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가 농사에 관련된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어느정도는 외가의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아버지께서는 제법 큰 밭을 가지고 계시는 농부시거든요.
제가 초등학생과 중학생때는 고추를 따러 병천으로 올라간 적도 있었고, 고등학생 때에는 생전 처음으로 모내기도 해봤습니다.
당연하게도 요령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그저 힘으로만 하다보니...결과는 뻔할 뻔자죠.
그 때 처음으로 허리랑 다리가 맛탱이가 간다는 느낌이 어떤건지 리얼로 체감이 되었죠. 하하... 솔직히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습니다.
뭐, 비오는 날 고추 따는 것도 고역인 것은 매한가지였지만요.
이 부분은 저의 과거의 추억일 뿐이니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던 10년 전. 그 때만해도 71세의 나이로 항암 치료 받으면서 암투병으로 꿋꿋하게 일어서보이셨던 외할아버지셨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이번에도 문제없이 웃으면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과 몇달 전. 정확히는 12월 24일인가 26일중 사이에 팔순잔치를 할 때만해도 무척 건강하시던 모습을 제 눈으로 봤었거든요.
그런데...이번에는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응급실에서 피를 계속 투석받으셨지만 한계가 있었고, 제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쯤에는 이미 호흡이 20에서 25사이를 얕게 왔다갔다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희 외가 쪽에 이모분들께서 두 분이 간호사신데 심각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상황이 좋지 않은만큼 결국 의사의 마음의 준비를 해야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13시 20분 경에 외할아버지께서는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81세의 나이.
예전이라면야 충분히 오래사셨다고 하겠지만 요즘 같은 100세 시대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차갑게 식은 외할아버지를 안치실로 모셨을 때와 염을해드리며 관을 덮어드릴때, 그리고 화장을 할 때.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오르니 눈물이 계속해서 나오더라고요. 작가의 상상력이 이럴 때는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새삼 외할아버지와 함께 사진을 찍은게 가족끼리 단체로 찍은거 말고는 없다는게 참...제가 얼마나 관심이 없던 손자였다는 건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3일장을 치르고 난 이후에도 도저히 노트북 앞에 앉아도 멍하니 앉아만 있게되고 기력이 쭉 빠져서 잠만 자게 되더라고요.
물론 저보다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심정이 더 뼈아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재 어머니는 시골에 혼자 계시게된 할머니네 집으로 가셔서 집안일과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단, 그렇다고해도 연재를 지연시키고 있는 부분은 정말로 죄송합니다.
이미 이전부터 연재 속도가 늦춰지고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조속히 고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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