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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혼 님의 서재입니다.

패왕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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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혼
작품등록일 :
2011.04.24 01:17
최근연재일 :
2014.08.28 20:04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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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73
추천수 :
671
글자수 :
16,488

작성
14.08.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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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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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글자
9쪽

패왕을 보았다 2. 후회 (1)

DUMMY

2. 후회




라울은 인적 드문 밤길을 혼자 망연자실 걸었다.

결국 도박으로 가진 돈 전부를 날렸다.

집요한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집까지 팔아 마련한 돈이었다.

“내 돈이… 내 피 같은 돈이… .”

집을 판 돈과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합치니 삼 골드가 조금 넘었다. 적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 돈으로는 진 빚의 이자 밖에 갚을 수 없었다.

라울이 진 빚은 무려 삼십 골드.

원금을 다 갚지 못하면 이자는 다시 생긴다.

라울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악순환을 끊고 싶었다.

지긋지긋한 상황에서 벗어나 화려하게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쉽게 돈을 불려보려 했던 것이 그만….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린 라울은 길가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행운의 여신은 항상 마지막에 라울을 외면했다.

기사 수업을 받을 때도 그랬다.

어렸을 적 라울은 타고난 신체 조건을 인정받아, 영주님의 추천으로 타지의 명문가에 들어가 기사 수업을 받았다. 라울 같은 평민에겐 흔치 않은 기회였다.

난다 긴다 하는 수련생들이 많아 처음부터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했고, 재력이 겸비된 노력은 서서히 결실을 맺어 동기들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아마 몇 년 뒤에는 기사, 아니 그보다 더 높은 곳도 꿈만은 아니었을 터였다.

그러나 칠년의 수업과정 중 오년 째에 접어들었을 무렵 고향으로부터 홀로 계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라울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기사 수업을 중단하고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보살피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빈손으로 돌아온 라울에게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 쓴 약 값과 의원, 신관, 마법사들의 치료비는 별다른 차도도 없이 막대한 빚만을 남겼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라울은 빚을 갚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돈은 전혀 모이지 않았다.

영주님의 추천으로 들어갔던 기사 수업을 제 발로 박차고 나온 터라 영주님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영지의 요직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그동안 달리 기술을 배웠던 것도 아니라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푼돈에 허드렛일을 돕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원금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버는 돈은 족족 이자를 갚는데 다 나갔다.

그러기를 십여 년 어느덧 나이 서른이 되었다.

기사가 되겠다는 꿈은 진즉에 사라졌다.

몸도 예전만 못했다.

애초에 별로 가진 것도 없었지마는 이제는 정말 꿈도 희망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울컥하고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눈시울이 붉어져 얼굴을 가렸지만 손바닥으로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도 본인 신세가 처량해 고개를 떨구고 숨죽여 흐느꼈다. 몇몇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근처를 지나갔으나 라울은 개의치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형씨 괜찮으신가?”

누군가 다정스레 어깨를 짚었다.

세상만사가 다 덧없고 귀찮기만 한 라울은 고개를 들어보지도 않고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신경 쓰지 말고 가보란 뜻이었다. 그러나 어깨에 얹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괜찮소?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난 괜찮으니 상관 말고 갈 길 가시오.”

라울이 힘없이 말하며 어깨에 얹힌 손을 툭툭 쳤다.

손 좀 치워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웬만큼 눈치 없는 작자도 이만하면 알아서 움직여줄만 한데 웬걸 두꺼비 같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깨를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라울은 뜻밖의 통증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이걸 어쩌나? 댁은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는 전혀 괜찮지가 않으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익숙한 만큼 지겨운, 지겹도록 끈질긴 얼굴이었다.

“알톤?”

알톤 바그너.

라울은 달빛이 어스름한 밤중에도 어깨를 쥐고 있는 사내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봤다.

군인을 연상시키는 짧은 머리카락과 이마 한 귀퉁이에 비스듬히 자리 잡은 칼자국.

십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닦달해온 고리대금업자의 얼굴을 어찌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알톤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 우습게도 라울의 머릿속에는 든 생각은 십년동안 이놈도 참 많이 늙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십년 전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이마의 주름이나 눈가의 잔주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알톤은 라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실 라울의 생각 따윈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고, 그 방법은 주로 빌려준 돈을 두둑한 이자와 함께 몇 배로 불려서 뜯어내는 것이었다.

알톤은 그 일을 제법 잘했다.

험악한 얼굴과 장사 같은 힘을 제외하고서도 그에게는 돈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숨긴 돈은 찾아서 뺐고, 없는 돈은 만들어서 뺏었다.

그런 재능이 말하고 있었다.

눈앞의 이놈, 라울이란 빌어먹을 개새끼는 이제 정말 땡전 한 푼 없는 거지 중에 상거지라고.

그러니 알톤의 표정이 좋을 수가 있나.

그렇지 않아도 험상궂은 얼굴이 더욱더 일그러졌다.

“라울… 니가 기사가 되면 한 몫 챙겨준다는 말에 담보도 없이 거금을 빌려줬다. 그런데 지금 내 돈은 어디 있지?”

라울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이 사기꾼 자식이 뚫린 입이라고!

진심으로 억울했다.

십 년 동안 다달이 알톤에게 갚은 이자는 모르긴 몰라도 아마 원금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 정도면 돈을 빌린 자의 의무는 충분히 다했다 말할 수 있다.

욕지기를 내뱉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알톤 양 옆에는 우람한 덩치의 거구가 두 명 더 서 있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라울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라울의 억울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톤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안타깝지만 이제 내 인내심도 한계다. 남의 돈을 빌려갔으면 갚아야지. 갚지 않으면 그건 빌린 게 아니야, 도둑질이지. 남의 것을 훔쳐갔으면 당연히 그에 맞는 벌을 받아야하지 않겠나?”

알톤의 턱짓에 두 거구가 라울을 일으켜 세웠다.

“자, 잠깐만! 이거 왜 이래?”

라울이 발버둥 쳤으나 좌우를 둘러싼 거구 두 사람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물론 기사 수업을 받던 시절의 라울이었다면 장정 세 명쯤은 순식간에 해치우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톤처럼 라울도 많이 늙었다. 검을 놓은 지도 오래 됐고, 술로 괴로움을 달래느라 뱃살도 많이 늘었다. 이미 십년 전의 라울이 아니었다. 세월은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는 것이다.

두 거구는 가까운 나무 그루터기 근처로 라울을 끌고 가 오른손을 그 위에 올렸다.

“살인자는 목을 베고 도둑은 손목을 자른다. 법대로 하는 것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마라.”

“뭐라고?”

라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같았으면 몇 대 쥐어박고 보내줬을 텐데, 알톤의 눈빛을 보아하니 오늘은 단순한 협박으로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아마도 집을 포함해 가진 재산을 몽땅 도박으로 날린 것이 알톤의 귀에 들어갔고 그게 심기를 건든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도박장이 알톤 패거리의 소유였던가.

“이 꽉 물어라. 조금 아플 거다.”

알톤이 도끼를 집어 들며 미소 지었다.

그가 미소 지을 때는 무언가를 받아낼 때뿐이었다.

아쉽게도 지금 라울에게는 돈이 없다.

그러니 알톤은 여기서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반드시 가져갈 작정인 것이다.

선선한 날씨임에도 라울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라울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알톤! 알톤! 우리 이럴 필요까진 없잖나?”

“이럴 필요?”

알톤이 콧방귀를 꼈다.

“뭐, 그래. 네 말대로 이럴 필요까진 없을지도 모르지. 한데… 한데 말이다. 너처럼 돈을 갚지 않고도 멀쩡히 마을을 돌아다니는 놈이 있으면 다른 놈들도 그걸 보고 같잖은 배짱을 부리기 시작한단 말이지. 이 알톤 님의 돈은 갚지 않아도 되는 구나하고.”

알톤은 도끼를 쳐들며 음흉하게 웃었다.

“손목 하나에 삼십 골드잖나. 좋게 생각하라고. 나 말고 누가 또 네 손목에 그런 거금을 매겨주겠어?”

알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이마와 목에 힘줄이 솟았다.

곧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도끼가 무자비하게 손목을 덮칠 것이다.

손은 도마 위의 생선대가리처럼 잘려나가겠지.

라울의 심장이 미친 듯 요동쳤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람이 극도로 흥분하면 머리회전이 빨라져 시간이 더디게 느껴지는 법이다.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도끼가 천천히 낙하를 시작하는 것이 라울의 눈에 들어왔다.

“잠깐!”

라울은 떨어지는 도끼를 보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잠깐! 돈 있어! 돈 있다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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