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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다시서다 관련


[배우다시서다 관련] 무제 (6)

두 스텝이 거하게 김치 국물을 들이고 있을 때, 태화는 주머니를 울리는 진동에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곤란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태화, 어떻게 사전 경고도 없이 그런 영상을 줄 수 있지? 가족끼리 보다가 놀랐잖아.]

 

영화가 개봉했다 해서 홍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정체가 드러난 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천갈궁 역의 배우 태화가 드라마 준비로 바빴기 때문에, 다른 주연들은 배로 바쁘게 미국 전역을 날아다녀야 했다.

브라이언이 태화가 시사회 때 건넨 시디를 이제야 확인하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운 나쁘게도, 그는 지미가 남긴 다잉 메시지조차 시청 전에 확인하지 못했다.

 

[, 가족끼리 본 거야? 미안.]

 

그제야 브라이언의 가족을 떠올린 태화는 사과의 문자를 남겼다.

오재빈 사건을 각색한 괴물 영상 자체가 매우 충격적이었다.

미국 정서에 맞춰 수정되었어도 처음엔 제한 상영가인 ‘NC-17’를 받았고, 이후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인 ‘R’ 등급으로 하향 조정되긴 했으나, 정작 미국에 풀린 영상은 처음 완성했던 미국판 무삭제판인 무등급(unrated)’였다.

 

태화가 브라이언과 지미에게 건넨 영상도 동일한 수위.

절대 가족끼리 볼만한 영화가 아니었단 의미다.

 

[미안이라고? 고작 미안이란 한 단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나한테 섭섭한 게 있던 건가?]

 

태화는 ‘send’를 누르기 무섭게 도착한 장문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임서연을 떠올렸다.

오타 하나 없는 깔끔한 문자.

세상에는 두 손가락으로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럴 리가. 드라마도 그렇고 브라이언에겐 여러모로 고맙게 생각해.]

[그런데 왜 에시를 충격받게 한 거야?]

 

푸념이 이어질 거란 그의 예상을 깨고, 브라이언은 앞뒤가 맞지 않는 메시지를 보냈다.

 

……?”

 

태화는 갑자기 등장한 이름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에시라는 낯선 이름이 왜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화야,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것도.”

 

뭔가 나쁜 글이라도 봤나 싶어 룸미러를 통해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현규를 향해 태화는 손을 휘저었다.

 

[에시?]

[그래, 내 딸 에시 말이야!]

 

그제야 태화는 브라이언의 여섯 살 딸의 이름이 에슐리, 애칭이 에시였음을 기억했다.

그리고 심각해진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괴물은 어른들이 보기에도 상당히 끔찍한 영화였다.

작품 자체가 살인 사건의 참혹함과 분노를 담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어른들에게도 거북스러운 영화가 어린아이에게 잘 맞을 일은 없었다.

 

[딸이 6살이었지? 내 영상을 보고 많이 놀랐어? 괜찮아?]

 

혹시 브라이언의 딸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태화는 약간 초조해진 기분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약간의 장난이었을 뿐인데 너무 일이 커진 것 같았다.

 

[그래. 아주 사랑스러운 나이지. 언제나 아빠 사랑해요를 말하는 귀여운 아이……. 그 아이가 나보다 네가 좋다잖아. 어떻게 나한테 이런 비극을 줄 수 있어?]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맥을 탁 풀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는 잠시 이 문자가 몰래카메라거나 다른 사람이 브라이언의 폰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아닌지 고민했다.

카메라 밖에서 무덤덤했던, 심지어 천갈궁의 정체가 들어나는 순간까지 침착했던 브라이언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해서다.

 

하긴 엄청난 애처가에 딸바보였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글로리아가 브라이언에 대해 투덜거릴 때 빠지지 않았던 말이 그의 유별난 가족 사랑이었다.

맥주를 3병 이상 마시지 않는 것도, 주말에 만나기 힘든 것도 다 가족을 위해서.

약속을 여러 차례 거절하는 브라이언을 보고 그가 딸과 아내를 지극히 사랑한다는 건 태화도 알고 있었지만, 아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달랐다.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하면 한번 집에 와. 내 작은 귀염둥이(little sweetie)가 널 보고 싶어 한단 말이야. 에시가 귀엽다고 헛짓하면 가만 안 둘 거다.]

[, 그래.]

 

태화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는 폰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들이 천갈궁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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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 Lv.27 마늘소금

    19.02.12 19:08

    사실 이 파트 때문에 이번화 소제목이 [역지사지?] 였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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