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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님의 서재입니다.

북부 전선의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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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거스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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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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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전환 : 3일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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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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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첫 근무, 그리고 교전(2)

DUMMY

공적들이 굴러들어오는데 우리도 구경만 할 순 없지.


“렌. 호각 꺼내와라.”


“아,알겠습니다!”


북부 전선에선 유사시 짐승으로 뿔로 만든 피리를 이용해 신호를 보낸다.


호각을 불면 9초소에서 지원을 오기 시작할 터,


‘당장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막내인 렌이 호각을 꺼내오자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우선 짬이 많은 선임병들,


“막스, 마틴, 발터, 라울.”


“예!”


“너희 4명은 벽을 세우듯 방패를 들고 길을 막고 있다가 내가 신호를 주면 옆 사람과 간격을 벌려 작은 틈을 만든다. 이해했나?”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우리 십인대의 후임병들,


“크람, 잭슨, 마르코 렌!”


“예,옙!”


“너희는 같이 방패수들이 틈을 벌리면 그 사이로 적들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이곳 8초소로 올라올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길의 폭은 성인 남자 4명이 같이 지나갈 수 있는 정도고 한쪽은 낭떠러지, 다른 한쪽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초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저 좁은 길목만 막고 있으면 저놈들은 2~3명씩 각개전투를 펼칠 수밖에 없어.’


1열과 2열을 나눠 적들을 차례차례 격퇴하는 것,

지금 상황에선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전이었다면 갑작스러운 지시에 혼란스러워했겠지만,


“야, 빨리 움직여!”


“우리가 1열에서 방패로 막고, 그 사이에 너희가 찌르는 거다. 알았냐?”


“옙!!”


대원들은 침착하게 지시에 따라 대열을 갖췄다.

일주일간 진법 훈련만 한 성과가 빛을 보인 것이다.


“유벨님.”


“어, 이제 불어.”


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렌이 들고 있던 호각을 불었다.


부우우웅!!!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야만족들의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2열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창 제대로 찔러라. 혹시라도 1열에 있는 아군을 공격했다간 그땐···기대하는 게 좋을 거야.”


“옙!!”


농담과 진담을 섞으며 엄포를 놓자 2열에 있던 병사들의 표정이 한결 편해진다.


그 시각에도 적들은 매섭게 산을 타고 오르며 점점 거리를 좁혀왔다.


‘지원군이 오기 전에 초소를 털고 도망칠 생각인 것 거 같은데,’


그게 니들 마음처럼 될 것 같냐?


좁은 길목을 가로막고 적들을 기다렸다.


거리가 20보까지 좁혀졌을 무렵,

야만족들이 잠시 멈칫하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1열, 방패 올려!!”


후우우웅!!


지시가 떨어짐과 동시에 조잡한 손도끼가 날아든다.


‘어림없다 이것들아.’


전투를 시작하기 전 손도끼를 던져 상대를 피해를 주는 건 게임에서도 야만족들이 즐겨 사용하는 전법, 이를 알고도 당해줄 마음은 없었다.


쾅! 쾅!!


선두에 있던 부하들이 제때 방패를 들어 막아준 덕분에 손도끼 전략은 큰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


‘보급받은 방패가 폐급이라 저놈들이 가까이 붙어서 작정하고 내려찍으면 금방 박살 나버리겠지만,’


방패가 있는 것만으로도 어디냐?

이마저도 없었다면 싸워보기도 전에 대가리가 쪼개졌을 것이다.


손도끼가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하자,

적들이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황소처럼 돌격해온다.


“아크 하라차!!”


전생에 게임을 워낙 많이 탓에 나는 야만족들의 언어도 어느정도 할 수 있었다.


‘방패 좀 쓴 거가지고 비겁한 겁쟁이라니? 말이 심하네.’


이왕이면 전략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방진을 유지해라.”


“예!”


부하들을 다독이며 거리를 쟀다.


10보, 5보···

야만족들과 아군 사이에 거리가 가까워졌고 이내 지척에 다다르자,


“지금이다. 찔러!!”


신호와 함께 방패 사이에 틈이 벌어지며 날카로운 창날이 튀어나와 야만족들을 꿰뚫었다.





북부의 징벌병들은 주로 창을 사용한다.


이유는 별 것 아니다.

다른 무기보다 들어가는 재료값이 더 싸니까.


‘어차피 고기방패로 쓸 징벌병들, 철이 많이 필요한 검이나 철퇴 같은 무기를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거겠지.’


무기라도 받았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고?


당연히 아니다.


정규병들이 제대로 된 창술을 배울 때

징벌병들이 배우는 것은 오로지 찌르기 단 하나,


그것도 일단 창을 줬으니 쓰기라도 하라는 의미로 가르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는 다르게 말하면,


‘찌르기 하나만큼은 정규병 못지 않다는 뜻이지.’


아무리 허접한 징벌병이라도 좁은 길목에서 방패에 가로막혀 있는 표적을 꿰뚫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푹, 푹!!


2열에 있던 후임병들과 함께 달려드는 야만족의 배에 창이 쑤셔 넣었다.


사방에 비산하는 선혈,

얼굴에 묻은 끈쩍한 피의 감촉에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혔다.


총을 쏴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직접 날붙이를 들고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0.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전생의 배운 도덕심과 죄책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바로 창 회수해!”


나는 이를 내색하지 않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건 앞으로 이 세계에서 살아갈 스스로에 대한 마음가짐이기도 했다.


죄책감, 도덕심?


‘죽으면 그딴 게 다 무슨 소용인데?’


공적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상황을 가볍게 여긴 것?

그래, 그건 인정한다.


허나, 내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난세를 생각하면 이러한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될 터.


‘힘을 키워야 돼.’


공적을 쌓으려는 것도,

이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도 모두 이를 위한 것이다.


‘다가올 난세에 살아남기 위해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오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퍽!!


복부를 관통당한 채 매달려 있는 야만족을 걷어차 창을 뽑아냈다.


“다시 방패 닫아!”


“방패 닫아!!”


대원들이 복명복창하며 기민하게 움직인 덕에 진형은 순식간에 정비되었다.


처음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놈들이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선두에서 달려들던 동료가 꼬치가 되었으니 놈들도 뇌가 있는 이상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함부로 달려들었다간 자신들도 같은 꼴이 된다는 걸.


스윽-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놈들을 응시했다.


‘꼴을 보니 다시 무식하게 달려들진 않을 것 같네.’


큰 피해 없이 이기기 위해선 놈들이 움직여 줘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게 만들어줘야지.


“모두 진형을 유지한 채 천천히 한 걸음씩 전진한다!”


“예!”


이제는 어느정도 내 전략을 간파한 대원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점점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방패의 벽을 바라보며 야만족들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야만족들을 향해 소리쳤다.


“비 다, 아크 하라차?”


“!!!!!!!!!!!!!!!!!”


적들의 얼굴에 떠오른 경악,

하나는 내가 자신들의 언어를 구사했다는 사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쿠코란 데!!!”


저놈들이 겁쟁이라 욕하던 걸 그대로 포장해서 돌려줬기 때문이다.


‘자, 이제 누가 겁쟁이지?’


대놓고 조소를 흘리자,

놈들이 얼굴을 붉히며 손도끼를 날려댄다.


물론 방패에 막혀 도끼가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전생에서 게임할 때도 채팅으로 상대 혈압 터지게 만들어 탈주시킨 사람이 나다.


‘무식한 야만족을 도발하는 것 정도야 쉽지.’


야만족 언어로 놈들의 성질을 살살 긁어줬다.


“왜 이리 힘을 못써? 혹시 밤에 잠자리에서도 그러냐?”


“닥쳐라, 비겁한 제국인!!”


“아비한테 물려받은 유전인가? 하긴 그러니까 니 어미가···”


이 다음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았으나,

야만족도 사람인지라 알아듣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죽여버리겠다. 제국인!!”


전투 경험이 별로 없는 놈들이라 말로 살짝만 긁어주니 노호성를 터트리며 달려든다.


“찔러.”


푸푹!!


전과 같은 방법으로 쓰러져버린 야만족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놈들이 도끼로 방패를 가격했다는 것이다.


‘이런···’


두 놈이 창에 찔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휘두른 탓에 방패 두 개가 망가졌다.


‘쯧, 어쩔 수 없지.’


아까 전에 2명, 방금 전 3명이 죽었다.

남은 야만족은 단 3명,


이 정도 머릿수 차이면 이제부턴 정면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다.


“방패를 버리고 초소 앞 넓은 곳으로 적들을 유인한다.”


“예!”


우리가 방패를 버리고 뒤로 도망치자

남아있던 잔당들이 미친 듯이 쫓아온다.


이미 동족들이 다 죽고,

제국인에게 모욕까지 들은 상황,


이대로 부족으로 돌아가봤자 X신 취급만 받을 게 뻔하니 최소한 우리 목이라도 가져가겠다는 심보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야만족들이 전사로서의 명예를 중시 여긴다는 건 잘 알고 있으나 앞서 말했듯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게다가 니들이 죽음을 각오했다 한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넓은 지형이 나오자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적들을 포위했다.


“죽어! 이 야만족 새끼야!!”


“끄르륵!”


“게후···커헉!”


게후라는 야만족이 막스의 창에 목이 뚫리며 그대로 쓰러졌고, 그 모습을 보고 절규하던 동료 역시 마틴과 발터에게 당해 목숨을 잃었다.


“카홀!!”


혼자 남게 된 야만족은 몸 곳곳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놈은 끝이 당도했음을 느꼈는지,

마지막 기력을 쥐어짜 포위를 뚫고 내게 달려들었다.


“네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


“유벨님!!”


놈의 돌발행동에 대원들은 당황했으나,

놀랍게도 정작 당사자인 나는 침착했다.


그도 그럴 게

본능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녀석은 내게 아무런 위험이 되지 않는다고,


스윽-


얇은 창날이 놈의 도끼와 맞부딪쳤다.

본래 창으로 도끼 같은 둔기를 막아내는 건 어려운 일.


하지만,


캉!!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는 놈의 일격을 가볍게 받아내는 걸 넘어 역으로 찍어눌렀다.


“크흑! 무슨 힘이...”


비상식적인 괴력이 어떠한 기예나 잔재주 없이 오직 근력 하나만으로 창날이 도끼를 밀어내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힘으로 놈을 밀어내고 어깨로 들이박아 자세를 흐트러트리곤 그대로 창을 휘둘렀다.


후우웅!


창대가 휘는 듯한 착시와 함께 울려 퍼지는 파공성.


콰직!


창날은 살가죽을 넘어 장기를 베어낸 뒤 척추에 틀어박히고 나서야 멈춰 섰다.


흡사 창이 아닌 대검이나 둔기에 당한 것 같은 모양새, 이마저도 중간에 창대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부러져서 이 정도지.


만약 창이 아닌 다른 무기였다면 척추까지 베며 육신을 완전히 양분했을 것이다.


“끄으으...커헉!!“


마지막 혼를 불태우며 달려들었던 놈은 처참한 몰골로 나를 저주했다.


”네놈도 언젠간...나처럼 처참하게...죽게 될 것이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그게 지금은 아니야.”


푹!


그가 더 고통스럽지 않게 목을 찔러 숨통을 끊어주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감정이 들었으나.


‘휘둘리지 말자.’


살아남기 위해선 익숙해져야 한다.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내고 대원들을 살폈다.


“다들 괜찮냐?”


“예!!”


초소 경계를 하다 야만족을 만나면 보통 열에 여섯은 죽는다.


죽은 사람은커녕 크게 다친 사람도 없이 야만족 무리를 처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대원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모두 대장님 덕분입니다!”


“저 깜짝 놀랐습니다! 야만족들의 언어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으음...그게 어쩌다 보니.”


게임으로 배운 거라곤 차마 말할 수 없었다.


“헤헤, 부대에서 사상자 없이 야만족들을 소탕한 건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막스가 엄지를 들며 나를 치켜세운다.


십인대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징벌병으로 있었던 녀석의 말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빙의 후 처음으로 겪은 전투와 승리,


마음 한켠에서 짙은 안도감과 성취감을 느끼는 걸 보면 내가 이 세상에 스며들었다는 걸, 유벨이 되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

남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비밀,

미래에 두각을 드러낼 영웅들까지,


나는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5화 그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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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천벌(2) +17 24.06.04 19,294 539 13쪽
40 천벌(1) +17 24.06.03 20,344 53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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