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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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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20:11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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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9,613

작성
24.05.15 23:35
조회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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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6화 - 권마[3]

DUMMY

#6화. 마교회귀

------------


“실로 하늘이 내린 천재로다···.”


권마는 신음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동안 키운 직전 제자만 수십이다.

특히 마교에 있는 전문 교육기관 흑천무원(黑天武院)에서 가르친 제자의 수까지 합치면 수백이 넘는다.


사실 완전히 간자라는 의심을 지운 것은 아니다. 실제 간자로 의심되는 정파의 끄나풀을 몇 차례 잡아 본 적도 몇 차례 있었다.

허나 녀석은 달랐다.

간자는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하며 마교의 정보를 캐내려 애쓰기 마련이다. 그러나 녀석은 당장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는 녀석처럼 행동했다.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옆에 두고 지켜봤다.

한번은 자신의 독문무공을 눈앞에서 펼쳐보았다. 그러나 이 건방진 녀석은 평상에 드러누워 태평하게 잠을 잘 뿐이었다.


결국 간자라는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녀석은 그냥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미안함에 천마심법을 알려주었다.

물론 완벽한 구결을 알려준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지식을 총망라해 이론으로만 구상하던 심법과 결합해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일러주었다.


그러나.


“대, 대체 이게 무슨···.”


권마는 손수 진기를 유도했다.

천재라 부르는 녀석들도 보통은 칠주야에 걸쳐 가까스로 진기를 움직일 뿐이다.

고작 단 한 번.

그 한 번의 움직임을 기억한 청현은 스스로 기를 움직여 일주천을 시작했다.

권마는 맹세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내공이 없다는 것은 진즉에 확인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내공심법을 배운 적이 없는 몸뚱이다.


입문기에는 기초적인 호흡법과 자세로 기를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허나 녀석은 단전호흡을 통해 체내의 기운을 돌리는 기해행주(氣海行周) 단계를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로 순환하고 있었다.


새롭게 세상에 태어난 닭의 새끼가 본능적으로 두 발로 걷는 것처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자연스레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주천 된 기운은 작은 구의 모양을 형성하더니 단전과 심장에 각각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녀석이 무공을 배우기에 최적화된 근골을 타고난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공은 전혀 다르다. 수련하는 만큼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대결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하며 오랜기간 부단한 노력까지 곁들여야 한다.


허허,

천재,

진짜 천재가 나타났구나!


권마는 청현이 눈을 뜰 때까지 조용히 곁을 지켜주었다.



#



조심스레 눈을 뜨자 하마터면 토악질을 내뱉을 뻔했다. 열심히 입을 털어 마구간지기로부터 깨끗한 의복을 얻었다. 그러나 어느새 심각한 악취로 물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렸느냐?”


청현은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그러다 볼썽사납게 다리가 풀려 땅에 엎어지고 말았다.


가볍게 몸을 관조하고 기운만 맛보려 했다.

허나 너무 오랜 기간 참아왔던 탓일까?

한번 시작된 일주천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순환을 시작했다. 막힌 댐이 물꼬를 틀듯 콸콸 넘쳐흐르는 기운이 계속해서 막힌 혈도를 두들기고 관통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미 지나온 길이기에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주대광의 선천진기로 인해 넘쳐나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기운을 느껴보니 뱃속에 자리 잡은 단전이 또렷이 느껴졌다.


망했다!!

세상에 어떤 인간이 한 번의 일주천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청현은 다시 고문실로 끌려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손발톱은 기본, 어쩌면 거죽까지 모조리 벗겨 소금에 절여질지도 몰랐다.


“괜찮으냐?”


그러나 예상과 달리 권마는 손주를 바라보는 듯한 따듯한 눈빛으로 부축해주었다.

청현은 계속 시치미를 떼기로 했다.


“으윽, 스승 할아버지 바지에 똥 싸셨어요? 어디서 구린내가···.”

“허허 그래, 똥을 쌌지. 아주 큰 똥을 말이야. 내 얼마 전에 큰 똥을 밟는 꿈을 꾸었는데 그게 오늘을 뜻하는 길몽이었구나!”


권마는 허공섭물의 묘리를 이용해 청현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곤 무시무시한 속도로 이동했다.


1각쯤 이동한 권마는 커다란 암석 위에 멈춰 섰다. 간혹 빈속에 말을 타면 어지러움이 느껴지곤 했는데 딱 그런 기분이었다.


“우웁.”


청현은 헛구역질했으나 누런 위액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단 좀 씻거라.”


권마는 그대로 청현을 집어 던졌다.

청현은 잠시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며 첨벙 소리와 함께 허우적거렸다.


“으, 으악! 사람 살려!”

“엠병···, 지랄 말고 깨끗이 씻고 나오거라. 일다경 뒤에 다시 오마.”


순식간에 사라진 권마를 보며 청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무릎 높이밖에 오지 않는 냇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탓이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권마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기감이 발달한 지금. 청현은 누군가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천산에 자리 잡은 마교.

항상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그랬기에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주대광 형님···, 대체 언제 오십니까. 보고 싶습니다.”


말을 내뱉자마자 소름이 돋았지만, 그래도 나름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철벅


할 일은 하나뿐.

이왕 씻는 김에 의복까지 깨끗이 빨래했다. 그러나 아쉽다.


“아니 팥가루로 만든 비루(飛陋)라도 좀 주고 가지···. 때가 더럽게 안 빠지네.”


그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거, 거기 누구 있어요?”


수풀을 헤치고 나온 것은 열두 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꺄악!”


청현은 어이없는 눈동자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린 소녀는 부끄러운 듯 손가락으로 눈을 가렸지만, 손 틈이 너무나도 벌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청현은 담담히 대꾸했다. 물론 빨랫감으로 소중한 부위를 가리는 걸 잊지 않았다.


“누구냐 넌?”

“소, 소저 검종(劍宗)에 기거하는 사마화라고 해요. 소협은 누구신가요?”

“본좌는 도종에 머무는 주청현이라고 한다.”

“아앗! 기원(基源)에서 그 소문은 들었어요. 그런데 어찌 도종의 후계자가 검종에서 몸을 씻고 계시는 거죠?”


이럴 때는 역시 이름을 파는 게 최고다.


“권마 스승님이 여기서 씻으라고 하던데?”

“아무리 장로님이 그러셨다고 한들 이건 명백한 규율의 위반이에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뭍으로 이동하자 사마화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나 옷 입을 건데 계속 훔쳐보게?”

“누, 누가 훔쳐봤다는 거예요!!”


사마화는 빼액 소리를 질렀으나 등을 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감히 검마 할아버지의 허락 없이 이곳에 드나들다니···, 권마 어르신이어도 이건 명백한 규율 위반이라고요!”

“다른 규율은 없나?”

“무슨 규율이요?”

“소저가 남자의 몸을 훔쳐보면 안 된다는 규율 같은 거?”

“머, 멋대로 검종의 검령담(劍靈潭)에 발을 들이고선 그게 무슨 망발이죠?”


어린 소저를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아니 망발이라니 아무리 그래도 권마 스승님께 말이 심하네?”

“에엑?! 궈, 권마 어르신께 그리 말씀한 건 아니에요오.”


작은 팔다리를 휘적대며 허둥대는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런데 기원(基源)이 뭐냐?”


질문을 던졌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되었다. 마화는 그만 들어가보거라.”

“?!”

“예.”


권마가 청현을 내던진 커다란 암석 위에는 새카만 장삼을 휘날리는 한 중년인이 서 있었다.

감히 경지를 측정할 수 없는 수위.

이건 둘 중에 하나다.

내공이 아예 없거나 이미 환골탈태를 마치고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뜻.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실력자다. 이전 경지를 되찾는다고 한들 쉽게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고수를 마주한 청현은 조심스레 포권을 올렸다.


“권마 스승님의 제자 주청현이 검종의 주인을 뵙습니다.”


중년인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기원은 우리 검종에서 운영하는 교육기관이네. 15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거나 천자문 따위를 알려주지. 소협은 누구길래 검종의 신성한 검령담에서 감히 목욕하고 있던 겐가?”


다행히 마교의 장로이자 아홉 고수 중에 으뜸이라는 검마가 맞는 모양이었다. 말은 순하게 했지만, 청현은 분노를 꾹 눌러 담고 있는 속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허나 검마가 사마화와 나눈 대화를 듣지 못했을까? 청현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검마라는 인간도 어차피 반로환동을 거쳤을 노인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노인이란 것들은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항상 세상을 달관한 척 젠체하지만, 속은 어린아이처럼 경박하고 매사 인정받길 원하는 족속들이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노인네가 모른 척을 한다는 건 언행을 통해 상대방의 됨됨이를 파악한다는 뜻.


“저는 이곳이 검종의 소중한 곳인지 몰랐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제 죄가 씻겨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 목숨으로 갚아야 하는 것이 응당 옳겠지만, 구배지례를 올린 몸이기에 제 목숨은 스승님이 결정지어야 함이 옳은 줄 압니다. 넓은 아량으로 허해주신다면 이 죄는 제가 약관(弱冠)이 되었을 때 그 어떤 불합리한 조건에도 목숨을 걸고 이행하는 거로 대신하면 안 되겠습니까?”


최대한 정중하게.

그러면서도 스승까지 권위를 챙겼다.

얕보이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존중과 배포까지 품는 화술에 검마가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이거 도종에 인물이 하나 들어왔구나. 이거 졸수(卒壽)를 넘어 웃어본 적이 언젠지도 기억나지 않는군. 그래! 그럼, 네 죄를 네 스스로가 알렸다? 귀하디귀한 검령담의 물로 몸을 씻었으니 이 기회에 아예 검종에 몸을 담는 것은 어떠냐?”


청현은 졸수라는 말에 소름이 돋았다.

정마대전 당시 검마의 나이가 여든이라는 산수(傘壽)를 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구십 세가 넘었다는 것은 짚어도 크게 잘못 짚었다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청현은 큰대자로 넙죽 엎드렸다.


“송구합니다. 감히 제가 세 치 혀를 놀렸습니다. 워낙 젊으셔서 검마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부친 되십니까?”

“눈치가 아주 제법이구나. 볼수록 탐이나. 영민한 것이 우리 마화랑 아주 잘 어울리겠어.”


청현이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때였다.


“원로회의 계주(契主)이자 검마 사무룡(司舞龍)의 춘부장(椿府丈)을 뵙습니다.”


싸움닭처럼 항상 고개를 꼿꼿이 펴고 다니던 권마가 머리를 허리까지 숙이며 정중한 포권을 올렸다.


“말세야. 사천성 성도에서 쌈박질만 하고 다니던 어린 천둥벌거숭이가 장로가 되었다니.”


젊은 청년이 수염이 희끄무레한 할아버지에게 훈계를 내리고 있었으나 권마는 굽힌 허리를 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 사무룡이 저에게 제자가 생기면 검령담에서 목욕을 시켜주겠다고 약조하는 바람에···.”

“노부 앞에서 거짓말인가?”


섬뜩한 기운이 발현되었다고 느낀 순간.

보이지 않는 손에 움켜쥔 듯 권마의 목덜미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권마의 발이 둥둥 공중에 떠올랐다.

그럼에도 권마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게 답했다.


“커, 커흑···. 감히 제가 어찌 사공염께 거짓을 아뢰겠습니까?”


사공염(司空炎).

검마 아버지의 본명을 듣자 식은땀이 청현의 척추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고작 연못에서 목욕했다고 100년 전 무림을 휘어잡은 전대 천마(天魔)를 만날 줄 상상도 못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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