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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Seo 님의 서재입니다.

세기말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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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Seo
작품등록일 :
2022.05.1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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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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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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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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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 1장 4화

DUMMY

1장




4화




[ 과거 회상 : 예한다스의 이야기 ]




충청남도 서산군 어느 해안가 마을.




난파 사건 이후,

예한다스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가고 생기가 없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돛단배를 타는 일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생환을 심축하였다.

또한 예한다스의 생환고토 이야기를 몹시 궁금해 했다. 이런 마을 사람들에게 예한다스는 그날의 일들을 말하여 주었다.



난파된 예한다스와 그의 낡은 돛단배는 파도에 휩쓸려 표류했다. 그리고 노인과 낡은 돛단배는 이름 모를 무인도에 표착하였다.


무인도는 커다란 바위섬이었다. 마치 바위와 바위를 서로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았다. 절벽은 반듯하게 깎아 세운 듯 가파르고, 바위 틈으로 홍합, 소라 같은 갯것들이 떼 지어 붙어있었다.



예한다스는 괭이갈매기 떼의 소란한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팔월 중순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이글 그를 내리쬐고 있었다.


예한다스는 자신의 허리에 옭아매어둔 밧줄을 힘겹게 풀었다. 그리고 깎아지른 듯 한 해벽을 따라 산정(山頂)을 올랐다. 비탈길 주변으로 갈매기 알들이 수없이 널려 있었고, 온 천지에 선홍색의 동백꽃이 만개하였다.



예한다스는 1시간 가량 산비탈길을 올랐다.

그리고 무인도 정상에 도달했다.


섬 정상에는 쑥, 개밀, 소리쟁이 등의 풀들과 동백나무, 딱총나무, 보리수나무 등의 나무들이 암반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괭이갈매기 떼는 산정(山頂)에 오른 예한다스의 주변을 위협적으로 비행했다. 아마도 자신들이 낳은 알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무인도 정상에서 예한다스는 바다 멀리 보이는 돌섬을 발견했다. 그리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돌섬까지는 과거 여러 번 배를 부린 적이 있었다.


예한다스는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네로가 떠올랐다. 네로를 생각하니 예한다스는 잠시도 이곳에서 지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걸음을 서둘러 산비탈길을 내려왔다.



예한다스는 바위 틈에 좌초된 그의 낡은 풍선은 살펴보았다.

돛대가 부러져 바람을 타기 어려워 보였다.


풍선은 말 그대로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소형 무동력선이다.

그래서 풍선을 타고 연승어업을 나갈라치면 썰물을 따라 출항하여 들물을 따라 입항했다. 그만큼 풍선에서 돛대의 역할은 중요했다.


그러나 예한다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예한다스 : 바람이 없으면 노를 저어서 가면 돼.


예한다스는 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바위산 비탈길을 올랐다.

노를 구하기 위하여 굳이 산정까지 오를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해안의 암벽을 따라 섬 주위를 살폈다.


십 분 가량 바위를 탔을까.

예한다스의 눈 앞에 그리 넓지 않은 해안가가 보였다.

해안에는 목선 파편들이 파도에 밀려와 널브러져 있었다.

노인의 돛단배 말고도 이번 태풍으로 난파된 목선들이 더 있는 듯 보였다.

예한다스는 목선 파편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예한다스 : 떡갈나무로군. 아마도 목선의 외판에 사용했겠지. 운이 좋으면 가까운 곳에서 목선의 노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예한다스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노를 발견했다.


노는 당목 모양의 자루가 달려 있는 위쪽 끝 부분이 조금 상하였지만, 막대 모양의 중심부와 물속에 잠기는 납작하고 폭이 넓은 노깃 부분은 튼튼해 보였다.


예한다스는 노를 잡은 채 이정도면 노를 저어 출항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번쩍거리는 것 같았다.


예한다스는 좌우로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루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스무 걸음 쯤 떨어진 곳에서 판자 조각 더미 사이로 무언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예한다스는 번쩍이는 무언가가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판자 조각 더미를 치웠다.


그러자 짙은 감색의 나무 궤짝이 나왔다.

궤짝은 오동나무 재질의 함에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박아 넣고, 화각 세공을 한 듯 보였다. 누가 보아도 단번에 귀품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예한다스는 조심스럽게 궤짝의 뚜껑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궤짝의 뚜껑을 열자 노인은 화들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궤짝 안에는 금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예한다스는 일어앉아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얼떨떨하게 궤짝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것 아니면 남의 밭머리 개똥도 안 주울 정도로 평소 성품이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만, 견물생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잡념을 떨쳐 버리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돛단배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마도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갔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손자의 생사도 모르는 마당에 금은보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예한다스는 낡고 부서진 풍선에 올라 노를 젓기 시작했다.


노인과 돛단배는 남아 있는 온 힘을 쏟아 물결과 씨름하며 바다로 나아갔다. 그리고 만 하루를 꼬박 노를 저어 노인과 돛단배는 마을 선착장에 닿았다.




* * *




예한다스의 이야기는 온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무사 생환보다 금괴 이야기에 더 주목했다. 노인은 육십 평생 헛소리 한번 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동네 사람들 모두 보물 궤짝의 존재를 확신했다.


소문은 삽시간에 인근 마을까지 퍼졌고 배를 가진 어부들은 앞을 다투어 바다로 나갔다.



마을 선착장에서 돌섬까지 100리 남짓 되었고, 돌섬에서 남서쪽으로 50리를 더 가니 예한다스의 이야기 속 무인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인도는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가파르고 높아서 선박 접근이 쉽지 않았다. 어선들이 무인도에 접근하자 괭이갈매기 떼가 낚싯배 주변을 맴돌이쳤다.


어부들은 적당한 해안에 어선을 대고 섬을 골골샅샅이 뒤졌고 예한다스의 이야기 속 궤짝을 찾아냈다.

하지만 금괴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로지 텅 빈 궤짝 뿐이었다.


허탕을 친 어부들은 불승분노(不勝憤怒)하여 예한다스의 집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어부들은 하나같이 예한다스를 원망하며 금괴의 행방을 세세히 캐물었다.

이에 예한다스는 번번이 침묵으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여노(餘怒)가 남은 몇몇 어부들은 예한다스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했다. 또 다른 어부들은 예한다스가 금괴를 독차지하려고 꿍꿍이수작을 부린다고 떠벌렸다.


마을의 여론은 금세 노인을 향한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찼다.

그리고 예한다스는 그날로 입을 닫았다.




* * *




1976년 2월 5일.

그해의 입춘 추위는 특히나 혹독했다.


눈 덮인 갯마을은 쓸쓸하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날 이후 칩거 생활을 하는 할아버지를 위하여 네로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뱃일을 시작했다.


네로는 선착장의 궂은일을 도맡아 치다꺼리하며 늙고 병든 예한다스를 지성껏 봉양했다. 노인의 인품을 그대로 물려받은 네로는 동년배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성실했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어촌은 겨울철 휴식기를 가진다.

지난해부터 네로는 선착장 잡부일을 그만두고 선원으로 낚싯배를 탔다.


관습적으로 선주가 순이익의 40%를 취하고, 나머지를 선원들이 나눠 가졌다. 선원 가운데 선장과 기관장은 한몫의 반을 더 받았고, 나머지를 일반 선원들이 나눠 가졌다.


결국 네로의 품삯은 고작해야 한 달에 2만원, 3만원 정도였다.

네로는 지난해의 품삯 절반을 비축해 두었다.

덕분에 넉넉지 못할지라도 비축분으로 겨울철을 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하릴없이 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다.


겨울철 마을의 주요 소득은 굴양식이었다.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채취가 가능했다. 펄에 버팀목을 박고 홍합껍질을 매단 끈을 버팀목에 매어 놓으면 굴 포자가 붙었다.


네로는 펄에서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굴을 채취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어촌계의 노임을 받았다. 어촌계는 어촌생활을 하는 어민들의 지역 사회 조직으로 법인과 비법인으로 나누어졌다.



네로는 그날도 여지없이 전마선을 탔다.


날이 저물 무렵에야 네로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바닷바람은 살을 에는 듯 추웠고 곤죽이 된 네로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안방문을 열고 예한다스에게 문안을 올렸다.


네로 : 할아버지. 다녀왔어요.


예한다스는 네로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예한다스는 양반다리로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네로는 예한다스의 정면으로 무릎을 꿇고 단정하게 앉았다.


예한다스 : 네로야. 할애비가 오늘 너에게 긴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구나.


네로는 평소와 다른 예한다스의 행동에 불안감을 느꼈지만 아무 말 없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예한다스 : 네로야. 사람들이 모두 나를 거짓말쟁이영감이라고 부른다지?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단다. 나는 그날 두 눈으로 금괴를 똑똑히 보았단다.


네로 : 저는 할아버지 말씀을 믿어요.


예한다스 : 그리고 그날 나는 금괴에 눈이 멀어,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단다.


예한다스는 방 한편에 자리한 낡은 농의 여닫이문을 열고 보자기로 감아 싼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여러 겹의 보자기를 풀자 그 안에서 금괴 한 덩이가 나왔다.


예한다스 : 나의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나는 그날 궤짝에서 금괴 한 개를 훔쳐서 바지 주머니에 넣고 왔단다.


네로 : 나머지 금괴는 두고 오셨어요?


예한다스 : 이 금괴 한 개만 가지고 왔단다. 나머지 금괴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도 궁금하구나. 나는 네가 장성하여 색시를 얻게 되면 낚싯배 하나 정도는 마련해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훔쳤어. 정말 그래서 훔쳤어.


네로 : 할아버지.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예한다스 : 금괴 한 개든지 열 개든지 도둑질은 용서 받지 못 할 행동이고 그래서 할애비는 벌을 받는 것이란다. 그리고 할애비는 이제 그 벌을 다 받은 것 같구나.


네로를 바라보는 예한다스의 눈동자는 이미 속된 것을 초월한 듯 보였다.


예한다스 : 네로야.


네로 : 네, 할아버지.


예한다스 : 할애비가 이미 벌을 다 받았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 금괴를 받거라.


네로 : 할아버지.


예한다스는 금괴를 네로의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예한다스 : 언젠가 예쁜 색시를 얻게 되면 살림에 보태서 쓰거라.


네로 :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제가 어서 예쁜 색시를 데리고 올게요. 그때 할아버지가 직접 주세요.


예한다스는 고개를 가로젓고 말없이 잡은 손을 놓았다.


예한다스 : 네로야. 할애비가 고되구나. 잠시 눈을 붙여야겠어. 자리 좀 펴주겠니?


네로는 농 위에 개어 둔 이불과 요를 내려 방바닥에 깔았다.


네로 : 할아버지.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네로는 안방문을 나서 웃방으로 건너갔다.


네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방구석의 허름한 주칠 경대를 꺼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은 거죽만 남아 쭈글쭈글했다.


예한다스는 경대에서 빗을 꺼냈다.

그리고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경건한 자세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 이부자리에 들었다. 노인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에 올리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날 밤 예한다스는 향년 6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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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020. 2장 10화 22.06.08 2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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