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노빠꾸맨 님의 서재입니다.

북부대공을 범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새글

노빠꾸맨
작품등록일 :
2024.07.01 20:20
최근연재일 :
2024.07.06 20:20
연재수 :
7 회
조회수 :
8,930
추천수 :
320
글자수 :
35,240

작성
24.07.02 20:20
조회
1,466
추천
54
글자
14쪽

제자를 잘못 키웠어

DUMMY

침실을 빠져나온 나는 옷을 걸치고 주머니를 챙긴 뒤에 예장용 검을 허리에 찼다.

날이 없는 장식용 검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어차피 오러 두르면 칼날이 있건 없건 절삭력은 똑같다.


‘오러라니.’


소드 익스퍼트.

오러.

이 얼마나 근본 없는 설정인가?

이 게임의 설정이 이따위 양산형 중세 판타지인 건 원작이 그런 양산형 중세 판타지 웹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관 설정상 원작 웹소설의 500년 뒤이기 때문에 원작 웹소설이랑 별로 상관없지만.

그럴 거면 게임화를 왜 한 거야?

그냥 게임사가 IP 가격이 싸구려라서 산 게 틀림없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어딜 가십니까?”


발걸음을 거침없이 옮기던 내게 메이드 하나가 물었다.

겉보기에는 단순 메이드 같지만 그녀의 실력 무려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

내 호위 겸 감시 역할의 간수 중 하나이자 이 별궁의 모든 대소사를 총괄하는 시녀장이었다.

시녀장뿐만이 아니다.

저택의 모든 집사, 모든 하인, 모든 메이드가 최소 소드 유저 이상의 실력자였다.

엘레나가 얼마나 나를 감금하고 싶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군.’


감금 섹스라니.

원작이 성인 게임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벤트를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인공만 멀쩡하면 그냥 있을 텐데.

빌어먹을 주인공 놈 같으니.

대체 어딜 간 거야.


“······후원 산책을 하고 싶구나.”

“수행하겠습니다.”


시녀장이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

이들의 진짜 목표는 집안일이 아닌 내 감시.

어차피 후원에도 숨은 감시가 있겠지만, 대놓고 감시가 붙으면 따돌리기 귀찮다.

이들을 떨어뜨려 놔야 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나가 자고 있다. 어젯밤에 내가 많이 귀여워해 줬기 때문이지. 그녀가 일어나면 레나를 이번에는 후원에서 귀여워해 줄 예정이다. 후후. 귀여운 제자와의 알몸 산책도 괜찮겠지. 이런데도 따라붙을 것이냐? 그것도 나쁘지 않군.”


이럴 때는 엘레나 핑계를 대면 된다.

다른 건 몰라도 엘레나에게는 꼼짝 못 하니까.

레나는 엘레나의 애칭. 그녀의 직계 가족이 전부 없어진 지금은 나밖에 못 부르는 이름이다.

나는 그녀에게 야외 플레이를 할 건데 상관의 잠자리를 직관할 거냐고 캐물은 것이다.

뭐.

사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성 구조를 파악하려고 일부러 성 곳곳에서 엘레나와 플레이를 했었다.

후원도 한두 번 갔었고.

섹스 덕분에 나는 이 별궁의 구조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내 행동의 의미를 그들도 잘 알 것이다.

변태 연기를 하며 웃는 내 말을 들은 시녀장이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레나가 일어나면 후원으로 오라고 하도록. 물론 몸을 정갈하게 준비하고 말이다. 그전까지 후원의 풍광을 즐기겠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시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상관의 그것을 직관하다니. 그럴 간담은 없지.

메이드, 아니 간수를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저열한 핑계를 대야 하다니.’


하지만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복도를 걸어 후원에 도착했다. 내가 갇힌 별궁의 이름은 봄의 별궁. 겨울 궁전의 별궁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규모다.

특히 후원이 유명했다.

마법 결계로 외부의 찬 공기를 차단해서 일종의 마법 온실을 만들어놓은 뒤에 북부 기후에서 자라지 않는 기화요초를 심어놓았다.

탁.

후원에 나갔다. 북부답지 않은 따뜻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열대에서나 볼 법한 야자수가 보였다.

후원 전체를 흐르는 인공 개울과 기암괴석을 쌓아 만든 인공 산이 보였다.

휘이이이이이이잉.

그리고 마법 결계 너머로 휘몰아치는 눈이 보였다.

돈지랄의 끝판왕이었다.

이 후원은 게임에서도 파밍 스팟으로 유명했다. 후원에 고급 약초와 마법초가 자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후원을 둘러보는 척, 기감을 뻗쳐 주변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감시가 느슨해졌군.’


야외 플레이 선언을 한 덕분에 후원 곳곳에 숨어 있어야 할 비밀 감시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 너머 별궁 경계를 지키는 호위병들의 기척만 느껴질 뿐이다.

일주일.

나는 일주일 동안 얌전히 있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엘레나의 기둥서방 생활, 제자의 애착인형 생활을 즐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니 사람인 이상 긴장이 풀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키운 제자의 애착인형이 되다니.’


솔직히 남자로서 좋으면서 수치스러웠다.

양면적인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탈출이다.

최적의 타이밍.

일주일 간의 빌드업을 통해 그걸 만들었다. 하지만 탈출하면 반드시 엘레나가 알아차릴 것이다. 그녀와의 전투는 피할 수 없다.

북부의 소드마스터.

대륙십강의 일좌. 제국의 2인자. 오크족의 악몽. 야만족의 재앙.

엘레나 페트로프를 상대해야 했다.


‘해볼 만한데.’


그렇다.

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금이 갈 것이다.

그녀는 나를 좋아한다.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나는 멍청하지 않다. 대체 왜 날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속궁합도 좋았다.


‘빌어먹을, 벌써 몸정이라도 들어버린 건가.’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안주할 수 없다.

세상이 망하면 나도 죽는다. 거기에 엘레나랑 이런 관계도 유지할 수 없다.

엘레나는 나를 절대 내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멍청하게 섹스만 하고 있다가는 전부 다 죽는다는 소리다. 내가 좋아하는 엘레나 가슴도 만질 수 없다.

주인공.

주인공만 찾아서 모든 걸 원래 궤도대로 돌려놓는다.

그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거다.

북부로.


‘그렇게 엔딩 본 뒤에 북부에서 은퇴해서 엘레나 기둥서방 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녀가 내 제자라는 게 걸리긴 하다. 하지만 엘레나는 진작에 현대 기준으로도 성인이 되었다. 거기에 이미 해버렸는데 어쩔 것인가. 내가 책임 안 질 것도 아니고.

그래.

제자와 했다고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 그래. 나는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했다.

뭐 나쁘지 않다.

놀고먹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마음을 다잡은 나는 마나홀을 일깨웠다.


‘윽!’


마나홀에서 마나가 일어나 마나 회로를 달렸다. 영구적 손상을 입은 마나 회로가 비명을 질렀다.

데미안 번스타인.

내가 빙의한 이 몸뚱이는 병신이었다. 소드마스터였던 데미안이지만 흑막 조직에서 토사구팽당할때 살아남으면서 대가로 마나 회로에 영구적 손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마나를 사용할 수 없는 몸이었다.

그래서 게임에서도 데미안은 레벨에 비해 약체이다. 현상금을 포함한 보상이 좋은 것이지.

그래서 이걸 그나마 고치기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이 미개한 중세 판타지 세계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우니까.

덕분에 10분.

하루에 10분 전성기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마나도 고통만 감내하면 쓸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시작할 때였다.


‘으으으윽. 개 아파.’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과 함께 마나를 돌려 온몸을 강화했다. 기감이 확장되었다. 시야가 변했다. 눈에 마나의 흐름이 보였다.

흐름.

이 흐름을 보는 눈이야말로 데미안이 익힌 번스타인류 연공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흐름을 느끼면서 그대로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눈에 결계의 취약점이 보였다. 나는 예장용 검을 들었다. 화르르륵. 칼날 없는 검에 오러가 깃들었다. 나는 오러가 깃든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결계가 찢겨 나갔다. 북부의 차가운 추위가 정원에 그대로 들이닥쳤다. 예쁜 정원의 풍경이 엉망으로 변했다.

뭐 알아서 복구하겠지. 엘레나는 돈 많으니까.

세계를 구하는데 이 정도가 무슨 대수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찢긴 결계의 틈 사이로 몸을 날려 그대로 별궁을 벗어났다.


“결계에 이상이 생겼다!”

“누구지?”

“상황을 조사하라!”


기감뿐만 아니라 오감이 증폭된 덕분인지 등 뒤로 호위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의 기감 사각지대로 교묘하게 이동하면서 겨울 궁전의 지붕 위로 달랐다.

휘이이이이이잉.

북부의 눈보라가 온몸을 휘감았다. 제법 따뜻한 옷을 챙겨 입고 왔는데도 추웠다.

이게 다 몸이 병신이라 그렇다. 하여간 멀쩡한 몸에 빙의 좀 시켜줄 것이지. 빌어먹을 게임사 놈들 같으니.

나는 게임사를 욕하면서 겨울 궁전의 높은 지붕을 달려서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탁.

눈더미가 흩날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예상대로 아무도 없었다.

인적 드문 뒷골목. 나는 서서히 걸으면서 빈민가에 널린 빨래를 발견했다. 은밀한 손동작으로 빨래를 낚아챈 뒤, 미리 챙겨둔 동화 몇 개를 대신 올려뒀다.

엘레나와 함께 지낼 때 돈을 모으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용돈이랍시고 거액을 매번 줬으니까.


‘이 정도면 옷값으로 충분하겠지.’


빈민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로로 나섰다.

영도 페트로그라드.

인구 2만 명이 넘어가는 북부의 유일한 대도시이니만큼 대로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윽, 냄새.’


익숙한 오물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하여간 중세 아니랄까 봐 도시 위생 상태가 별로인 건 여전하다. 빌어먹을 중세.

자유로운 현대인의 영혼을 지닌 나다. 이 미개한 세계는 10년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진흙탕을 달리는 달구지와 수많은 행인이 보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들었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다시 암흑가로 들어갔다.

성문을 통과할 수는 없었다. 개구멍으로 가야 했다. 경험상 대개 이런 성들은 비밀 통로가 있기 마련이다. 게임에도 개구멍이 구현되어 있었다.


쿠르르르르릉.

천둥번개와 함께 흐린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도주자 입장에서는 좋다. 흔적을 지우기 쉬우니까.

암흑가에 들어가자 분위기부터 달랐다. 험악한 인상을 지닌 깡패들, 비쩍 마른 소매치기들이 보였다.


“어이 형씨.”

“흐흐. 여기는 우리 독사파의 구역이라고. 지나가려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이 말씀이야.”


그리고.

암흑가라면 으레 이런 놈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하여간.

이런 것도 클리셰인가? 하긴 망겜 세계니까 그럴 법하다.

게다가 독사파라니.

조직 이름에 창의성이 없다. 창의성이.

뭐.

어차피 이런 걸 노리고 온 거다.


“통행료? 네놈들한테 줄 통행료 같은 건 없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보법을 밟아서 그대로 두 덩치를 제압해 바닥에 처박았다.


“큭!”

“커억! 마, 마나 유저라니! 사, 살려주십쇼!”


내 범상치 않은 몸놀림에 몸을 떠는 깡패 둘.


“죽기 싫으면 개구멍까지 안내해.”


개구멍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건 경비대의 묵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다들 뒷구멍을 알고도 이런저런 구린 일이 필요해서 용납해주는 것이다.

모두 아는데 왜 가는가 하면, 정식 검문을 뚫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형님.”

“누가 네 형님이지?”


나는 놈의 뒤통수를 때렸다. 둘을 앞세우고 개구멍을 향했다.

개구멍은 보수가 제대로 안 된 성벽 아래 있었다. 낡은 집문을 열자 탁자 위에 앉은 흉터 덩치가 있었다.

나는 두 깡패를 쓰레기 던지듯 바닥에 던졌다.


“손님인가? 통행료는 은화 1닢일세.”


익숙한 얼굴로 날 보는 깡패.

나는 군말 없이 은화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푼돈으로 실랑이하는 것보다 빨리 나가는게 중요하다.


“그럼 잘 가시게. 손님.”

“그러지.”


그가 판자를 들어 보이자 구멍 하나가 보였다. 나는 엎드려서 개구멍을 빠져나왔다.


‘윽. 시발. 더러워.’


청결한 관리 따위는 없다. 개구멍은 오물 범벅이었다. 토악질이 날 정도의 악취를 참으면서 나는 마침내 성을 빠져나왔다.

휘이이이이이이이잉.

휘몰아치는 눈보라.

좋아.

이제 가면 된다. 나는 잰걸음으로 황도 쪽 방향을 잡고 내려갔다. 그때.


“스승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압도적인 존재감이 내려앉았다. 무형의 압박감이 주변을 장악했다. 주변 공간의 주도권이 일순간 누군가에게 집중했다.

눈이 멈췄다.

진눈깨비가 멈췄다.

모든 소음이 멈췄다.

죽음과 같은 고요가 새하얀 눈밭에 내려앉았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엘레나였다.

그녀가 오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여신처럼 사뿐하게 지상에 강림한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사라져 있었다.


“제자는 기대했습니다. 스승님과의 후원 산책을, 그런데 어째서······. 스승님께서는 제자를 버리시는 것입니까.”


아니.

그걸 왜 기대해.

미치겠군.


“······검을 들어라. 레나.”


나는 검을 뽑았다.

그래.

이럴 줄 알았다.

그녀야말로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무조건 감금하려고 했다.

나는 무조건 벗어나야 했다.

평행선을 달리는 이건.


“네게 가르침을 내리겠다.”


한바탕해야 끝난다.

내 말을 들은 엘레나가 웃었다. 그건 섬뜩한 미소였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르릉.

그녀가 검을 뽑았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을 달게 받겠습니다. 받은 이후에는, 이것만을 차고 스승님께서 이끄는 후원 산책을 마저 마칠 것입니다.”


그와 함께 그녀가 뭔가 들어 보였다. 짤랑짤랑.

그건 목줄이었다.

순간 어이가 하늘로 올라갔다.

저걸 왜 여기까지 가지고 왔어.

아니 대체.

시발.

역시, 내가 제자를 잘못 키웠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부대공을 범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원 감사 공지(24. 07. 05. 갱신) 24.07.03 77 0 -
공지 일월화수목토 주6일 오후 8시 20분 연재입니다. 24.07.01 377 0 -
7 동작 그만 NEW +5 12시간 전 368 20 11쪽
6 잘 키운 제자 +9 24.07.05 757 31 12쪽
5 영역 표시 +8 24.07.04 984 42 13쪽
4 스승의 은혜 +13 24.07.03 1,225 45 12쪽
» 제자를 잘못 키웠어 +10 24.07.02 1,467 54 14쪽
2 뭐든 적당히 +13 24.07.01 2,051 59 14쪽
1 프롤로그 +13 24.07.01 2,069 69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