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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혼 님의 서재입니다.

패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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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혼
작품등록일 :
2011.04.24 01:17
최근연재일 :
2014.08.28 20:04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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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76
추천수 :
671
글자수 :
16,488

작성
14.08.2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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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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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글자
7쪽

패왕을 보았다 2. 후회 (2)

DUMMY

“잠깐! 돈 있어! 돈 있다고!”

도끼를 내려치던 알톤이 급히 손목을 틀었다. 방향이 바뀐 도끼는 가까스로 라울의 손을 빗겨갔다. 서슬 퍼런 도끼날이 아슬아슬하게 라울의 손톱 끝을 자르고 ‘퍽’하며 그루터기에 박혔다.

“……!”

라울의 절규가 조금이라도 늦었거나 도끼의 각도가 약간이라도 어긋났다면 라울은 두 번 다시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들지 못했을 터였다.

그루터기에 날이 반이나 들어가 있는 도끼를 보고 라울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나 안도의 순간도 잠시, 이번엔 예리한 단검이 라울의 얼굴 앞에 꽂혔다. 라울은 단검의 날에 반사된 본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라울의 시선이 단검의 날에서 손잡이로, 손잡이에서 손잡이를 쥔 손으로 따라 올라갔다.

그 끝에는 역시나 알톤이 있었다.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이 칼로 네 놈의 혀를 잘라낼 거다.”

라울은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이엘린! 이엘린에 숙부님이 계셔! 너도 들어봤을 텐데 레이스터 상회!”

“왕국에서 레이스터 상회를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 상회의 주인 그롬 레이스터가 내 숙부님이라고!”

알톤의 눈빛에서 순간 살기가 사라졌다.

확실히 라울의 본명은 라울 레이스터였고, 그건 그리 흔한 성씨가 아니다. 라울이 평민 출신의 대부호 그롬의 친척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알톤은 빚쟁이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빚쟁이들은 계획 없이 돈을 쓰다가, 생각 없이 돈을 빌리며, 돈을 갚을 때가 되면 대책 없이 거짓말을 해댄다. 도망치는 빚쟁이를 잡아놓으면 하는 소리가 백이면 백 ‘돈 나올 데가 있다’는 것이다.

알톤이 누런 이를 드러냈다.

“돈이 나올 곳이 있는데 그동안 왜 그 고생을 했나? 레이스터에 손 벌리면 삼십 골드 쯤은 돈도 아니잖나.”

타당한 질문이었다.

라울은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직 한 번도 그 분을 뵌 적은 없어. 어머니께서 생전에 말씀해주신 게 전부라 내가 찾아가도 돈을 내어주실지 확신이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확신이 생기셨다? 라울, 미안하지만 우린 가능성만으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알톤이 다시 도끼를 뽑아내려 하자 라울이 황급히 외쳤다.

“그, 그래도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하면 숙부님이 인정을 베풀어 주실 거야! 대상회 주인의 조카가 삼십 골드에 손목이 잘린다면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될 테니까!”

오호라?

듣고 보니 옳은 소리 같기도 하다.

레이스터는 왕국 내에서, 아니 제국까지 포함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영향력이 큰 상회다.

그런 곳의 주인이 그롬 레이스터다. 그롬의 조카가 어머니의 치료비로 쓴 삼십 골드를 갚지 못해 손을 잃는다면 그롬이나 상회를 향하는 시선이 분명 곱지는 않을 터였다.

대상회 레이스터를 이긴 고리대금업자 알톤 바그너!

레이스터 상회 입장에서는 진위여부를 떠나 소문의 존재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알톤 입장에서도 빚쟁이의 손목을 잘라 빚을 탕감하는 것보다는 시간을 좀 투자해서라도 삼십 골드를 온전히 다 받아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다행히 에일린은 그리 먼 도시가 아니다.

말을 타고 서두른다면 삼일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잠시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저울질을 해보던 알톤이 그루터기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좋아, 믿어보지.”

알톤의 지시에 따라 라울을 포박하고 있던 두 거구들도 물러났다. 압박에서 풀려난 라울은 한숨 돌리려다가 알톤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미는 통에 움찔하며 목을 뒤로 뺐다.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한다, 라울. 그리고 만약에… 한 번만 더 네 놈이 내 신뢰를 저버리는 짓을 한다면 그 때는 맹세하건데 네 놈의 사지를 토막내서 에일린 앞바다에 던져 놓고 올 거다.”

알톤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라울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톤은 한참동안 라울을 씹어 먹을 듯 노려보다가 손짓으로 거구 하나를 불러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갔다. 알톤이 거구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라울은 슬며시 일어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천천히 목과 어깨를 풀었다.

아마도 알톤은 지금 자신이 에일린에 다녀오는 동안 부하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알톤, 네가 에일린에 갈 일은 없을 거다.

왜냐고?

그 곳엔 내 숙부가 없거든.

라울과 라울의 옆을 지키고 있던 거구의 시선이 마주쳤다.

기회는 한 번 뿐!

라울을 고작 한 명이 지키게 만든 것은 알톤의 실수였다.

그동안 워낙 고분고분하게 지내왔기에 라울을 우습게 본 것이다.

비록 지금은 술 배 나온 아저씨에 불과했지만 십 몇 년 전만 해도 라울은 장래가 기대되는 기사 수련생이었다. 그리고 그 때 몸과 머리에 새긴 가르침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적을 가장 쉽게 이기는 방법은 내가 적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

라울의 주먹이 거구의 턱에 꽂혔다.

‘퍽’

주먹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라울이 작은 편이 아닌데도 라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가 단 일격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알톤과 또 한 명의 부하가 그 장면을 목격한 것은 이미 라울이 어둠 속을 향해 전력 질주를 시작한 뒤였다.

“이 자식이!”

“잡아!”

알톤과 부하가 맹렬한 기세로 라울의 뒤를 쫓았다.

“라울 이 개새끼야! 너 거기 안 서?”

“이리와, 이 새끼야!”

“너희 같으면 서겠냐? 이 미친놈들아!”

알톤 일행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달렸지만, 라울과의 거리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격차가 벌어졌다. 기사 수련생 시절부터 다른 건 몰라도 달리기 하나만큼은 최고였던 라울이다.

라울은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뛰다 지친 알톤과 부하는 숨을 헉헉거리며 라울이 사라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알톤의 두 눈이 붉게 충혈됐다.

“애들 전부 풀어라. 저 새끼 무조건 잡아와.”

“형님… 저 놈 잡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알톤은 입을 다물었다.

겉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지만 일단 알톤도 사람이다.

돈 때문에 함부로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사람을 죽이는 게 꺼림칙하기도 하거니와 그 외의 다른 방법들보다 훨씬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자신을 농락하고 달아났을 뿐만 아니라 부하까지 다쳤다.

이 일이 소문나면 조직은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

“물론.”

소문을 싫어하는 건 레이스터 상회만이 아니었다.

“죽여야지.”

알톤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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