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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령두령 님의 서재입니다.

을지문덕의 손자로 환생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도령두령
작품등록일 :
2024.01.07 19:05
최근연재일 :
2024.02.2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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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964

작성
24.01.2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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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연수영

DUMMY

***


이후, 난 고구려 진영으로 복귀했다.

고구려군은 고정의 주도하에 한창 소탕 작전을 진행하고 있었다.

대상은 불길과 고구려군을 피해 도망친 말갈 연합군 병력이었다.

휘하 장수들은 꼭 이렇게까지 박멸할 필요가 있냐며 의문을 제기했으나, 고정의는 태왕의 은혜를 무시하면 이렇게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의문을 잠재웠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마침내 소탕 작전이 종료됐다.

적군은 애당초 화공에 정신이 나가 탈출할 생각조차 못 한 자들이 대다수였고, 도망쳤어도 근방이 모두 평야 지대라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군마들 대부분이 불에 타 죽었으니 도주 속도도 빠를 수 없었고 말이다.

하여, 작전에 대다수 시간은 말갈 연합에 참여한 부족들의 근거지를 소탕하는 데 사용됐다.

알다시피 사내들은 모두 참전했던 탓에 남은 건 여인과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이 또한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여하튼, 그렇게 온갖 변수로 가득했던 말갈 정벌이 드디어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근거지에서 포획한 말갈인 포로 수천 명과 각종 가축 1만 마리. 그리고 상태가 영 좋진 않았으나 군마 1천 필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647년 5월, 영류왕이 고연수, 고정의, 을지운랑 등을 보내 흑수말갈을 비롯한 7개의 부족을 소탕하여 말갈을 완전히 정벌했다. 이로써, 고구려의 동쪽 영토가 마침내 바다에 닿았다.]


소탕 작전까지 모두 끝난 밤, 고구려 진영에선 큰 잔치가 벌어졌다.

앞서 고정의가 직접 전사한 2천의 개마무사와 고연수의 장례까지 치러주며 그들의 넋을 달래준 덕에 병사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잔치를 즐겼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상석에 앉은 고정의가 날 불러 곁에 앉혔다.


“대로, 부르셨습니까?”

“으음, 그래. 앉게.”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게 술을 꽤 마신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허허, 괜찮네. 내 이래 봬도 젊을 적엔 술을 항아리째 먹던 사람일세.”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고대나 현대나 어른들의 젊을 적 술부심은 똑같네, 똑같아.


그때, 고정의가 조금은 씁쓸해진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헌데, 오늘은 고작 한 병으로도 이리 빨리 취하는군.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승리에 취해서일까. 그도 아니라면... 조금은 미안해서일까.”


.....뭐야, 갑자기 웬 죄책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이 굴더니.


“고 욕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 욕살을 제거해야 했단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네. 후회도 없고.”


맞네. 피 안 나오겠네.


“허나... 일전에 대형의 말대로 욕살과 함께 죽어간 2천의 군사들에겐 조금 미안해져서 말일세.

나도 내 손으로 직접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표정을 보아하니 고정의도 나 못지않게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이번 전쟁을 통해 분명 느낀 게 많을 거다.

실제 역사에서 고정의는 주필산 전투 이전엔 기록에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단 기록은커녕, 작은 참전(參戰) 기록조차 없지.

고령의 나이를 고려했을 땐 여-수 전쟁 당시가 분명 한창 날아다닐 때였을 텐데도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고구려에서 그는 과거부터 유능한 신하로 평가 받아왔다.

파벌에 상관 없이 영입을 원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 말인즉, 그는 지금껏 전장을 누비는 무장보단 뛰어난 정치가로 활동했다는 뜻.

물론 정치판도 또 다른 전쟁터라 불리긴 하나, 그래도 진짜 전장처럼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진 않는다.


평생을 그런 정치판에서만 굴렀으니, 본인 결정 하나에 눈앞에서 수천 명의 목숨이 날아가는 걸 직접 경험한 건 분명 이번이 처음일 터.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밀실에서 정치만 하던 사람이 처음부터 견딜 수 있는 무게는 아니지.


허나, 고정의의 마음이 복잡해진 모습을 보자 난 되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심경 변화는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만약 정말 그가 희생을 조금도 거리끼지 않는 자였다면, 난 아마 평생 고정의를 경계해야 했을 거다.

그런 자라면 지금은 아니라 해도, 언젠간 나조차도 고구려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가차 없이 제거하려 할 테니까.


이건 내가 고구려에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될 리 없다고 안심할 문제가 아니다.

고정의가 해가 되고 안되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니까.

이번엔 그 ‘주관적인’ 판단이 옳았을지 몰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그 틀린 판단에 내가 걸려든다면, 난 진심엔 상관없이 그의 제거 대상이 될 것이다.

물론 지금 그에게 일어난 변화를 보면 다행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난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고정의에게 말했다.


“그럼, 앞으론 미안할 일을 안 만드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글쎄... 평생을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은 가벼운 것이라며 살아온 내가 앞으론 다른 수를 과연 생각해 낼 수 있을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단호한 반응에 그는 흠칫하며 날 바라봤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가?”

“대로께선,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분이니까요.”

“미안함은 그저 나의 작은 감정일뿐이네. 그들에게 미안하다 하여, 며칠 전으로 돌아가도 이번과 다르게 해결할 방도가 떠오른 것은 아니야.”

“아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허, 사람 참..”

“대부분에 귀족들은 자신보다 낮은 자들의 죽음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허나, 대로께선 이를 느끼셨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간 반드시 그 해답을 찾아내실 겁니다.”


고정의는 더욱 생각이 복잡해져 보였다.

허나, 난 확신한다.

‘죄책감’은 인간을 성장시키는 동력 중 하나다.

이를 이겨내기만 한다면, 그는 분명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다.


부디, 고정의에게 남은 수명이 좀 길었으면 좋겠군.


다음날, 고구려군은 철군을 시작했다.

도성에 도착하자, 수많은 백성들의 환영 인파가 우릴 맞이했다.

영류왕과 조당의 대신들 또한 궁성 밖까지 나와 우릴 기쁘게 맞아주었다.


고정의는 고연수와 2천 개마무사의 전사를 언급하며 본인의 직위를 낮춰달라 요청했으나, 영류왕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승전하고 돌아온 장군의 지위를 낮추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네. 짐 또한 북부 욕살의 전사는 애통하게 생각하나, 그것의 책임을 경에게 물을 순 없는 일이야.”

“아니옵니다, 폐하. 소장이 조금만 더 빨리 판단하였다면 고 욕살을 구할 수도 있는 일이었사옵니다. 소장의 그릇된 판단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그만. 내 전해 듣기론 고 욕살이 여러 제장들의 반대에도 전면전을 벌였다고 하던데, 맞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영류왕은 마치 북부의 귀족들까지 들리라는 듯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수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굳이 수많은 희생이 따르는 전면전을 고수한 것 또한 잘못이라 할 수 있네. 허니, 경은 더 이상 이를 괘념치 말게.”


확실히, 정치가로서 고정의는 정말 뛰어나긴 하군.

본인이 먼저 죄를 청함으로써, 고연수의 죽음이 본인의 죄가 아니게 됐다.

영류왕도 바보가 아니니 바로 이를 눈치채고 응해준 것이고.


만약, 여기서 그가 고연수의 죽음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면 분명 북부의 귀족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캐고 다녔을 것이다.

물론 발견될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계속 남아 조당 내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다.

허나, 영류왕이 북부에 경고하듯 고연수의 죄까지 언급한 이상, 앞으로 그 누구도 북부 귀족들에 심증에 협조하지 않겠지. 아주 깔끔한 뒤처리다.


이후, 왕은 큰 상을 내리려 했으나, 고정의는 전사한 개마무사들을 언급하며 그들의 유족들에게 상을 돌렸다.

이번 일로 느낀 죄책감 또한 잊지 않는 모습에 난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으음~ 아주 좋다! 마음이 정말 한결 편하구만.


그 뒤로 며칠이 흘렀다.

그간 고구려 조당 내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고정의의 주청으로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백돌부의 장수가 관직을 받았다.

분명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는데 어찌저찌 목숨을 건진 듯했다.


이는 고구려의 큰 변화였다.

지금껏 중앙 관직에 말갈계 고구려인까진 오른 적은 있어도, 순수 말갈인은 이번이 최초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영류왕은 백돌부에만 너무 큰 힘이 실릴 것을 염려하여, 나머지 부족들에서도 인재를 한 명씩 추천하게 했다.

당연히 고구려 귀족들은 쌍수를 들고 반대하며 나섰으나, 대로인 고정의는 물론이고 막리지인 연개소문까지 찬성하자 불만은 금세 쏙하고 들어갔다.

물론 대대로이자 그 누구보다 영류왕의 충신인 강이식도 힘을 보탰다.

연개소문은 충심도 충심이지만, 휘하에 걸걸중상을 비롯한 말갈계 무장을 많이 두었기에 선뜻 찬성한 듯했다.


그렇게, 말갈인과 고구려인은 점점 그 경계를 허물어 가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일어난 변화는 새로 선출된 북부 대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선도해(先道解)’.

우리에겐 흔히 김춘추에게 뇌물을 받고 귀토지설(龜兎之說)을 귀띔 해주어 탈출시킨 간신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허나, 그 모든 게 연개소문의 의도였다는 걸 알게 된 지금.

그는 간신보단 그저 유능한 신하일 확률이 높다.


실제로 알아본바, 그는 연개소문의 정변 이전부터 관직에 올라 있었다.

지금도 영류왕은 선도해를 꽤 아낀다. 그럼, 정변 전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그는 연개소문의 제거 대상에 오르지 않았다.

즉, 그 연개소문조차 그를 간신이라 판단하진 않았다는 뜻.

실제 역사에서 연개소문이 김춘추를 상대할 사람으로 그를 선택한 것 또한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똑똑한 김춘추를 상대할 사람은 고구려가 그의 탈출을 명분 삼아 신라를 침략할 거란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할 만큼 유능해야 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직 대인 자리까지 오르기엔 선도해는 너무 어리다.

끽해봐야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은 정도 아닌가.


....뭐, 아마 그를 향한 영류왕의 총애를 의식한 것이겠지.

얼마 전 왕에게 직접 경고까지 들은 마당에 대인이라도 친왕파로 선출해야, 북부가 그나마 지금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곧바로 공석이 된 중리위두대형에도 임명됐다.

영류왕의 채찍을 맞은 북부의 귀족들이 선도해를 내세워 꼬리를 내리니, 왕 또한 적절히 당근을 섞어준 것이다.


덕분에 난 한결 편안해졌다.

유능한 자가 상관으로 들어서니, 업무도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부담도 줄어서 요즘 아주 살 맛이 났다.


그렇게 오늘도 불과 얼마 전이라면 꿈에도 못 꿨을 정시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을지운랑!!”


웬 여인이 잔뜩 성난 목소리로 외치며 내 뒤를 따라 대문에 들어섰다.


“누구시오?”


퍽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다.

이곳 고구려에선 쉬이 보긴 힘든 하얗고 뽀얀 피부와 매혹적인 붉은 입술.

거기에 별을 빼다 박은 듯이 깊고 반짝이는 눈과 깔끔하게 한 줄로 묶은 긴 생머리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몸매 역시 상당했다.

여러 옷을 겹친 한복을 입었음에도 존재감을 뿜어내는 가슴과 이 육감적인 몸매를 너끈히 받치고 있는 골반은 잔뜩 성이 나 있었다.


허나, 그녀의 내면은 이런 훌륭한 외관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개차반이었다.


짝-!!


누구냐는 물음엔 대답도 안 하고 걸어와 다짜고짜 따귀부터 날리는 싸가지.

이 X의 이름은 연수영(淵秀英).

연개소문의 막내 누이동생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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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변수 +11 24.02.04 2,935 92 12쪽
30 30화, 보물 (2) +14 24.02.03 3,047 9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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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인연 +17 24.01.31 3,161 100 13쪽
27 27화, 연정토 +16 24.01.30 3,126 97 13쪽
» 26화, 연수영 +11 24.01.29 3,237 104 12쪽
25 25화, 말갈 (6) +20 24.01.28 3,256 111 13쪽
24 24화, 말갈 (5) +7 24.01.27 3,163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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