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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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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코
작품등록일 :
2020.12.24 20:09
최근연재일 :
2021.01.23 19:00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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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7,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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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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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DUMMY

미드 헤임의 무너진 외성이 서북쪽에선 던전화되었다면, 서남쪽에선 필드 몬스터들을 위한 음지가 되었다.


‘무너진 성벽의 폐허’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가 ‘부활한 가고일’인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미드 헤임’의 세력이 보다 견고하던 먼 옛날, 가고일은 원래 외성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했었다.

그리고 ‘알프 헤임’의 엘프들이 외성을 무너뜨리면서 가고일은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


폐허에 남은 것은 원한이 빚어낸 악의와 농후한 마력뿐이었다.

성벽과 함께 무너진 가고일은 더욱 강력해진 모습으로 부활했다. 엘프 종족을 넘어 불특정 테라리언들에 대한 적의가 더 깊어진 건 덤이었다.


다만 강한 놈일수록 더 깊은 곳에 숨는 법이라, 미드 헤임에 가까운 필드에 있는 가고일일수록 에너지는 옅어졌다. 그렇게 가장 강한 놈이 ‘부활의 가고일’, 다음으로 이어지는 놈들이 ‘증오의 가고일’, ‘사악한 가고일’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 숨겨진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건, 때때로 게임 테르의 시나리오를 즐겼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유저들은 게임 시나리오 디테일을 스킵하기 일쑤였다.

그에 비해 게임으로 벌어먹고 살며 넘치는 게 시간이었던 나는, 게임을 하고 있으면서도 심심해서 미칠 것 같을 때마다 시나리오 내용을 온전히 즐겼다.


그게 이 상황에 특별히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나는 어느새 ‘증오의 가고일’의 구역까지 넘어서 ‘부활한 가고일’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미드 헤임’에 막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푸르스름하게 동이 트고 있었는데, 지금은 해가 중천에 올라있었다.


깨진 벽돌이 함부로 뒹굴고, 잡초가 야생적으로 자라는 풍경이 나를 에워쌌다.

맑은 빛 아래에 놓인 폐허의 풍경은 마치 ‘미드 헤임’의 민낯 같았다.


그토록 낡은 풍경 안에서 나는 ‘부활한 가고일’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 ‘부활한 가고일’이 스킬 ‘대지를 태우는 화염’을 발동합니다! 》


과연 대단한 호전성이었다.

영역에 발을 딛기가 무섭게 곧바로 공격부터 해오다니.


이럴 줄 알고, 대장간에 들려 ‘투 핸디드 소드’를 미리 사다놓길 잘 했다.

아무리 강한 능력치를 가진 몸이라 해도, 계속 맨손인 상태로 돌아다닌다는 건 멍청한 짓이다.


그리고 검은 언제나 주먹보다 강했다.


나는 등 뒤에 두르고 있던 투 핸디드 소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전에 쓰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검이었지만, 길들이지 않은 것이라 그런지 낯선 감각이 손바닥 안에 감겨왔다.


온몸을 불태워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화염이 내게로 쏘아오고 있었다.


《 스킬 ‘디펜스’를 발동합니다! 》


나는 들고 있던 검을 비스듬히 하며, 기본 방어 스킬을 사용했다.

반원의 모양을 띤 어슴푸레한 기운이 내 앞에서 가림막처럼 드리워졌다.


화르륵!


맹렬히 타오르는 화염이 내 눈앞의 가림막과 부딪치며 이내 사그라졌다.


‘부활한 가고일’은 사냥 대상으로는 조금 성가신 놈이었다. 전투 사정거리가 꽤 높은 편인데다, 늘 자신의 몸을 감춘 채 선공했다.

물론 숨어있는 가고일을 찾아낼 공략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그 공략대로 하면 저놈은 내 스킬 한 방에 즉사해버릴 것이다.


지금은 저놈을 죽여 버리는 게 내 목적이 아니었다.

나는 제정신인 가고일을 붙잡고, 추궁하고, 진상을 따져야 했다.


《 ‘부활한 가고일’이 당신의 반응에 흥미를 느낍니다. 》


그럴 만도 했다.

가고일의 선공은 끝난 후에, 테라리언은 곧바로 가고일의 위치를 알아차릴 수 있다. 보통의 테라리언이라면 가고일의 위치를 알게 된 직후 공격을 감행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멀뚱히 서서 화염이 쏘아져온 방향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퍼얼럭- 퍼얼럭-

가고일의 날갯짓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저놈의 공격을 멈추도록 만들어야 했다.


《 ‘부활한 가고일’이 스킬 ‘대지를 태우는 화염’을 발동합니다! 》


화르륵-

가고일이 입가에 화염을 물고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다시 ‘디펜스’ 스킬을 사용하여 공격을 막았다.


“네 놈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화염이 일으킨 폭음이 잔음으로 서서히 멎어갈 즈음, 나는 놈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 ‘부활한 가고일’이 스킬 발동을 취소합니다. 》

안내문이 흘러들어옴과 동시에 가고일이 화염을 입안으로 삼키는 게 보였다.

놈은 여전히 공중에 머무른 상태로 날 내려다보았다.


“테라리언은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없을 텐데.”

음산하고 깊은 목소리가 가고일에게서 흘러나왔다.

아마 내가 한낱 인간인 상태로 저 목소리를 들었다면 오금이 다 저렸을 거다.


《 ‘부활한 가고일’이 당신의 정체를 궁금해 합니다. 》


가고일은 테르의 몬스터들 중에서 흔치 않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놈들이었다.

게임 속에서 가고일을 사냥할 때마다, 놈들이 늘 “간사한 테라리언 놈들.” “그 이름을 기억한다···.” 따위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 놈의 반응을 보니, 역으로는 적용되지 않는 듯 했다.

내가 한 말이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들린다는 사실에 가고일은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놈이 잠시 버벅거리는 사이, 나는 놈을 추궁할 방법을 찾기 위해 정보를 조회했다.



[ 부활한 가고일 ]

[ 전체 LV. 70 ]

[ 힘 238. 민첩 278. 방어 288. 마력 251. 행운 23. ]

[ 등급: 전설 ]

[ 키워드: 문지기. 급발진. 깊은 원한. ]

[ 기본 스킬은 생략되며, 특화 스킬만 표시됩니다. ]

[ 대지를 태우는 화염 LV.41 ]

[ 석상화 LV.39 ]



특기할만한 것 없는 정보들의 나열.

알고 있는 내용 그대로였다.


특이사항에 아이템 분실과 관련 있을만한 단서가 있을 줄로 예상했는데···.


“[ 몬스터 언어의 개념과 이해 ]를 읽은 것인가. 하지만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 몬스터에게 말을 걸 순 없을 텐데.”

가고일은 내가 자신과 말이 통한다는 사실에 여전히 꽂혀있는 듯했다.

하지만 뚱딴지같은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 줄 여유 따윈 내게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네게 물어볼 것이 있어 이곳에 온 것일 뿐이다.”

나는 가고일을 향해 외쳤다.


내 말에 가고일이 구시렁거리던 걸 문득 멈추었다.


“흥미롭군. 지금 네가 한 말의 의미를 아는가.”


펄럭.

단 한 번의 날갯짓이 일으킨 바람에 초지가 들썩였다.


이어서 가고일이 느리게 하강하기 시작했다.

놈은 내 앞에 있는 무너진 담벼락 위로 천천히 착지하고 있었다.


콰지직.

착지와 동시에 가고일의 날카로운 발톱이 벽을 파고들었다.

다소 움츠린 자세였지만 놈은 거대한 석상처럼 위압적인 풍채를 자랑했다.


“먼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는군. 당시의 나는 미드 헤임 외성 서문의 문지기. 미드 헤임을 횡단하고자 하는 당돌한 모험가들을 위해 퀘스트를 주었더랬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였다.


먼 옛날, 가고일은 성문 안에 들어가고자 하는 모험가들을 시험에 들게 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건 퀘스트라기보단, 스무고개와 같은 수수께끼 놀이였다.


가고일은 모험가에게 열 가지 질문을 할 수 있게 한 후, 제 속마음에 떠올린 물건이 무엇인지 맞추게 했다. 가고일은 질문에 대해서 ‘그렇다/아니다’라고만 대답하는 대신, 무조건 진실만을 말해야만 했다.


모험가가 정답을 맞히면 성문을 열어주었고, 정답을 맞히지 못하면 ‘소리의 미궁’에 던져버렸다.


미궁에 빠진 이들 중 누군가는 빠져나고, 누군가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미궁에 갇힌 자는 죽어서도 미궁에 혼이 묶였고, 영원히 그 안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소리의 미궁에 붙잡혀버린 모험가의 영혼이 NPC ‘미궁의 소녀’였다.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건 미드 헤임 시나리오 메인 퀘스트와 관련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게임 상에서 이 메인 시나리오를 돌파하려면, 그 ‘미궁의 소녀’를 구출하는 퀘스트를 필수로 완료해야했다.


“내 과거를 꿰뚫은 자여. 그대는 소리의 미궁에 빠진 소녀를 구하러 가겠는가.”


《 ‘부활한 가고일’이 히든 퀘스트 ‘미궁의 소녀 구출’을 제안합니다. 》


게임 상에선, 가고일에게 ‘미드 헤임 성주의 서약서’를 구해다 주는 것으로 히든 퀘스트의 물꼬를 텄는데, 지금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말을 걸었을 뿐인데, 퀘스트를 주려고 하다니.

퀘스트 난이도가 하향 패치라도 된 건가.


어쨌든 놈은 내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테라리언에게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제아무리 강한 몬스터래도 놈은 테라리언의 모험을 위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놈이 해야만 하는 일이란 테라리언에게 히든 퀘스트를 전달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난 뜬금없이 퀘스트를 하나 더 진행하려는 게 아니었다.


“나는 소녀를 구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적의 없이 덤덤하게 말했다.


가고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문의 시간을 요청한다.”


“그건 이 성벽이 무너진 이후, 사라진 업이다.”

가고일은 내 요청에 잠깐 놀라더니, 이내 차분해졌다.

일말의 동요가 순식간에 놈의 내면을 훑고 지나가버린 듯했다.


“불가능하지 않다.”

“네가 어떻게 알지?”

“방금 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으니까.”


+

[ 특이사항: 히든 퀘스트 ‘질문의 시간’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



지금 이곳은 테라리언과 몬스터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가고일이 성벽을 지키던 먼 옛날엔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

그러했기에 가고일이 모험가에게 수수께끼를 낼 수도 있었고, 미드 헤임 성주와 연합을 이룰 수도 있었던 것이다.


가고일과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그 사실이 기억이 났고, 수시로 정보를 조회하고 있었다. 반쯤은 테라리언인 내가 가고일과 대화를 계속 나누다보면, 놈이 ‘질문의 시간’을 전개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맙소사.”

가고일 역시 업데이트된 정보를 확인한 듯 흉측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옛날에 ‘질문의 시간’으로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나 본데.


“자, 이제 내 요청을 들어줘라.”

“네가 이 퀘스트 완수를 실패하면 ‘소리의 미궁’에 갇히게 된다. 내 능력을 새로 일깨워준 자에게 그런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은데.”

가고일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초반에 날 맞닥뜨리자마자 공격부터 감행했던 놈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상관없다. 어차피 난 정답을 맞힐 생각이 없으니까.”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이 퀘스트를 실패한다고 해도, ‘소리의 미궁’에 가둬지는 게 벌의 전부일 것.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일이야 소녀를 구하면 될 일이고.

그건 내 수준에선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부활한 가고일’이 히든 퀘스트 ‘질문의 시간’을 시작합니다. 》


----------


<히든 퀘스트: 질문의 시간>


등급: E


내용: 당신은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몬스터 ‘부활한 가고일’을 마주하였습니다. 가고일의 마음 속 ‘그것’이 무엇인지 맞추십시오.

정답에 대한 힌트는 총 10회의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예/아니요’로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하십시오.


제한 시간: 2시간


보상: 100G

실패 시: -5000G


----------


김이 확 샐 만큼 보잘 것 없는 보상과 실패 패널티였다.


“오···오랜만이라 그렇다. 패널티 내용이 바뀌었군.”

앞서 무게 잡았던 게 영 부끄러운 지 가고일의 검은 낯짝이 검붉게 물들었다.


무기를 산 후, 잔고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금화가 뜯겨나가는 건 안타까웠지만···

뭐, ‘소리의 미궁’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으니 잘 된 일이다.


나는 첫 번째 질문을 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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