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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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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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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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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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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3쪽

3화 - 모용후

DUMMY

#3화. 마교회귀

------------


주대광은 방 표두를 바라보며 잔뜩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우? 분명 내 아우라고 했소?”


목소리에 짙게 깔린 살기.

백현은 무언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더욱 냉정해야 하는 법이다. 근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찾기가 더 어렵다. 대 문파는 물론이고 이름 모를 중소 문파 또한 셀 수 없이 겪었다.


그뿐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약초꾼, 의원, 대장간은 물론 온갖 마을을 돌아다니는 돌팔이 약장수의 뒤를 따르기도 했다.

십년하수오의 향이 스쳐 지나간 가짜 영약(靈藥)을 팔아치우기 위해 쓰디쓴 독주를 머금고 불을 내뿜었다. 때로는 저잣거리의 넓은 공터에서 능청스러운 연기(演技)를 펼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예인(藝人), 이야기꾼인 변사(辯士) 생활까지 이어나갔다.


백현의 직감이 맹렬하게 경고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눈물. 그러나 굳건한 부동심으로 인해 감정이 흔들리지 않았다. 백현은 닳아빠진 감정을 잡기 위해 부드러운 안쪽 허벅지를 검지와 엄지로 세게 움켜쥐었다.


찔끔!

다행히도 어린 몸뚱이는 육체적 고통에 쉽게 반응을 보였다.

얼마나 세게 꼬집었는지 7주야는 피멍이 들 것이 분명했다. 백현은 표두가 소개하기도 전에 잽싸게 앞으로 튀어 나가 큰대자로 엎드렸다.


“아이고 형님!”

“···.”


긴 앞 머리칼 사이로 주대광의 얼굴을 보니 당혹으로 물든 것이 보였다. 백현은 그가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하게 재빨리 입을 털었다.


“본 아우 섬서에서 부모님을 여의고 형님에 대한 소문을 유언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주대광의 눈에 차가운 살기가 스며들었다.


“유언? 그게 무슨 말이냐? 바른대로 말해 보거라!”


정보가 더 필요했다.

백현은 잠시 눈물을 쥐어짜며 정보들을 억지로 끌어모았다.

주대광은 청성파의 고수를 처치하면서 하필 관(官)에서 일하는 중급 관리까지 베어 넘겼다. 그 덕에 운현 장로에게 목이 베인 주대광의 수급을 관에서 회수해 갔다. 불가침 조약을 어기고 관에 개입했다는 이유에서다. 하필 중급 관리가 공주의 남편인 부마도위(駙馬都尉)의 먼 친척이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당대 황제는 주대광의 몸을 능지처참하여 동쪽 미앙궁(未央宮) 외성에 걸어놓았다.


정마대전 때 밝혀진 일화지만, 마교는 5세에서 7세 아이를 납치해 어릴 때부터 교육했다. 끝으로 주대광은 자신보다 7살이 더 많다.


주어진 정보는 이게 전부.

남은 것은 기세뿐이다.

호랑이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보인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예, 바른대로 고하겠습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형님이 하나 있는데 10년 전 실종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섬서를 지나가는 형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시더군요. 실종된 형이라고 확신한 부모님께서는 있는 돈 없는 돈을 전부 털어 모아 하오문을 통해 정보를 사들이셨습니다. 그 결과 수라대의 3조장 주대광 대협의 이름을 전해 들을 수 있었지요.”


주대광의 눈빛이 흔들렸다.


“즈, 증거가 있느냐?”


그딴 게 있을 리가!

그러나 필사적으로 기억의 끈을 잡아당겼다.

때마침 미앙궁 외성에 매달린 주대광의 시체가 떠올랐다. 분명 그의 엉덩이에는 커다란 점이 나 있었다.


“저희 어머니께서 형님의 엉덩이에 커다란 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풉, 내 엉덩이에···?”


주대광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입꼬리가 바르르 떨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은 못 하는 얼굴이었다.


“부,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느냐?”

“안타깝게도 3년 전 전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주대광은 허리춤에 매달린 칼을 뽑아 백현에게 내밀었다.

살기 어린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어떤 녀석들이 그랬는지 혹시 아느냐?”


지어낸 말에 누군지 알 수 있을 리가···. 그러나 친해지기 위해선 공통점을 만드는 것이 좋았다.


“바로 관에서 나온 병사들입니다.”

“관군? 이 빌어먹을 놈들이 감히···.”


백현은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혀, 형님 믿어주시는 겁니까?”

“당연한 말을 하는군. 아우의 헌양한 외모를 보곤 내 어릴 적 모습을 바로 떠올렸다네.”


주대광의 외모는 굉장히 험악한 편이었다.


“아, 예···.”

“이리 오게.”


쭈뼛대는 발걸음으로 다가가자, 주대광은 몸이 바스러지도록 꽉 끌어안았다.

잠깐이지만 세상이 어두워졌다.


“커헉! 혀, 형님 숨이···.”


이후는 순탄했다.

주대광은 백현을 아우로 생각하며 온갖 정보를 털어놓았다. 흑마표국의 사람들 또한 더욱 극진히 대접했다.


삼 일째 되던 밤.

주대광은 넌지시 백현을 불러세웠다.


“백현아···.”

“예, 형님. 말씀하시지요.”

“아우를 만난 즐거움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군. 나는 흑마표국을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비교적 위험한 임무다 보니 함께 할 순 없겠어. 아쉽지만 이만 헤어져야겠다.”


일이 풀려도 이렇게 잘 풀릴 줄이야.

백현은 속마음을 숨긴 채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 언제 또 형님을 뵐 수 있는 겁니까?”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것을 약속하지.”

“알겠습니다. 형님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주대광이 백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심히 부담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문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공자님 기침하셨습니까?”


눈을 뜬 백현은 깜짝 놀랐다.

같은 방을 썼던 주대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주대광이 먼저 잠든 것을 확인했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몸이 되었다고 한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니···.

더욱 놀라운 점은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는 것이었다. 영약을 먹은 기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단 하나. 격체전공(隔體傳功)의 수법으로 혈맥을 넓혀주었거나 추궁과혈(推宮過穴)로 진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 것이 틀림없었다.


주대광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무리 혈육이라 한들 내공과 정신력이 상당히 소모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가부좌를 틀고 내공을 일주천시키고 싶었으나 참기로 했다. 마인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이상 정파의 내공심법은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문밖으로 나가니 허리춤에 녹슨 철검을 멘 표사가 살갑게 웃었다.


“육 표사님 다른 분들은 어디에···.”

“흐흐, 앞으로는 육형이라 불러주십시오. 다들 새벽 표행을 떠났습니다.”


그 말에 주대광 또한 함께 이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백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육형.”

“공자님 청해호에 가려면 부지런히 이동해야 합니다. 제가 편히 모시겠습니다.”

“예?”


청해호?

그거 은어 아니었나?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었다.


#


눈앞에 놓인 커다란 물체.


“유, 육형···, 이게 대체···.”


육형은 구레나룻부터 턱까지 자란 수염을 벅벅 긁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흐흐, 편하게 모시기 위해 힘 좀 썼습니다.”


육형이 가져온 것은 무려 두 마리 말이 끄는 쌍두마차였다. 창문과 천장에 수놓은 오색찬란한 금실을 보니 고위 대관이나 세가의 금지옥엽들이나 타고 다닐법한 모습이었다.


마차를 본 적은 많다.

표국에서 중요 인물을 호위할 때도 종종 애용했다. 그러나 수백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마차에 타본 적은 없었다. 기회야 있었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마차 안은 적의 공격에 무방비하기 때문이다. 허나 어차피 무방비한 몸 상태였기에 마차에 올라타기로 했다.


육형은 능숙한 솜씨로 말을 몰았다.

이런 마차는 어지간한 장원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몰랐는데 주대광은 꽤나 부자였던 모양이었다.


“공자는 마차를 처음 타보십니까?”

“예, 짐차는 몇 번 타봤지만···, 황족도 아니고 마차를 탈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혹시 저를 위해 구매하신 겁니까?”

“하하, 대여입니다. 원래는 역마를 빌리려 했는데 청해호까지 가는 마차가 워낙 싼 값에 나와서 말입니다.”

“아, 대여···.”


김이 팍 식어버렸다.

커다란 마을마다 설치된 역참(驛站)에선 역마(驛馬)라 불리는 말을 저렴한 가격으로 빌릴 수 있다. 본디 고위 관리나 장군들이 관마(官馬)를 대여하는 용도로 사용했으나 수요가 늘어나면서 돈만 내면 무림인들도 말과 마치를 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쌍두마차의 위용일까?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별의별 시정잡배들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흐흐,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마차에 타고 있는 소저의 용안을 견식 할 기회를 주겠소?”


그럴 때마다 육형은 본인의 녹슨 검을 뽑으며 단단히 으름장 놓았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본좌의 적혈검을 맛보여 주마.”

“히익···, 무림인? 대, 대협 아닙니다.”


부랑배가 물러나자 백현이 말했다.


“육형 이거 마차가 너무 시선을 끄는 거 아닙니까? 그냥 다시 돌아가 반납하죠.”

“흐흐, 공자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것을 즐겨보시겠습니까? 저만 믿으시지요.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즐기는 것은 오히려 육형 같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시정잡배들 따위야 문제 될 것이 없었으나 사건은 난주를 벗어난 이름 모를 산자락에서 터졌다.


“으하하하! 화려한 금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소. 나는 장흥산의 터줏대감이자 장흥산채의 부두목 장수덕이라 하오. 부디 아리따운 소저의 화용(花容)을 견식 할 기회를 줄 수 있겠소?”

“크흐~ 역시 우리 부두목! 약관에 천자문을 뗐다고 하시더니 아주 그냥 교양이 철철 넘치십니다.”


마차 내부 창에는 대나무 발이 설치되어 있었다.

근본적인 목적은 태양을 막기 위함이지만, 밖에서 안을 잘 보지 못하게 하는 용도도 함께했다. 대나무 발 틈으로 창밖을 보니 마차는 순식간에 산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 산적 놈들! 감히 마차에 탄 분이 누군지 알고 길을 막느냐?!”


육형은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지만, 산적들은 가소롭다는 듯 킬킬댈 뿐이었다.


“한번 말해보시오. 대체 누구길래 그러시오?”

“이노오오옴···.”


마차에서 내린 육형은 예의 그 적혈검을 뽑았으나 함부로 덤벼들지 못했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두 번째 삶에서 이류 고수로 생을 마감했으나 이류 고수는 절대 흔한 것이 아니다. 진득하게 10년 이상 운기조식을 해야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바로 이류다. 대도시가 아닌 이상에야 사실 이류 고수만 되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정도다.

육형은 이류 고수다.

그것도 거의 일류에 근접한 이류다.

산적 대부분은 삼류였지만, 부두목의 경지는 육형과 거의 비슷한 이류였다.

삼류가 아무리 많아도 일류 고수를 죽이긴 어렵다. 그러나 이류 고수까지는 어떻게든 죽일 수 있는 법이다. 상대방이 쪽수로 밀어붙인다면 이건 육형에게도 불리한 싸움이었다.


“흐흐흐 얼마나 비싼 얼굴인지 확인해 볼까?”


전투를 합류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그 더러운 손 치우지 못할까?”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창문에 새빨간 피가 튀었다.


“끄아아악 내 손이···.”


애처로운 비명에 산적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누구냐!”


부두목의 외침에 정체 모를 녀석은 자신의 정체를 당당히 밝혔다.


“감히 벌건 대낮에 소저를 핍박하다니 대 모용세가(慕容世家)의 모용후가 용서치 않으리라!”


산적들은 자신을 오대세가의 일원으로 소개한 인물에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모, 모용세가?”


어찌 요녕에 있는 모용세가의 일원이 감숙에서 돌아다니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 한마디에 산적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백현은 모용후라는 말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모용가의 셋째아들 모용후는 올곧은 심성과 품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며 추후 백대 검객으로 추앙받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일격으로 산적을 쫓아낸 모용후는 마차의 창문 옆으로 다가와 느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십시오. 소저···, 저는 모용세가(慕容世家)의 모용후라 합니다. 사해가 동도라 하였고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습니까?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겠으나 잠시 길벗을 청해도 되겠소이까?”


공짜로 호위무사를 해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마차 내부에 있던 대나무 발을 젖혀 얼굴을 마주하자 모용후가 흠칫 놀라 외쳤다.


“어멋,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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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화 - 프롤로그 24.05.08 273 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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