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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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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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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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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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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초코바

DUMMY

‘윽.’


게이트와 현실을 왔다갔다한지 30년이 지났다.

하지만 게이트를 넘는 감각은 여전히 좋지 않다.

구토가 나올 것 같군.

나는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헌터 장비는 여전히 멀쩡하게 동작하는군.’


바이저에 여러 정보들이 떠올랐다.

게이트가 사그라들었다.

두 번째 게이트라 그런지 심상이 명확해져서 그렇게 마력 소모가 크지는 않았다.

능력에 익숙해져서 그런 걸수도 있다.

나는 포션 뚜껑을 따서 마셨다.


‘흠. 여전히 맛없군.’


한약보다 더 쓰다.

포션 맛 개선은 아직인가.

마력이 천천히 차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기감을 넓게 퍼뜨렸다.

마력도 자꾸 사용해야 는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기감도 마력 테크닉도 연습해야 했다.

그렇게 기감을 퍼뜨리던 그때.

기감의 끝자락에 무언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건 생명체의 반응이었다.

생명체의 기척이라고?

나는 한 손에는 검을, 다른 손에 헌터용 권총을 들었다.


‘기감으로 짐작한 생명체와 나와의 거리 차이는 50미터 정도인가?’


쐐애애애애애액!

저 멀리 파공성이 들려왔다.

기감으로 느껴지는 기척이 점점 커져갔다.

그건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재앙급 보스 몬스터와도 유사한 존재감. 하늘에 그림자가 떠올랐다.

이제 기감이 아니라 육안으로 상대가 보였다.

금발 미소녀였다. 투명한 피부, 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의 머리에는 인간이 아닌 걸 증명하듯 한 쌍의 뿔이 있었다.

등에는 피막이 달린 날개가 있었다. 박쥐?

아니 박쥐 날개가 아니다.

용종의 날개에 가깝다.

용종이라고?


‘이세계인이로군.’


그녀의 존재가 무엇이건.

그녀가 이세계인인 건 틀림없다.

이세계의 지성체와 만나다니.

드디어 제3종 근접조우를 경험한 것이다.

탁.

그녀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바닥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올랐다.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이라고?’


마법.

초능력과 상태창이 존재하는 헌터물 세계에도 마법은 없다.

게이트 너머에서도 마법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몬스터들도 이능을 가지고 있는 거지 마법을 쓰지는 않는다.

아니 게이트 너머에서 지성체의 존재는 없었다.

흔적이 발견되기는 했다.

멸망한 외계 문명의 흔적이나 유산 같은 것들 말이다. 헌터계에서는 그런 물건들을 아티팩트라고 불렀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대가 일전에 다녀간 이방인이로군.”


말로 말할 때는 알 수 없는 언어였지만, 머릿속으로 직접 의미가 전달됐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세계의 언어 따위는 몰랐다.


“······.”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침묵했다.

바디랭귀지를 할까 했지만 그만뒀다.


“······이곳은 이 몸의 영역이다.”


얘는 대체 누구야?


“태고부터 지금까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 봉인의 금지지······.”


무언가 봉인되었다는 건가?


“······그런데 어떻게 온 거지? 외부에서 금지의 결계를 뚫을 수 있을 리 없거늘.”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녀의 몸에서 황금빛 마력이 피어올랐다.

나는 팔짱을 꼈다.


“······왜 대답이 없지? 인간이여······.”

“······.”


흠.

어떤 메커니즘으로 내 머릿속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건지 모르겠다.

비슷한 초능력이라면 알고 있다.

텔레파시 능력이다.

하지만 텔레파시 능력도 원래는 일방향밖에 안 된다.

쌍방향 텔레파시, 쉽게 말해서 단톡방을 만드는 능력은 아주 드물다.

염제 류사라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는 최고위 테크닉이다.

게다가.


‘이건 초능력이 아니야.’


아마도······.

말도 안 되지만 마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아까 마법진도 그렇고.

게다가 나는 아직 행동방침을 정하지 않았다.

제3종 근접조우는 예상했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언제건 출수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켜놓은 채로 나는 금발 소녀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마주한 금발 소녀의 뺨이 살짝 상기됐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

“혹시 통역이 안 될까 염려하는 것이냐? 걱정 마라. 네가 어떤 언어를 쓰건 내 통역 마법이 전부 통역해줄 테니.”

“······.”

“여긴 정말 위험한 장소다. 떠나는 것이 좋을 터다. 지성체를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지만······. 가엾은 필멸자가 목숨을 버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구나. 더더욱······.”


점점 표정이 불안해지는 금발 소녀.

음.

아까 그런 건 허세였던 건가.


“······.”

“아까 강하게 나가서 그런 것이냐. 그, 그건 미안하구나······. 그, 그렇게 해야 나갈 거라고 생각해서······.”


우물쭈물하면서 시선을 피하며 말하는 금발 소녀.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정말 통역이 되는 건가?”


내 말을 들은 금발 소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말했다.


“이건 대륙에 없는 언어로구나. 그 어떤 언어 계통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언어야. 그때의 흔적도 그렇고 복장도 그렇고 너는 역시 이세계에서 온 인간인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는 금발 소녀.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말에 머리가 과부하가 걸리는 기분이다.

아니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처음에 근엄한 척했으면서.


“어 맞아. 그러니까 질문은 나부터 하면 안 될까? 너는 누구지?”

“이 몸 말인가? 물었다면 대답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나는 고귀한 드래곤 일족을 이끄는 여섯 로드의 일좌를 차지했던 위대하고 현명한 골드 드래곤 로드. 현룡왕 셀레스티아다.”


현룡왕?

현명한 드래곤의 왕이라는 뜻인가.

전혀 현명해 보이지 않는데······.


“인간이 아니었군. 여기는 어디지? 이세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물론 각성자도 계열에 따라서 능력 개화 때문에 신체에 영구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뿔이 달리거나 키가 커지는 등의 변화가 가능하지만, 눈앞의 금발 소녀, 셀레스티아는 명백히 이질적이었으니까.

지구였다면 또 미친 컨셉충인가 하고 의심했겠지만, 여기는 이세계.

그녀의 말을 일단은 믿는 쪽이 좋겠지.


“······타락한 검은 별이 추락한 곳······. 태곳적에 고대 마룡 월드 이터를 봉인한 장소지. 외부와 결계로 격리되어 있다. 이 몸은 고대 마룡의 봉인을 지키는 수호룡이니라.”


엣헴.

그녀가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흠······.


“봉인지라고? 그렇다기에는······.”

“이 몸도 천 년 만에 그대의 침입 때문에 일어나서 잘은 모르겠지만······. 추측은 해볼 수 있다. 고대 마룡 월드 이터는 이미 죽었다. 하지만 놈의 사체에는 막대한 사기와 마기가 있었다.”


천 년 만에 일어났다고?


“신화시대를 끝낸 신마대전 당시 이 몸은 스스로의 힘을 희생해서 월드 이터의 사체를 세계에서 격리하고 정화를 시작했다. 아주 고결한 희생이었지. 꼴을 보아하니 제법 정화되어서 고대 마룡 시체의 양분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생태계가 구성된 것 같군······. 하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근본적으로 고대 마룡의 시체가 있기 때문이지. 필멸자가 올 장소가 아니니라.”


장황하면서도 신난 표정으로 설명하는 셀레스티아.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녀의 장황한 설명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흠. 그러니까 여기 재앙급 몬스터 시체가 봉인됐는데, 시간이 지나서 네 힘으로 마기를 양분으로 정화해서 이렇게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여기는 외부와 격리된 아공간이다?”

“맞췄다. 제법 똑똑하군. 이세계인이여. 상을 주겠다.”


부스럭.

그녀가 내게 품 안에서 무언가 꺼냈다.

그건.


“감초 사탕이다. 두 개밖에 남지 않은 물건을 주는 것이니 감사히 여기도록.”


사탕이었다.

거무튀튀한 사탕.

흠.

여기서는 먹어서 호의를 사는 쪽이 좋겠지.

저쪽이 적의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비상 해독제까지 챙겨왔으니까.

나는 바이저를 열어서 사탕을 먹었다.


‘윽?!’


다행히 독은 없었다.

그 맛은 끔찍했다.

단맛보다는 짠맛이 더 강했다. 게다가 올라오는 이 구리구리한 암모니아 향은 또 뭐지?

이런걸 사탕이라고 먹는 건가? 이세계에서는?

나는 간신히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사탕을 넘겼다.

마력 포션보다 맛없기가 쉽지 않은데.

이세계인들의 미각은 죄다 고장 난 건가?

부스럭.

맞은편에서 셀레스티아가 사탕을 먹었다.

그녀의 뺨이 살짝 떨렸다.


“흐, 흐음. 벼, 별미로구나.”


누가 봐도 맛없는 걸 맛있다고 억지로 포장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왜 본인도 맛없는 걸 먹고 있지?

드래곤 미각은 정상인 모양.

나는 가방을 뒤졌다.

여기 어디 있을 텐데.

맛없는 칼로리 바 말고 내가 먹으려고 챙겨둔 초코바가.

여기 있네.

나는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답례하지.”

“이건 무엇이냐?”


셀레스티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귀여운 얼굴로 저렇게 뜨니까 쓸데없이 귀엽다.

후.

이세계에 와서 현대 문물을 전파한다면 이 대사가 국룰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목청을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아아 이건 ‘초코바’라는 거다.”

“초코바?”


부스럭.

나는 초코바 포장을 벗겨서 그대로 그녀의 입에 물렸다.

마치 칼로리 바를 동료들에게 물린 것처럼.

아.

옛날 생각난다.

옛날에 게이트 공략할 때 이렇게 사라랑 김선혁이에게 칼로리 바를 물리고는 했다.

가끔 초코바를 숨겨서 게이트에 밀반입해서 나눠 먹을 때가 있었고.

흠.

그때가 좋기는 했지만, 그 고생을 다시 하라면 사양이었다.


“읍?! 읍읍?!”


초코바를 밀어 넣자 당황하는 셀레스티아.

나는 내 몫의 초코바를 까서 입 안에 넣었다.

달콤한 초코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음.

이 맛이야.

역시 칼로리는 맛의 전투력이다.

우물우물.

초코바를 씹는 셀레스티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 맛있구나! 인간!”


그야.

석박사들이 머리 맞대고 오로지 맛만 목적으로 개발한 제품인데 맛이 없으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역시 위대한 현대 식품공학답다.


“이, 이런 건 처음 먹어보는구나······. 살면서 먹은 간식 중 제일······. 맛있었다.”


얼굴을 붉히면서 웃는 셀레스티아.

그렇게 맛있었나?

효과가 너무 좋은데.

아주 눈동자가 전부 풀려 있었다.

뭐 말하는 꼴 보면 문명이랑 단절돼서 최소 몇천 년동안 여기서 산 거 같으니.

그렇게 야생 드래곤으로 살다가 자극적인 현대 식품을 먹으면 저렇게 뇌가 녹아버린 것 같은 표정을 나라도 지을 것 같기는 했다.


“호, 혹시······.”


그녀가 손가락을 꼼지락대면서 내게 말했다.

우물쭈물하면서 입술을 씹어대는 셀레스티아.

안 봐도 뻔하다.


“더 있냐고? 물론 더 있지.”


나는 배낭에서 초코바 세 개를 꺼내 보였다. 내 손에 들린 초코바를 보는 셀레스티아의 금빛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묻고 싶은 게 몇 개 있는데 질문에 대답하면 상으로 주지.”


원래 인생은 등가교환이다.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는 것이다.


“영겁의 세월 만에 다시 만난 필멸자한테 자비를 베풀어도 괜찮겠지. 좋아. 물어보거라.”


셀레스티아가 짐짓 진지한 척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도마뱀 꼬리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강아지처럼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군.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나는 셀레스티아를 바라보면서 첫 번째 질문을 건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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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코바 +7 24.09.17 595 22 11쪽
8 미지와의 조우 +4 24.09.16 682 23 12쪽
7 뭐가 이렇게 많아? +2 24.09.15 819 25 12쪽
6 제자 +2 24.09.14 901 2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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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세계 +3 24.09.12 1,246 32 13쪽
2 30년 +5 24.09.12 1,381 3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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