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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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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작품등록일 :
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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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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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세계

DUMMY

헌터 워치.

첨단 마력 공학의 결정체로 최신 헌터 장비이다.

가격은 당연히 개인이 사는 게 불가능할 정도.

고위 헌터가 아니면 대부분 길드 장비를 대여하는 형식으로 사용한다.

헌터가 대부분 길드에 소속된 이유이다.

하지만 나는 은퇴하는 날 슬쩍 가져왔다.

왜냐면 헌터 장비 아이디어는 내가 대부분 다 제안했는데, 하나 정도는 가져와도 괜찮잖아?

안 그래도 비각성자라 서러운데 이런 템빨이라도 있어야 유사시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헌터물 세계는 위험하다.

시도때도 없이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나타난다.

적어도 탱크 정도는 차고에 있어야 내 안전을 지킬 수 있다.


딸깍.


나는 헌터 워치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헌터 워치에서 섬광이 피어올랐다.

착, 착착.

마력 섬광과 함께 몸에 슈트가 입혀졌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바이저가 씌워졌다.

AR 분석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바이저였다.

물론 내 아이디어로 이거도 개발된 물건이다.


“이브.”

[알 수 없는 오류로 AI 이브가 응답 불능 상태입니다.]


딱딱한 음성 메시지가 귓가에 들려왔다.

헌팅 보조 AI가 다운됐다고?

뭐.

AI 같은 최신 문물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내 헌터 경력이 30년이다. 30년.


‘나 때는 말이야 이런 장비 없이 그냥 맨몸에 소총 한 자루 가지고 싸웠다고.’


그러니 AI 같은 건 없어도 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방에서 마력 라이플과 진동검, 그리고 마체테를 꺼냈다.

둘다 내가 애용하던 장비였다.

드론은 안 챙겨왔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불출 규정 꺼져. 내가 지금까지 해준 게 얼만데.’


사실 원래 민간인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규정도 내가 만들었다.

아 안전하게 살려면 차고에 탱크 한 대 정도는 있어야 한다니까?

헌터 장비 정도는 뭐.


‘이 맛에 다들 비리를 저지르는거군.’


아주 만족스럽다.


‘낯선 장소에서 낙오는 이제 익숙해.’


던전 공략 경력이 30년이다.

적대적 장소에서의 생존도 낙오도 이골이 났다.

라이플을 등에 메고 진동검을 허리춤에 찬 나는 마체테를 들어서 근처 나무에 표식을 남기고 맵핑 기능을 켰다.


[맵핑을 시작합니다.]


음성 메시지와 함께 시야 한쪽 구석에 맵이 떠올랐다.

증강현실 맵핑 기능이었다.


‘시간은 밤. 식생은······. 온대림에 가깝군.’


던전 내부의 환경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동굴 안일 수도, 황량한 계곡일 수도, 황무지일 수도, 숲일 수도, 해변가일 수도 있다.

심지어 던전에서는 현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 설원에서 한 발짝만 가도 습도 높고 푹푹 찌는 열대우림 지형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던전이다.

그야말로 괴이막측하다.

그래서 헌터 장비는 어떤 환경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신뢰성 높게 제작된다.

그러니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흔적은 없고.’


당연하지만 인간의 흔적은 없다.

이세계에 반드시 인간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던전에서 지금까지 지성체가 등장했다는 보고는 없었다.

거기에는 인류에 대한 적의만 가득한 몬스터밖에 없었다.

나는 다른 흔적을 찾았다.

AI가 없어서 흔적 자동 분석은 할 수 없지만, 상관없다.

30년 짬을 뒤로 먹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동물 흔적뿐이군······. 지구랑 비슷한 동물이 사는 건가?’


토끼의 흔적은 물론 고양잇과 맹수의 흔적이 보였다.

몬스터 흔적은 아직은 없었다.

보통 이 정도 규모 던전이라면 몬스터 흔적이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다.

그게 족적이건 아니면 나무나 바위 따위에 분비물이나 발톱으로 영역 표시한 흔적이건 말이다.


‘몬스터가 없나?’


지구도 대격변 이전까지는 평범한 세계였으니 없는 게 더 맞기는 했다.

어느새 비일상이 일상화되고 말았군.

역시 헌터물 세계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유사 현대 같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맵은 자동으로 갱신되고 있었지만, 버릇처럼 마체테를 손에 들고 일정 구간마다 나무에 표시를 남기고 나아갔다.

나는 기감을 곤두세웠다.


‘기감이라는 거 편리하군.’


기감.

마력을 주변에 흩뿌려서 기척을 감지하는 일종의 레이더 같은 감지 기술이다.

각성자라면 당연히 익혀야 하는 기초적인 테크닉이다.

숙련된 각성자라면 기감을 넓게 펼쳐서 웬만한 드론보다 더 넓은 감지 범위를 자랑했다.

요즘은 탐지 장비가 워낙 발달해서 괜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시 레이더를 달고 다니는 각성자들의 기감은 편리했다.

나는 비각성자지만, 마력 컨트롤에 대해서는 이론적인 부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내가 헌터계에서 구른 세월은 3년의 10배인 30년이다.

제자를 가르치고 아카데미에서 가끔 교관 노릇 좀 하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다.

내 제자 둘 다 각성자니까 말이다.


‘이 좋은 걸 자기들끼리 다 하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게 비각성자로 구르던 30년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린다.

각성자들이 마력으로 사기 치는 동안 나 같은 비각성자 땅개는 그 발끝이라도 쫓아가려고 온갖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몸을 비틀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 마력 딸깍으로 해결하다니.

지난 30년이 내다버린 30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여전히 몬스터는 없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숲을 거쳤다.

그러다 발견했다.


‘사과?’


그건 사과나무였다.

색이 노란 사과. 마력을 품고 있었다.

나무에는 노란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사과 하나를 조심스럽게 따서 배낭에 넣었다.

혹시 독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니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이런 건.

그리고 그 끝에 나는 마침내 도착했다.


‘수평선?’


그건 수평선이었다.

투명한 물이 찰랑이는 반짝이는 수면이 눈앞에 나타났다.

수평선 너머에는 드문드문 나무가 보였다.

숲이었다.

거대한 호수였다.


‘호수로군. 냄새로 보니 함수호가 아닌 담수호야.’


함수.

소금물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담수호였다.

나는 배낭을 열어서 막대기 같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헌터용 라이프 스트로우.

휴대용 정수 빨대였다. 이것도 내 아이디어로 개발된 물건이다.

던전에 입장하면 추가 보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정된 자원이 다 떨어지면 던전 내부 자원을 이용해야 했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그때를 대비해서 개발된 장비였다.

일반 라이프 스트로우와는 달리 던전의 극한 환경을 고려한, 어떤 오수라도 정수해서 먹을 만한 물로 만들어주는 장비였다.

더불어 식수용 물을 판별해주는 기능도 있었다.

필터를 갈아 끼우면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제품이었다.


‘나를 위해 개발한 물건이지. 헌터 협회 연구소 공학자들을 굴려서 비각성자를 위해.’


이 정도는 해도 된다.

난 협회 고문이니까.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겉보기에는 맑은 물처럼 보이지만 세균이나 기생충이 있을지도 모른다.

던전 공략 초기에 맑은 샘물 퍼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죽을 뻔한 걸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배탈만 나면 다행이지.

기생충 때문에 끔찍하게 죽는 헌터들도 많았다.

라이프 스트로우는 수많은 헌터를 살린 생존 장비였다.

나는 라이프 스트로우를 입에 문 뒤 수면에 대고 물을 빨아들였다.

쭈욱.

시원한 물이 입 안으로 들어왔다.

깜빡, 깜빡.

라이프 스트로우에서 푸른 LED 다이오드가 점멸했다.

오염된 물이 아닌, 먹을 수 있는 물이라는 뜻이었다.


‘일단은 식용 가능한 물인 모양이군, 그런데 왜 이리 시원해.’


물이 이렇게 맛있어도 돼나?

그냥 물일 뿐인데 식도부터 위까지 느껴지는 청량감의 수준이 말도 안 된다.

아까 바닥까지 내려갔던 활력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마력이 조금 회복됐는데?’


포션도 아니고 물만 마셨는데 마력이 회복된다고? 마력수라는 게 있긴 하지만, 마시기만 해도 마력이 회복될 정도로 진한 마력수는 없었다.

지구에서는 보고된 적 없는 현상이었다.

무슨 무안단물인가?

나는 호수 물을 표본으로 채집했다.

그 와중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이 띠었다.

확실히 젊어진 얼굴.

아직 적응이 안 된다.

내가 회춘을 하다니.

믿기질 않는군.

그리고 허리를 펴서 수평선 너머를 노려봤다.


[확대 기능을 사용합니다.]


음성 메시지와 함께 줌 기능이 실현됐다.

계속해서 확대를 이어가자 호수 건너편이 선명하게 보였다.

호수 건너편에도 나무, 나무, 나무밖에 없었······.


‘잠깐.’


호수 건너편이 아닌 호수 한가운데 섬에 주택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저택과 오두막의 중간 정도 크기였다.

지구의 양식, 정확히는 옛날 중세 유럽에서나 볼 법한 양식의 저택이었다.

인공물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세계에도 문명이 있고 지성체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줌 기능을 해제했다.

호수는 넓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다.

이 상황에서 배를 만들어 호수 한가운데 섬으로 갈 수는 없다.

헤엄치는 건 불가능은 아니다.

하지만.


‘게이트 능력을 시험해봐야겠군.’


내게는 게이트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수영을 해야 할까?

나는 아까 본 광경을 상상하면서 손을 뻗었다.


“게이트.”


능력을 사용하자 포탈이 생성됐다.

타원형으로 반짝이는 빛덩어리 너머 아까 보인 저택 입구가 보였다.

마력이 상당히 빠져나가기는 했지만, 처음 능력을 사용했을 때처럼 기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회춘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같은 차원 안의 이동이라서 그런 건지, 이미지를 명확히 떠올려서 그런 건지.’


아니.

셋 다 작용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처음 능력을 사용했을 때는 막연하게 떠올렸지만, 이번에는 꽤 구체적으로 심상을 떠올렸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게이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번쩍.

섬광과 함께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푸쉬식.

게이트가 사라졌다.

눈앞에는 저택이 있었다.

나는 호수 가운데 섬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저택이라.”


나는 헌터 바이저를 통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찍은 사진이 가방 속에 연동된 스마트폰으로 자동 전송된다.

나는 기감을 뻗었다.


‘흠. 특별한 장치 같은 건 감지되지 않는군.’


그냥 집이었다.

함정 같은 건 없었다.

대체 이런 집이 왜 있는 거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폐가가 되는데, 폐가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관리하고 있다는 뜻인데.


‘일단 탐색부터 해야겠군.’


제3종 근접조우를 기대하면서 나는 문을 두드렸다.

똑똑.

안쪽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문을 슬쩍 밀자 그대로 열렸다.

화르륵.

그와 함께 벽에 불이 타올랐다.

바닥에는 푹신한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탁자도 보였다. 탁자를 스윽 만졌다.


‘먼지가 없잖아?’


방금까지 사람이 살았던 것처럼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집안.

나는 그대로 바이저를 통해 사진을 전부 찍었다.

주택은 2층이었다.

중세 수준의 가재도구와 가구가 있었다.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딱 하나.


‘이건 뭐지?’


생전 처음 보는 황금빛의 금속을 빼면 말이다.

나는 금속에 마력을 흘려 넣었다.


‘전도율이 말도 안 되는군······. 레어메탈 그 이상이야.’


헌터 장비는 대부분 게이트 너머에서 발견된 신종 금속.

레어메탈로 만든다.

레어메탈이 마력 전도율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체불명의 황금 금속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진짜 금이나 다른 금속은 아니다.

완전히 처음보는, 헌터계에 처음 보고되는 물질이다.


‘아까 그 호수 물도 이 금속도 지구에 보고된다면 헌터계가 난리가 날 정도의 대발견이야.’


물만 마셔도 마력이 회복된다? 레어메탈을 넘는 마력 전도율 소재?

하나만 보고되도 지구가 뒤집힐 텐데 그게 둘이다.

미친 수준이다.

나는 이 황금 금속을 배낭에 챙겼다.

그리고 결심했다.


‘기초 탐사는 이 정도로 하고, 본격적인 탐사는 다음번으로 미뤄야겠어.’


기초 장비는 있지만, 드론 같은 본격적인 정찰 장비는 챙겨오지 못했다.

제대로 탐사하기 위해서는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했다.

이제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다시 올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나는 눈을 감았다.


‘돌아갈 시간이군.’


이번 능력 사용 경험으로 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게이트 능력은 사기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게 모호하고 애매할수록 터무니없는 마력을 잡아먹고 목적지도 터무니없는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반대로 구체적이고 확실한 장소일수록 마력 소모값은 줄어들 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력을 보충할 수단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 장소는 하나뿐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장소의 이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말했다.


“게이트.”


번쩍.

그리고 섬광이 반짝이며 내 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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