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세끝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회귀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세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20:1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1,733
추천수 :
71
글자수 :
59,613

작성
24.05.17 20:49
조회
137
추천
5
글자
12쪽

7화 - 사공염[1]

DUMMY

#7화. 마교회귀

------------


사공염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권마의 목덜미를 움켜쥐었지만, 청현은 알고 있었다. 사공염이 마음만 먹었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권마의 목숨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건 단지 검종의 무례에 대한 경고. 흔히 말하는 무력시위인 셈이다.

모든 상황을 이해한 청현은 권마와 전대 천마 사공염 사이에 무릎 꿇었다.


“사공염 어르신 모든 것은 부덕한 제 탓입니다. 저희 스승님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부디 저를 벌해주십시오.”

“훗, 권마 구자평(邱子萍). 제자 하나는 그래도 잘 키웠구나. 허나 검종의 검령담에 몸을 담은 죄는 내 쉬이 넘어갈 수 없지. 네 녀석의 목숨을 취할까? 제자의 목숨을 취할까? 골라보거라.”


사공염은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흙바닥에 떨어진 권마는 잠시 켁켁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숨을 고른 권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부, 부디 저를 벌해주십시오. 이 아이는 아직 규율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그래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했으니 그럼 네 녀석의 목숨을 거둬가마.”


사공염의 눈가에 살기가 치솟는 것을 본 청현은 자신도 모르게 양팔을 벌리고 권마의 앞을 막아섰다.


“아, 안돼!”


청현은 눈을 질끈 감았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심스레 실눈을 뜨자 껄껄거리며 웃는 사공염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내가 네 녀석의 목숨을 취했으니 이제 저 녀석은 스승이 없어진 셈이로구나 그러니 저 아해는 내가 거두도록 하마. 이견이 있나?”


권마는 분한 듯 빠드득거리는 소리를 냈으나 감히 말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어, 없습니다.”

“그래도 이별의 시간은 주도록 하지. 다음날 묘시에 검종으로 아이를 데려오거라.”

“조, 존명···.”


청현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원래 아무도 없던 것처럼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


청현은 몹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수백 년간 경험했던 정파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위선자들이었다. 청현은 권마가 자신을 벌하라고 할 줄 알았다. 인연이 닿았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악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마는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목숨으로 감싸려 했다.


그 모습이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스, 스승님···.”


권마는 잔뜩 기가 죽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저 늙은이가 억지를 부리는 걸 보니 네 녀석이 무척이나 맘에 든 모양이로구나. 청현아 우선 도종으로 가자꾸나.”

“예, 스승님.”



#



“아버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다 알면서 뭘 물어보느냐?”

“하아, 검종에 보는 눈이 한둘입니까? 그저 들리는 소문을 종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아이를 거두실 생각이십니까? 한 번만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검종에도 아버님의 가르침을 원하는 뛰어난 아이들이 많습니다.”

“흥, 하나같이 독기 충만한 녀석들만 가득하지···. 그런 녀석들은 고분고분해서 가르치는 맛이 없다. 사람 같은 맛이 없어. 그런데 정말로 네 놈이 검종의 검령담(劍靈潭)에서 목욕을 허했느냐?”

“소, 송구합니다. 권마가 늘그막에 적적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제자를 들이면 그리하겠다고 술김에 말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재고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보고 한 입으로 두말하라고 할 셈이더냐?”

“아, 아닙니다.”

“그럼 그만하거라.”


아무리 검마라하여도 전대 천마이자 아버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순 없었다. 검마는 하는 수 없지 주제를 돌렸다.


“그런데 검종에는 어찌한 일로 오셨습니까···?”

“증손녀가 잘 있나 보러 왔다.”

“그런데 듣기론 그 녀석과 배필로 생각하신다 들었습니다.”

“거기까지 들은게냐? 아마 네 녀석도 보면 마음에 들거다.”


검마는 화를 꾹 참고 말했다.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마화는 이제 겨우 열둘입니다!”

“껄껄걸.”


뭐가 그리 즐거운지 사공염은 한참을 웃었다.



#



“미안하구나. 전대 괴물이 아무래도 너를 데려가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더구나.”

“스승님. 남의 제자를 가로채다뇨? 이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강자지존(强者至尊). 천마신교에선 힘이란 곧 권력이자 법칙이니라. 불만이면 힘을 쌓거라.”


청현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정파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남의 제자를 뺏앗는다고 말했다간 비웃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제 마음속의 스승님은 권마 어르신뿐입니다.”

“지랄. 스승 할아버지라고 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어르신이야?”

“그때는 권마 스승님의 진심을 몰랐으니까요.”

“술은 좀 하느냐?”


술? 없어서 못 먹는다.


“그게···.”

“흥! 술은 원래 스승에게 배우는 것이니라. 따라오거라 오늘은 네 놈과 함께 진탕 취하고 싶구나.”

“예, 스승님.”


군침이 싹 돌았다.



#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청현은 권마와 함께 작은 오솔길을 걸었다.


“늘그막에 심심풀이로 제자나 하나 키워볼까 했더니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구나. 뭐, 다행이지. 내가 원체 누군갈 돌보는 것을 싫어해서 말이야···.”


어젯밤 술에 취했을 때와 다른 반응.

자신이 약해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노인은 이곳에 없었다.


“이번 삶에선 제 스승님으로 기억하겠습니다.”

“가소롭구나! 이번 삶이라니··· 삶이 한 번뿐이지 이번 삶이란 말이 가당키나 할까?”

“흐흐, 그건 그렇지요.”

“입만 산 징글징글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 길로 쭉 걸어가면 검종이니라.”


권마는 그 말을 남기곤 휙 등을 돌렸다.

청현은 권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권마 구자평 스승님.”

“건방지게 누가 감히 본좌의 이름을 부르느냐?”


청현은 큰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권마는 그 모습을 보곤 무언가를 숨기듯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되, 되었다. 가서 잘 먹고 잘 살거라.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예, 스승님 옥체 보전하시옵소서.”

“끌끌, 입만 살아선···.”


청현은 이미 멀찌감치 떨어진 권마의 등을 바라보며 검종의 입구로 들어갔다.


-끼이익.


체중을 실어 묵직한 나무문을 밀자 그곳에는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눈에 흐르는 스산한 살기에 청현은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였다.


“전대 천마 사공염의 제자 주청현이 검마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소문대로 참 건방진 녀석이구나. 감히 누구의 허락을 맡고 사공염의 이름을 팔아?”

“사공염 어르신이 그리 말씀하셨는데···.”


검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감히 신교에서 자신의 눈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녀석이 얼마나 될까? 당장 말해보라 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저 건방진 꼬맹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꼬박꼬박 말대꾸다.


“네 녀석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나는 허락할 수 없다.”

“아니, 사공염 스승님이 그랬는데 아니라뇨.”

“이익···.”


검마는 허리춤에 매달린 검을 금방이라도 뽑을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하거라.”


공중에서 들린 목소리.

청현은 목소리의 본테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 거렸으나 검마는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님 저 녀석이 건방지게 마화를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잘 어울리는 한 쌍 아니더냐?”

“아버님!!”


청현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검마 어르신 마화가 누구입니까?”

“뭐, 뭐?! 이런 개 잡놈의 파락호 같으니라고. 네 녀석이 알몸을 보여준 내 손녀딸 말이다.”

“아유 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그런 꼬맹이를 좋아할 것 같으세요?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뭣?! 감히 우리 손녀딸을 모욕해? 안 되겠다. 일단 넌 내 손에 죽은 줄 알 거라.”


감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살기가 몰아닥쳤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럼 좋아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러니 기운을 거두어주십시오.”

“이익 개자식이 감히 나를 놀려?”


검마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에 청현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니, 누군지 모른다니까 화내고 안 좋아한다니까 화내고 좋아한다니까 또 화내고 대체 저보고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겁니까? 저는 어린 소저에게는 흥미가 없단 말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사공염이 큰 소리로 웃었다.


“껄껄, 이것 봐라. 이러니 내가 이 녀석을 키우지 않고 못 배기지. 신교를 다 뒤져보거라 어디서 이런 걸출한 인물을 찾을 수 있겠느냐?”

“아버님 이건 인물이 아니고 그냥 싹수가 없고 무식한 겁니다. 배움이 없으니 그저 막말을 내뱉는 것뿐이잖습니까? 천자문도 제대로 못 뗐을 녀석을 제자로 받아들인다니···, 신교에 누가 될까 걱정입니다.”


청현은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천자문이라니,

사람을 뭐로 보고···.


대부분의 삶을 무(武)에 힘을 쏟아서 그렇지 다섯 번째 삶에선 소학(小學)과 대학(大學)은 물론 논어(論語), 중용(中庸), 서경(書經)을 비롯한 사서삼경(四書三經)까지 전부 달달 외운 몸이다.


“무식이라뇨. 이래 봬도 소싯적엔 책 꽤나 읽은 몸입니다.”

“푸하하하핫. 아버님 이거 들으셨습니까? 아버님 말씀대로 정말 웃기는 놈입니다.”

“내가 그러지 않았느냐? 데리고 다니면 적적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버님 그러지 마시고 딱 칠주야만 저에게 빌려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보니 이 녀석은 좀 맞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이지요.”


누가봐도 진심 가득한 말이었기에 청현은 재빨리 입을 놀렸다.


“사서삼경 제 7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盡心章句下)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진 마음이 있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참지 못하시고 저를 못살게 구시려는 겁니까?(人皆有所不忍 達之於其所忍 仁也)”


멋들어진 문자를 내뱉자 검마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청현은 당혹에 물든 검마의 얼굴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른 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사람이라면 항상 자신에게 부족한 것에 경외와 질투심을 느끼기 마련이.


“뭐, 뭐···. 문장 하나만 어떻게 외운 모양이구나.”


어설프면 질투가 되지만, 그것이 압도적일 때는 경외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저의 공부를 인정해주지 않고 왜 아까부터 업신여기기만 하십니까?(恭者 不侮人 儉者 不奪人) 저는 물건이 아닌 사공염 스승님의 제자로서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멋들어진 말로 찍어누르자 검마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눠봤자 본인만 손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무룡 이 녀석아! 그러게 기강을 잡긴 무슨 기강을 잡는다고 그러느냐? 오히려 잡힌 건 네 녀석이 아니더냐? 껄껄껄, 내 어찌 이 꼬락서니를 보고 웃

지 않을 수가 있을꼬? 것 봐라 이놈 이거 물건이지 않으냐?”

“끄응···, 뭐, 책은 조금 읽은 모양이군요.”

“장난은 그만하거라 내 친히 녀석을 천종으로 데려가마.”


검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아버님!!”

“껄껄, 좋구나. 청현아 따라오려무나.”


청현은 검마를 지나쳐 사공염의 뒤를 따랐다.

하루아침에 스승이 바뀌었지만, 청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조아렸다.


“예, 스승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교회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는 비정기입니다. 24.05.16 69 0 -
11 11화 - 흑천무원[2] +2 24.05.28 122 6 13쪽
10 10화 - 흑천무원[1] 24.05.25 102 4 13쪽
9 9화 - 사공염[3] 24.05.22 105 6 15쪽
8 8화 - 사공염[2] +1 24.05.20 114 6 15쪽
» 7화 - 사공염[1] +1 24.05.17 138 5 12쪽
6 6화 - 권마[3] 24.05.15 154 8 12쪽
5 5화 - 권마[2] 24.05.14 152 6 12쪽
4 4화 - 권마[1] 24.05.13 151 5 12쪽
3 3화 - 모용후 24.05.10 183 8 13쪽
2 2화 - 주대광 24.05.09 238 9 14쪽
1 1화 - 프롤로그 24.05.08 273 8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