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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아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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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아재
작품등록일 :
2018.12.17 13:54
최근연재일 :
2019.03.14 15:20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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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70
추천수 :
291
글자수 :
329,334

작성
19.02.1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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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추천
3
글자
21쪽

30화. AAA급 필드.

DUMMY

거대한 외부 통로를 따라 투명하고 아주 큰 창들이 연속되어 길게 늘어서 있다.


창밖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공간에 가끔 빛나는 점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게 보인다.


큰 창의 안쪽에 토끼와 고양이 외모를 한 존재가 창과 벽이 맞닿아 있는 부분에 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둘은 지금 같은 대상을 바라보고 듯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벽으로 향한 둘의 시선을 따라가자 커다란 창과 창사이의 반듯한 벽에 어떤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영상은 마치 블랙박스에 기록된 내용처럼 녹화 당시의 사건들이 순서대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어때, 자네가 설계한 필드를 복기 해보는 소감이?”


고양이 외모를 닮은 선배가 시니컬하게 묻는다.


질문을 받은 후배는 영상을 애써 외면해버리고 싶었지만 달리 도리가 없어 보였다.


‘아~ 화질은 왜 저리도 좋은 것인지 참.’


잉거하임의 불만처럼 재생되고 있는 필드 기록 영상은 노이즈 하나 없는 선명한 화질의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하지, 저렇게 계속 재생되다 보면 내가 한 일탈행동들이 낱낱이 다 밝혀질텐데.’


조마조마한 잉거하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배인 베르링거는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다.


“화질 참 좋지 않나? 요즘 차원 공학은 참 많이 좋아졌군 그래.”


‘이 선배는 지금 와서 왜 이걸 나한테 보여 주는 거지?’


잉거하임은 도대체 선배의 저의가 궁금해졌다.


‘이걸 집정관님이 보셨다면 분명 6급 대리사 직위는 물론이거니와 그 자리에서 당장 파면 당했을텐데 말이야.’


베르링거의 시선이 영상에서 벗어나 잉거하임에게로 옮겨온다.


“궁금하지 않나? 자네의 영상 기록 큐브를 내가 왜 빼돌렸는지 말이야.”


제일 궁금했던 점을 이제는 알 수 있으려나 싶은 잉거하임이 선배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연히 궁금합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음~ 이유를 말해주기 전에 몇 가지 내가 먼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어때? 대답해 줄 수 있겠나.”


잉거하임은 칼자루를 잡은 사람이 선배였으므로 가부를 선택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제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성심 성의껏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도대체 뭘 물어볼까 궁금한 잉거하임이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마냥 공손히 말했다.


그런 잉거하임의 고분고분한 태도가 맘에 드는지 피식 웃으며 베르링거가 영상으로 시선을 다시 옮긴다.


“영상에 대해서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긴장하지 말고 알고 있는 그대로 말해주기만 하면 되네.”


베르링거는 말을 하면서 손에 든 큐브를 조작해 투사된 영상을 빠르게 진행시켜 원하는 부분을 찾는 듯 했다.


“어디보자, 여기 어디 쯤 이였는데......”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을 보며 잉거하임은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내 일탈 행동이 기록된 부분이 아니길......’


이내 베르링거가 자신이 원하는 부분을 찾았는지 재생속도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여기 이 부분에서 말이지......”


화면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엉거주춤 서 있는게 보인다.


“자네 이 두 명의 플레이어를 알아보겠는가?”


잉거하임은 고개를 끄덕이며,


“네, 튜토리얼 필드를 수행하는 동안 비교적 레벨이 높은 편에 속하는 플레이어들이었습니다. 필드내 활동도 활발 했구요.”


굳이 ‘주로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분쟁에서 활약했다’는 상세한 설명까지는 하지 않는다.


일단 화면을 정지시킨 베르링거는 두 사람이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그런데, 자네 눈에 여기가 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나?”


잉거하임이 베르링거가 지적한 부분을 두 눈을 부릅뜨고 자세히 살펴본다.


‘응? 뭐지 노이즈 낀 것인가, 화면이 왜 뿌옇게 보이지.’


두 명의 플레이어 시선이 향한 곳에는 뭔가 이질적인 것이 방해를 하는 듯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영상이 깨끗하게 기록되지 않아 보입니다.”


베르링거도 고양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영상을 살피며,


“맞아, 이 부분은 내가 보기에도 영상 기록이 훼손된 것처럼 보인다네.”


베르링거가 다시 영상을 천천히 재생시켰다.


화면 속 두 플레이어가 황급히 팔을 움직여서 무엇인가를 잡으려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한 명은 허공을 움켜쥐었고 다른 한명은 그 무엇인가를,


잉거하임의 눈이 커졌다.


“아니, 저게 뭐죠?”


영상에서 훼손되었다고 믿었던 부분이 이동하고 있었다.


베르링거가 다시 영상을 정지시킨다.


두 명중 한명의 플레이어가 바닥을 뒹굴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다.


화면에서 뿌옇게 변한 부분이 두 플레이어의 사이를 막 통과하고 있는 중이었다.


“허~ 이것은 훼손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


잉거하임이 말을 하며 더 자세히 보기위해 정지된 영상에 한걸음씩 다가갔다.


베르링거도 잉거하임처럼 한 발짝 가까이 간다.


“내 눈에도 이건......”


선배 대리사와 후배 대리사는 동시에 같은 의견에 도달했다.


선배가 먼저 입을 연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 뿌옇게 변한 부분 안에 있는 존재가 영상에 찍히지 않고 있는 것 같군.”


이어서 후배도,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겁니까?”


베르링거의 얼굴이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그걸 이제부터 자네와 내가 함께 알아보려는 거네.”


잉거하임은 귀여운 토끼 손가락을 한 개 펴서 자신과 선배를 번갈아 가리키며,


“선배님과 저랑 둘이서요?”


뜻밖이라는 표정의 잉거하임이다.


“그래, 자네는 저 영상 안에 실제로 참여했던 대리인이였으니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겠나.”


“그... 그렇긴 합니다만.”


“자~ 여기 이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게.”


베르링거가 영상을 다시 천천히 재생한다.


뿌옇게 변한 부분이 두 플레이어 사이를 통과해서 멀리 사라지고 둘 사이에 몇 마디의 대화가 오고가는 대목이다.


“바로 이 부분.”


베르링거가 영상을 정상속도로 재생한다.

.

.


“뭐라고 하는 거야?”


“마치 달리는 기차 난간을 잡은 느낌 이였다고!”


.

.


베르링거가 같은 대목을 두세 번 반복 재생한다.


“넘어진 플레이어가 이 뿌옇게 변한 존재를 잡으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걸로 보이네.”


“기차? 난간? 저게 무얼 뜻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베르링거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잉거하임을 바라본다.


“자네 저 뿌옇게 흐려진 존재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나?”


몇 초가 머리를 굴려보던 잉거하임이 답한다.


“음~ 네, 이 부분만 보고는 모르겠습니다.”


후배의 대답에 베르링거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자네는 저 존재를 알고 있다네.”


잉거하임이 펄쩍 뛰면서,


“네? 선배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후배의 반응과는 대조적이게 조근조근한 톤으로 베르링거가 말을 잇는다.


“왜냐하면, 자네는 이미 저 존재를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라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이나 말일세.”


잉거하임의 두 귀가 위로 바짝 서버렸다.


“제가요? 저 뿌옇게 변한 존재를 만난 적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맞아. 그것도 아주 가까운 사이 같더군. 내가 보기에 말이지.”


잉거하임이 손사래를 치며,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제가 저 뿌연 존재와 친하다니요.”


베르링거는 후배와 대화하는 대신에 큐브를 조작해서 재생속도를 다시 빠르게 조절했다.


조작에 의해 화면은 어느 특정 부분에서 일단 정지한다.


“자~ 이걸 한번 보게.”


“어? 저기는......”


잉거하임이 자신이 아는 장소가 나왔는지 아는 체를 한다.


“저기가 어딘지 기억하는가 보군?”


베르링거가 잉거하임의 표정변화를 살피며 말했다.


“네, 저기는 튜토리얼 필드 중앙에 위치한 화산섬 꼭대기 부근입니다만.”


잉거하임의 눈에 화면 속에 등장한 자신이 폴짝폴짝 뛰어서 바위 근처로 다가가고 있는게 보인다.


‘어라, 저기로 가면 그 사고뭉치 플레이어가 있는 곳인데.’


잉거하임이 의아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는 동안 베르링거는 화면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 쪽을 한번 보게나.”


잉거하임이 깜짝 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어떻게 저럴수가, 세상에.”


잉거하임은 화면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 앞에 조금 전에 보았던 그 뿌옇게 변한 존재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혼란에 빠진 잉거하임을 보며 베르링거가 묻는다.


“화면상으로 보면 자네는 저 존재를 직접 만나 본 걸로 보이네만. 그리고 이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 같군.”


“알다마다요, 근데 왜 뿌옇게 변해서 화면에 나오는 거죠?”


베르링거는 잉거하임의 대답에서 퍼즐 한 조각이 맞춰 졌는지 피식 웃으며,


“자네가 나한테 그걸 물으며 어떡하나. 저 존재를 직접 만나본 이가 말이야.”


자신이 생각해도 선배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라,


“아니, 너무 당황스러워서요.”


베르링거는 다시 큐브를 빠르게 재생해서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 부분도 한번 보게.”


특정 부분에서 멈춰진 영상에는 등장인물 셋이 함께 있었다.


‘망했다, 선배에게 하필 이 장면을 들키다니’


이번에는 잉거하임이 놀라지 않고 상당히 겸연쩍게 화면을 쳐다본다.


“아~ 저건 말이죠, 어쩌다 보니 아니, 그게......”


변명꺼리를 찾지 못한 잉거하임이 횡설수설 어버버 거린다.


화면 속에는 잉거하임이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는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곁에는 뿌옇게 변한 존재와 한 여성 플레이어가 같이 앉아서 먹고 있었다.


“허허~ 자네는 플레이어들과 참 소통을 잘하는 대리인이었나 보군. 정답게 식사도 같이 하고 말이야.”


쥐구멍이 있으면 거기에 코끝만이라도 숨기고 싶은 심정인 잉거하임이다.


최대한 플레이어들에게 간섭과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하는 대리인 신분에서는 플레이어들과 같이 오순도순 식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징계감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게, 이 큐브 안에 있는 내용은 나 이외에 다른 이는 확인할 수 없으니까.”


순간, 어쩌면 이 선배란 사람이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잉거하임.


“그러면, 제가 1급 대리사로 진급하게 된 것도 모두 선배님이 의도하신 작품인가요?”


베르링거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단은 내 의견이긴 하지, 그래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오해하지는 말게.”


두 귀를 한번 쫑긋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이유가 있었다니요? 그러고 보니 제가 1급 대리사로 5계단이나 진급한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만.”


잉거하임의 말에 베르링거가 영상 재생을 멈추고 큐브를 자기 호주머니에 보물처럼 잘 챙겨 넣으며 말한다.


“진급 이유? 그건 곧 알게 될 것이네, 일단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보게.”


잉거하임이 고개를 끄덕하며,


“네 선배님, 물어보십시오.”


베르링거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했다.


“화면 속 뿌옇게 변한 존재는 누구인가?”


“플레이어입니다.”


잉거하임은 단순하게 대답했다.


베르링거는 마치 그럴거라고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플레이어라면 분류번호나 식별할 수 있는 코드가 배정되어 있을텐데, 남아 있는 자료를 볼 수 있나?”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제 튜토리얼 결과 보고서를 보면 나와 있을거...... 헉!”


갑자기 잉거하임이 앙증맞은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뭐야? 그러고 보니 상태창도 안보였고 명단에도 없었잖아.’


잉거하임의 반응에 베르링거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


“그게 말입니다 선배님......”


잉거하임이 발을 동동 구르며 난처해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괜찮으니까 말해 보게.”


부드러운 어조로 후배의 말을 끌어낸다.


“그 플레이어는 말입니다, 제 소환자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베르링거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명단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고 했나, 지금?”


잉거하임이 마치 꾸중이라도 들은 듯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네, 그렇습니다.”


“허어~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명단에 등록되지 않은 플레이어를 어떻게 알고 소환했다는 말인가.”


“얘기하자면, 조금 긴 스토리가 되는데요. 그래도 선배님이 이 사태를 파악하시기 위해서는 들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떤 스토리인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우리 앉아서 얘기 하세나.”


베르링거와 잉거하임은 음료를 마셨던 자리에 마주 앉아서 남아있는 음료로 목을 조금 축였다.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정리가 좀......”


“그래, 편하게 얘기하면 되니까 대신, 되도록 상세히 설명해주게나.”


잉거하임은 잠시 머릿속 기억들을 순서대로 정리한 다음,


“그럼 뿌옇게 변한 존재를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잉거하임은 붉은 소녀로부터 받은 컴플레인 내용부터 설명했다.


그때부터 지금 영상에서 보는 모든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얘기를 하다보니 잉거하임도 새삼스레 느꼈다.


‘맞아, 이 문제의 플레이어는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어.’


뿌옇게 변한 존재와 처음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을 들은 베르링거가,


“음~ 자네 말대로라면 쉽게 말해서 AAA-급 필드에서 미션을 수행 중이던 한 플레이어가 자신이 소환된 필드에 무단으로 침입한 존재를 자네에게 신고했다는 말이군.”


5분에 가까운 설명을 귀에 쏙 들어오도록 단 한 줄로 요약해버리는 베르링거다.


“아~듣고 보니 그렇게 되나요?”


너무 간결한 요약이라 얼떨결에 대답하는 잉거하임이다.


“그럼 그 괴이한 존재를 처음 발견해서 자네한테 알려준 플레이어는 지금 어디 있나?”


베르링거의 질문에,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선배님, 시스템에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플레이어들을 관리하기 위해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보관해 놓은 곳에 접속해보는 잉거하임이다.


“음~ 지금 한창 AAA급 필드 공략 중에 있군요.”


“그래? 그럼 당장 만나기는 힘들겠군.”


잉거하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맨 마지막 보스 몬스터만 남았다고 하니까 아마도 한창 바쁠 때라 생각됩니다.”


“흠~ AAA급 필드의 보스 몬스터 처리 중이란 말이지......”

.

.

.


문제의 그 AAA급 필드.


AAA급 필드답게 튜토리얼 필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숲과 들판이 이어지는 경계에서 커다란 굉음과 충격음이 연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다.


울창한 숲의 일부분이 폭격이라도 맞은 듯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보면 거대한 괴물이 몸을 이리저리 꿈틀대며 한 플레이어와 맞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콰콰콰 쾅~ 콰쾅~”


“실드!”


“심판의 칼날!”


“콰쾅~ 콰아아아아앙”


AAA+급 몬스터 드리아리우스를 맹렬히 공격하던 붉은 드레스의 플레이어가 땅에 내려앉는다.


“아~ 진짜 질기네. 너 좀 죽어라.”


붉은 소녀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몸길이 40미터에 달하는 다리가 8개 달린 두더지 형태의 몬스터는 그리 피해를 받지 않은 듯 다시 울음을 토해냈다.


“구오오오오오~~~ 구오 구오~”


강력한 음파 공격이 정면에 있던 바위들을 가루로 만들어 허공에 뿌렸다.


붉은 소녀는 이미 공중으로 떠올라 공격을 피한 뒤였다.


“심판의 칼날! 더블 샷!”


양손을 서로 엇갈리며 스킬을 뿜어내자 두 번의 긴 검기가 번쩍하고 몬스터의 몸에 엑스자로 교차되어 명중했다.


“구오오~ 구오 구오 구오~~”


붉은 소녀는 다시 물러나며 투덜거렸다.


“뭐야? 분명히 제대로 맞췄는데 왜 못 뚫는 건데? 아오~ 짜증나!”


벌써 한 시간째의 지루한 소모적 공방이다.


더블 스킬을 사용한 중첩공격에도 별 소득이 없자 뒤로 훌쩍 날아올라서 일단 후퇴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붉은 소녀다.


그 때였다.


“두더지 사냥은 잘 진행되시나 모르겠네? 곧 S급이 되신다는 우리 빨간 아가씨.”


몬스터 영역에서 중립지역으로 물러나는 붉은 소녀를 보며 한 플레이어가 말을 붙였다.


그런 그를 향해 붉은 소녀는 도끼눈을 뜨고는,


“흥! 남 이사 뭘 하든 신경 끄시지.”


‘젠장~ 대머리 할배가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거야, 안 그래도 열 받아 죽겠는데.’


붉은 소녀와 대머리의 존재는 허공에서 반대방향으로 이동하며 서로 교차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하고 압축된 근육으로 똘똘 뭉친 신체를 가진 신장 2미터의 대머리 그레고리는 발끈하는 붉은 소녀를 지나쳐 두더지형 몬스터 영역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마치 붉은 소녀가 물러나길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가 있던 자리를 냉큼 꿰어 차며 몬스터와 마주 선다.


“그래.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네가 한번 잡아봐라. 대머리. 민둥산. 무식한 주먹쟁이 할배야.”


붉은 소녀는 다양한 악담을 쏟아 붓고는 휙 하고 다른 쪽으로 날아갔다.


“구오오오오~ 구오 구오~”


새로운 선수가 자신의 링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몬스터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벌려 음파공격을 날렸다.


“첫 인사가 거친 녀석이군. 이크~”


2미터의 신장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날렵한 못짓으로 공중제비를 두세 번 돌아서 몬스터로부터 날아오는 공격을 회피해 버리는 그레고리다.


“태산권 제 이~~~~합, 태산풍!”


묵직한 정권 찌르기가 권풍을 뿜어내며 직선으로 몬스터를 향해 날아갔다.


“퍼퍼펑!”


바람으로 똘똘 뭉쳐진 덩어리가 정확히 몬스터의 몸통에 적중한다.


몬스터의 몸이 움찔하는 듯 보이더니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허! 조금도 밀리질 않다니, 녀석 덩치만큼이나 꽤나 체중이 무거운가 보군.”


몬스터 드리아리우스는 공수를 동시에 하기 위해 다시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음파공격을 온 사방으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이크~ 녀석의 공격은 쿨 타임이 없나보군.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일세.”


“휘익~”


“퍼퍼펑~”


“구오~ 구오오~ 구오~”


그 뒤 그레고리는 정권 찌르기 스킬 한번 시도를 제외하면 거의 30여 분간 몬스터의 음파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몸놀림만 보여주었다.


“헉헉~ 이제는 내가 다 지치는군.”


그레고리는 얼마 전부터 슬슬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쿨타임이 없는 몬스터의 공격에 약점이나 공략 실마리를 좀체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그레고리다.

“무지막지하게 강한 공격은 아니더라도 쿨타임 없이 계속 쏘아대니 여간 힘든게 아니네.”


그레고리의 말처럼 어중간한 위력의 음파 공격이었지만 몬스터로부터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니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고갈되는 쪽은 플레이어였다.


“음~일단 지금의 소모전은 별 진척이 없어 보이니 제대로 된 공략 방법을 강구해서 다시 와야겠군.”


훌쩍 뛰어서 중립지역으로 조심스레 후퇴하는 그레고리다.


“뭐야, 너무 싱겁게 물러서잖아. 아~ 지켜보느라 엄한 시간만 낭비했네.”


그레고리의 몬스터 공략을 중립지역에서 몰래 유심히 지켜보던 붉은 소녀는 안도하는 표정 반 짜증이 많이 난 표정 반으로 혼잣말을 내 뱉었다.


“아웅~ ‘7대 죄악’ 아이템을 얼른 다 모으던지 해야지. 아니면 S급 몬스터는 꿈도 못 꾸고 지금처럼 AAA급 몬스터 사냥하는데도 날 새겠네.”


지금까지 플레이어들에게 공개된 가장 높은 레벨의 몬스터는 지금 공략중인 AAA+급 이다.


이 문턱을 넘어서야 플레이어들 중에서 탑 랭커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는 관문이라는 S급 필드에 소환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고 한다.


물론, 이 고급정보는 아직 몇몇 최상위 플레이어들만이 암암리에 얻어낸 것들이라서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S급에 누구보다 먼저 올라서서 앞서 가야 하는데 여기서 발목을 잡히고 있다니, 쳇!”


붉은 소녀가 투덜대며 중립지역 모처에 마련해둔 자신의 은신처로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

.

.

경고! 필드 내 잔여 에너지량 확인 필요.

.

.

.


플레이어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조금 뒤 새로운 알림이 울린다.

.

.

시스템 에너지 총량 부족.

.

.

에너지량 부족으로 필드 유지 불가능.

.

.


붉은 소녀을 비롯한 모든 플레이어들이 의아한 표정을 한 채,


“뭐야? 이게 무슨 말이야.”


“무슨 에너지가 부족 하다는거야?”


플레이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앞 다퉈 말했다.


시스템의 알림 메시지가 이어진다.

.

.

.

메인 시스템이 관여합니다.

.

.

.

메인 시스템이 보조 에너지 사용을 허락합니다.

.

.


알림 메시지를 들은 붉은 소녀가 혼잣말을 한다.


“에너지가 왜 부족해지는 건데, 지금까지 잘 운영되다가 갑자기.”


알림 메시지가 또 울린다


.

.

보조 에너지 개방!

.

.

에너지 부족으로 필드 미션 수행 불가능.

.

.

모든 플레이어는 역소환의 충격에 대비하시오!

.

.


“역소환이라니! 아직 보스 몬스터도 못 잡았는데, 뭔 소리 하는 거야?”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붉은 소녀가 허공에다 대고 외쳤다.


.

.

플레이어 역소환 진행!

.

.


붉은 소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림 메시지가 울렸다.


“뭐야? 어어~ 갑자기 몸이......”


필드 안에 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몸이 새하얀 빛에 휩싸인다.


단 한 번의 번쩍임과 함께 순식간에 필드 곳곳에 흩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플레이어들이 사라짐과 동시에 몬스터를 비롯한 필드 내 모든 사물이 정지화면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

.


차원 유지 에너지 총량 확인 필요!

.

.


모든 것이 정지된 필드에는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알림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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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 연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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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41화 1부 완료. 19.03.16 52 0 -
41 41화. 미친개, 무술가, 성녀 (1부 완료) 19.03.14 82 1 17쪽
40 40화. 독식. 19.03.11 51 2 15쪽
39 39화. 35레벨 몬스터. 19.03.10 57 1 16쪽
38 38화. 2차 소환. 19.03.09 64 2 18쪽
37 37화. 왕국연락관. 19.03.07 92 2 23쪽
36 36화. 균열, 부활, 죽음. +1 19.03.04 101 2 18쪽
35 35화. 가베아. +1 19.03.02 94 3 18쪽
34 34화. 신비한 아이. +1 19.02.28 97 3 19쪽
33 33화. 조우. 19.02.26 112 2 25쪽
32 32화. 차원 관찰자. +1 19.02.23 109 3 18쪽
31 31화. 출항! +1 19.02.16 147 2 29쪽
» 30화. AAA급 필드. +1 19.02.11 131 3 21쪽
29 29화. 그랑 루이비딕. +1 19.02.07 143 4 18쪽
28 28화. 승급. +6 19.02.01 166 6 18쪽
27 27화. 초월자. +4 19.01.27 174 6 19쪽
26 26화. 큐브. +6 19.01.24 181 6 28쪽
25 25화. 차원이 열리다. +4 19.01.15 184 8 11쪽
24 24화. 별똥별. +5 19.01.12 203 9 17쪽
23 23화. 티켓. +9 19.01.10 193 8 16쪽
22 22화. 시약병. +6 19.01.09 181 8 19쪽
21 21화. 소라게. +9 19.01.08 213 9 19쪽
20 20화. 폭풍우가 물러가고. +9 19.01.05 202 9 17쪽
19 19화. 도둑 고양이. +8 19.01.04 205 8 19쪽
18 18화. 서리. +5 19.01.02 196 9 18쪽
17 17화. 비료. +5 19.01.01 217 8 17쪽
16 16화. 달이 기울면. +5 18.12.30 230 9 17쪽
15 15화. 돌멩이. +5 18.12.28 230 9 17쪽
14 14화. 이탈자. +6 18.12.27 242 9 19쪽
13 13화. PK. +8 18.12.25 294 9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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