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런 날이었다.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배고프지 않은 날.
그런데도 무언가를 사서는 입에 넣고 싶은 날. 안에 갇혀있기는 싫으면서, 분리된 공간에는 있고 싶어하는 날.
그렇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과자와 술이 놓였고, 잘못 놓인 게 아닐까 의심되는 편의점의 가장 멀리 떨어진 테이블이 나와 그녀의 자리가 되었다.
마음은 배부르지 않은 상태에 있고 싶어하고, 해가 뜨지 않은 곳에 있고 싶어하니까.
"사랑은 왜 항상 실패할까."
실없는 소리였다. 과자를 한 조각 집어넣었다. 입을 틀어막고싶은 것일까.
"사랑받지 못한 게 티가 나서일까. 아니면 사랑받고 싶은 게 티가 나서일까."
같은 말이잖아.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알고있다. 같은 말이 아니란 걸. 다른 말 같지만 같은 말이고, 같은 말 같지만 결국엔 다른 말이다.
입을 틀어막고 싶어서. 뒷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두 말의 사이만큼말이다.
"넌 사랑이 뭔지 모르잖아."
빌어먹게도 술은 내 입을 틀어막지 않았고, 그녀는 나를 지켜보더니 짐짓 웃어보였다. 그래, 너가 이겼다.
"맞아, 모르지."
"넌 알아?"
알고있다.
과자를 하나 더 입에 가져다넣는다.
술을 한 모금 마신다.
같은 이유로, 그리고 다른 이유로.
"모르지."
모른다. 너가 알고있는만큼.
안다. 너가 모르고있는만큼.
"병신."
병신임에 틀림이 없다. 받고 있는 지 안 받고 있는 지 확실히 아는 주제에.
"멍청하기는."
바보임에 틀림이 없다. 받았는 지 안 받았는 지는 확실히 아는 주제에.
과자를 하나 더 입에 가져다 넣고, 술을 한 모금 마신다.
다른 이유로, 그리고 같은 이유로.
줄 수 있지 않은 걸 알기에.
입을 틀어막고, 다음 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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