뇨, 대충 먹었습니다. 그리고 전 다시 되돌아 가야할 듯해서요.“


”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혼자 암브라스까지 가는 건 무리 같아서요. 요전마을에 가서, 함께 가실 분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런... 죄송합니다. 저 인간 때문에...“


괜찮다며 손을 저은 상인은 목이 칼칼했는지 바닥에 침을 한번 뱉고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사람이 왜 그래요? 사정 뻔히 알면 좀 도와줄 수도 있잖아요?“


”이 둔탱아! 눈치 좀 있어라. 에효...“


버럭 소리를 지르는 샬럿을 보고 민우는 혀를 차며 기지개를 켰다. 샬럿은 민우의 말에 묘한 늬앙스가 있음을 느꼈지만, 이미 오만 정 떨어진 상태라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


”마리야~ 그만 놀고 이제 가자.“


”오빠! 친구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대! 거기 가면 안돼요? 네?“


야영지를 정리하고 출발하려는데 마리가 또 떼를 쓰려한다.


”미안해 마리야, 여기 위험한곳이라 오래있으면 안돼요. 어서 친구들한테 작별인사하고 가자. 응?“


더는 안 되겠다 생각한 샬럿이 마리를 달래보려 했지만, 마리의 눈엔 벌써 눈물이 고인다.


”우리 자는 동안 밤새 준비했대요. 흑... 보고 가면 안돼요? 네? 흑...“


”왜 애를 울리고 그래? 급할 것도 없는데? 돼! 돼! 마리야. 오빠랑 보고 가자~ 샬럿 언니는 마리 미워하나봐 그치?“


민우의 말에 환하게 웃던 마리가 포르르 달려와 안겼다.


”또 무슨 속셈이에요?“


”속셈은 무슨...“


대충 얼버무린 민우는 마리와 함께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무들이 만들어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난데없이 그곳에 그림 같은 낙원이 펼쳐졌다.


”야~ 이게 다 뭐야? 이렇지 않을까 기대는 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인데?“


작은 샘 주위에 동물과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알록달록한 꽃, 나무들이 제각각의 위치에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 아무리 대단한 정원사가 와도 꾸미지 못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깐죽대며 마리와 이간질 시키던 민우 때문에 한껏 심통 나있던 샬럿조차도 모두 잊고 멍하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길 잘했지?“


”그러게요... 낙원이 있다면 아마 이곳 같을 거예요. 꽃과 나무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군요.“


”뭘 그래? 너도 저기 서있으면 별로 구분안가.“


힐끗 민우를 보던 샬럿이 말없이 샘으로 다가갔다.


‘기집애, 이젠 너도 슬슬 적응이 되나보구나?’


반응은 시원찮았지만, 멘트가 먹혔다는 것에 만족한 민우였다.

마리는 까르륵 거리며 뛰어 놀고, 샬럿은 분위기에 흠뻑 빠졌다. 민우도 그런 둘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상상했던 판타지의 모습 그대로를 마음껏 즐겼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놀다 보니 어느새 점심이 되고, 동물들이 물어다준 신선한 과일과 나무열매들로 배도 채웠다. 그렇게 마음껏 감성에 젖어 있는 동안 금세 해가 지고, 날이 저물었다.


”벌써...“


”전혀 몰랐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여긴 정말 꿈속 같아요.“


”그러게, 근데 좀... 너무 푹 빠져 있었던 것 같은데?“


감성 충만한 하루였기는 하지만... 어두워지자 뭔가 허탈해지는 것이 민우에게 이상함을 느끼게 했다.


”평생 보기 힘든 곳이잖아요. 하루쯤 이곳에서 쉬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조금 허탈하지 않아? 뭔가 좀 지나치다 싶은데... 모르겠네.“


”그런가요? 그래도 이런 곳이라면 다 잊고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우는 샬럿의 눈빛이 평소와 다른 걸 보았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확신이나 신념들이 무뎌져 있었고, 마리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 또한 어딘가 약해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여성스러운 감정들이 풍부하게 살아나 있었다.


”정신 차려! 너 지금 좀 이상해!“


”네? 뭐가요?“


”오빠 해봐!“


”... 그런 걸 어떻게 해요... 부끄럽게...“


”하... 요것 봐라? 샬럿!“


평소와 다른 반응에 진한 장난기가 발동한 민우는 결정타를 날렸다.


”왜요?“


”사랑해!“


민우의 난데없는 말에 샬럿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너무 놀랐는지 멍하니 보다가 이내 푹 고개를 숙였다.


작가의말

꽁냥꽁냥한거... 쓰다보면 괜히 오글거립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것 없이 가고 싶지만...

10프로의 여성독자 분들을 존중합니다.


글이 볼만 하셨다면 선작, 추천과 피드백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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