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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몬스터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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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코
작품등록일 :
2020.12.24 20:09
최근연재일 :
2021.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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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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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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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DUMMY

기울어진 숲 앞에서 파티를 모으는 테라리언들의 레벨은 평균 40대쯤이었다. 능력치는 평균 100이하. 착용하고 있는 장비만 대충 훑어보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그들은 거대 다이어울프가 떨어트리는 아이템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레벨 50 이하인 테라리언 한정, 다이어울프가 떨구는 월석(月石)은 그들의 성장에 아주 좋은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희부연 빛을 스스로 뿜어대는 주먹만 한 돌조각.

다이어울프는 달의 힘을 받는 몬스터였고, 그들이 뱉는 월석에도 그 마법 같은 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월석의 종류는 총 다섯 가지였다.

힘의 월석.

기민의 월석.

마법의 월석.

방호의 월석.

환희의 월석.


순서대로 힘, 민첩, 마력, 방어, 행운의 능력치 포인트를 10씩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포인트를 올리는 방법은 쉬웠다. 거머쥔 월석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성능이 대단한 만큼 거대 다이어울프가 월석을 떨어트릴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테라리언들끼리 물건을 사고 파는 마켓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나마 획득률이 높은 방호의 월석은 70만 골드, 획득률이 아주 낮은 기민의 월석은 100만 골드까지 거래되었다.


능력치는 보통 스킬 레벨업을 할 때마다 1에서 2정도 포인트가 오르는 게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스킬 레벨업 없이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육체를 얻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현실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타고나길 힘이 강하고, 끈기가 있는 경우들. 출발점이 달라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테르의 대다수 상위 랭커들은 모두 월석을 사용한 자들이었다.


생포가 아니라 살육이 가능한 퀘스트였다면, 나는 거대 다이어울프를 보자마자 죽여 버렸을 것이다. 현재 가진 돈이 2,000 골드가 전부인 나로선, 금화를 가능한 빨리 벌어들이는 게 중요하기도 했으니까.



테르에는 레벨 40 언저리의 테라리언들이 가장 많았다.

그들은 테라리언의 평균이었고, 테라리언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벨 40의 시기는 더딘 성장, 시쳇말로 노가다의 시작이었다.


그 말인즉슨, 해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하면 아주 많은 테라리언들이 이곳 기울어진 숲에서 대기를 타기 시작할 거란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막 도착한 이곳은 아주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처음 보았던 네 명의 테라리언 무리만이 여전히 모닥불 주변에 모인 채 무기를 정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뒤를 이어서 나타나는 테라리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 파티에 함께 하시겠습니까?”

내게 제안한 이는 땅딸만한 드워프였다. 그는 자신을 ‘친절한 사냥꾼, 이제프’라고 소개했다. 묵직한 체인 갑옷을 길게 휘감고 있는 게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괜찮습니다.”

이 세계에서 나이가 뭐가 중요할까싶지만, 중년 남짓 되어 보이는 이제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존댓말이 나왔다.


“거대 다이어울프를 찾으러 온 것이지요? 달이 차오르려면 어차피 시간이 더 걸릴 터니 함께 불이라도 쬐지요.” 

보아하니 이제프는 넉살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파티 참여 제안을 거절한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할 만도 한데,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을 더 걸어왔다.


그자의 말이 사실이긴 했다. 만월이 뜨기 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사냥의 시간을 기다리며 다 함께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는 건 테라리언들의 공통된 습관 중 하나였다.

모닥불의 불은 보통의 불이 아니었고, 일시적으로 힘을 올려주는 마법이 깃든 것이었다. 손해 볼 것 없는 상황이니 나는 더 이상 내빼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이제프가 주변의 테라리언들을 소개했다.


이제프의 동료인 드워프가 둘, 오늘 뜬금없이 파티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인간 종족이 하나였다. 


드워프 둘은 이제프와 인상이 비슷했지만, 경계심은 보다 강했다. 건조하게 첫 인사를 주고받을 때만 입을 떼었을 뿐, 그 이후엔 줄곧 침묵하며 무기를 손질했다.


나머지 하나는 얼굴을 다 가린 베럴 헬름 투구에, 붉은 빛의 두꺼운 로브로 온몸을 감싸고 있어 성별조차 짐작이 어려웠다. 체구를 보아하니 인간 종족은 맞는 듯 했다.


하지만 집요할 만큼 외양을 가린 옷차림에, 일관되게 무심한 태도까지, 미심쩍은 기색이 풀풀 풍겼다.

복장이 보잘 것 없긴 하다만··· 그런 놈들은 게임 세상에도 있지 않은가. 엄청난 고수면서, 일부러 초보자인 척 잡템을 두르고 있는 관심 종자들.


드워프들이야 자신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라 정보 조회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미심쩍은 인간 종족 한 놈의 정보만 조회를 시도 했다.


《 ‘이졸데의 속삭임’이 거대한 장벽에 부딪힙니다. 》

《 스킬 레벨 부족으로 대상의 정보를 조회할 수 없습니다. 》


예상 밖의 안내문에 나는 잠깐 주춤거렸다.


내 시도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붉은 로브의 인간 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쪽은 우리도 처음 만난 사이이니··· 이참에 통성명이라도 하지요.”

인간 놈의 기척에 이제프가 짐짓 밝은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은둔의 집행관, 포이나입니다.”

낡은 양철통 같은 투구 안에서 날선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체를 꽁꽁 숨기고 있는 겉모습과 다르게 망설임 없는 태도였다.


그렇게 나오니 나 역시 소개를 미룰 수 없었다.

“그림자 기사, 헤르멘입니다.”

게임 속에선 캐릭터가 획득한 칭호를 이름 옆에 붙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선 칭호까지 이름으로 통칭해서 부르는 모양이었다.


헤르멘이라는 이름과 칭호는 호피탈을 떠나기 직전 연금술사가 알려주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이 내게 완전히 각인될 것이라고도.


“과연 모습에 어울리는 수식이시군요.”

이제프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다들 너스레를 떨기보단 침묵에 익숙한 이들인 듯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달이 차오르기만을 기다렸다.



 * * *



테르라는 세계에선 달 역시 특별한 존재였다.

이곳에서 달은 하룻밤 사이에 만월로 차올랐고, 날이 밝아오면 초승달이 되며 서서히 지워졌다.


어느새 달이 만월에 가깝게 부풀고 있었다.

하지만 숲속엔 여전히 나와 드워프 셋, 미심쩍은 인간 하나뿐이었다.

침묵 속에서 모닥불이 공허하게 불티를 튀기는 소리만 가득했다.


“수상할 만큼 테라리언이 없군요.”

나는 조심스레 침묵을 깼다. 예상 밖의 상황에 내가 모르는 정보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고수처럼 보이는 기사 양반이 왜 이런 곳을 배회하나 싶어 의아했는데··· 소문을 못 들으신 모양이군요?”

대답은 역시나 이제프가 했다.


“월석이 요즘 씨가 말랐습니다. 그걸 뱉는 놈이 제 자취를 감추려들고 있거든요.”

이제프가 말을 이었다.


“그게 무슨···?”

“거대 다이어울프가 나타난 위치는 그놈의 주변부에 함께 소환되는 보통 다이어울프들을 이용해서 추측하지 않습니까. 작은놈들을 죽이면 복수심에 찬 큰놈이 가까이 다가오니까요. 근데 도리어 그놈이 자신과 함께 나타난 동족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있지요.”

“동족 살해에 대한 이야기는 일찌감치 들었지만 그런 식일 줄은 몰랐군요.”

“집요한 추적 끝에 발견을 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하나 남은 작은놈의 멱을 따고 있던 큰놈이었지요. 그러고 나서 그놈은 쏜살같이 멀어지더군요. 죽은 놈들이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시신이 소멸해버리니 더 이상 추적할 방법 따윈 없었습니다. 아무튼 그런 일들로 월석 값은 천청부지로 치솟았고, 일확천금 생각하고 모인 이들 중에 남고 남은 사람들이 저희죠. 아 물론 저기 포이나님은 제외하고···.”


연금술사에게서 설명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동족끼리 싸움이 나 서로를 죽이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놈의 행동 양상에 대해 자세히 듣고 보니 그 정도로 그치는 일이 아니었다.


거대 다이어울프는 테라리언들로부터 달아나려는 것이었다. 죽음을 피하고, 거듭해서 피하는 것. 죽음을 끝없이 회피하려는 몬스터라니. 그 종착지에 과연 무엇이 있기에.

개인적인 의문이 치밀었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상념에나 빠지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를 생포해야만 했고, 의지를 다시 다지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자신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머리를 쓰는 놈이라.

하지만 추적할 방법은 있었다.


나는 결국 이들과 동행하여 거대 다이어울프를 찾기로 결심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파티에 참여하도록 하지요.”

내 말에 모닥불을 둘러싸고 있는 테라리언 모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에 아랑곳 않고 나는 포이나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곤 재차 말을 이었다.

“원격 상점을 열어보실 수 있으시죠?”


포이나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넙대대한 투구가 침묵 속에서 반짝거렸다.



 * * *



원격 상점은 어느 장소에서든 테라리언들이 판매하는 아이템을 조회하고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투 중 급하게 응급 물품이 필요할 때나 사냥터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많이들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격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테라리언은 많지 않았다. 일종의 특권이기 때문이었다.

테르의 전 대륙과 모든 섬을 속속들이 밟아보았던 자들.

‘모험가’라는 칭호를 얻어 본 적 있는 이들만이 원격 상점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테라리언의 상위 20% 족속들이었다.


평균 능력치가 100 언저리에 그칠 드워프들은 아직 이곳 이덴 대륙조차 벗어나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야, 이제야 겨우 타탄 던전을 벗어난 몸이니, 능력치가 아무리 높은들 원격 상점은 열 수 없었다.


“소환의 월석을 다섯 개 구매 해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포이나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찰나의 침묵 끝에 포이나가 말을 이었다.

“보기와 다르게 눈치가 빠르시네요.”

대놓고 냉소가 가득 담긴 말이었다.

일부러 허접한 아이템을 두르고 있었건만, 자신이 원격 상점을 열 수 있을 거란 걸 어떻게 알았냐는 거겠지.


사실 반쯤만 확신을 가지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주변의 드워프들은 포이나가 원격 상점을 열 수 있는 자라는 사실에 놀란 것 같았다.


“월석을 한 명당 한 개씩 나눠주란 것이겠죠?”


《 포이나가 ‘거래하기’를 제안합니다. 》

《 거래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


포이나의 물음이 끝나기 무섭게 거래 제안 메시지가 떠올랐다.

나는 곧장 머릿속으로 YES를 떠올렸다.


《 포이나와의 거래를 통해 ‘소환의 월석’을 획득하였습니다. 》


안내문과 동시에 내 인벤토리에 희붐한 빛을 내뿜는 돌 조각 하나가 놓였다.

거절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포이나는 생각보다 시원시원한 사람이었다.


“소환의 월석을 직접 보는 건 처음입니다. 이건 케베르 대륙에서나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까?”

이제프도 월석을 건네받은 모양인지 놀란 눈을 하고 말을 뱉었다.


그의 말대로 소환의 월석은 이덴 대륙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건 케베르 대륙의 쿠룬 던전에 있는 몬스터 라이칸스로프가 뱉는 아이템이었으니까.

 

라이칸스로프는 늑대 계통 몬스터 중 상위 레벨에 해당하는 놈으로, 다이어울프와 똑같이 달의 영향 하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뱉는 월석은 일반 다이어울프를 한 번에 다섯 마리까지 소환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다른 월석에 비해 드랍률이 희박하지도 않고 특별히 능력치를 올려주는 것도 아니니, 판매 금액도 그리 높지 않은 1,000골드 정도에 거래되었다.

이덴 땅에서 볼 수 없는 아이템일 뿐, 그렇게 훌륭한 물건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무얼 할 수 있는 겁니까?”

이제프가 순박하게 물어왔다.


“지금부터 출발해 숲의 서쪽에 이를 쯤이면 달이 완전히 차겠네요.”

나는 숲 안쪽 깊은 어둠을 응시하며 말했다.


거대 다이어울프가 제아무리 장소를 따지지 않고 등장한다지만 넓게 보았을 때 숲의 서부를 벗어나진 않았다.


“우린 그곳에서 다이어울프를 소환하는 겁니다. 그리고 소환된 놈들을 사냥하면 됩니다.”


내 말을 들은 드워프들은 모두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프가 이내 내 속을 알아차렸다.


“거대 다이어울프가 제 동족이 있는 곳을 착각하도록 하자는 거군요.”


《 이제프가 ‘파티 참여’를 제안합니다. 》

《 참여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Y/N 》

《 파티 ‘룬 조각 사냥’에 참여합니다. 》

《 파티원 사이 전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파티 참여에 동의하자 파티원들의 머리 위로 반짝거리는 녹색 불이 떠올랐다.

멀리서도 파티원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는 지표였다.

전음이란 건 아마 파티원들끼리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걸 뜻하는 듯했다.


“그럼 이동하죠.”

내 말을 끝으로 우리는 기울어진 숲 깊은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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