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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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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코
작품등록일 :
2020.12.24 20:09
최근연재일 :
2021.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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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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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DUMMY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갑작스런 자유에 기뻐하는 일은 여기까지다. 어서 이 검은 부리 여자를 베리타 묘로 데리고 가야했다.


지금쯤 연금술사 연맹은 생명관리부 놈이 죽어버렸단 사실을 알아차렸겠지. 앞으로 또 얼마나 재미난 난관이 닥칠까 하는 생각에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따라 오시죠.”

나는 포이나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 ‘상급 검은 사자들’의 등장에 ‘기억의 묘지’가 일시적으로 봉인됩니다. 》

함께 걸음을 떼자마자, 안내문이 흘러들었다.

사고를 쳤대도 능력을 잃어버리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참. 이 성가신 것부터 해결해야겠군.”

포이나는 구시렁거리더니, 갑작스레 제 검은 로브를 손으로 펄럭였다.


《 ‘기억의 묘지’ 봉인이 해제됩니다. 》


펄럭거림이 그치자, 포이나는 옷차림이 달라져있었다.

멍청해 보이는 양철통 투구에 붉은 로브 옷차림.

얼마 전, 기울어진 숲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여자도 캐릭터가 어지간하다 싶다.


“뭘 봐.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어이없다는 듯 시선을 거두지 않자, 포이나가 퉁명스레 말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우리 사이가 엄청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뭐 그런대로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거 이거. 아무리 버려진 땅이래도, 여긴 몬스터들 근무태만이 심하네. 자기들 필드에 누가 들어선 줄도 모르고 무덤 속에서 잠만 쳐자는 꼴이라니.”

포이나가 잠잠한 돌무덤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직 제 버릇 남 못 준 모양이다. 이제 검은 사자 티 좀 벗겨내야 할 텐데.


“도착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여기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멈춰선 곳은 베리타 묘 앞이었다.

묘지에서 가장 큰 이 돌무덤 앞은 황량하게 비어있었다.


지금 쯤 놈이 나타날 때가 됐는데···.


“내 능력을 이용해서 우리 함께 지하묘 안에 숨어보자. 이건가?”

포이나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그때였다.

내 옆의 허공이 갑자기 물결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세로로 기다란 줄 하나가 떠올랐다. 이어서 줄이 서서히 갈라졌고, 그 틈사이로 황토색 뾰족 귀가 먼저 솟아나왔다.

도적 고블린, 놈이었다. 역시, 언제 봐도 화려한 그 모습 그대로다.


“와하하.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을 모셔왔네요!”

고블린이 특유의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에르제베트에게 정황을 미리 들은 모양이었다.


“얜··· 뭐지?”

포이나가 놀라며 말했다. 투명 망토도 망토인데, 그 속에서 웬 고블린이 나왔으니. 놀랄만도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도적 고블린, 루피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어요. 포이나님.”

고블린이 포이나의 한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손 위로 입까지 맞추며 인사를 했다.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다. 예의 바른 걸까, 먹이는 걸까. 당장 판단을 내리지 못할 만큼 영리하고 공손한 모습이다.


포이나 역시 적잖이 당황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놈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겠지만, 대체 무슨 말부터 해야 하나 감도 안 잡히는 것이겠지.


“이제부턴 제가 안내를 도와드릴게요!”

얄밉게도, 고블린은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 %$%^#가 파티 ‘베리타 묘 입장 버스’ 참여를 제안합니다. 》

《 참여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


아마 포이나에게도 같은 안내가 간 듯했다.


“정말 기도 안 차는군.”

할 말이 많았겠지만, 포이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 정도로만 말했다.


《 파티원 %$%^#이 ‘베리타 묘 통행증 no.18990’을 사용합니다. 》


익숙한 안내음과 감각이 몸을 감쌌고, 시야가 일순 어두워졌다.



* * *



“이놈들이 왜 여기에···?”

포이나 또한 일전의 나처럼 자칼 두 마리를 보고 놀랐다.


허리를 곧추서고 앉아있는 꼴이 아주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개 같았다.


고블린은 포이나의 머뭇거림에 아랑곳 않고, 휘적휘적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놈을 뒤따라갔다.


“너··· 연맹이 준 자유를 잃지 않았나 보지···?”

내 옆으로 포이나가 빠르게 따라붙으며 속삭였다.

내가 여전히 파티에 가입 가능한 것을 보고 알아차렸으리라. 연금술사가 허락한 자유엔 파티 가입도 포함되는 것이니까.


“새로운 자유를 얻은 거라고 치죠.”

나는 자연스럽게 눙치며 말했다. 굳이 사실대로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이나도 눈치껏 그 이상 파고들지 않았다.


얼마간 던전 복도를 걷자, 예의 그 시장이 열렸던 방이 나타났다.

그곳은 전과 다르게 한적했다.

시장이 열려있지 않았고, 저번처럼 몬스터들이 많지도 않았다.


인근 필드의 몬스터인 ‘푸른 눈의 코볼트’ 몇과, 환각을 일으키는 독으로 유명한 ‘여왕 거미’가 한쪽 구석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 한 가운데에, 서큐버스 그녀, 에르제베트가 있었다.

그녀의 타고난 천성은 몬스터들에게도 매력적인가 보았다. 그 방에 있던 몬스터들이 모두 그녀를 둘러싸고,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오늘은 꽤 조용하군.”

내 중얼거림에 고블린이 이어 말했다.

“오늘은 시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니까요. 우리 같은 존재에겐 시장은 이벤트 같은 거예요. 시장이 매일같이 열리면 희소가치가 줄어들고, 모이는 몬스터들도 점점 줄어들 걸요.”

꽤 합리적으로 들리는 말이었다. 놈의 진정한 목적은 거대한 상점이나 하나 가지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게 조용한 거라고?”

포이나는 계속해서 놀라기만 했다. 그래도 직위가 어느 정도 높은 검은 사자이니, 이곳에 대한 뜬말이라도 어렴풋이 듣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고블린의 말대로 이곳은 확실히 테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일지도 몰랐다.


“테르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니···.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는군.”

포이나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어버렸다.


“기사님! 돌아오셨군요.”

에르제베트가 우릴 발견한 건 그때였다.

마음의 상처는 어느 정도 수습되었나 보았다. 그녀는 상당히 맑은 낯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녀를 따라서 몬스터들도 우르르 우릴 주목했다.


“뭐야. 또 다른 테라리언이냐?”

“뭐야. 또 다른 기사냐?”

특히 코볼트 놈들이 수선을 떨며, 포이나 주변을 에워쌌다. 포이나의 로브 위로 코까지 박고 킁킁거리는 게, 아주 볼썽사나웠다. 말만 할 줄 알지, 게임 속에서도 미련하고, 멍청한 놈들이다.


“여기가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라 그랬지?”

일부러 겁이라도 주려는 건가?

포이나가 부러 목소리를 음흉하게 깔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양철통 투구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거의 파랗다 싶을 만큼 흰 피부와 그 위에 놓인 눈동자 없이 새까만 두 눈.

새부리가면으로도 가리지 않은 포이나의 얼굴이 온전히 다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은 나 또한 처음이었다.

흉측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어떠냐!”

포이나가 익살스럽게 두 손을 번쩍 쳐들며, 코볼트들을 겁주었다.

아무래도 저 여자, 눈치도 빠른데, 적응도 빠른 것 같다.


“뭐야아. 거··· 검은 사자냐?”

“뭐야아. 우··· 우리 죽이러 온 거냐?”

바짝 선 귀가 축 쳐지며 코볼트들이 우는 소리를 냈다.


“장난이 지나치군요.”

나는 이제 그만하라는 손짓을 하며, 포이나를 말렸다.


“싱겁긴.”

포이나는 못내 아쉬운 듯, 입을 삐죽였다.


“저어···.”

에르제베트가 우리 사이로 끼어들었다. 포이나가 검은 사자라는 것을 알고, 무언가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아마도, 마리언에 대해서.


“마리언···. 그 이는 지금 살아있나요? 혹시 ‘영원한 소멸’의 벌을 받았나요?”

에르제베트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금 전까지 밝에 빛나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에르제베트의 말을 듣는 순간, 포이나의 검은 두 눈이 흔들렸다. 포이나는 투구를 빠르게 다시 썼다. 무언가 숨기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마리언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 지 다 알 것이다. 마리언을 잡은 게 바로 그녀였으니까.


“그자는 살아있다.”

포이나는 조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 보이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자자. 오랜만에 새로운 손님이 오셨는데 그냥 이렇게 서있을 수만은 없죠.”

고블린이 화제를 바꾸려는 듯 박수를 짝 치며 말했다.

코볼트들도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고블린에게 동조했다.


《 ‘도적 고블린’이 ‘클라우스의 가방’을 열어, ‘오리 통구이 요리’와 ‘청어 파이’를 꺼냅니다. 》


저 가방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놈이 물건을 쓸어 담을 수 있는 게 저 아이템을 통해서 가능했던 건가.

과연··· 없는 게 없는 놈이다.

이번엔 웬 요리사 테라리언의 인벤토리를 열어보았나 보군. 음식들의 등급도 A~B등급 선인 게, 꽤 실력 있는 놈을 턴 모양이다.


이 세계의 규칙에 따라 몬스터들은 굶주림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음식의 풍미마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코볼트와 여왕거미가 가장 먼저 음식에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나도 조금은 식욕이 도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퍼질러 앉아서 오리 다리나 뜯어 먹는 게 아니었다.

나는 고블린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할 말이 있다. 눈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데.”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고블린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놈은 다른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방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저 끝에 던전 룸이 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저건 이놈만 이용하는 방인가?


“이 던전에 원래부터 있던 놈들은 어디에 있지?”

“베리타 묘의 또 다른 던전에 있어요. 어차피 이곳은 테라리언들이 거의 들리지도 않는 곳이고··· 설령 던전 하나에 몬스터가 두 배 이상인들, 테라리언들은 경험치 올리기에 좋다고 기뻐하고 마니까요. 아, 오해는 마세요. 제가 몬스터들을 강제로 쫓아낸 것은 아니에요. 규칙적으로 이용 세도 내고 있거든요. 테라리언 성주에게 주민이 세금을 내듯 말이에요. 뭐, 제가 내는 건 금화가 아니라, 음식이나 약소한 아이템 같은 것들이지만요.”


왠지 모르게 현실적이어서, 헛웃음이 날 정도였다.


“자, 이곳이 제 거처에요.”

고블린이 던전 룸 안에 들어서며, 호기롭게 말했다.

방 안의 풍경은 아주 소박했다.


두텁게 쌓아놓은 짚 한 덩이와 그 위에 누더기를 깔아놓은 건, 보아하니 침대인 듯하고···.

나무토막 몇 개를 엉성하게 못질 해 놓은 건, 책상인 듯 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주변에 널브러진 책들이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내가 갖고 있는 고서 ‘테르어의 기원’에 버금갈 만큼 낡은 책들이었다.


모퉁이가 닳다 못해 삭아버린 책들.

특별히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응용서보단, 시답잖은 민담이나 담아놓은 잡서들이었다.

몬스터가 테르의 언어를 이해할 도리가 없을 텐데.

놈은 저걸 다 읽은 걸까?


“그럼 하실 말씀이 무엇인가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놈이었다.


“······.”

나는 왠지 모르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포이나에겐 농담처럼 쉽게 던졌는데, 이번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놈을 한번 거절한 이력이 있어서인 걸까.


“도··· 동···.”

“네에?”

이정도면 놈도 내가 하려는 말이 무언지 눈치 챘을 거다.

놈은 부러 더 듣고 싶다는 듯, 귓구멍을 내 쪽으로 들이밀었다.


“동료가 되려고 한다.”

엉성하게 내뱉은 내 말에 놈은 감격에 젖어, 두 눈을 부라렸다.


《 ‘여행자의 임무’ 첫 번째 퀘스트, ‘첫 번째 동료’를 완수하였습니다! 》


놈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안내문에 놈이 내 말을 받아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퀘스트는 테느 강을 통해 기억의 묘지에 도착하자마자 받은 것이었다.


《 아이템 ‘여행자의 지팡이’를 획득하였습니다! 》

《 경험치가 누적되어 ‘이졸데의 속삭임’이 LV.19, 20으로 레벨 업 합니다! 》


하지만 퀘스트 완수만을 위해 놈에게 동료가 되자고 한 건 아니었다.


“우와아···.”

대체 얼마나 기쁜 건지, 왜 그렇게 기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놈은 기뻐했다.


나는 놈에게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손짓을 했다.

고블린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침을 크게 꿀꺽 삼켰다.

내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젠 지상으로 올라갈 때다.”

나는 고블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행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따라갈 때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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