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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철 님의 서재입니다.

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최근연재일 :
2021.05.21 12:00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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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9,945

작성
21.03.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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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DUMMY

#


한편 크레바스 내부로 진입하게 된 구조대는 뜻밖의 무언가와 접촉하게 되었다. 얇은 동아줄에 의지해 바닥을 향해 내려가던 중 뜻밖의 나비 한 마리가 그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것이다. 심연과 같은 어둠 속을 반딧불이처럼 은은하게 비추어주는 그것은 그들이 바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그들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내려온 깊이를 생각하면 추락한 자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시신만은 유가족의 품에 안겨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들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간을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흔적은커녕 고요할 따름인 공간에서 아까부터 주변을 배회하던 나비 한 마리가 그들 앞에서 춤을 춘다.


”정신 사나우니까 저리 가.“

눈앞을 어지럽히는 나비의 모습에 사내는 손짓으로 나비를 치워버리려 했으나, 나비는 끝까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제자리를 빙빙 도는 모습에 혹시나 싶어 다들 말문을 열었다.


”혹시 따라오라는 소리 아닐까요?“

설산에, 그것도 빙하의 틈에서 나비가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의구심을 품은 일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이미 이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잔뜩이니만큼 가능성이 충분한 이야기이다.


”고작 나비 한 마리에 의미 부여를―“

”고작 나비 한 마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내의 말을 자르며 강하게 부정한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사라진 이들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한 지금의 시점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한겨울의 나비, 본 적 있습니까? 보았다 할지라도 크레바스 속에서 날아다니는 나비 따위가 있을리가요. 따라갑시다. 뭐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닙니까.“

그의 설득에 남자는 타당했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뼈를 관통하는 차가운 바람이 폐부를 찌르자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사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요, 한번 따라가 봅시다.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는 없을 테니까.“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그야말로 심연의 중심에서 그들은 나비의 불빛을 조명 삼아 어둠의 장막을 뚫고 나아갔다. 옅은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얼음의 결정들은 창백하리만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거울의 방처럼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순식간에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곳에서 좁은 회랑을 지나 나비의 이끌림을 따라간 곳에는 넓은 동공이 있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이 탄식을 자아내도록 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빙정이었다, 그것은 거대한 조각상의 형태에 가까운 것. 아름드리 나무보다도 큰 불투명한 빙정은 다가오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핏 속이 비치는 빙정의 내부는 흐릿하지만 사람들의 얼굴로 추정되는 것들이 떠다녔다.


나비는 어느샌가 꿈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안중에는 빙정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험을 무릎쓰고 차가운 냉기 속으로 뛰어들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 지금까지 제물로 바쳐진 모든 이들이 빙정 속에서 야금야금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혜선아······ 이혜선!“

생전의 모습이 아른거리며, 적어도 시신만큼은 얼음 덩어리 속에서 빼내고 싶은 마음에 망치를 들고 후려쳐보지만 혼자서 거대한 빙정을 부수는 것은 무리라고 여겨졌다.

”다들 이 망할 얼음덩이를 부숴버립시다.“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는 거대한 얼음마저 불살라 버릴 듯 불타오르고, 사람들은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저마다의 싸움을 시작하였다.


”으아아아아.“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것일까. 한 번의 도끼질이 수십 번 반복되자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부수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빙정의 밑부분에 조금이지만 균열이 일어났다.


-깡

-깡

-깡


거대한 동공 속에서 들리는 것은 오직 쇳소리 뿐. 모두가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한없이 틈을 파고들었다.


이미 두 손은 물집이 잔뜩 잡히다 못해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린다. 차가워진 몸은 감각조차 무뎌져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두 손으로 움켜쥔 도끼 자루를 놓지 않는다.

그동안 사람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방관했던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속죄일까, 아니면 마주하기 싫었던 진실이 그들을 일깨운 것일까. 그 무엇 하나 면죄의 행위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인간적인 순간이 아닐 수가 없다.


-빠각


#


성광이 그치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얼음의 짐승들을 상대로 서로 등을 맞대고 다가오는 적들을 정신없이 물리치는 수민과 정후는 문득 이상함을 느끼고 잠시 숨을 골랐다.

”느꼈어?“

”너도?“

그녀의 뒷덜미를 노리고 날아오는 늑대의 발톱을 팔꿈치로 박살을 내버리며 수민이 이상한 점을 얘기했다.


”조금씩 금이 가고 있어. 핵을 찾아낸 걸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핵에 근접한 무언가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알겠는걸.“

광휘로 이루어진 깃발을 휘날리며 스치는 모든 부정한 것들을 소멸시키는 그녀였다. 칠흑 같은 어둠조차 그녀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카아아아아아아악!

분노한 정령의 포효가 천지를 쩌렁쩌렁 진동시키고 수천 마리 짐승의 군세가 하나의 거대한 무언가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거대한 두 개의 구로 이루어진 그것은 마치 눈사람을 닮았다.


”잭 프로스트?“

얼음의 악마. 더 이상 겨울의 정령 코스프레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

는 순간이었다. 짙은 어둠 사이로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빛은 어느덧 기나긴

밤이 끝나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보통 두 번 정도 변신하면 끝나지 않아?"

"네가 말해서 두 번으론 안 끝날 수도···?"

"무식하게 덩치만 큰 눈사람 따위 녹여버리자. 내가 공격.”

"내가 수비? 그래, 네 성격에 이 정도면 오래 참았지. 수민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두 발과 왼손으로 땅을 짚은 채, 오른손으로 설화를 움켜쥔 수민과 그 뒤를 받히

는 그녀, 응축된 기운을 폭발적으로 터뜨리며 달려나가는 수민을 그녀가 지원한다.


-투핫

제트 스키같이 물 대신 쌓인 눈을 가르며 나아가는 수민의 앞을 폭력적인 눈사태

가 가로막는다. 금방이라도 압사당할 것만 같은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된 빛의

선율이 오로라와 같은 모습으로 펼쳐지며 눈사태를 지워버린다.


"달려!”

눈사태를 지워버리는 것을 끝으로 그녀의 시간 또한 막을 내리고, 수민의 창은 다

시금 검붉게 달아오르며 아지랑이를 피워 낸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거대한 화염의 창이 수민의 손에서 모든 준비를 마쳤다.


#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었던 듯, 빙정의 밑부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

져내렸다.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얼음 조각들 사이로 비치는 것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추락한 마을 사람들이었다.

핏기 하나 없이 몹시 추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외로워 보였다.


"어째서 이들이 여기 있는 거지?"

“시신에 상처 하나 없잖아? 그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분명 다치는 것이 당

연한 것인데.”

크레바스에서 추락했다면 분명 몸이 산산조각 났어야 정상이건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의 몸은 상처 하나 없었다.


“···이 설산, 설산이 모두를 잡아먹고 있는 거야!”

“자세히 보면 빙정의 위로 갈수록 시신들이 온전치 않아, 아마 흡수되고 있는 게

아닐까?"


마물,

도저히 마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사람을 양분으로 삼는 산이라니 이딴

건 들어본 적도 없다.

“부수자, 다 부숴 버리자. 괴물도, 산도 모두 부숴버리자."

“우리도 부수고는 싶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잖나."

“아니, 방법은 있어."

사내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이제는 자취를 감춘 소형 TNT였다. 많은 양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방에 균일이 일어난 이곳에서 터진다면 어쩌면 정말 산이 무너질

지도 모른다.


"어째서 폭약이?"

"우리 아버지가 광부셨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 도화선은 고작 몇 미터

남짓에 지나지 않아. 불을 붙이는 한 명은 이곳에 남아야 하지."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태도에 다들 이상하리만큼 긴장하지 않았

다.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피식 웃는 그들의 모습에 사내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왜 다들 웃고 있는 거지? 거짓말 같아?"

"아니, 믿어. 믿어 의심치 않아. 하지만 말야."

남자의 말을 끝으로 그의 뒤에서 깡 소리와 함께 도끼 자루가 날아들었다. 털썩

쓰러지는 그의 손에서 폭약을 가로채며 그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죽는 건 이 못난 어른들이면 족해. 미워해도, 원망해도 좋아. 하지만 모든 죄는

우리가 가지고 가마, 안 그래 늙은이들?"

“암, 설산도, 괴물도, 지난날의 과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사라져야지."

“자네가 이 친구를 마을까지 데려가는 거야.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하다고, 우리에

게 기회를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을 전해주게."


한 치의 후회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전하는 그들은 세상 그 무엇보다 기뻐 보였

다. 사내를 등에 길친 남자를 떠나보내고 도화선에 불을 붙이 붙는다. 타닥 타닥 타

들어가는 작은 불씨에는 행복했던 기억도, 못난 모습도 흑백 필름처럼 지나간다. 이

런걸 주마등이라고 하는 걸까. 마침내 도화선이 절정에 임박하고, 거친 폭발음과 함

께 그들은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설화가 눈과 부딪치며 연신 수증기를 내뿜는다. 수민은 달려

오던 추진력 그대로 왼발을 축으로 한껏 달아오른 설화를 일직선으로 쏘아낸다.


-퍼엉


그 엄청난 투창에 대기가 신음을 흘리고 설화는 유성우가 되어 불길을 남긴다. 설

화가 놈의 심장을 불태우기 일보 직전. 지축을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이 설산의 내

부로부터 일어났다.


- 쿠르릉


그리고 놈의 심장에 박힌 설화가 지옥의 업화 못지 않은 열기를 흘려보내자 재생

과 분열을 반복하던 그것이 설산이 무너져 내림과 동시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성공했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가 작은 미소를 짓자 수민은 무너져 내리는 설산에서 사

람들을 구조하며 외쳤다.


“무너진다- 아!”

사람들과 함께 황급히 산을 내려오는 수민의 뒤로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설산의 만

년설이 녹아내리며 드디어 종언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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