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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공서 님의 서재입니다.

자립형 섬마을 헌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마공서
작품등록일 :
2022.03.22 12:02
최근연재일 :
2022.05.09 20:54
연재수 :
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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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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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059

작성
22.04.1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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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글자
12쪽

던전 브레이크 (3)

DUMMY

6년 전, 황학도.


어두운 하늘아래 황학봉 정상이 불에 타기라도 하듯이 온통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난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반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 현상을 넋 놓고 지켜봤다.

어리둥절한 날 위해 동자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천문이 터졌어!”

“에에, 뭐가 터져?”


동자가 뭐라는지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데없이 천문이 터지다니?

그러다 뇌리에 불현듯 떠오르는 연관단어가 있었다.

천문 즉 게이트.

무당할매는 게이트를 천문이라고 불렀다.

그제야 실타래같이 얽혀있던 머릿속이 맑아지며 대번에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시불! 던전 브레이크!”


던전 브레이크는 특정한 이유로 던전 안의 모든 몬스터가 현실세계로 뛰쳐나오는 걸 말한다.

그 순간부터는 공략이 아니다.

숨 막히는 수비만이 남는다.

내가 비록 총 16번의 덧씌움을 할 정도로 던전 안 몬스터를 사냥하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획적이고 순차적인 공략을 한 덕택이다.

함정을 파고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던전 내 몬스터가 일시에 들이닥친다면 나라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몬스터들이 한 번에 몰려나온다고. 그..걸 어떻게 혼자서 막아?”

“케록.”

“카아악!”


내 중얼거림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몬스터들의 귀곡성에 메아리가 되어 파묻혔다.

황학도에 변이체가 아닌 몬스터 군단이 재림하였다.

마치 무저갱 같은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 년 전 그날처럼 나는 스멀스멀 무기력감이 피어올랐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냈지만 이번만은 탈출구가 안보였다.

살다보면 인력으론 도저히 안 되는 막다름이 있다더니 그게 지금 같았다.


“형아, 정신 차려. 호랑이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했어. 멀뚱히 있다가 당할 거야?”


동자의 일깨움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바보같이 뭘 해보기도 전에 자포자기에 침식당할 뻔 했다.

죽어도 싸우다 죽지 나약하게 빌빌대다 죽진 않겠다.


“그래, 동자 네 말이 맞다. 놈들이 내려오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길어야 한식경.”


너무 짧다.

한식경이면 15분이다.

함정을 만든다는 등의 대비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

여긴 사방이 바다로 에워싸인 배 한척 없는 섬이다.

바다라...

어렴풋이 이게 꼭 단점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넘어온 몬스터의 수도 헤아릴 수 있어?”

“대략 천 마리 쯤 되는 것 같아. 그나마 액체괴물은 느려빠져서 한 시진은 걸릴듯하니 칠백 마리쯤 먼저 상대해야해.”


두 시간.

당장 슬라임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가히 일천이란 수는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상상조차 안가는 숫자다.

일당백도 아니고 일당천을 해야 할 상황.

그나마 내 곁에는 동자라는 조력자가 있어 다행인 거지.

동자마저 없었다면 자는 와중에 불시에 습격을 받곤 목숨을 잃었을 거다.

그런데다가 동자는 지금도 신기라는 불가해한 능력으로 날 보조중이다.


“누가 가장 먼저 도착할까?”

“빠르기로 치면 녹색괴수, 도롱뇽괴수, 돼지괴수, 액체괴물의 순으로 당도할거야.”


동자는 몬스터란 말이 입이 붙지 않는지 괴수 또는 괴물이라 불렀다.

녹색괴수는 고블린, 도롱뇽괴수는 리자드맨, 돼지괴수는 히포피그, 액체괴물은 슬라임이다.

그런데 히포피그가 왜 저 무리에 끼워있을까?


“잠깐? 히포피그도 있어? 그놈들 비선공이잖아.”

“천문이 터지면서 괴수들의 이성이 다 흩어진 듯해. 그래서 모두가 더 흉악해졌어.”


원래부터 이성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없던 고블린이니 가장 먼저 튀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나저나 히포피그라니?

풍부한 단백질공급원일 때나 군침을 흘렸지 적으로 마주한다니 살이 다 떨린다.

놈의 덩치는 하마를 능가한다.

그런 녀석에게 제대로 공격당하면 막을 수도 없거니와 깔리기라도 하면 그대로 즉사다.

칼빵도 수십 번을 휘둘러야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덤프트럭.

던전 내에서 놈들을 전멸시켰을 때도 함정을 파서였지 정면대결은 엄두도 못 냈었다.

그런 몬스터를 상대하라니 죽으라는 소리였다.

멸의 기운을 쓴다 해도 기껏 잡아낼 수 있는 히포피그는 20마리 정도가 한계이었다.

가진 무력으론 감당이 안 된다.

무력이 아닌 지력을 믿어야 할 때다.

몬스터에게 그나마 비빌 수 있는 게 인간의 지혜다.


“하나하나 조각을 맞춰보자.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했어. 그런데 하늘도 아니고 기껏해야 게이트가 터진 거뿐이잖아.”


정신을 가다듬고 숙고를 하니 머릿속에서 밑그림이 서서히 그려졌다.

몬스터의 이성이 다 날라 갔다는 점과 황학봉에서 내려오는 시간차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한다.

우선 까다로운 몬스터는 마나를 다를 줄 아는 리자드맨과 덩치 자체가 무기인 히포피그.

고블린과 슬라임은 어떻게든 맞서면 대응이 될 거라 믿어볼 밖에.

하지만 두 개체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놈들이다.

우선 급한 대로 집과 마을 내 가로등을 전부 껐다.

불빛을 보고 몰려드는 걸 늦춰볼 심상이었다.

그렇지만 벌떼 같은 발자국소리가 먼저였다.


“벌써 몰려오는구나. 처음은 고블린이랬지?”


저 멀리 황학산에서 몬스터들의 발소리가 들려온다.

좋아진 청력 때문에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에도 간격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띠를 이룬 몬스터들의 무리.

총 4차례의 몬스터 웨이브만 막아내면 된다.


“응, 근방까지 왔어. 총 4백 마리의 녹색괴수야.”

“힉! 뭐가 그리 많아. 던전 안에 고블린이 그 정도나 있었나? 그새 씨를 깠어.”

“천문이 터진 효과로 배는 늘은 것 같아.”

“염병할 게이트! 아예 죽으라 하는 거네.”

“괜찮아, 방금 생각한 책략대로라면 이겨낼 수 있어. 완전 멍청이는 아니네. 이참에 동자도 형아를 다시 봤어.”

“하하, 고맙다. 똥 멍청이에서 방귀 멍청이 정돈 올라갔나보네.”

“다와가. 인제 뻘소리 그만 하고 준비해.”

“오케이!”


횃불을 들어 올렸다.

내가 여기 있으니 딴 데로 새지 말라는 뜻으로 몬스터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다.

마을 안에서 몬스터와 절대 싸우면 안 된다.

삶의 공간이 파괴되어 길거리에 나앉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던전이라면 초기화라도 되어 복구가 가능하겠지만 현실은 한번 망가지면 그걸로 끝이다.

케악. 케륵.

가장 큰 규모의 울부짖음이 지척까지 다가왔다.

나는 성화봉송이라도 하듯 횃불을 들곤 바닷가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이젠 눈으로도 어마어마한 떼거리가 보일 정도라 지체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눈썹이 휘날리며 백여 미터를 달렸을까.

돌연 내 입에서 다급성이 터졌다.


“앗, 이런!”

“형아! 미쳤어. 왜 다시 돌아가.”


이내 발길을 돌려 달려온 곳으로 황급히 되돌아갔다.

그걸 책망하는 동자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대답 대신 죽어라 뛰었다.

나라고 벌통을 들쑤신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겠나.

미안한 이야기지만 꼬순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제 아무리 목숨이 촌각에 달했어도 꼬순이를 놓고 가다니.

멧돼지를 잡아먹은 고블린인데 닭이라고 안 잡아먹을 리 없잖나.

양계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녀석을 발견하곤 날갯죽지를 감싸 쥐었다.


“꼬꼬!”

“미안해, 꼬순아! 잠시 널 잊고 있었어.”


꼬순이가 내 품에 꼬옥 안겼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녀석도 강했다.

그리고 양계장을 벗어나는 그 순간,

예리한 창날이 내 등 뒤를 노리고 갑작스레 삐져나왔다.

가까스로 앞구르기로 피하며 동시에 작두를 휘둘렀다.


“저리 꺼져!”

“케엑.”


선봉으로 달려왔던 고블린 두 마리의 목이 연달아 베어졌다.

서둘러 앞을 봤다.

그것은 어둠속에서 불타오르는 수백 광망의 시선이었다.

정면으로 마주친 고블린들의 눈빛은 예전과 달랐다.

완전히 흉성에 매몰되어 시퍼런 안광을 흘려댔다.

재차 바닷가로 달렸다.

꽈앙!

담벼락이 허물어지고 부실한 집 몇 채가 무너지는 소리가 곧바로 들렸다.

설마 내가 살던 집이 아니기를 바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앞만 보고 뛰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수백의 족적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이서 따라왔다.

이대로 계속 뛰면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곳은 알다시피 섬이다.

이내 선착장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싶겠지만,

나는 한 점 망설임 없이 깊은 바닷물로 다이빙하였다.

풍덩!


“푸아!”

“케케.”

“케로록.”


이성을 상실한 고블린들은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핏발이 선 몬스터들이 날 쫓아 바다로 너나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오로지 놈들에겐 나라는 먹잇감만이 못박혀있어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첨벙 첨벙.

먼 바다로 헤엄쳐 가는 내내 머리 위에 올라탄 꼬순이가 부리로 정수리를 쪼아댄다.

아프잖아, 물이 무서워도 조금만 참으렴.

이게 다 살자고 하는 짓이야.

얼마나 수영을 했을까, 이쯤이면 됐겠다 싶어 물속에서 뒤돌아섰다.

연신 바닷물을 허겁지겁 들이키고 있는 고블린 떼.


“어서와, 던전 밖은 처음이지. 근데 너희들 수영은 할 줄 아니? 난 황학도 물개인데.”

“케록?”

“꼬록.”


고블린이 수영을 한다는 소린 금시초문이다.

내 물음이 시발점이었는지 수백의 흉폭한 고블린들이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무작정 날 쫓아 바다로 뛰어들긴 했지만 제대로 헤엄을 치는 고블린이 있을 리 만무했다.

줄곧 산속에서 뛰어다니던 놈들이라 바다를 마주한 것도 처음이었다.

물속에서 메고 있던 작두를 오른손에 쥐었다.

발은 물밑에서 계속 자맥질을 해대며 한손으론 작두를 휘둘렀다.

늘어난 신체능력과 뛰어난 수영실력이 아니었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시간이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고블린들을 해치우고 다음 웨이브를 맞이해야한다.

꼬르륵.

화형 다음엔 수장인가.

이 녀석들도 날 만나 고생이다.

불에 타 죽는 게 나을까? 물에 빠져죽는 게 더 괴로울까?

한 놈도 빠짐없이 모두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잠시 후 나는 잠수중인 고블린들을 피해 빙 돌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물에 빠진 놈은 뭐라도 붙잡기 마련이니 조심을 해서 나쁠 게 없다.

숨이 가빠도 쉴 틈이 없었다.

곧바로 또 뛰었다.


“후우! 1차 웨이브는 막았고 다음 2차, 3차가 문제군.”


일단 시급한 문제는 2차 리자드맨과 3차 히포피그였다.

도마뱀과 하마는 딱 봐도 수영을 잘 할 것 같았다.

그러니 바다유인작전은 이쯤에서 그만두었다.

여기에서 나의 옅은 상식이 여실 없이 드러난다.

실제로 도마뱀은 수영할 수 있는 종보다 못하는 종이 더 많다.

게다가 하마는 헤엄을 잘 치는 동물이라 오인들 하지만 의외로 수영을 전혀 못한다.

항상 물가에 있으니 그런 오해가 생겼을 뿐 얕은 물에서 발을 튕기는 게 전부다.

내가 본 해외영상 속 헤엄쳐오는 하마는 수중바닥을 뛰어오는 거였다.

그러니 하마나 도마뱀도 깊은 바다에 빠지면 죽는 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하여튼 이런 착각으로 인하여 난 어려운 길을 택하게 된다.


“도롱뇽은 어때?”

“2백 마리 정도가 곧 도착이야. 꾸물대지마.”

“윽! 쉴 틈이 없구나.”


섬마을로 복귀한 나는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마을 어귀에 퍼부어댔다.

그러기를 수차례 이내 주변이 온통 물바다를 이루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젖은 옷을 서둘러 갈아입고 준비한 신발도 갈아 신었다.

이것으로 2차 웨이브 리자드맨을 상대할 사전준비가 끝났다.

계획한대로만 된다면 좋겠지만 만약 어긋난다면 이 새벽공기가 내가 들이키는 마지막 숨일 것이다.


“아, 공기 좋다. 역시 운동은 새벽운동이지. 너네도 그래서 밤잠 설치고 나왔니?”


마을 어귀로 꾸물꾸물 몰려오는 리자맨들을 향해 너스레를 떨었다.

강렬하고 싸늘한 눈길.

고블린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흉성이 발현되었음에도 이성이 남아있는지 선두가 후미를 기다린다.

게다가 하나같이 저릿저릿한 투기를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물 먹는 하마가 수영을 못한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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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림자 사냥 (2) +3 22.04.30 2,760 93 13쪽
41 그림자 사냥 (1) +2 22.04.29 2,817 9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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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등고자비 (3) +2 22.04.27 2,942 98 15쪽
38 등고자비 (2) +4 22.04.26 2,979 107 13쪽
37 등고자비 (1) +4 22.04.25 3,102 9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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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전 브레이크 (3) +4 22.04.12 3,517 81 12쪽
25 던전 브레이크 (2) +5 22.04.11 3,655 8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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