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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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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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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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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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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비로운 현룡왕

DUMMY

“여기가 외부와 격리되어 있다면 바깥 세계도 존재하는 건가? 그 바깥 세계는 어떤 곳이지?”


나는 셀레스티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실 아까 그녀의 말에서 대충 앞뒤 맥락은 짐작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다.

내 말에 셀레스티아가 웃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 이 세계, 아카디아의 기원이 궁금한 것이더냐? 그렇다면 말해주지. 때는 영겁도 더 전, 내가 아직 알에 있던 시절 아직 세계가 태초의 혼돈이었던 시절 창조주가 스스로 희생해 세계를 창조하였노라. 태초의 혼돈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고, 빛과 어둠에서 여신과 마신이 태어났노라. 여신과 마신은 권속들을 창조해서 세계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신나서 입을 연 셀레스티아는 삼류 양산형 판타지 모바일 게임 인트로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읊기 시작했다.


“······아니 왜 거기서부터 시작하는데. 좀 다른 이야기는······.”


아니.

이런 웅장한 일대기 같은 건 안 들어도 된다고.

미치겠네, 정말.


“아니 된다.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끝까지 들어야지. 그렇게 해서 훗날 신마대전이라 불리운 영원한 전쟁이 시작되었노라. 영원한 전쟁에서 창조주의 첫 번째 자손인 우리 용족들의 파벌도 둘로 나뉘었는데 고대 마룡 월드 이터는 마신의 편에 섰다. 이후 두 신은 전쟁을 위해 필멸자를 창조해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쓸데없는 신화 이야기.

그녀는 말문이 완전히 트인 듯 신나는 표정으로 투 머치 토킹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슬슬 아파 왔다.

나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만.”


초코바를 흔들었다.

셀레스티아의 황금빛 시선이 초코바를 따라 움직였다.


“아직 이야기는 시작도 안 했다. 곧 신마대전에서 이 몸의 활약을 이야기해줄 생각이었다. 마신의 오른팔인 고대 마룡 월드 이터와의 처절한 싸움과 고결한 희생에 대해서 말하려면 앞으로 반나절로도 부족하지. 후후. 그런데 이 몸한테 미리 공물을 바치려는 것이더냐? 후후. 기특한 인간이로고!”


살랑살랑.

그녀의 도마뱀 꼬리가 흔들렸다.

끝없이 이어지던 말지옥이 잠시 중단되었다.


“반나절? 지금 장난해. 짧게 요약. 생략. 아니면 안 줘.”


귀에서 피 나겠네.

내 말을 들은 셀레스티아의 어깨가 살짝 쳐졌다.

그녀의 꼬리가 축 늘어졌다.


“아, 알겠다. 짜, 짧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 후. 좋다. 그렇다면 이 몸의 위대한 활약 이야기는 조금 미루도록 하지. 그렇게 이 몸의 고결한 희생으로 신마대전이 끝나고 필멸자의 시대가 열렸노라.”


입을 열자 다시 생기가 돌아오는 셀레스티아.


“여신과 마신, 불멸자들은 지상을 떠났고 차원의 상흔을 통해 이세계에서 새로운 종족이 흘러들어왔지. 인간이었다. 인간들은 순식간에 대륙을 장악해서 수많은 국가를 세웠다. 오크, 엘프, 드워프 같은 기존 선주종족들은 인간의 진군에 휘말려 숲으로, 사막으로, 늪으로, 산맥으로, 오지로 쫓겨났다. 그렇게 인간들은 나라를 세웠고······.”

“짧게 이야기하라고 했을 텐데.”


아니.

아직도 안 끝났어?


“이, 이게 최대한 요약한 것이다. 들어보아라. 그렇게 해서 대륙 대부분에는 인간의 나라가 있다. 가장 큰 나라는 제국으로 이미 천 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하지. 그 밖에도 수많은 왕국이······.”


그 이후 정보는 꽤 유용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여기는 전형적인 검과 마법의 중세 판타지 세계다.

엘프 드워프 오크 인간 드래곤 등등 다양한 종족이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중세 판타지 세계.

뭐 헌터도 실존하는데 중세 판타지 이세계라고 실존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문제는.


“이 정보는 어디서 입수한 거지?”

“천 오백 년 전 여기 표류한 표류자한테서 들었다.”

“그러니까 천 오백 년 전 정보라는 거네?”

“드래곤 기준으로는 최신 정보지.”

“지금 바깥이 어떤지는 모른다는 거네?”

“당연한 말을 하는군. 이 봉인의 금지는 지켜져야만 한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우쭐해하는 셀레스티아.

1500년 전 정보를 최신 정보라고 한다고?

돌아버리겠군.


“필멸자여. 표정이 왜 그렇지? 약속한 공물은 주는 것이냐?”


그녀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힐끔힐끔 바라봤다.

후.

그래.

저 용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

나는 초코바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재빨리 포장지를 벗겨서 초코바를 먹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두 번째 먹어도 여전히 신화적인 맛이로구나.”


우물.

우물우물.

그녀가 꿀꺽하고 초코바를 삼켰다.


“아쉽구나. 너무나 빨리 없어져 버렸어.”


쭈굴한 표정을 짓는 셀레스티아.

그녀의 꼬리가 다시 늘어졌다.


“두 번째로 질문하지. 여기 나 말고도 표류자가 있었나?”

“금지의 봉인은 매우 강력하지만, 영겁의 세월이 흐르며 빈틈도 상당히 생겼다. 외부에서 표류자가 드물게 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대를 포함해서 총 다섯 표류자가 있었다. 그대 이전 마지막 방문자는 천 오백 년 전에 온 어떤 마녀였다. 이백 년을 넘게 살다가 떠났지. 호수 가운데 집을 짓고 살았다.”


흠.

내가 발견했던 그 집은 내 이전 선배 표류자가 지어놓은 집인 모양이군.


“그 집은 꽤 좋았지. 이 몸도 자주 놀러 갔느니라. 보존 마법을 걸기도 했지. 그대가 침입한 걸 알아차린 것도 그대가 남긴 흔적 때문이었느니라.”


영겁의 세월.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르겠지만, 나 포함 다섯 명밖에 안 온 거면 굉장히 뚫기 어려운 결계였던 모양이다.

나는 초코바 하나를 까서 그녀의 입에 넣어줬다.


“이, 이 몸은 강아지가 아니다! 읍! 읍읍! 맛있군······.”


처음에는 바둥거리다가 이내 얌전히 받아먹는 셀레스티아.

우물우물 꿀꺽 삼키는 셀레스티아.

그녀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마지막 질문을 하지.”

“얼마든지 더 해도 괜찮으니라! 공물만 바친다면 말이다! 나는 자비로운 현룡왕이니까!”


짐짓 진지한 척하는 셀레스티아.

하지만 그녀의 눈길은 내 손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정말 보기 드물게 솔직하군.


“아니. 오늘은 이게 마지막 질문인 걸로 하지.”


솔직히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다.

왜 이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정보 수집도 중요하지만 이러다가는 이야기만 듣다가 시간 다 보내겠다.


“아, 알았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셀레스티아.

나는 태블릿을 꺼내서 조작해 홀로그램을 띄웠다.

셀레스티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 이게 무엇이냐? 처음 보는구나. 마도구처럼 생겼는데 마법의 힘이 느껴지지 않아······. 환상 마법처럼 보이는데 환상의 힘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빛을 조작해서 허공에 환상을 띄우는 방식인가······.”


셀레스티아가 유심히 홀로그램과 태블릿을 보고 있었다.

현대 문물이 신기한 모양이군.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영초가 뭔지 알고 있나?”


내가 띄운 건 불로초의 데이터였다.


“이건······. 용혈초로군.”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고대 마룡의 용혈에는 신비와 정수가 깃들어 있다. 영겁의 세월이 흘러 대지에 흩뿌려진 용혈의 신비와 마룡의 정수가 이 몸의 힘으로 정화된 후에 일점에 모여 영초로 환생했지······. 그게 용혈초다. 흠. 이 문자는 뭐라고 적힌 거지?”

“불로초다.”

“불로초라. 나쁘지 않은 이름이도다.”


나는 그녀에게 들은 데이터를 태블릿을 터치해서 입력했다.


[데이터가 갱신됩니다.]


내가 입력한 데이터가 추가됐다.


“오. 실시간으로 지식이 추가되는구나. 문자를 몰라 읽지는 못하겠지만, 신기하군.”

“······이 불로초는 흔한 물건인가?”

“아니.”


셀레스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대가 가져간 저거 하나뿐이다. 용혈의 정수가 깃든 영초가 흔한 건 아니니라. 아마 다시 피어나려면 최소 오천 년의 세월은 필요하겠지. 하지만 필멸자의 몸으로는 아무리 정화되었다고 해도 마룡의 용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을 텐데······.”


셀레스티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몸이 안 터진 게 더 신기하군. 흠. 이게 인간들이 말하는 ‘용사의 자질’이라는 건가.”


그녀가 턱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연구 대상처럼 보지 마라. 난 이걸 전부 먹지 않았다. 절반만 먹었지.”

“절반······. 그래서 살아 있는 건가?”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놀랄 정도로 안정적이군. 하지만 용혈의 잠재력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고 있어······. 네가 사용하는 용혈의 힘은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나머지는 전부 네 몸 안에 잠들어 있다. 활성화되어있지 않았지.”


스윽.

그녀의 눈동자에서 휘광이 사라졌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게 마법이라는 건가?


“그때 영초 밭에서 영초를 뽑아간 것도 너였군. 인간의 흔적을 보고 짐작은 했지만······.”


셀레스티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튼 일반적인 필멸자가 용혈초, 아니 불로초를 먹고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다. 절반만 먹었다 하더라도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일반적인 필멸자라.

사라도 거기에 해당하는 걸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데이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고대 마룡에 대해서도, 이세계에 대해서도.


‘셀레스티아를 현대로 데려갈 수 있으면 뭔가 진전이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같은 행성, 차원 내부 이동이라면 모를까 이세계를 넘는 게이트에 타인을 동반하기에는 아직 게이트의 용량이 부족했다.


‘능력을 숙달해야겠군.’


목표가 생겼다.

동료를 살려야겠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동료의 죽음을 유예했다.

냉동수면으로 잠든 그녀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

하지만 그녀를 살릴 방법은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체념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은퇴도 그런 도피 수단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불로초를 얻고 셀레스티아를 만난 지금, 다시 실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나는 동료를 깨울 것이다.


“필멸자여. 왜 그러지? 표정이 안 좋은데.”

“아무것도 아니야.”

“흐음. 그런가?”

“아, 그리고 이거 돌려줄게.”


나는 가방에서 오리할콘 샘플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오리할콘이구나. 천사백 년 전 친우한테 선물로 준 물건이지. 없어졌다고 했더니 역시 네가 가지고갔구나.”

“그래? 미안하군.”

“아니. 그대가 사과할 일은 아니다. 주인이 없다고 생각했을 터이니. 다시 돌려줘서 고맙군.”


셀레스티아가 오리할콘을 집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초코바를 건넸다.

부스럭.

그녀가 초코바를 우물우물 씹었다.


“희귀한 물건인가?”

“오리할콘 말인가? 흠. 외부에서는 희귀한 물질이지만 여기서는 흔하다. 내 둥지 근처에 많지.”


우물우물.

초코바를 먹으면서 셀레스티아가 말했다.

기분이 좋은 모양인지 그녀의 꼬리가 흔들렸다.

그녀가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그대를 이 몸의 둥지로 초대하겠느니라. 불청객이긴 하지만 이 몸의 영역을 찾아온 손님이니 대접은 해야겠지. 앞장서겠다.”


그녀가 등을 돌렸다.

나는 그녀를 제지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둥지의 이미지, 사진, 환상, 뭐든 좋으니 정보를 줘.”

“정보?”

“내 능력을 보여주지.”


어차피 여기에 자주 왔다갔다하면 내 능력을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까고 신뢰를 얻는 쪽이 좋다.

어쨌거나 그녀는 내 협력자니까 말이다.


“좋다.”


그녀가 주문을 읊자 마법진과 함께 영상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비슷한 영상 안에는 거대한 산 중턱에 있는 동굴이 보였다.

나는 그 이미지를 바라보며 능력을 사용했다.


“게이트.”


지잉.

그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둥지로 향하는 게이트였다.

자 이제 오리할콘 보러 좀 갈까?


“이, 인간이 공간이동을?!”


그리고 드래곤도 놀랐다.

아니.

공간이동 쓰는 인간 처음 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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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비로운 현룡왕 +2 24.09.18 446 19 12쪽
9 초코바 +7 24.09.17 594 2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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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12 24.09.12 1,669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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