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시비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 문명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판타지

가시비
작품등록일 :
2023.04.07 18:25
최근연재일 :
2023.04.26 06:36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948
추천수 :
11
글자수 :
85,635

작성
23.04.19 00:48
조회
38
추천
2
글자
12쪽

11화

DUMMY

“다른 이야기를 하지. 보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여관 건물 마음에 들더라. 다른 건 딱히 필요 없고.”

받아낼 게 딱히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물건이라고 해봐야 사람과 바꿔서 받은 것 일 텐데 받기 찝찝했다.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은 겐가?”

“그대로 두고 쓰기만 할게. 본래 목적대로 손님으로 머무는 걸로 치면 되잖아. 어차피 올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좋네. 대신 사용인을 붙여줄 수 없고 소모품은 별도로 청구 될 걸세. 망가진 부분이 있다면 변상하는 건 물론이고.”


꽤 넓은 곳을 혼자서 청소하는 게 번거롭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하나만 쓰면 충분했다. 문제는 소모품이었다.


“이 근처에서 돈을 벌만한 게 있어?”

“보통은 농장이나 제재소에서 일하고 삯을 받거나, 싸움에 자신이 있다면 계투(械鬪)나 위험한 괴물이 있는 마을에 가서 용병이 되지만. 검주라면 둘 다 쉽지 않겠군.”

“마을끼리 싸움도 해?”

“흔하진 않지만 조금 더 변두리로 가면 종종.”


전자는 너무 짜고 후자는 눈에 튈 가능성이 높았다. 인간 백정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할만한 일은 뭐가 있어?”

“벽 외부를 복구하는데 필요한 자재를 다듬는 것 정도가 있겠군. 숲에 가서 나무를 베거나 바위를 잘라서 작은 덩어리로 만들거나. 그런 일.”


그런 일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하기야 원래 무인이 할만한 일은 그런 것뿐이다. 경지가 낮은 마법사는 자잘한 부품이라도 만들지, 경지가 낮은 무인은 공사판으로 간다.


“언제부터 할 수 있어?”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부터. 손이 많이 부족해. 마을 사람들에겐 자네가 내 손녀라고 소개해놨으니 적당히 맞춰주게.”

“칼을 겨누는 걸 본 사람도 많을 텐데 그게 돼?”

쉽게 반박당할 거짓말을 하고 다니는 건 쪽팔렸다.


“처음 봤다고 했네. 집에서 나간 아들이 하나 있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 들킬 일은 없을 거야.”

“경지는?”

“완성된 검기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마을에 없으니 괜찮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궁금한 게 풀렸다면 이제 내가 질문을 해도 되나?”

“해.”

“늑대인간의 시체나 신원불명의 인간 시체는 찾을 수 없었네. 어떻게 됐는지 설명이 필요하겠군.”


어디서 왔냐거나 하는 질문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나도 모르는 걸 남에게 설명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


“도망칠 거라 하길래 보내줬어.”

죽이지 않았다는 말에 촌장의 인상이 심각해졌다.

“아주 나중에라도 다시 올 가능성이 있나?”

“아니. 아예 없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있다면 설명해주게.”

“제국에 복수하고 싶으면 이런 작은 마을 말고 상단을 털거나 귀족을 죽이라고 했거든. 그랬더니 알았데.”

“...그건 못 들은 걸로 하겠네. 아무튼 확신한다니 다행이군. 이야기가 끝났으니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여자 시종이 양 손에 납작한 접시를 하나씩 들고 들어 왔다. 구수한 고기 국물 냄새가 났다.


“더 물어볼 건 없어?”

“없네. 어차피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잘 생각했어.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지만 이해시킬 자신도 없어.”


놓여 있던 자기 숟가락으로 스프를 한 스푼 떴다. 아무런 점성 없이 흘러내렸다. 이상했다. 생긴 게 많이 이상했다. 잘린 감자 조각이 둥둥 떠 있는 게 그냥 국 같았다. 혹시나 해서 먹어봤는데 역시나 이었다.


“원래 여긴 이렇게 먹어?”

“혹시 음식이 입에 맞지 않나?”

“아니 맛이 없는 건 아닌데.”


고기 육수에 구운 양파가 들어가서 적당한 감칠맛과 단맛, 짠 맛, 후추의 매운맛까지 잘 섞인 국이었다. 그래 국이었다.


“같은 재료라도 루를 만들어서 넣고 감자도 으깨서 넣었으면 더 나았지 않을까 싶어서.”

“루가 뭐지? 처음 듣는데.”

“루를 왜 몰라?”


완벽하게 카라멜라이징을 하진 않았지만 생양파가 아니라 구운 양파를 넣었다. 루를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과 개념은 모두 가지고 있단 것이다. 그러니 루가 없을 것 같진 않은데 이상했다. 주로 먹는 건 옥수수 가루이었지만 밀가루도 있었고 버터도 있었다.


“기름에 밀가루를 볶아서 만드는 건데 스프를 걸쭉하게 만드는데 써.”

“걸쭉한 스프는 그렇게 만드는 거였군.”

역시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냥 촌장이 모를 뿐이었다.


“요리사도 몰랐다고?”

“내 집에서 일하는 건 시종 부부 둘이 전부다. 교육 받은 요리사를 부르면 세금을 더 내야하니까.”

“주민 중에 그나마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다 쓰면 되는 거 아니야?”

“그게 지금 시종들이다.”

“골 때리네.”


지식이 곧 보물인 세상이라는 걸 깜빡했다. 누구나 자랑하듯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는 세상이 아니다. 어쩌면 루를 만드는 간단한 조리법조차 수 년 동안 주방에서 잡일을 해야 가르쳐줄 수도 있다.


다음에 나온 건 닭고기 튀김이었다. 옥수수 반죽을 입혀서 돼지기름에 튀겼는데 꽤 괜찮은 맛이었다. 역시 닭은 언제나 무난했다. 찍어먹을 게 소금 밖에 없었는데도 먹을 만했다.


“타르타르 소스도 같은 것도 모르지? 마요네즈에 피클이랑 설탕을 섞은 건데.”

“피클은 안다만, 마요네즈는 또 뭔가?”

“그거부터 설명하긴 복잡한데.”


마요네즈를 모르는 사람한테 마요네즈는 말로 설명하기 상당히 어려운 물건이었다. 재료의 대부분이 기름이니까 맛과 생김새 둘 다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냥 나중에 한 번 나한테 직접 오던지 시종을 보내. 알려줄게.”

“역시 귀족이라 그런지 조예가 깊군. 나중에 찾아가겠다.”

말하다보니까 답답해졌다. 만들어서 보여주기로 했다. 숙성이 필요한 장이라면 모를까 이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거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잠깐 비웠던 촌장이 장검 하나를 가져와 건네줬다. 뼈 같은 게 아니라 강철로 되어 폼멜과 가드까지 있는 물건이었다.


“예전에 썼던 검이다. 날은 세워놓지 않았지만 상관없겠지.”

“잘 쓸게.”


레어메탈, 하다못해 티타늄 합금 같은 걸로 만든 검이 아니면 막 휘둘렀다가 이가 나가버리기 십상이다. 내공으로 보호할 순 있겠지만 그만큼 신경을 써야한다. 차라리 뭉뚝한 상태로 쓰는 게 나았다. 이걸로도 충분히 벨 수 있다. 검집에 연결되어 있는 가죽 벨트를 허리에 찼다.


“돌과 나무 어느 쪽이 더 급하지?”

“나무입니다.”

“제재소로 데려가서 내가 하던 작업을 시키게.”

“알겠습니다.”


남자 시종의 뒤를 따라서 성을 빠져나왔다. 성 바깥은 복구가 한창이었다. 아직도 고블린의 시체는 전부 치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알아봤는지 힐끔거리는 시선이 많았다. 마을의 평야와 숲의 경계선에 밑둥만 남은 나무로 가득한 땅이 있었다.


한 쪽에선 쓰러진 나무를 도끼로 정리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선 정리한 나무를 여러 명이서 붙잡고 어디론가 나르고 있었다.


나와 시종의 모습을 본 남자 하나가 저 멀리서부터 뛰어왔다.


“아이고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30대나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책임자치고 젊었다. 손을 비비며 허리를 살짝 낮추고 있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나무를 베는 건 멈추고 나르는데 집중해라. 촌장님의 손녀분이 직접 오셨다.”

“아이고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소인이 천해서 그런지 눈치가 느립니다. 저는 여기서 작업반장을 맡고 있는...”

아부의 대상이 시종에서 나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꼬리가 있었다면 그걸로 약간은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한테 괜히 아부를 떨어봐야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뻘줌했다. 이름도 아무개를 붙여서 열심히 소개했지만 부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흘려들었다.


“몇 개나 베야 돼?”

“나르고 말리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지라...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면 오늘 할당량은 끝납니다.”


그루로 세면 많지 않았지만 하나 같이 두께가 사람 몸통보다 훨씬 두꺼운 나무들이었다.


“쓰러뜨리면 되는 거야?”

“아뇨아뇨. 저희가 줄을 걸때까지 기다렸다가 도끼질하기 쉽게 칼집만 내 주시면 됩니다.”

“왜 그렇게 번거롭게 해. 저기까지 비켜.”


나무 높이의 2배 정도까지 물러나게 했다. 장검을 뽑았다. 1미터가 넘는 검이어서 양손으로 잡았다. 무게야 무겁지 않았지만 자세 때문이었다.


방망이질을 하는 것처럼 팔을 목 뒤로 당겼다. 그리고 수평으로 휘둘렀다. 내기가 주입된 검은, 나무를 큰 저항 없이 파고들었다.

나무의 3/4까지 자르고 검의 각도를 살짝 틀어, 들어갈 때와 같은 방향으로 다시 가르고 나온다. 치즈조각처럼 잘린 나무의 밑 부분이 빠져나오자 나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쾅- 하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반장은 멍하게 지켜봤다. 쓰러진 나무의 줄기를 아까 들고 가던 것과 비슷한 길이로 잘랐다. 잔가지는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뒀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지?”

“맞습니다. 나이에 비해 정말 고명하신 검술입니다. 이런 걸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아부 반 진심 반이 섞인 감탄을 무시하고 다음 나무로 넘어갔다. 필요한 나무를 전부 자르는 건 금방이었다. 너무 많이 잘라봐야 이슬에 젖어서 상태가 안 좋아지다가 결국 썩는다.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자르고 가면 되지?”

“정말 감사합니다. 소인들의 일인데 이렇게 도와주시니 정말 기쁠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나한테 아부해봐야 소용없다니까.’


반장은 딱히 보수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았다. 떼먹진 않을 테고 촌장이 챙겨주겠거니 했다.


어제 봤던 길을 잘 기억해내서 여관을 찾아갔다. 어제 어두웠을 때 지나간 길이라 헷갈렸지만 그럭저럭 잘 찾아올 수 있었다.


여관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언니!”

의자에 앉아서 테이블에 엎드려있던 세라가 일어나서 안겼다. 머리카락에서 뭔가 쓴 풀냄새가 났다.


“몸은 괜찮으세요? 거기서 혼자 나가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안 싸우고 보냈으니까 됐잖아.”

“머리가 살짝 붉어진 것 같은데 이거 피가 밴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니. 원래 색깔로 돌아가고 있는 거야.”


아주 살짝, 빨간색 물감을 몇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미묘하게 붉은 빛이 돌았다. 내가 몸에 저장하고 있는 생명력의 양에 따라서 변한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전자기기의 배터리 잔량 표시마냥 편의기능은 아니었다.


“원래 색깔이요?”

“몸 상태에 따라서 바뀌거든.”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원래 색깔은 선명한 붉은색이기 때문이다.


“네? 그럼 몸이 아팠던 게 맞았다는 거예요?”

“아니 그거랑은 또 다른데.”


비유하자면 극심한 기아 상태와 비슷하지만, 그게 생명이 위험하단 건 아니었다. 이능을 다루고 수련하는데도 지장 없다. 단지 몸의 성장이 멈출 뿐이다. 너무 오래 지속되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특이한 형질을 완성하거나 절대고수 혹은 대마법사와 같은 지고한 경지에 올라야한다. 어느 쪽도 쉽지 않았다.


“거짓말!”

“진짜야.”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말을 돌리기로 했다. 마침 좋은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종이는 뭐야?”

탁자 위에 손바닥 크기의 종이가 쌓여있었다. 대충 세어 봤는데 서른 장은 됐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할 거예요. 이건 교환증이에요. 식료품점에 가면 일정한 양의 옥수수 가루와 바꿀 수 있어요.”

“돈이구나. 그건 왜?”

“어제 늑대에게서 나온 고기와 가죽을 정산한 거라고 촌장님이 주셨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 늑대가 죽으면서 떨어지는 걸 봤는데 잊고 있었다.


“이거 한 장으로 얼마나 받을 수 있어?”

“제가 가져다 드린 작은 포대 하나요.”

“꽤 많네.”


얼마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상금을 주는 겸해서 조금 넉넉하게 쳐준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기 혹시... 당장 쓰실 일이 없으면 기부하지 않으실래요?”

“기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문명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15화 23.04.26 20 0 12쪽
15 14화 23.04.22 24 0 12쪽
14 13화 23.04.21 32 0 14쪽
13 12화 23.04.20 27 0 12쪽
» 11화 23.04.19 39 2 12쪽
11 10화 23.04.17 37 0 12쪽
10 9화 23.04.16 42 1 12쪽
9 8화 23.04.15 56 1 13쪽
8 7화 23.04.13 55 1 11쪽
7 6화 23.04.13 53 0 11쪽
6 5화 23.04.11 57 1 12쪽
5 4화 23.04.10 52 1 11쪽
4 3화 23.04.09 61 1 11쪽
3 2화 23.04.08 76 1 12쪽
2 1화 23.04.07 120 1 12쪽
1 프롤로그 23.04.07 198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