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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비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문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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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비
작품등록일 :
2023.04.07 18:25
최근연재일 :
2023.04.26 06:36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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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35

작성
23.04.2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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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3화

DUMMY

보육원은 숲에서 봤던 신전과 비슷하게 생긴 건물이었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좀 더 크고 외벽 곳곳에 시멘트가 덧발려져 있었다. 아주 오래된 건물 같았다.


“여기서 열 명이 산다고?”

“아니요. 여긴 저랑 원장님이 쓰고 아이들은 밥을 먹을 때 말곤 들어오지 않아요. 아이들은 뒤쪽에 있는 집을 쓰고 있어요.”


안쪽은 굉장히 생활감이 넘쳤다. 입구로 들어가자 넓은 홀이 나왔는데. 벽에 고정된 빨랫줄 위에 말린 약초 따위가 잔뜩 늘어져 있었다. 이래서 맨날 몸에서 풀냄새가 났던 모양이다.


한쪽 구석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개여 있는 모포가 있었다. 구조를 보면 아마 여기가 예배당으로 쓰였던 공간인 것 같았다. 숲에 있는 신전과 달리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진 않았다.


“원장님? 괜찮으세요?”

“잠깐은 괜찮단다. 귀한 손님이 오셨군요. 저는 이곳의 원장 자리를 잠시 맡아두고 있는 늙은이입니다.”

건물 안쪽에 있는 문이 열리고 늙은 노인이 나와서 인사했다. 선한 인상이었지만 그걸 쉽사리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주름과 검버섯이 많았다. 머리도 하얗게 세다 못해 빠져서 숱이 적었다. 그렇지만 허리는 굽지 않았고 지팡이를 짚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다른 부분의 노화를 생각하면 근육이 아직 저만큼이나 남아있는 게 이상했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당신 사제구나?”

“늘그막에 과분하게도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런 은총이 어디 있어? 혼자 깨달은 거겠지.”

몸 안에서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마력이나 내공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아직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 그것이 은총이겠지요.”

“기도쟁이들이란.”


원장의 경지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간신히 입문한 정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상처를 치료하는 등 본격적인 이능은 전혀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엔 각성만으로도 꽤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제국은 다른 신앙을 탄압하는 게 아니었어? 사제를 내버려둘 거 같진 않았는데.”

“비록 조각상과 상징은 감히 훼손시켜야했지만...”

시선이 벽 쪽으로 가서 나도 그쪽을 따라서 봤다. 벽에 쇠 정으로 파낸 것 같은 흔적이 있는 곳이 있었다.

“포교를 하지 않고 조용히 산다면 이런 늙은이 하나는 넘어가 준답니다.”


늙은이 하나가 아니라면 넘어가지 않는다. 말에서 그런 뉘앙스가 느껴졌다. 낮은 경지? 다한 수명? 혼자라서? 어쩌면 이 전부에 해당돼서 봐주는 걸지도 몰랐다.


“저 아이에게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로 들은 것보단 많이 어려 보이시는군요.”

“몇 살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열여덟은 넘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진작 넘었어. 스물이 아니라 서른도 넘었고.”


30년. 평범한 변두리 행성이었던 지구가 다른 제국의 자치령이 되고 발전하기까지 충분 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네? 언니 나이가 그렇게 많다고요?”

“그러고 보니까 말한 적이 없구나.”


“저 아이와 기껏해야 두세 살 차이로 보이는데... 신기하군요. 역시 비범하신 분 같습니다.”


뒤에서 달라붙은 세라가 내 어께 살짝 밑에 머리를 기대놓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 취급이 싫다고 그런 금세 들통 날 거짓말을 어른께 함부로 하면 안돼요.”

“뭐라는 거니. 너야말로 몸의 결점으로 남을 놀리는 건 좋지 않아.”


‘애 취급, 어른이라.’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못 믿는 게 당연했다. 나조차 나이가 잘 체감이 되지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정신연령은 진짜 나이보다 겉모습 쪽을 따라갔다.


육체, 정신적인 성장이 동반되지 않고 그저 나이만 먹어선 어른이 될 수 없다. 경험을 쌓은 아이는 어른이 아니라 애늙은이다.


“그래도 이빨은 멀쩡하게 남아 있어서 고기 먹는 건 지장 없겠네.”

“이 나이가 되면 씹는 게 아니라 소화시키는 게 더 부담이 된답니다.”

“안 그래도 최대한 연하게 만들 생각이야.”

“손님에게 대접받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기대하겠습니다.”


원장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 짧은 대화조차 꽤 피곤해 하는 것 같았다.


“주방은 어디야?”

“그 전에 할 게 있어요.”


구석으로 가더니 웬 검은 천이 쓰인 나무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지 먼지가 쌓여있었다.


“그건 뭐야?”

“헌금함이에요.”

장소가 중요하다는 게 이걸 말했구나 싶었다. 아까 주머니에 넣어놨던 교환증을 꺼내서 넣었다.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 아껴서 잘 쓰겠습니다. 아이들을 보러 가시지 않을래요?”

“어차피 저녁에 볼 거잖아. 벌써 피곤해지기 싫어. 그리고 음식 하는 것도 오래 걸릴 거야.”


주방은 시설이 좋진 않았다. 그냥 화로와 솥이 있을 뿐이었다. 잡다한 기자재는 지하실에 몰아둬서 깔끔하긴 했다. 물은 바깥에 있는 분수대에서 조금씩 떠온 걸 나무통에 담아놨다가 썼다.


그래도 10명이 죽을 끓여 먹을 만큼 큰 솥이 있어서 제일 걱정되던 건 해결됐다.


그때까지 들고 있었던 고기 덩어리를 먼지가 그나마 없어 보이는 곳에 내려놓았다. 식어도 맛이 크게 나빠지지 않는 옥수수 빵을 먼저 만들기로 했다.


“혹시 나무 소쿠리 같은 거 있어?”

“네.”


따로 반죽할 곳이 없었다. 일단 솥을 내려서 옥수수 가루를 쏟았다. 받아온 게 2kg정도고 사용할건 한 명당 150g, 1.5kg이니까 적당히 눈대중해서 사분의 일을 남겼다. 다행히 매우 곱게 갈려 있어서 불리는 과정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마을에서 닭을 키우고 있잖아. 달걀은 못 구해?”

“달걀은 양계장에 아침 일찍 가지 않으면 금방 다 팔려버려요.”


소를 안 키우니까 버터는 다른 마을에서 조금씩 사오는 것뿐 같았다. 그래도 설탕은 넉넉하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후추가 가격이 싼 걸 보니 어딘가에서 사탕수수도 키우는 듯 싶었다. 노란 설탕을 적당량 넣고 소금도 조금 넣었다.


“소금을 반죽에 넣어요?”

“원래 소금을 좀 넣어야 단맛이 더 잘 느껴져. 깨끗한 천 있어?”

“옷을 기우는데 쓰려고 산 게 있는데 잠시 만요.”


손을 씻고 반죽했다. 최대한 열심히 섞어야 거친 느낌이 덜할 거라 열심히 반죽했다.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반죽이 되어야 되는지 질어야 되는지 헷갈렸다. 증기에 찔 거니까 조금 되게 하는 걸로 했다.


“이건 어떻게 구울 거예요?”

“안 굽고 찔 거야.”

“쪄요?”


나무를 엮어서 만든 소쿠리에 면을 깔고 만든 반죽을 부었다. 모양을 잡고 싶었지만 틀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 반죽의 양이 많았기 때문에 소쿠리도 제일 큰 걸 골라서 최대한 얇게 폈다,


솥을 다시 화로에 걸고 냄비를 거꾸로 엎어서 그 위에 소쿠리를 올렸다. 반죽이 물에 직접 닿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물을 붓고 장작에 불을 붙였다. 수증기가 ᄈᆞ져나가지 않게 솥뚜껑을 덮었다.


“이제 기다리면 돼요?”

“물이 부족하면 조금씩 부어줘야 하지만 일단은. 빨리 가서 피클 만들 걸 사오자.”


시장에서 피클을 만들 채소를 골랐다. 당근, 순무, 양파까지 잎채소가 아닌 것들 위주로 골랐다. 잎채소는 상태가 대체로 좋지 않았고 피클로 만들어도 맛이 없다. 고기와 먹을 걸 조금 살까 했지만 그건 순무에 달린 배추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신맛이 나는 베리류도 꽤 많이 샀다.


깊은 바구니를 들고 갔는데도 양이 많아서 몇 번 왔다갔다해야했다. 피클을 절일 통은 물통 하나를 비워서 사용하기로 했다.


옥수수 빵이 쪄지는 동안 뼈 단검을 들고 채소를 손질했다. 당근 껍질은 먹어도 될 것 같아서 꼭지만 뗐다. 상태가 좋은 양파껍질을 골라서 따로 모아뒀다.


채소를 씻는 건 마을 중앙에 있는 분수 옆에서 했다. 분수가 있는 곳엔 하수구가 있어서 물을 편하게 쓸 수 있었다.


씻고 손질된 채소는 다시 한입크기로 토막 내서 통에 차곡차곡 담았다.


“이제 여기에 식초를 부으면 돼요?”

“아니. 식초를 솥에 한 번 넣고 끓여야 돼.”


채소를 손질하는 동안 옥수수 빵이 다 익었다. 포크로 깊숙이 찔러봤는데 설익은 부분 없이 전부 익었다. 달달하고 물리는 옥수수 냄새가 났다.


증기가 일렁거리면서 피어오르는 솥에 손을 집어넣고 소쿠리를 꺼냈다.


“안 뜨거워요?”

“넌 따라 하지 마.”


이 많은 양을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럭저럭 모양이 나왔다. 반죽을 되게 한 게 다행이었다. 잘라서 단면을 보니까 그럭저럭 빵과 비슷하게 생겼다.


“먹어볼래?”

“네.”

조금 잘라서 건네줬다.


“와 정말 빵이에요. 죽보다 훨씬 맛있어요.”

“그거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깔아놨던 천과 빵을 조심스럽게 떼어냈다. 그리고 다시 소쿠리에 올려서 구석에 치워놨다.


물통을 들어서 솥에 물을 부었다. 솥은 아까 불에 올리기 전에 한번 씻었다. 소쿠리나 천도 깨끗한 걸 확인했으니, 굳이 솥을 다시 한 번 씻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고기를 익힌다고 하지 않았어요?”

“맞아. 물에 삶을 거야.”

삶는 쪽이 굽는 것보다 잡내도 훨씬 덜하고 연해서 먹기 쉬울 것 같았다.


“물에 삶으면 너무 질겨지고 맛이 없던데...”

“너무 오래 삶아서 그런 거야. 상태를 확인하면서 적당히 삶고 건지면 돼. 그리고 맛이 빠지는 건 육수에 삶는 걸로 해결하고.”


물에 통후추, 마늘, 파, 아까 모아둔 양파껍질을 넣었다. 고기를 분수대에 가서 씻어왔다. 적당히 칼집을 내서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넣었다.


불 조절을 해야 되는데 쉽지 않았다. 부지깽이로 장작을 펴서 불이 너무 강하게 피어오르지 않게 조절하는 게 최선이었다. 삼십분 정도 삶고 건지면 적당할 것 같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서 불을 보면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뭔가 걸어오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시야를 밑으로 내렸다.


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애 하나가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원래 훨씬 컸을 옷을 적당히 잘라 꿰매어 놓은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배고파.”

옥수수 빵의 식은 부분을 조금 잘라서 쥐어줬다. 빵조각을 받고 주저앉아 한참을 오물거리던 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니 우리 엄마 어디 갔는지 알아?”

“몰라.”

“우리 엄마가 삼십 번만 자면 온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왔어. 나 많이 잤는데.”

“그렇구나.”


대충 대꾸를 하고 있으니 가까이 와서 머리카락을 만지기 시작했다.


“와. 길다.”

“당기지 마.”

머리를 만지게 내버려두는 게 덜 귀찮을까 대답을 해주는 게 덜 귀찮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세라가 돌아왔다.


“죄송해요. 얘가 왜 여기 있지.”

다행히 아는 애 같았다.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함부로 나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언니들이 큰언니한테 가라고 했어.”

“얘네가...”


눈을 질끈 감았다. 화가 난 것 같았다.


“10살이랑 11살 여자애 둘이 있는데 단단히 일러놔도 이렇게 원장님이나 저한테 보내고 바깥으로 나가버려요. 남자애들은 더 말을 안 듣고요. 그나마 교환증이라도 한 장 쥐어줘야 간신히 들어요.”


마냥 탓할 수도 없었다. 바깥으로 나가서 심부름이라도 해야 뭐라도 좀 더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아이들에게 애를 돌보는 건 짜증나기만 하고 도움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엄마보고 싶어. 엄마 어디 있어?”

급기야 엄마를 찾던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열심히 어르고 달래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바깥으로 애를 데리고 나갔다. 세라가 다시 돌아온 건 내가 솥에서 고기를 건지고 난 다음이었다.


“재우고 왔어요.”

“힘들게 사는 구나.”

“누군가는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고기 좀 먹을래?”

“네.”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을 것 같아서 고기를 조금 썰어줬다.


“와. 이거 맛있네요. 냄새도 안나고 정말 부드러워요.”

“간을 안 한 거니까 소금에 찍어먹으면 좀 더 나을 거야.”

“저 아이는 릴이라고 해요. 늑대 때문에 아빠를 잃었어요. 엄마가 도시로 일을 찾으러 가기 전에 맡겼는데 돌아오시지 않고 있고요...”


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30일이라는 묘하게 구체적인 수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저 애한텐 안 좋은 상황이다.

“매번 저렇게 물어보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대충 얼버무리다 보면 나중에 알아서 눈치 챌 거야.”

“그래도 괜찮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저기... 언니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기억하는 부모는 가끔 나를 찾아 와, 혐오스러운 무언가를 봤다는 표정을 짓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뿐이었다.


‘대체 왜 꾸준히 와서 매번 그런 표정을 지은 거지?’


남자와 여자지만 양친 두 사람인 건 아니었다. 나타날 때마다 성별이 달랐지만 분명 같은 사람이었다. 관심은 어릴 때 잠깐이었고 얼마 안 가 끊겼다.


나는 그게 누군지 분명 알고 있다.


‘근데 그럴 이유가 뭐지?’

그 대단한 입신경(入神境), 나인클래스의 마법사시니 성별이나 모습쯤은 원하는 데로 바꿀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매번 그럴 이유는 없었다. 정체를 숨겼다 하기엔 그 모습 딱 두개뿐이었다.


아마 무언가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대로 말했다.


“몰라. 기억 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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