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시비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문명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가시비
작품등록일 :
2023.04.07 18:25
최근연재일 :
2023.04.26 06:3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950
추천수 :
11
글자수 :
85,635

작성
23.04.13 00:03
조회
53
추천
0
글자
11쪽

6화

DUMMY

피곤했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어지고 싶었다. 길은 제대로 찾았지만 심력 소모가 컸다. 눈을 감고 자려고 해봤는데 또 잠은 안 왔다.


할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직 어떤 무공을 가르쳐줄지 정하지 못했다는 게 생각났다.


‘오러라.’

오러라는 건 전투에 특화된 원시적인 무공이다. 말이 특화지 마법사들이 주가 사회니 발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정체 된 것이다. 생존과 투쟁은 중요한 철학이지만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기 위해선 모자라다.


무인이란 건 제작, 기술연구, 새로운 이론 만들기, 심지어 전쟁에서까지 마법사보다 못할 수밖에 없다. 경지가 훨씬 높다라면 모를까 애초에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문명사회에서 칼밥을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직업은 경찰이나 군인 정도 밖에 없다.

그렇지만 여긴 원래 생산력이 0에 수렴하는 귀족들이 있다.


자연스럽게 지능지수가 모자라거나 허세와 권위의식이 가득 찬 머저리들만 입문하는 환경이 된다. 체계적인 정리와 연구를 통한 구조적인 발전은 커녕 퇴보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싸우는 건 몸만 지킬 수 있으면 되겠지.’

전투가 아니라 수행이나 유틸리티에 특화된 무공이 뭐가 있을지 고민해봤다. 10대 중반이면 입문 할 수 있는 막차는 탄 것이다. 대가를 치러야하는 마공(魔功)까진 필요 없었다.


하지만 20, 40년씩 수련만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니 정공(正攻) 무공도 제외했다. 후보가 몇 가지 추려졌다. 선택은 본인에게 물어보고 하기로 했다.


몸이 너무 지저분해서 찝찝했다. 냄비에 물을 끓였다. 수건을 먼저 뜨거운 물에 적시고 우물물을 부어서 적당한 온도의 물수건을 만들었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얻은 요령이었다.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머리는 뜨거운 물을 적당히 섞어서 감았다. 재와 동물 기름을 섞어서 만든 비누는 냄새가 심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물을 몇 번이나 끓이고 버리는 건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해가 완전히 떠 있었다. 씻고 나니 졸려서 잠깐 눈을 붙였다.


//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아 깨셨어요? 죄송해요. 최대한 조심했는데.”

“아니야. 어차피 너한테 물어볼 것도 있었고 일어나야 됐어.”

“네? 저한테 물어보실 거요?”

“오러를 쓰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잖아. 뭘 배우고 싶은지 말이야.”

“창이나 검 같은 무기 종류 같은 거요?”

“음... 그게 아니라 어떤 효과를 내는 걸 배우고 싶은지 말이야.”

“힘이 세지거나, 튼튼해지거나 그런 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제일 와 닿을 만한 게 뭘까 생각했다.


“일단 굉장히 예뻐질 수 있어. 하늘의 신을 옆에서 모시는 시종처럼. 보통의 무인 이상으로 오랫동안 늙지도 않을 거고.”

선녀공(仙女功)이란 무공이다. 우화등선해서 선계의 신선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진지하게 익히는 사람은 본 적 없다.


입문하기만 해도 피부에 잡티가 사라지고 하얗게 된다. 이걸로 검주가 된 연예인을 본적이 있는데 부모가 와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이 역변했다.


“와아... 오러로 그런 걸 할 수 있는 건가요? 신기하네요.”

“대신 너희 마을에 있다는 기사처럼 강해지진 못할 거야.”


반대급부로 신체 능력의 증가나 다룰 수 있는 내공의 양은 다른 무공보다 떨어진다.


“그런데 혹시.”

“혹시?”

“언니도 그걸 배우신 건가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피식하고 웃었다.


“아부하는 거니? 파고드는 타이밍이 좋네.”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알아. 난 다른 걸 배웠어.”

“저도 그걸 배울 수 있을까요?”

“내 체질에 맞춘 거라 안 돼.”


체질에 맞춘 무공이다. 그 대단한 대마법사께서 직접 만드셨단다. 흡성공, 불사공, 폭혈공. 세 개의 심법이 맞물리며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그만큼 난이도가 높고 신체에 부담을 많이 준다.


인간의 마음을 모르시는 분이 만드셔서 그런지 사람이 익힐만한 게 못된다.


원본이 되는 무공은 따로 있지만 그것도 너무 극단적이다. 폭혈공은 본디 마공의 극치. 누군가와 한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참을 수 없다는 무인을 위한 무공이다.


선천진기를 장작으로 온 몸의 혈도에 불을 지른다. 경지를 넘어서는 힘을 휘두르게 해준다. 언뜻 들으면 구명절초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훨씬 극단적이다.


주어지는 시간은 10분 정도. 그 후엔 내공 한 톨 없는 쪼글쪼글한 노인이 된다. 심장마비로 안 죽으면 며칠 정도는 살 수 있다.


흡성대법이나 흡성마공은 아예 원본부터 특별한 체질을 위한 무공에 가깝고, 그나마 불사신공이 무난했지만 다치는 걸 전제로 하는 무공이다. 결국 알려줄만한 건 없었다.


“솔직히 끌리진 않아서요. 아뇨 정말 정말 좋아 보이긴 하는데...”


세라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봤다. 한 5년 후의 모습을 생각해봤다. 절세 미녀라고 하기엔 많이 모자라지만 추녀냐 미녀냐를 따지면 후자에 명백히 가깝다.


“그러고 보니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내 생각이 짧았어. 이건 안 되겠네.”

이런 미개한 곳에서 선녀공 따윌 익혀봐야 스스로를 지키기 힘들어질 뿐이다. 물론 자신에 대한 욕심을 기회로 만드는 경국지색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성격은 아니니까. 똑똑하네.’

“그럼 몸을 숨기기 쉬워지는 건 어때?”

“어떻게요?”

“시야에 들어와도 그냥 지나쳐버려.”

“신기하네요. 애들이랑 숨바꼭질 할 때 좋겠어요.”

“숨바꼭질...”

하기야 살수가 될 것도 아닌데 너무 과했다. 기척을 숨기거나 체취를 감추는 정도는 심법과 관련 없이 배울 수 있다.


“그럼 혹시 동물 좋아하니?”

“동물이요?”

“응.”

“네. 그런데 주변에 동물이랄 게 닭 밖에 없어요. 쥐나 작은 새는 만져 보려 해도 쉽지 않고요”

“마을에 개는 안 키워?”

“예전에 가봤던 도시에선 키우는 걸 봤는데 마을에선 어른들이 질색을 하세요.”

“왜?”

“늑대 괴물들 때문에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개를 키워서 늑대가 오는 것을 경계 시키는 게 맞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다. 이곳도 늑대와 개가 같은 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닮았을 테니까.


“작은 새나 쥐도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게 만들 수 있어.”

“정말요? 새한테 주변의 길을 물어볼 수 있으면 편하겠네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그럼 이걸로 하자. 종이는 가져왔어?”

“네.”


당연히 새하얀 종이는 아니었고 회색을 베이스로 온갖 잡다한 색이 섞인 종이였다. 나무를 물에 불려 빻은 후에 펴서 말린 것 같았다.


어떤 글자를 알려줘야 되나 고민하다가 한글로 결정했다. 공용어에 있는 발음 몇 개를 못 적긴 하지만 배우기가 쉽다. 전산화가 어렵지만 여긴 디지털과 거리가 많~이 먼 아날로그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글씨를 적을 방법이 없었다. 탄 나무 막대로 써봤는데 회색이라 잘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잉크는 안 가져왔지?”

“...어쩌죠?”

“어쩌긴 그냥 몸으로 때워야지.”

불을 피우고 냄비에 물을 받아와 올렸다. 그리고 부싯돌 칼을 냄비에 넣었다.


“칼은 왜 냄비에 넣는 거예요?”

“어제 저걸로 물고기 배도 가르고 험하게 써서 찝찝하거든.”

“물고기를 정말 많이 잡아오셨네요... 불에 말린 건가요?”

“훈제를 하려 했는데 잘 안됐어. 그래도 반죽을 입혀서 튀겨 먹으면 맛있을 거야.”

“이정도면... 일주일 치는 바꿀 수 있겠네요.”

생각보다 약간 적었지만 납득할 수 있는 양이었다.


“물고기가 많던데 너도 약초를 캐는 것 보다 물고기를 잡는 게 낫지 않아?”

“그래도 숲을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건 저 뿐이니까요.”

책임감이 강한 아이었다.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서 칼을 건져내서 식힐 겸 물에 한 번 헹궜다. 그리고 왼손의 검지 끝을 찔렀다. 조그맣게 피가 방울졌다.


“...피로 쓰시려고요?”

“응”


종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막대로 살짝 찍어서 썼다. 이것도 쉽지 않았다. 한 글자를 체 다 쓰기 전에 상처가 계속 아물었다. 보다 못한 세라가 자기 손을 내밀었지만 옆으로 치워버렸다.


“됐다.”

67자를 쓰면서 백번이 조금 넘게 찔렀다.


“이건 ‘그’ 라고 발음하는 글자야. 이건 ‘아’라고 발음하고.”

여기서 한 번 더 손가락을 찔러야 했다

“이렇게 두 개를 합쳐놓으면 ‘가’라고 발음해”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켜가면서 발음을 알려줬다. 벌써 어설프게나마 읽으려고 하는 게 금방 외울 것 같았다.


“확실히... 쉽네요.”

“그렇지?”


아예 바깥으로 나와서 흙바닥에 모음과 자음을 조합하는 방법과 발음이 어떻게 바뀌는 지까지 알려줬다. 몇 번 불러주니 종이를 보면서는 전부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언어를 배우는 게 아니고 소리대로 읽고 쓰는 법만 배우는 거라 난이도가 훨씬 쉬웠다.


“일단 이 물고기를 마을로 가져갈게요. 아직 아침에는 선선하지만 낮에는 또 모르니까요.”

“위험하면 그냥 바닥에 던지고 도망쳐. 물고기는 다시 잡으면 되니까”

“괜찮을 거예요. 요 며칠간 늑대들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러고 보니까 나도 물고기를 잡으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증이 생겼다.


“그건 언제부터 왜 나타나는 거야?”

“저도 잘 모르지만 200년 전부터 갑자기 나타났다고 들었어요. 수많은 사람이 죽고 나라가 멸망했다고 해요.”


당연히 늑대에게 멸망한 건 아니고 다른 고 레벨 몬스터가 나왔을 거다.

“그때 하늘에서 녹색 용님과 그 신하들이 나타나서 마법으로 괴물이 나타나지 않는 땅을 만들어주셨고.”

‘그 중에 하나가 살고 있단 마을이겠네.’

“인간을 위해 싸우고 또 싸워서 이런 괴물이 나오는 어떤 원인을 무찔렀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늑대 같은 약한 괴물들 밖에 나오지 않게 됐다는 게 교단의 설명이에요.”

“그래? 좋은 분이시네.”

‘용들 사이에서 괴짜나 정신병자, 그런 거였나?’


인간을 위해 싸워줬다는 용은 처음 들어봤다. 인간을 좋아한다 해도 보통은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거지 하나의 동등한 개체로 대우하진 않는다. 아니면 인간을 위해 싸웠다는 게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던가.


“그럼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진 거 아니야?”

“그런 거라면 좋겠네요.”

‘마을 근처까지 뒤에서 몰래 쫓아갈까 생각해봤었는데.’

습격 받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물고기가 꿰인 위치를 조절해서 최대한 양쪽의 균형이 맞게 만들었다. 그리고 막대의 가운데 부분을 어께에 올려줬다. 그럭저럭 메고 갈 수 있는 모양세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물고기를 가져가면 어른들이 궁금해 하지 않을까?”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더 묻지 않으실 거예요.”


배웅을 마저 하고 종이 앞에 앉았다. 마을에 갔다 오는 동안 구결을 적을 생각이었다.


무공의 이름은 천마신공(天馬神功)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문명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15화 23.04.26 20 0 12쪽
15 14화 23.04.22 24 0 12쪽
14 13화 23.04.21 32 0 14쪽
13 12화 23.04.20 27 0 12쪽
12 11화 23.04.19 39 2 12쪽
11 10화 23.04.17 37 0 12쪽
10 9화 23.04.16 42 1 12쪽
9 8화 23.04.15 56 1 13쪽
8 7화 23.04.13 55 1 11쪽
» 6화 23.04.13 54 0 11쪽
6 5화 23.04.11 57 1 12쪽
5 4화 23.04.10 52 1 11쪽
4 3화 23.04.09 61 1 11쪽
3 2화 23.04.08 76 1 12쪽
2 1화 23.04.07 121 1 12쪽
1 프롤로그 23.04.07 19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