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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 님의 서재입니다.

배같은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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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rte까르
작품등록일 :
2020.01.17 23:48
최근연재일 :
2021.02.27 22:00
연재수 :
85 회
조회수 :
4,865
추천수 :
77
글자수 :
487,621

작성
20.03.1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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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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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3. 합법적 잣대 - 3

DUMMY

아이스크림 통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누나는 마지막 한입을 들어 내쪽을 바라보았다.


"요즘 동아리 때문에 바빴구나."


"축제 준비할 게 많아서 좀 피곤했나 봐. 누나 시선도 못 보고 잤네."


"괜찮아. 강연이가 무대에 나온다는 거잖아!"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아이스크림 통을 비틀었다. 그 코너를 해야만 하나 싶었다. 누나는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넣은 뒤 스푼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 또한 누나 뒤를 따라 스푼을 싱크대에 넣은 뒤 아이스크림통을 쓰레기통에 수거했다.


"이번 축제 때 내가 무대 앞에서 화장 쇼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어. 그래서 좀 걱정이야."


"왜? 레미에서 화장 잘한다고 소문났어?"


"그냥 감각적으로 몇 번 해봤는데 다들 잘한다고 부추기는 거 있지."


나와 누나는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그냥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상황이 좀 이상해."


이후 누나는 내게 해보길 적극 권유했다. 내 의사보다는 순수한 재능을 신뢰하는 듯 보였다. 지금 화젯거리를 통해 SMK에 관한 얘기를 배제한 건 좋았으나, 동아리에서의 내 위치를 보여주니 마냥 좋을 순 없었다. 마치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꼭두각시와도 같은 처지였다.


누나와 얘기를 마친 뒤, 나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맑은 하늘 사이로 얕은 구름 한 줌이 강한 바람에 의해 계속해서 형체를 바꾸는 중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레미의 채팅방으로 들어갔다. 부원들은 축제 준비를 위해 답장을 수없이 주고받는 중이었다. 나미 선배 또한 부원들과 축제 관련 얘기로 분주한 상태였다. 그렇게 채팅방을 보던 중, 누나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나는 금세 매무새를 갖추어 방을 나왔다.


그 후 나는 누나와 건너편 대형마트로 들어와 식품 매대를 돌아다녔다. 인스턴트식품부터 조리하기 편한 고기 부위, 각종 채소에 생필품으로 카트를 채워나갔다. 누나는 과자들을 이곳저곳 카트에 넣으려 했다.


"누나 그만 좀 담아. 살 거 다 샀잖아."


"좀만 더! 여기서 꼭 기다리고 있어!"


"누나 잠깐만!"


누나는 이미 다른 과자 매대로 몸을 숨긴 뒤였다. 나는 마트 복도 중앙 쪽 간이 매대에 카트를 두었다. 이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늘도 잔업하시는 거예요?"


"그럴 것 같아. 프로젝트가 좀 길어지네."


"알겠어요. 지금 누나랑 장 보러 왔는데 뭐 사둘 거 있어요?"


"음, 아침에 먹을 빵 좀 사다 줘."


"네. 다른 건 없죠?"


"없을 거야. 퇴근하고 보자."


"네."


나는 카트를 반대로 틀어 과자 매대 쪽을 바라보았다. 누나가 오는 대로 제빵 매대로 경로를 틀 예정이었다.


그러나 누나가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지?"


나는 행사 매대를 빠져나와 과자 매대로 카트를 끌었다. 줄지어 이어진 과자 매대 이곳저곳에도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이 엇갈렸나 싶어 매대를 넓게 잡고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누나한테 직접 전화를 걸려는 찰나.


"강연아!"


누나는 과자 중앙 매대 쪽으로 불쑥 나타나 내게 달려들었다. 눈가에 눈물범벅이 되어 얼굴 주변이 조금씩 부은 상태였다. 누나는 내게 안겨 심하게 몸을 떨었다. 나는 누나의 등을 토닥여 상황을 진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누나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으게, 으흑, 어, 어마, 가."


"일단 진정하는 게 좋겠어. 밖으로 나와서 얘기하자."


"안돼!"


누나는 내 상의를 꽉 쥐어 놓질 않았다. 나는 난처한 심정으로 누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오갈 동안 누나는 어느 정도 이성을 찾아갔다. 나는 누나의 눈가 주변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엄마가 날 무시했어."


"뭐?"


순간적으로 누나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어 이성을 되찾았다.


"미안, 아까 뭐라고 말했지?"


"엄마가 나 무시했다고!!!"


누나의 호통에 마트 주변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누나가 이성을 잃어 우는 모습에 나는 누나를 끌어안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누나가 한 말대로라면 그 망할 아줌마가 이 마트에 있다는 뜻이다. 누나의 행동을 미루어 볼 때, 누나의 정체를 몰라 어떠한 눈길도 주지 않았을 거라 예상했다.


어찌 보면 이를 내버려 두는 게 현재로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누나가 아직 망할 아줌마에게 남을 미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누나가 겪었을 아픔을 공감해야만 했다.


"가자! 저녁 먹어야지."


누나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갈 즈음, 나는 과자 매대 옆 전기 제품 매대로 카트를 돌렸다. 누나의 인기척을 숨기는 게 우선이었으나, 실제로 난간 밖 전등이 수명을 다해 새로 사둬야만 했다. 나는 카트 옆으로 누나를 가까이 붙였다. 가벼운 시선조차 용납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카트를 앞으로 두어 탐색하던 중, 뒤쪽으로 있던 사람과 부딪히고 말았다. 나는 바로 사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여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조은정...?"


은정 또한 내게 놀란 기색을 보였다. 은정의 손에는 작은 크기의 형광등이 있었다.


"너도 전등 사려고 온 거야?"


"오빠도?"


"어. 혼자 왔어?"


은정은 고개를 저었다.


"엄마랑 같이 왔어요. 지금 옆쪽 과자 매대에 있을 걸요."


역시나였다. 동시에 비상이었다. 지금 은정과 망할 아줌마, 누나와 나까지 한 자리에 모이면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성급한 행동을 보이면 은정의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나는 긴장 속에서 이를 타파할 방법을 모색했다. 은정은 손가락으로 카트 앞쪽을 가리켰다.


"오빠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예요?"


"아, 누나야. 모자 써보고 싶다고 해서 막 빌려주려던 참이었어."


나는 그대로 검은색 볼캡 모자를 벗어 누나에게 씌워줬다. 누나는 영문을 모른 채 내 모자 주변을 매만졌다. 그동안 나는 난간에 쓸 규격의 전등을 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우린 이제 아버지 드실 빵 사야 돼서 이만 가봐야 돼. 나중에 보자."


은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누나를 품고 조심히 매대를 나와 제빵 매대로 다가갔다. 누나는 영문을 모른 채 내쪽을 멀뚱히 쳐다볼 뿐이었다.


"아까부터 왜 그래?"


"빨리 장 보려고. 지금 아래쪽에 신호가 와서 서두르는 거야."


"먼저 갔다 오지."


"지금 이 카트를 내버려 둘 순 없으니까. 제빵 매대 근처로 계산대 있으니까 아직은 괜찮아."


현시점, 나는 식은땀으로 얼굴이 수척해진 상태였다. 누나는 내 말을 믿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내 모자 주변을 만져댔다.


"모자도 찝찝해졌어."


"미안해. 화장실 갈 때 다시 받아갈게."


제빵 매대에 도착한 뒤, 나는 카트 뒤로 고개를 숙였다. 망할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으나 아까 은정과 같은 상황을 막기 위함이었다. 누나는 진열된 빵 쪽으로 다가갔다. 잠시 뒤, 카트에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나는 고개를 들어 카트를 확인했다.


"누나 너무 많아. 유통기간 내에 다 못 먹어."


"급하잖아! 빨리 가자!"


"알겠어..."


결국 카트에 담긴 물건들은 모두 계산해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정렬 상태가 영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작전대로 잘 되었으니 여한은 없었다. 누나가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 밖 상가 쪽으로 나갈 동안,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가볍게 세수를 했다. 손을 씻고 화장실을 나온 후, 누나로부터 문자가 왔다.


「강연아 아까 샀던 전등이 안보여 두고 왔나봐 ㅠㅠ」


「알겠어. 바로 카트 쪽으로 가서 확인하고 올게.」


나는 입구 쪽으로 나와 늘어진 카트를 확인했다. 다행히 외진 길목 쪽이라 바로 앞자리에서 쓰던 카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카트 구석진 곳에서 전등을 찾아냈다. 뒤이어 입구 쪽으로 카트 끄는 소리가 들려 재빨리 카트를 넣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옆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도중.


"우연이네! 여기서 다 만나고."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카트 쪽으로 시선이 갔다. 동시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시 살펴봐도 내 앞에 카트를 넣고 있던 사람은 망할 아줌마였다. 이내 나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으면 저 몰골을 박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재로선 무관심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길 막고 있어서 죄송해요."


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입구 쪽으로 길을 틀었다. 만일 그대로 타고 올라가 뒤를 잡힐 시, 바로 위에서 누나와 마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재빨리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다연이, 요즘 잘 지내나 모르겠네."


망할 아줌마는 언성을 높여 나한테 들으란 듯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입구 앞에 멈춰 섰다. 누나가 망할 아줌마를 만난 게 기정사실일 터, 나는 짧게 머리를 굴렸다.


"사람 잘못 보셨어요."


"거짓말인 거 다 알아. 은정이한테 이미 다 듣고 왔는데."


말하는 걸 보니 쉽게 끝나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망할 아줌마와 대면했다.


"무슨 얘기를 들었다고 갑자기 저한테 친한 척이죠?"


"이강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설마 이럴 줄이야. 안 그래 강연아?"


망할 아줌마는 거만한 자세로 내게 입꼬리를 올렸다. 확신에 찬 듯 보였으나, 은정에게 들었다는 게 치명적인 미스였다.


"누가 들으면 강연이라는 이름이 희귀한 줄 알겠어요."


"그래? 그럼 강연이랑 똑같은 이름을 한 애가 마트에 왔고 다연이가 갑자기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녔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연이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맞장구칠 생각 없으니까 이만 가볼게요."


나는 뒤로 돌아 그대로 입구로 들어갔다. 그 후, 먼 길 쪽으로 경로를 우회했다. 망할 아줌마의 행동 하나하나에 속이 메슥거려 견딜 수 없었다. 마스크가 없었다면 제대로 표정 관리를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누나와 만나자마자 장바구니를 들어 재빨리 집으로 향했다. 망할 아줌마가 보지 못하도록 멀리, 더 멀리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집에 도착한 뒤, 나는 냉장고를 열어 선입불출에 나섰다. 누나는 식탁에 앉아 사둔 빵 봉투를 이리저리 만져댔다.


"강연아 하나만 먹어도 돼?"


"식사 다 하고 먹자. 단 거 먹고 밥 먹으면 물릴 거야."


"힝, 치사해."


누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오늘 저녁 누나가 좋아하는 햄버거 스테이크잖아. 조금만 기다려 줘."


누나는 주방 도마 위에 둔 식재료들을 바라보았다. 그 후, 조심히 빵 봉투를 식탁 구석에 올려두었다.


"감자튀김도 해줘."


나는 말없이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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