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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대공을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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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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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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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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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스승의 은혜

DUMMY

나는 칼자루를 잡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군.’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엘레나만 급히 따라온 게 틀림없다. 의도했던 상황이다.


‘시간을 끌면 내가 불리해.’


일대일 상황에서 엘레나를 이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힘은 바닥난다.

그 이후 쫓아올 엘레나의 수하에게 다시 잡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탈출할 수 없는 철통 감시를 받으면서 매일매일 그녀에게 쥐어짜이겠지.

마른오징어처럼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


스승의 자존심이 있지.

제자에게 일방적으로 쥐어짜일 수는 없다.

아니.

그걸 떠나서 지금 가야 했다.


“스승님.”


엘레나가 황홀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그녀가 칼자루를 잡았다.

일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공기가 떨렸다. 소드마스터는 공간을 지배하는 경지. 게임에서야 장판 버프 기술이나 패시브 따위로 표현됐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른 예기가 하늘의 먹구름과 내리는 눈을 난도질했다.


“······다시 당신을 모시겠습니다. 다시는 제 따뜻한 품에서 벗어날 생각이 들지 않도록. 성심성의껏 제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엘레나의 몸에서 일어난 오러가 주변을 잠식했다. 푸른 마력이 일렁였다. 주변 세계가 얼어붙었다. 눈보라가 휘날렸다.

그녀의 오러가, 마나가 주변 공간을 지배했다. 이 공간은 오롯이 그녀의 지배 권역이었다.

소드마스터의 공간 안에서 소드마스터를 이기려면 같은 소드마스터를 데려와야 했다.

그리고.

나도 소드마스터였다.


“레나야.”


나는 칼자루를 굳게 쥐었다. 그녀가 공간을 장악했지만, 본격적인 궁극 스킬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게임에서는 궁극기.

설정상으로는 마인드 소드라고도 불리는 스킬. 심상의 깨달음을 현세에 구현하는 심상무도를 그녀는 사용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도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내 몸이 회복됐지만, 소드마스터인 그녀에게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겠지.

방심이다.

하지만 그 방심을 유도하게 만든 건 나다. 실전에서 방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금.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스승으로서.


나는 마나홀을 일깨웠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나의 격류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나 회로가 타들어갈듯이 아팠다.

10분.

나는 하루에 10분 전성기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10분의 힘을 일격에 집중한다면?

방심하고 있는 엘레나 정도는 일격에 제압할 수 있다.

그 이후 무력한 상태에 빠지겠지만, 이 상황을 벗어날 최선의 한 수는 이것뿐이다.

이래서 내가 정면으로 빠져나오지 않은 거다.

지금은 엘레나와 일대일 상황이니까.


“머리다.”


내 말을 들은 엘레나가 웃었다.

짤랑.

그녀의 손에 들린 목줄이 흔들렸다.

나는 하늘로 검을 치켜들었다.

검을 중심으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작은 바람이 모여 폭풍을 만들어냈다.

번스타인류 연공법의 근본은 흐름.

흐름을 표현하는 건 바람.

폭풍이다.

원작에서도 데미안의 스킬은 바람 속성 스킬로 분류됐다.

고점이 높은 유니크 스킬이었다. 제3세력 루트를 타는 메리트이기도 했다. 초반에 유니크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데미안은, 아니 나는 강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승이 될 수 없으니까.


“······큭.”


나는 올라오는 핏물을 삼켰다. 휘몰아치는 검풍 한가운데 찬연한 오러 블레이드가 타올랐다.

회색빛 오러 블레이드였다.

오러 블레이드.

소드마스터의 상징이다.

물론 흑막 놈들이 만든 가짜 소드마스터들도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긴 하지만, 완전한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소드마스터뿐이다.

게임에서도 소드마스터로 상위 전직을 해야 오러 블레이드 스킬트리가 개방된다.


“!!”


엘레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

그러려고 일부러 그런 거다. 엘레나의 검에 찬란한 은빛 빛무리가 깃들었다. 별빛을 닮은 광채.

그녀의 오러 블레이드였다.


“스승님. 힘을 되찾으셨군요.”

“머리를 조심하라고 했다. 레나.”


그때처럼.

10년 전, 그녀에게 검을 가르치던 시절처럼.

나는 그녀에게 미리 경고했다.

그래.

그때도 그랬다.

그때도 레나는 내 사전 경고를 듣고도 계속 머리를 맞았다.


“저는 그때의 제가 아닙니다. 스승님.”


레나가 말했다. 그녀의 청색 눈동자에 귀화가 피어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소드마스터라면 몰라도, 나는 뒤가 없이 화끈한 일격을 날리는 것이 가능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마나를 일격에 실어서 날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전성기의 힘을 사용 가능한 시간은 10분.

그 10분을 일격에 집중하는 것이다.

모든 마나를 검에 집중했다.


우우우우우웅!

칼날이 울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빛났다. 계속 힘이 압축되면서 내 검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광선검처럼 변했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마나 회로가 뜨겁게 타올랐다. 전신 화상을 입는 끔찍한 고통이 나를 덮쳤다.

그래도 해야 했다.

피로 물든 시야 속에서 엘레나의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마나의 흐름도 보였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잘 컸군.’


그렇다.

잘 컸다.

어쩌면 원작보다 지금의 엘레나가 더 강할지도 몰랐다.

내 오러 블레이드를 본 순간부터 그녀는 긴장해서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제압해야하는 입장이었다.

전력을 낼 수 없다.

나는 아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두 발을 눈밭에 지탱하면서 말했다.


“······받아라. 내 마지막 가르침이다.”


나는 압축된 힘, 나의 전력을 그대로 정직하게 엘레나의 머리를 향해 쏘았다.

압도적인 마나가 응축된 오러가 공간을 갈기갈기 찢으며 나아갔다

파츠츠츠츠츠츠츠츳!

마나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허공에 균열이 갔다. 엘레나가 만든 공간이 갈라지고 있었다.


“스승님······.”


엘레나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가 검을 들었다.

흐름이, 흐름이 넘어오고 있었다.

여기는 이제 내 공간이었다.

모든 흐름이 느껴졌다.


“······당신은 아직······. 그렇게······.”


흐름의 주도권이 넘어왔다.

막을 수 없다.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항상······.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엘레나의 검에 타오르던 오러 블레이드가 공간을 격하고 날아가는 내 일격을 받아냈다.

콰-과-과-과-광!

공간이 왜곡되면서 폭음이 일어났다.

빛의 폭발이 가득 메웠다. 눈이 흩날렸다.


“후우. 쿨럭!”


나는 피를 토해냈다. 모든 마나가 사라졌다. 무력감이 몰려왔다. 탈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버텼다.

이때를 대비해서 1% 정도 힘을 남겨뒀기 때문이었다.

움직일 정도의 힘.

마나는 사용 못 하지만, 도주에는 충분했다.

모든 폭음이 걷힌 가운데 크레이터에 엘레나가 누워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스승님······.”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가지 마세요······. 제 곁에······. 언제나 항상······. 제가 당신을 책임질 테니까······.”

“가야 한다.”


나는 엘레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엘레나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몸이 떨렸다.


“약속하지,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여기로 돌아오겠다. 그다음은 뭐······. 네 마음대로 해라.”


그래.

모든 일이 잘 끝나면.

그럼 다시 북부로 돌아올 거다. 그래서 은퇴 힐링 라이프를 보내는 거다.

엘레나랑 같이.


“그때까지 너는 우리의 보금자리를 지켜라.”


엘레나가 자리를 비우면 곤란하다.

북부 퀘스트나 적대 세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물론 엘레나가 내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일주일이 넘은 그녀와의 뜨거운 시간 동안 확인한 바였다.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고 결심한 계기기도 하고.

이래도 그녀는 나를 추적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해두는 쪽이 좋겠지.


“······스승님. 잊으셨나요. 저는 스승님의 말을 제대로 안 듣는······. 못된 제자인데······.”

“뭐 그럼 내가 제자를 잘못 키운 거겠지. 간다. 잘 있어라.”

“가지 마세요······.”


엘레나는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고개를 떨궜다.

기절한 것이다.

나는 엘레나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윽······. 후들거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비명을 질렀다.

역시 소드마스터 모드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조루 신체 같으니.

빙의할 거면 신체 건강한 남자로 빙의 좀 해주지.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추운 눈밭을 헤쳐 나가려고 했다.

그때.

저 멀리서 강대한 기운 여럿이 느껴졌다.

곧이어 눈밭에 메이드 여럿이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별궁을 관리하던 소드 유저급 메이드.

그리고 앞에서 민트색 머리를 흩날리는 차가운 미녀가 내려앉았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빛나는 별궁의 시녀장.

별궁을 총괄하는, 일주일 동안 엘레나 다음으로 자주 마주친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발 좆됐나?’


왜 이렇게 빠르지?

지금 마나 한 줌 없는 상황에서 그녀와 싸우는 건 필패다.

계산이 잘못됐나? 다시 잡혀가면 나올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사육을 찍어버릴 것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일단 멀쩡한 척, 여력 있는 척을 해야겠다.

그녀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시녀장이 기절한 엘레나를 안아 들었다. 그녀가 나를 내버려 두고 등을 돌렸다.


‘뭐지?’


놓아주는 건가? 아니면 내 허장성세에 넘어간 건가?

무슨 꿍꿍이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시녀장이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이다.

나는 시녀장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 발길을 옮겼다.

시녀장은 마지막까지 나를 쫓지 않았다.

좋아.

감금에서 벗어났다.

이제 목표는 중부.

엘레나의 손길이 뻗지 않은 곳.

주인공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황도다.


*


“일어나셨습니까?”


엘레나는 오랜만에 스승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아니.

오랜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고작 일주일인데도, 그분과의 뜨거웠던 시간은 일 년처럼 느껴졌다.

엘레나는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십니까?”


시녀장의 목소리였다.

그래.

스승님이 아침에 깨워주기 전까지 언제나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와 함께 자랐던, 사실상 소꿉친구 자매나 마찬가지인 시녀장의 목소리를.


“스승님께서는?”

“놓쳤습니다. 제가 왔을 때는 이미······.”

“그렇군.”


시녀장의 말에 엘레나는 그녀를 질책하지 않았다.

스승님의 마지막 일격.

그건 그분께서 여전히 스승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격이었다.

시녀장 따위가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승님 말대로 그분을 쉬이 놓아줄 생각도 없었다.

그분의 제자는 그녀 말고도 더 있었으니.

엘레나는 거울을 들었다. 그건 마법의 거울이었다. 그녀가 마나를 불어넣자 마법의 거울에 지도가 떠올랐다.

그건 대륙의 지도였다.

그리고 지도 한가운데 점 하나가 찍혔다.

스승님의 위치였다.


‘스승님. 저는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스승님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엘레나는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그분을 받아들였다.

온몸으로.

바로 이곳에.

그분의 은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따뜻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피임은 안 할 걸 그랬습니다.’


스승님.

엘레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시녀장.”

“예, 대공 전하.”

“스승님을 추적하도록.”

“알겠습니다.”


엘레나의 명령을 받은 시녀장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엘레나는 매끈한 11자 복근이 인상적인 아랫배를 계속 쓰다듬었다.

뱃속의 온기를 느끼면서.

그리고 웃었다.

언제까지나.


작가의말

지식채널2님, 제이플러스님, 文pia덕후님 소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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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은혜 +13 24.07.03 1,216 45 12쪽
3 제자를 잘못 키웠어 +10 24.07.02 1,456 54 14쪽
2 뭐든 적당히 +13 24.07.01 2,037 59 14쪽
1 프롤로그 +13 24.07.01 2,056 69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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