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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해시

섬마을 소년이 재벌급 천재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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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해시
그림/삽화
열심히 쓰겠습니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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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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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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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40년 만에 돌아온 고향

DUMMY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온 로버트는 리모컨으로 거실 TV를 껐다. 하지만 이정욱은 까만 밤이 된 TV 화면에 눈을 떼지 않았다. 


“정욱, 이제 그리운 고향에 갈 시간이야.”


로버트는 이정욱이 평생 감추고 싶은 슬픈 사연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이정욱이 40년 가까이 고향인 천해도에 가지 않았는지를. 


이번 영화도 천해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촬영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래. 무엇을 보고 있었길래. 시간 가는 줄도 모른 거야? 재밌는 한국 영상 콘텐츠라도 있었던 거야? 그런 거라면 우리 회사에서 미국 배급을 담당하면 좋을 것 같은데.”

“하하하. 자네는 역시 돈 귀신이야. 빨리 나가지. 그래야만 저녁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이정욱은 미리 싸놓은 짐가방을 챙겼다. 그때에도 머릿속에는 TV에 등장한 살인자의 얼굴이 자꾸 맴돌았다. 


‘낯익은 얼굴인데 말이야. 도통 기억이 나지 않네.’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이정욱을 보면서 로버트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침에 그 여배우 생각해?”


“하하하. 내가 자네인가?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오랜만에 고향에서 상봉할 가족이라도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고 치지.”


이정욱은 30년 넘게 아버지와 누나를 만난 적이 없었다. 


다만, 10년 전쯤 미국 출장을 온 동생 이정희를 한 번 만났었다. 그때 이정욱은 미국에서 잘 지내고 있는 척을 하기 위해, 마침 사귀고 있었던 할리우드 최고 여배우 중 한 명을 데리고 나갔었다. 


- 오빠. 정욱 오빠? 

- 그래, 정희야. 오, 오빠야. 그동안 잘 지냈지?

- 응. 난 잘 지냈지. 오빠는 어떻게 지냈어? 옆에는 누구고?

- 하하하. 오빠도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지. 옆에는 할리우드 배우인 줄리아야. 내 여자친구고···. 


동생 이정희를 만났을 때, 일부러 더 웃고 떠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동생은 그런 이정욱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헤어지면서 이정희는 이정욱에게 말했다. 


- 오빠, 다음에는 오빠가 진짜로 사랑하는 여자를 소개해줬으면 좋겠어. 


이정희의 말에 웃고 있던 이정욱의 얼굴이 굳어졌다. 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의 끔찍한 사고 이후 이정욱은 지금껏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


서울에서 출발한 지 5시간 정도 지났을 때쯤. 이정욱과 로버트를 태운 차량이 천해 대교에 다다랐다. 이정욱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한 새로운 천해 대교였다. 


‘옛날 다리는 없애고 새로운 다리를 만들었나 보네. 어, 저건···.’


차창 밖으로 새로운 천해 대교 밑에 자리 잡은 옛 천해 대교가 보였다. 거기에는 수십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비석 숫자는 71개일 것이다. 


가슴에 또 통증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더 극심했다.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정욱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로버트가 물었다. 


“정욱, 괜찮은 거야?” 

“여기 약통에서 알약 좀 꺼내줘.”


로버트는 알약을 꺼내 이정욱에게 건넸다. 이정욱은 물도 없이 알약을 삼켰다. 하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 퍼져오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차량이 천해 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통증이 차츰 사라졌다. 


“로버트, 창문 좀 열어줄래.”


차창을 열자, 비릿한 바다 내음이 차 안으로 훅 들어왔다. 이정욱이 40년간 그리워했던 고향의 냄새였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정욱, 고향의 바다 냄새가 기가 막히는데. 이게 바로 마초의 냄새지. 한국에서는 회를 즐긴다고 하는데. 오늘 밤에 회를 한번 먹어보자고···.”

“하하하, 그래. 내가 직접 낚시로 싱싱한 물고기를 잡아주지. 기대하라고.”


40년 만에 찾은 천해도는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붉은 노을에 물든 바다.

추수를 막 끝낸 논.

단풍이 든 산. 

······.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린 시절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고급스러운 이층집이 도로 옆에 듬성듬성 보였다. 


“어때? 고향이 많이 변했지?”

“아니. 그대로야.”


겉모습이 살짝 변했다고 하더라도, 천해도의 하늘과 바람과 바다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이정욱의 마음까지도······.


***


고급스러운 리무진 SUV 차량이 이정욱이 태어나고 살았던 동네인 천해군 군내면 무풍리에 들어섰다. 이정욱과 로버트가 탄 차량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작은 슈퍼가 어릴 적 그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슈퍼라는 이름 대신에 ‘무풍 마트’라는 낡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천해도 섬마을 천재 영화감독 이정욱의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섬마을 천재 영화감독···.’


눈물이 났다.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정욱은 고향을 잊어버렸지만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고향은 이정욱을 잊지 않았다. 

 

이정욱이 만든 영화가 천해도 읍내 문화회관에서 특별 상영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가 영화를 관람했다. 


- 오빠, 아빠가 버스를 대절해서 마을 사람들 전부 데리고 가서 오빠 영화 관람했어. 


그럴 때마다. 동생 이정희는 스마트폰으로 단체 관람 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사진에는 낯익은 얼굴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정욱은 바로 사진을 삭제했다. 

그리고 그날엔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 


무풍리 마을 중심에 위치한 마을 회관에도 <천해도 섬마을 천재 영화감독 이정욱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니, 마을 곳곳에 플래카드가 걸렸다. 


플래카드는 이정욱의 아버지 이천호가 운영하는 펜션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로버트가 입을 열었다.


“정욱, 가는 곳마다 플래카드가 있는데. 저 플래카드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할리우드 위대한 영화 제작자이자 바람둥이 로버트의 방문을 환영한다고 적혀 있어.”

“하하하. 역시 내 명성은 대한민국의 섬마을까지 알려져 있나 보네.”

“좋겠어?”


로버트는 한국에 온 후로 농담을 더 자주 했다. 이정욱 때문이었다. 한국에 왔지만,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이정욱이었으니까. 지금도 너스레를 떨면서 슬픔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정욱에게 농담을 건넸다. 


“아주 좋지. 이 마을에 영화 박물관과 기념관을 짓는 것도 너무 흥미로울 것 같아.”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지?”

“한 달 후면 공사가 시작될 거야. 그리고 자네를 위해 특별한 선물도 준비했지.”

“선물?”


***


천해군 무풍리 바닷가 앞. 


바다를 지키는 보초처럼 2층짜리 건물 10동이 일렬로 세워진 펜션이 보였다. 겉모습은 세련된 펜션이었지만, 펜션 이름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정욱 펜션>


차량에 내린 이정욱은 펜션 앞에 세워진 팻말에 헛웃음을 삼켰다. 


누나와 아버지가 운영하는 펜션. 


그간 이정욱이 가족에게 보낸 돈으로 누나와 아버지는 펜션을 지었다. 그 펜션 건물 동마다 이정욱이 만든 영화 제목을 붙였고. 


“거기, 누구요?”


20미터 남짓한 거리. 한 노인이 이정욱의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이천호의 목소리였다. 


이정욱은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늘 그립고 보고 싶었던 아버지. 반가움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정욱이냐?”


이천호는 장년이 된 아들의 뒷모습만 보고도 알아봤다. 30년간 만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아버지의 물음에 이정욱은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대답했다. 


“···네.”


이천호가 아들 이정욱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5미터 남짓한 거리가 이렇게나 멀었나? 


이천호는 아들을 보자마자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잘 왔다. 잘 왔어.”

“잘 지내셨죠?”

“그래. 내일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냥··· 일찍 왔어요.”


40년 전, 그 일이 있고 난 후. 매일 밤 오열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이천호는 말했다. 


- 정욱아, 고등학교는 정숙이가 있는 지역에서 다녀라. 교장 선생님께 말은 미리 했다. 네 성적이면 그 지역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더라. 동생도 같이 전학 보낼 거야. 

- 아버지는요?

- 나는 동네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갚고 살아야지.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어머니의 암 투병 기간. 마을 사람들은 심적은 물론, 금전적으로 이정욱의 집에 많은 도움을 줬다. 성금을 모아 주기도 했으며, 병원비를 빌려주기도 했다. 


이천호가 진 빚의 8할은 은행이 아닌 마을 사람들에게 빌린 돈이었다. 


***


<이정욱 펜션>의 중앙에 2층짜리 건물이 세워져 있다. 펜션 건물보다 5배 정도 더 큰 건물이었다. 아버지와 누나 이정숙의 가족이 지내는 집이었다. 


“어서 와라. 일행은 펜션에서 묵으면 되고, 정욱이 너는 2층 끝방에서 지내면 될 거다.”


첫 만남 이후부터 아버지 이천호는 아들 이정욱의 손을 놓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간 집 안으로 들어가니, 누나 이정숙이 눈물을 흘리면서 맞이했다. 


“정욱이 맞지?”


이정숙은 이정욱을 껴안았다. 따뜻했다. 가족이라는 것은 이렇게 따뜻한 감정인데. 40년간 이 감정을 잊고 살았다. 


“누, 누나.”


이정욱은 매형과 20대인 여자 조카 두 명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저 끝방이 네 방이다.”


이정욱이 2층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40년 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방안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아버지가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내 방이랑 비슷하네.’


낡은 책상, 책장에 꽂힌 낡은 책들, 빛바랜 노트들, 종이학이 가득 담긴 유리병, 친구들과 소풍 때 찍은 사진이 담긴 액자, 수동 카메라···.



그리고 중학교 졸업 앨범.

  

아버지가 1층으로 내려간 후. 이정욱은 졸업 앨범을 펼쳤다. 40년간 그리워했던 얼굴들이 가득했다.


빛바랜 눈물 자국 위에 새로운 눈물을 찍었다. 


***


다음 날, <이정욱 펜션>에 마련된 야외극장.


1년 전, 영화 ‘그날이, 다시 오면’을 크랭크인할 당시. 이정욱은 아버지의 펜션에 자그마한 야외극장을 만들어달라고 로버트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로버트가 수억 원을 들여 영화제 장소에 있을 법한 야외극장을 만들었다. 이게 로버트가 말한 선물이었다. 


‘잘 만들었네. 칸 영화제에서나 볼 법만 극장이네.’


오늘은 영화 ‘그날이, 다시 오면’ 특별 시사회가 열리는 날. 


이정욱은 무풍리 마을 사람들, 이정욱의 중학교 친구들의 가족을 이번 영화의 특별 시사회에 초대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내 유수 언론사 소속 기자들도 참석했다. 


<이정욱 감독의 영화 ‘그날이, 다시 오면’ 천해도 특별 시사회>


해가 질 무렵. 고급 뷔페로 저녁 식사를 한 관객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얼추 300명 정도였다. 


시사회 사회를 맡은 유명 방송인의 진행으로 먼저 주연배우들이 인사했고, 마지막으로 이정욱 감독을 소개했다. 


이윽고 이정욱이 무대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이정욱입니다.”


가볍게 인사하고 나서 이정욱은 관객을 향해 큰절했다. 그러자 초대된 관객들은 모두 박수를 보냈다.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많았다. 


동생인 이정희와 누나인 이정숙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이천호는 눈을 감았다. 아들이 홀로 40년간 고통의 나날을 보냈을 것을 생각하면, 그런 아들의 모습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이 영화는 제 친구들을 위해 만든 영화입니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저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정욱의 발언에 기자들뿐만 아니라, 관객들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미 이정욱이 천해중 3학년 수학여행 사고를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가 만든 마지막 영화라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그간 많은 영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그 모든 작품을 찾아봤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웠습니다.”


그간 천해중 3학년 수학여행 사건은 다큐멘터리, 영화, 드라마 등 수많은 영상 콘텐츠로 제작됐다. 그만큼 대한민국 전 국민에게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정욱은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면서 말을 이었다. 


“제 영화에서만은 친구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욱이 무대에서 물러나자, 영사기가 스크린을 비췄다. 드넓은 바다 위에 물결이 넘실거리더니 <그날이, 다시 오면> 타이틀이 물결 위로 쓰였다. 






감사합니다. ^^ 오늘이 늘 찬란했던 그 시절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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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알력 다툼 (4)  +5 24.05.16 3,640 71 11쪽
8 8화. 알력 다툼(3) +3 24.05.15 3,849 75 12쪽
7 7화. 알력 다툼 (2) +10 24.05.14 4,130 81 11쪽
6 6화. 알력 다툼 (1)  +4 24.05.13 4,577 91 13쪽
5 5화. 찬란했던, 그 시절로 돌아오다 +3 24.05.11 5,227 104 15쪽
4 4화. 그날이, 다시 오면 +7 24.05.10 5,197 110 16쪽
» 3화. 40년 만에 돌아온 고향 +1 24.05.09 5,343 112 13쪽
2 2화. 그날 이후 40년이 지나 +3 24.05.09 5,769 107 15쪽
1 1화. 그날의 아침에 생긴 일 +10 24.05.08 6,935 10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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