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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님의 서재입니다.

마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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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끝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4
최근연재일 :
2024.05.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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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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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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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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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 흑천무원[2]

DUMMY

#11화. 마교회귀

------------


신강 아근태의 동토대는 질퍽거리는 땅으로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다. 기후변화가 워낙 심하고 해충이 많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가축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유목민들이 아근태를 찾지만, 동토대 주위로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바닷가에 발이 쑤욱 빠지는 지역을 갯고랑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지형이다. 마찬가지로 동토대에도 개미지옥처럼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질척거리는 땅이 곳곳에 존재했다. 그럼에도 청현은 이곳에 온 기억이 있었다. 정사대전의 근원지가 바로 이 동토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허나 모든 발단은 소문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동토대엔 해검자(解劍子)의 심득(心得)이 함께 묻어있다.


정확히 9년 뒤 이곳에 해검자의 비급이 있다는 소문이 돌게 된다.

정사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동토대를 찾아 땅을 찔러댔다. 갈고리 형태의 꼬챙이로 낚시하듯 서책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소문은 사실이었다.

비급을 처음 발견한 것은 강시와 권법으로 유명한 진주언가(晋州彦家)의 맹가숙(盟可淑)이었다. 진주언가는 강시를 다루기에 옛날엔 사파로 취급받았지만, 현재에 이르러선 나름의 중립을 지키는 문파였다.


그 소문이 돈 다음 날.

맹가숙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뒤에는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사파의 흑마곡(黑魔谷)과 흑림방(黑林邦)이 손을 잡고 맹가숙을 죽였다. 그 비급은 현재 녹림왕의 손에 들어갔다. 결국 화산의 장문인이 녹림왕과 생사결의 대결을 펼쳐 비급을 가져갔다. 아니, 모두 거짓이다. 진주언가는 처음부터 맹가숙을 강시로 만들었다. 애초 맹가숙은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등등 별 시답잖은 헛소문이 판을 쳤으니까.


소문 중에서도 진실은 있었다.

흑마곡(黑魔谷)과 흑림방(黑林邦)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현조차 왜 둘이 손을 잡았는지 알지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게도 무림인들은 헛소문을 쉽게 믿었다. 소문의 진위를 판단할 생각은 멀찌감치 집어 던지고 상대방만 보면 칼부터 겨눴다. 비급에 눈이 돌아간 것이다. 특히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결국엔 사단이 일어났다.


흑림방주의 하나뿐인 아들을 종남파의 일대제자가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긴 일이다. 애초 심득이 묻혀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해검자의 심득으로 죽은 자가 수백이 넘었으나 정작 심득을 보았다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만약 양치기에게 해검자의 비급이 동토대에 묻어있다는 사실을 아냐고 물었다간 비웃음만 살 것이다.


300년 전 무림 천하제일인으로 이름을 떨치던 무당의 해검자가 동토대에 온 것도, 해검자의 비급이 묻혀있다는 소문도 뜬구름에 가까운 이야기다. 설령 정말로 해검자가 동토대에서 죽었다고 한들 이미 다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상념과 함께 청현은 눈을 떴다.

코를 골기 시작한 길잡이를 바라보며 몰래 아궁이로 다가갔다. 불을 빌리기 위함이다. 밤이 찾아오면 동토대엔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이 녀석들을 쫓는 방법은 단 하나. 관목 식물의 일종인 야개초를 태워 연기는 피워내는 것뿐이다.


청현은 머리맡에 작은 구덩이를 만든 뒤 커다란 돌멩이를 얼기설기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숯과 마른 나무, 야개초의 잎을 수북이 올려놓았다.


수분을 머금은 야개초는 순식간에 흰 연기를 피웠다. 썩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수컷마저 피를 빠는 동토대의 모기를 쫓기엔 이 방법이 최고였다.


청현은 다시 얇은 모포 위로 몸을 뉘었다.



#



“으어어···.”


이상한 소리에 눈을 뜨자 흑천무원까지 안내를 맡은 길잡이가 몸을 벅벅 긁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마화가 가볍게 풉-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길잡이의 눈두덩이가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에 길잡이가 사마화를 보며 말했다.


“사마소 소저 일어나셨습니까?”

“예. 그런데 어찌 몸을 긁으십니까?”

“밤새 모기에 물렸지 뭡니까. 은자 두 냥이나 주고 기피제를 샀는데 아무래도 돌팔이가 만든 모양입니다.”

“기피제? 그것이 무엇입니까?”

“아, 아닙니다. 소저께서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그나저나 사마소 소저께서는 모기에 물리지 않으셨습니까?”


사마화는 자신의 몸을 살피며 말했다.


“예, 전 괜찮네요.”


길잡이는 불씨만 남은 숯 더미에 불쏘시개와 마른 장작을 던져넣으며 말했다.


“어제 만든 죽을 먹고 이동하시지요. 오늘도 갈 곳이 멉니다.”


청현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잡이는 자신에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현은 오히려 편했다.

그러나.


“다 먹었으면 설거지는 네가 하거라.”

“예···.”


염병, 투명인간 취급할 때는 언제고···.

조금 귀찮을 뿐, 1년간 숨 쉬듯 해온 일이다. 청현은 나무 식기를 들고 물이 고여있는 곳에서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평소 설거지를 대충 하는 건지 갈라진 홈 마다 시커먼 때가 그득했다.


“어휴···.”


한숨밖에 안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문질러도 나무 틈에 낀 시커먼 때가 나오지 않은 까닭이다. 이럴 때는 물에 담가 묵은 때를 불려야 했다. 청현은 나무 그릇을 물에 담가 묵을 때를 불리면서 주변에 뾰족한 것이 없나 살펴보았다.

이런 건 나뭇가지를 잘라 뾰족한 부분으로 살살 긁어주면 금세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토대에 큰 나무는 없다. 키가 작은 관목이나 발목 높이밖에 올라오지 않는 이름 모를 풀들만 무성했다. 관목의 가지를 잘라 홈을 긁었으나 무른 나뭇가지로는 때를 벗길 수 없었다.


그때였다.

물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설마 금속?


청현은 물웅덩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커다란 무언가가 잡혔다. 질감을 느껴보니 돌은 아니었다.

주변 흙을 살살 긁어내며 힘을 주자 나무와 금속 장식으로 된 커다란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영락없는 썩은 나무 토막이었으나 신기하게도 녹슨 금속 장식이 곳곳에 붙어있었다.

제 형태를 읽고 반 이상 썩어버린 무언가는 마치 객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은 술독을 닮은 모습이었다.

밑 부분을 주먹으로 툭툭 두들기자 썩어있던 나무가 쉽게 바스러졌다.


청현은 누가 봐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물건을 자세히 살폈다. 바스러진 나무통 안은 텅 비어있었다.

두 손으로 꽉 잡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나무로 된 궤(櫃)는 반으로 쩍 갈라졌다.


놀랍게도 그 안에서 붙어있던 보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드러운 것이 비단인 줄 알았으나 기름을 잔뜩 먹인 가죽이었다.

상단에 위치한 가죽끈을 잡아당기자 한지(韓紙)를 잡아당기듯 맥없이 끊어져 버렸다.

손으로 뜯자 원래라면 두꺼웠을 가죽이 얇은 종이처럼 맥없이 찢겨 나갔다. 오랜기간 습기를 머금어 삭은 것이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마찬가지로 기름을 잔뜩 먹인 네모반듯한 나무상자였다.


“아니 대체 뭘 이렇게 꼭꼭 숨겨놓은 거야?”


다행히 나무 상자는 멀쩡했다.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서랍처럼 스윽 열렸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책이었다.


“제, 제운종(梯雲縱)!!”


청현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9번째 삶에서 무당파의 장로를 지냈기에 누구보다 잘 아는 이름이었다.

무당파의 실전된 신법(身法). 구름 위를 날아다닌다는 허공답보(虛空踏步). 전설의 경공술(輕功術)로 치부되는 제운종이 손에 들린 것이다. 그러나 책은 한 권이 아니었다.


“이, 이건···.”


태극만월검(太極滿月劍).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태극혜검(太極慧劍)이라 부르는 해검자의 독문무공이었다.


여태껏 인생을 살면서 기연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심지어 영약다운 영약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나마 이류의 벽을 넘었을 때 청성에서 태청단을 한 알 먹은 게 고작이다.


그런데 대박.

그야말로 초대박이 터져버렸다.

그것도 한 권이 아닌 두 권이나!


청현은 누가 볼세라 책을 품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뚝 솟은 기암괴석이나 이정표가 될만한 나무를 찾기 위해서다. 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동토대의 땅엔 이정표라 부를만한 것이 없었다. 천산과 아주 멀리 곤륜산의 줄기가 보이긴 했으나 그런 것으론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없었다. 청현은 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곳의 위치를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릇을 대충 닦은 뒤 주변의 지형과 걸음 수를 생각하며 임시거처로 돌아왔다. 이곳은 확실히 누군가 일부러 만든 것처럼 지반이 평평하고 널찍했다. 어떻게든 이곳만 찾아올 수 있으면 제운종과 태극만월검이 묻혀있는 장소까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작 설거지를 하는데 한 세월이구나.”


길잡이가 투덜댔지만, 청현은 주변 지형을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쑤셔 넣느라 차마 답하지 못했다.


“쯧, 얼빠진 모습을 보니 고문관(顧問官)이 따로 없구나. 접시나 냉큼 가져오거라.”


청현이 닦다 만 접시를 내밀자 길잡이는 대강 봇짐에 쑤셔 넣고 길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이동하자. 갈 길이 멀다.”


뭐지?

청현은 의구심을 감출 수 없었다.

천산에서 하루를 꼬박 걸어 동토대에서 하룻밤 노숙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방향을 틀어 다시 천산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부러 험한 산길을 걷게 하고 있었지만, 가끔 보이는 천산의 위치와 오랜 기간 표국에서 일한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길잡이는 천산에서 하루 이틀 거리를 불필요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이었다.


청현은 내색하지 않고 잠자코 길잡이의 뒤를 따랐다. 길잡이는 점점 험준한 산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잘 따라오던 사마화의 걸음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따금 인상을 쓰는 것을 보면 발이 한계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길잡이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걸음을 멈추고 어느 한 동굴 앞에 멈춰 섰다. 길잡이는 사마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중으로 흑천무원에 도착하려 했는데 속도를 맞추다 보니 조금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어가겠습니다. 저는 식량을 구해올 테니 불을 피우고 잠자리를 준비해 주시지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이다.

청현과 사마화는 최선을 다해 걸었다. 사마화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지만, 절대 지장 있는 속도는 아니었다. 문제라면 길을 빙빙 돌아간 길잡이의 문제다. 누가 봐도 이곳에서 묵게 하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이런 말에 누가 속을까 싶었으나 사마화는 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예, 조심히 다녀오세요.”

“···.”


길잡이는 먹을 것을 구해온다더니 갑자기 제자리에 서서 청현을 노려보았다. 청현은 하는 수 없이 포권의 자세로 읍하며 입을 열었다.


“대협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제서야 길잡이는 혀를 차며 길을 떠났다.

장담하는데 길잡이는 아주 늦은 시간이 돼서야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청현은 길잡이의 침낭을 뒤져 전날 그가 덮고 잤던 두툼한 침낭을 꺼냈다.


“야, 여기에 누워.”

“야? 지금 야라고 했어?”


길잡이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조심해야 했다. 무림에서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장수하는 법이다.

청현은 말을 하면서 전음을 내뱉는 고난이도 묘기를 선보였다.


“둘이 있을 땐 오라버니라고 불러라.”

-그럼 뭐, 소저라고 불러주리? 사조(師祖)가 같아도 나이랑 항렬은 내가 더 높은데. 그리고 뭐? 사마소? 확 사마화라고 불어버릴까 보다.


“예. 청현 오라버니···.”


“그래, 땔감을 구해올 테니 쉬고 있어.”

-십칠 세라고 거짓말을 하더니 아주 그냥 막 나가지? 예의 차려줄 때 알아서 잘해라. 다리 아플까 봐 쉬라고 배려해주니 아주 기어오르지?


“예···.”


사마화가 얌전히 침낭에 눕는 것을 보며 청현은 숲으로 이동했다.

길잡이의 걸음걸이로 보아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경신법에 최적화된 것으로 보였다. 청현과 사마화가 서로 멀어진다면 당연히 더 귀한 몸인 사마화에게 시선이 쏠릴 터.

청현은 땔감을 하나씩 주우며 조금씩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품속에 숨겨둔 책을 꺼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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