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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님의 서재입니다.

반로환동한 헌터는 귀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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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작품등록일 :
2024.09.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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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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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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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0년

DUMMY

30년.

그래.

이 염병할 양산형 헌터물 웹소설 세계에서 무려 30년을 굴렀다.

그것도 비각성자 헌터로.

그렇게 전장에서 구른 대가로 나는 두 번의 대수술과 수많은 자잘한 수술을 받았다. 다리에 철심이 박혀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 장비와 포션으로도 비각성자의 한계는 넘을 수 없었다.

현장에서 구르면서 얼마나 각성을 바랐는지 몰랐다.

각성자 헌터들이 가진 능력.

그것만 있었어도 내 몸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든 걸 끝낸 지금 각성했다고?

시골 창고에 선 나는 상태창을 바라보면서 멍때렸다.


‘이걸 신고해야하나?’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신고였다.

각성자 신고는 의무다.

모든 각성자는 협회에 신고하고 원하면 헌터 시험을 거쳐 헌터로 활동할 수 있다.

각성만 해도 평생 먹고살 수 있다.

여긴 헌터물 세계니까.

각성이 곧 로또인 셈이다. 하지만 그건 범부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

나에게는 각성은 로또도 행운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왜? 신고를?’


신고해봤자 귀찮은 일만 잔뜩 생길 게 분명했다.

은퇴는 확실히 또 불가능해질 것이다.

세종 시절 구른 황희 정승처럼 은퇴를 계속 번복해서 죽을 때까지 현장에서 구를 게 분명했다.

각성자니까 이제 현역 뛰어도 되겠네요 같은 기적의 논리로 말이다.

내가 환갑, 아니 칠순이나 팔순이 되어서까지 몬스터와 드잡이질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

그런 건 딱 사양이다.

내가 뭘 위해 지금까지 버텼는데.

내가 이 세상을 위해 해준 게 얼마인데!

이제 와서 또 봉사하라고? 이 나이에? 그런 건 딱 질색이다.

씨발 난 은퇴했다고!

어르신 학대는 이제 그만.


‘일단 숨긴다. 나중에 선혁이한테만 몰래 알려줘야겠군.’


그래.

그러자.

일단 숨기자.

결정을 내린 나는 시선을 아래로 내려 상태창 정보를 확인했다.

일단 각성했으니 내게도 고유 능력이 주어졌을 것이다.


‘자, 어떤 능력이냐.’


고유 특성 칸을 확인한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고유 특성]

[게이트]

[공간을 잇는 게이트를 생성합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 가능합니다.]


게이트라고?

능력 설명은 모호했다.

원래 모호하고 애매한 능력이 강력한 법.

공간이동 계열 각성자는 몇명 있었다.

하지만 장거리 텔레포트 능력자는 없었다.

특히 게이트 같은 걸 여는 능력자는 지금까지 단 한명도 보고된 바 없었다.

내가 최초다.

원래라면 뛸 듯 기뻐해야 맞다. 헌터물 웹소설에서 네크로맨서만큼 메이저한 주인공 능력이 공간 능력이니까.

나는 드디어 ‘헌터물 주인공급’ 능력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이 나이에.

모두 다 끝나고.

시발 할거면 30년 전에 좀 해주지.

나는 상태창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게이트라, 내가 원하는 장소를 떠올리면 거기까지 통하는 게이트를 뚫어주는 건가?’


나는 손을 뻗었다.

내가 원하는 장소.

그런 건 하나뿐이다.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느긋하게 쉬면서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그런 안전한 곳으로.’


나는 그렇게 바라면서 게이트 스킬을 사용했다.

파앗!

몸에서 마력이 쭈욱 빨려나갔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눈앞에 타원형 게이트가 떠올랐다. 게이트에서 발생한 인력이 나를 잡아당겼다.


‘으윽!?’


마력이 빠져나가 일시적으로 무력감을 느낀 나는 그대로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


게이트의 경계선을 넘는 익숙한 감각.

그 끝에 나는 그 너머에 도착했다.


“윽!”


속이 울렁거렸다. 욕지기가 나왔다. 금방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구토감을 간신히 참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숲.

온통 숲이었다.

각성한 나였기에 깨달을 수 있었다. 숲은 마력을 머금고 있었다.


‘던전인가?’


비틀.

몸이 휘청였다. 현기증이 치밀어 올랐다. 마력을 한계까지 쥐어짠 헌터가 흔히 겪는 증상.

마력 탈력증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마력 탈력증이 아니었다.

마력이 한 방울도 안 남은 것도 모자라 생명력까지 끌어 쓴 건지 온몸의 기력이 전부 빠진 상태였다.

대체 그 게이트라는 고유 능력이 얼마나 마력을 돼지 같이 처먹은 건지.


“윽.”


나는 이를 악물었다.

바닥까지 마력이 떨어진 상황에 생명력까지 소모한 상황이다.

이 상태를 계속 방치하면 위험하다.


“쿨럭!”


기침이 나왔다. 피도 함께 나왔다. 정말 생명력까지 소모한 건가.

포션, 포션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각성자인 내가 마력 포션을 들고 다닐 리 만무했다. 힐링 포션은 은퇴한다고 놓고 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주마등처럼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겪은 일들이 떠올랐다.

지인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김선혁.

이 새끼 공대장님 공대장님 하는 거에 낚여서 대체 얼마나 노예처럼 헌신한 건지.

그리고 내 첫 제자.

길드장으로 독립해서 자기 그룹을 먹느니 어쩌니 하는데 잘 됐으면 좋겠다. 우리 둘째 제자는 고아라서 내가 아빠 노릇도 해줘야 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라.

15년 전 나 대신 희생했던 내 동료.

그녀의 몫까지 살아야 했다.

살아서 그녀를 구해야 했다.

주마등을 보던 나는 힘을 쥐어짜냈다.


‘이렇게 죽는다고? 은퇴 첫날 각성해서 어딘지 모를 숲속에서?’


억울해서라도 이렇게 죽을 수 없다.

은퇴 이후 플렉스만 남았는데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지?

나는 기감을 뻗쳤다.

그때.

내 기감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압도적인 마력을 품고 있는 무언가였다. 고개를 처들었다.

저 멀리 풀숲 언덕 위에 약초가 있었다.

마력을 품은 약초였다

약초의 이파리가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절벽 위의 꽃처럼.

마력 탈력증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서 그런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영초인가?’


영초.

마력을 품고 있는 약초를 가리키는 말이다.

마력 탈력증에 빠진 내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다.


‘마침 영초가 있다니 저거라도 씹어먹는다면.’


포션의 재료기도 했다. 보통 영초는 정제해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게 정제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러니 생식해야 했다.

나는 떨리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풀숲 언덕 위로 올라가 약초를 뽑아 올렸다.

그리고 반쯤 입 안에 넣었다.

미끄덩.

약초는 목울대를 타고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큭! 컥!”


머리에 고열이 올랐다. 약초가 품었던 마력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불덩이로 만들었다. 나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아, 안······.”


마력이 차오르는 것과 동시에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풀썩.

나는 그대로 풀숲에 엎어져 정신을 잃었다.


*


“으으······.”


머리가 아팠다.

정신이 서서히 되돌아왔다. 눈을 뜨면서 나는 지금까지 있던 일을 정리했다.

능력을 각성했고 공간을 이동했고 영초를 먹고 쓰러졌다.

숲속에서.

완벽한 정리였다.

나는 눈을 떴다.

고통은 이미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몸이 가벼웠다.


‘그런데 왜 이리 몸이 가볍지?’


각성 때문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손등에 주름이 없어? 손바닥에 굳은살도?”


나는 눈을 크게 떴다.

30년.

30년을 구르며 얻은 영광의 상흔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지금 내 손은 50대 장년의 손이 아닌 20대 청년의 손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비만 오면 쑤시던 무릎과 주기적으로 아픈 허리도 점검했다.


“안 아프잖아?”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통증은 전부 사라져 있었다. 허리 디스크도 무릎 관절도 마치 20대 청년의 그것처럼 멀쩡해졌다.

아무리 각성하면 신체능력이 좋아진다지만, 이 정도로 극적으로 상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나는 주섬주섬 배낭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비췄다.


“······으악!”


그리고 손거울을 떨궜다.

거울 안에는 오랜만에 보는 젊은 날의 내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늙어버린 50대의 빙의자가 아닌 20대의 혈기 왕성했던 전성기의 내 모습이 말이다.

그래.

회귀 후 코인 딸깍 재벌을 꿈꾸던 젊은 날의 내가 거기 있었다.

희끗하게 자라기 시작한 흰머리도 전부 검어졌다.

내가 놀라자 거울 안의 나도 놀랐다.

나는 거울을 다시 들어서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내가 젊어진 건가?’


네 글자로 반로환동.

두 글자로 회춘.

말도 안 되는 기적이 내게 일어난 것이다.

각성자도 늙는다.

각성자들의 노화가 일반인보다는 느리게 진행되기는 하지만, 그들조차 노화를 피할 수는 없다.

헌터와 게이트가 실존하는 이 세계에서도 반로환동은 무협 소설에서나 나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나는 노화가 느리게 진행된 것도, 멈춘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세월을 역행해버렸다.


‘말도 안 되지만, 젊어졌어.’


나는 현실을 빠르게 인정했다.

젊어졌다.

활력이 넘쳤다. 온몸에.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잠깐.

달이 두 개라고?


“설마.”


던전의 하늘은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이다.

지구의 달은 당연히 하나다.

두 개의 달이 뜬 여기는.


‘반로환동 다음은 이세계냐?’


어딘지 모를, 지구가 아닌 이세계였다.

나는 그제야 내가 게이트 한번 열고 마력 전부 소모도 모자라서 생명력까지 빠져나간 이유를 깨달았다.

차원을 넘는 게이트를 열었으니 마력이 다 빨릴 수밖에 없지.

마력도 전부 차올랐다. 나는 기감을 뻗쳤다. 주변에 위험 개체는 없었다. 몬스터 말이다.

정말 안전한 장소인가?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오른손에 무언가 꼭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을 펴 보았다.

거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약초가 있었다. 뿌리가 뽑힌 상태에서도 풍부한 마력과 생명력을 뽐내고 있는 영초였다.

형태는 인삼과 비슷하게 생겼다. 뿌리 약초인가? 남은 건 뿌리 하나뿐이었다.

내가 먹은, 나를 회춘시킨 걸로 의심되는 약초였다. 회춘 영초답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약초군. 지구에도 게이트에도 그 어디에도 보고된 적 없는 형태야.’


헌터 생활 30년.

헌터용 약초 정보 정도는 머릿속에 통째로 들어 있다.

그런 내가 처음 보는 약초다.

신종 영초라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까 내가 약초를 뽑은 장소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역시나 처음 보는 영초들이 마력을 품은 채로 있었다.


‘전부 헌터계에 보고된 적 없는 신종들이로군.’


그게 맞다면 이건 대박이다.

역시 이세계라는 건가?

나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가져온 야전삽을 펼쳐서 조심스럽게 영초와 흙을 퍼내서 분류해서 배낭에 담았다.

지구로 가서 성분 분석을 해 봐야겠다.

대체 무슨 효능이 있길래 이런 기적이 일어난 건지 알아야 했다. 그리고 잘한다면.


‘그녀도.’


내 동료였던 그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표본 채취를 끝낸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역시 통화권 이탈이군.’


당연하게도 통화권 이탈이었다.

지구상에 휴대폰이 안 통하는 오지는 아주 드물다.

지구가 아니라는 뜻이다.


‘던전은 아니야.’


하지만 던전은 아니었다. 게이트는 특유의 강력한 방해 전파 때문에 스마트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초기에는 그랬다. 나중에는 발전된 기술로 던전 안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스마트 기기들이 나왔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은 일반 모델이었다.

던전 안에서는 망가지는 게 당연한데 멀쩡히 작동 중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주변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팔목에 채워진 헌터 워치를 툭툭 건드렸다.


‘헌터 슈트를 챙겨오길 잘했군.’


정체불명의 이세계.

일단 돌아가기 전에 정찰해볼 필요성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헌터 워치의 버튼을 꾹 눌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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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자비로운 현룡왕 +2 24.09.18 477 1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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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미지와의 조우 +4 24.09.16 715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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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자 +2 24.09.14 931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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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안하다! +7 24.09.12 1,249 3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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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6 24.09.12 1,425 39 12쪽
1 프롤로그 +12 24.09.12 1,725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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