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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의 서재입니다.

삼한 최강 주작 술사! 고려를 세우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완결

장호(章淏)
작품등록일 :
2021.05.12 17:59
최근연재일 :
2021.08.12 06:00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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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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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30,690

작성
21.05.1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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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불의 아이 (1)

DUMMY

878년.


2월의 삭풍이 부는 태백산(지금의 백두산) 기슭.

삼베 옷을 겹겹이 두른 사내가 넘어질 듯 위태롭게 산길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사내의 얼굴은 겁에 질려 울기 일보 직전이었다.


튼튼하게 만든 가죽신이 해질 정도로 산길을 급하게 뛰어 내려와 동네 어귀에서 숨이 넘어가도록 소리쳤다.


“촌장님! 촌장님!”


한 무리의 사내들이 마을 어귀로 급히 뛰어나왔다.

여자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불러 집으로 들여보내고는 자신들도 집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뒤에서 급한 걸음으로 걸어오자 남자들은 길을 비키고는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였다.

촌장은 이미 오래 기다렸다는 듯 남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가? 사내인가? 계집인가?“


남자는 꼴딱꼴딱 넘어가는 숨도 고르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사, 사내입니다요. 촌장님.“


촌장은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하늘을 향해 한숨을 한번 쉰 다음 사내에게 물었다.


"죽였는가?“


남자는 울상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요.“


돌개의 말에 촌장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는 물었다.


"아니! 이보게 돌개! 신녀 님이 사내아이면 그 자리에서 죽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촌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내 뒷짐을 지고는 자리를 서성였다.

고민하던 끝에 돌개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말하여라.“


돌개는 엎드려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따님께서는 아이를 낳고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습니다요. 그래서, 제가 가서 애가 사내인 걸 확인하고는 죽이려고 했는데, 화이 나리가 석개 놈하고 같이 갑자기 나타나 저를 때려눕히고는 그대로 애를 데리고 달아났습니다요.“


촌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화, 화이가 와, 왔었단 말이냐?“

"네. 촌장님! 화이 님이 분명했습니다요. 제 두 눈으로 확실히 봤구만요.“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웅성거렸다.


"화이 놈이 끝내는 일을 저지르는구먼.“

"그놈이 왔으면, 돌개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었겠어.“


"촌장님의 여식을 욕보이고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쫓겨난 마을에 다시 돌아와, 신녀 님이 죽이라는 아이까지 데리고 도망치다니···.“


촌장은 하늘을 보며 크게 탄식했다.


"신녀 님에게 가야겠구나.“


지팡이를 짚고는 마을 안쪽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갔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신당에 도착해 촌장이 공손하게 예를 갖춰 말했다.


"신녀 님. 돌개 놈이 돌아왔습니다.“


문이 열리더니, 하얀 백발이 신녀가 나왔다.

그녀는 이미 사내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어찌 되었는가? 사내아이를 죽였는가?“


촌장은 덜덜 떨다 못해 지팡이를 떨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 꿇고는 읍소했다.


"신녀 님. 죄송합니다! 아이를 빼앗겼다고 합니다.“

"어허. 화이가 왔더냐?“


촌장은 흠칫 놀랐다.


"네, 네. 그렇습니다. 어찌 아셨나이까?"


신녀는 탄식을 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란 말이더냐?“


이내 눈을 뜨고는 엎드려 떨고 있는 촌장에게 말했다.


"자네는 부족을 모두 이끌고 알루하(압록강)를 건너 흑수(黑水; 지금의 아무르 강)로 가시게. 그곳에서 대대손손 현무를 모시며 주작을 경계하며 살아야 하네.“


촌장과 남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엎드려 신녀에게 물었다.


"신녀 님도 같이 가시나이까?“


신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나는 이곳에 남아 내가 저지른 업보를 감당해야 하네.“


말을 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소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소녀는 신녀가 돌아보자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신녀는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촌장에게 말했다.


"내 다음 신녀는 을선으로 하겠다. 현무를 봉한 아이이니 힘을 모두 개방하기 전까지는 다치지 않도록 소중히 보필하여라. 너희들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줄 게야. 속히 채비하여, 밤을 도와 마을을 떠나도록 하여라. 동이 트기 전에 마을 백 리 밖으로 벗어나야 할 것이야.“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남자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을선은 앞으로 나아가서 말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두려워 말고 나를 보필하여 알루하를 건너자꾸나. 내가 너희를 보호할 것이야.“


그녀의 말에 촌장은 일어나 절을 올렸다.


"알겠나이다.“


다시 일어나서는 뒤를 돌아 남자들에게 말했다.


"밤을 도와 이곳을 떠나야 하니,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오시게. 해가 서산에 걸리기 전까지 준비를 마치고, 마을 입구로 오게!“


"네!“


남자들은 크게 대답하고는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마을에서는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벌써 수백 년을 살아온 정든 땅을 떠나려 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해가 서산에 걸치고,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마을 입구에 모였다.

젊은이들은 나이 들어 걷기 힘든 사람들은 수레에 실었다.

걸음이 빠르지 않은 아이들은 부녀자들이 업었다.

큰 짐은 소의 등에 싣고, 작은 짐은 남자들이 등에 졌다.


태백을 넘어 천 리 길을 가야 하니 많은 짐을 가져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길을 나서기 전 촌장은 신녀를 알현하였다.


"신녀 님 정녕 마을에 남으려 하십니까?“


신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감히 신께서 정한 운명을 거스르고자 했으니,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


신녀의 담담한 모습에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촌장이 나서 신녀에게 절을 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따라 엎드려 절했다.

한참 눈물을 흘리다 일어서서는 서둘러 길을 나섰다.


100리를 가려면 산을 여남은 개는 넘어야 했다.

촌장은 사람들을 다그쳐 험한 태백의 산길을 나섰다.


동이 터 오고 주민들은 무사히 100리를 이동해 태백산의 북쪽을 넘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참 아침 준비를 하려 하던 그때, 온 대지가 요동을 치듯 떨려왔다.

커다란 불기둥이 땅에서 솟아 나왔고,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 구름을 뚫고는 하늘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신녀 을선은 떠나온 마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님께서 모든 짐을 혼자 안고 가시려는 게요.”


촌장이 을선에게 물었다.


“저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곳은 우리가 떠나온 마을이 아닙니까?”


을선은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남쪽 산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이 신에게 거역한 결과라오. 신께서는 이 땅에 주작을 내셨으나, 인간과 주작이 같은 땅에서 화합하며 살 수는 없는 일. 인간이 그 주작을 없애려 하니 신께서 노하셔서 벌을 내리신 거요.”


을선의 말에 촌장이 덜덜 떨며 눈물을 흘렸다.


“저희도 그 주작 아이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저렇게 죽어야 하는 겁니까?”


을선은 촌장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내 안에 잠재된 현무와 북해의 빙궁(氷宮)이 자네들을 지켜줄 테니, 그런 걱정을 하지 마시게. 자네들을 지키기 위해 내가 자네들과 같이 흑수로 가는 것이니.”


불타오르는 마을을 멀리 뒤로 하고 부족은 흑수로 향해갔다.


***


2개월 후.

878년 4월. 한양군(서울) 외곽(지금의 이태원)


석개는 주위를 둘러보다 주가(酒家)로 들어가 문이 닫혀있는 방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이 나리. 석개입니다요.“


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밝은 얼굴로 석개를 맞이했다.


"그래? 알아보았더냐?“

"네. 알아봤습니다요.“


"적당한 곳을 찾았느냐?“

"네. 근방에 곡양현(현 관악구)에 갓뫼(관악)가 있사온데, 그곳이 좋을 듯합니다요.“


"알았다. 같이 가보자꾸나.“


화이는 아이를 데리고 석개와 주가의 문을 나섰다.


한 시진을 걸어 도착한 곳은 한양군 남쪽의 험한 산자락이었다.

주변을 둘러본 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석개를 위로했다.


”고생이 많았다. 확실히 좋은 곳이로구나. 태백을 나서며 이런 곳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 보았는데, 용케 이런 곳을 알아냈구나.“


석개는 코를 쓱 훔치며 말했다.


”제가 한주를 탈탈 털어서 가장 이름난 지관(地官; 풍수지리를 보던 사람)을 찾아내 알아냈습죠.“

”고생했네.“


”헤헤헤. 별말씀을요. 저는 도련님과 주인 나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요.“

”늘 자네에게 고맙네.“


석개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터를 둘러보았다.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에 병영과 마을을 세워야겠네. 사람들을 모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 것이야.“

"화이 님. 저도 이 한 몸 다 바치겠습니다요.“


화이는 강포에 둘러쌓인 아이를 보며 말했다.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아이로구나. 어찌하다 신에게 선택을 받아 주작을 담고 태어났을꼬.“


옆에서 흐뭇한 모습으로 보고 있던 석개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주인님. 아직 도련님의 이름도 없습니다요.“

"그렇구나. 내 정신이 없다 보니, 내려오는 동안 아이의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구나.“


화이는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더니, 말했다.


"유아와 약속을 했느니라, 남자로 태어나면 영이라 하고, 여자로 태어나면 혜빈이라 하기로 하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영이니라.“

"영 도련님. 좋은 이름입니다요."


10년 후. 888년. 곡양군 갓뫼골


화이가 꾸민 마을은 이제 꽤 큰 마을이 되었다.

사람이 모여들어 다른 곳보다도 더욱 활기를 띠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다른 날보다 훨씬 분주한 모양이었다.

석개는 종종걸음으로 마을을 지나쳐 급하게 병영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주인 나리. 부르셨습니까요?“

”그래. 석개야. 병사들을 모이라고 했느냐?“


”네. 지금 모두 마당에 모여 있습니다요.“

”그래 가자꾸나.“


”주인 나리. 그런데, 궁금한 것이있습니다요.“

”무엇이냐?“


”어찌 우리가 선왕의 태자가 죽은 일을 조사해야 한단 말입니까?“

”나라의 녹을 먹는 자가 명을 받았으면, 그것을 행하는 것이 맞는 말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무엇이 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느냐?“


”아무래도 이번 일은 뒤가 구립니다요. 왕실에도 근위대가 있고, 사구부가 있을 텐데, 왜 이 일을 우리더러 맡으라는 말인지···.“

”여왕께서 그럴 분은 아니시다. 안에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이 없으면 우리에게 맡기겠느냐. 투덜대지 말고 어서 길을 나서자꾸나.“


”알겠습니다요.“

”그나저나 영이는 어디 갔느냐?“


”영 도련님은 산으로 놀러 나가신 듯합니다.“


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은 놀 나이다. 나는 일을 보고 저녁때까지는 돌아올 테니, 산채를 잘 돌보고 있도록 하여라.“

”네. 나리. 다녀오십시오.“


영은 주먹밥과 검게 그을린 토끼를 품에 안고는 동굴 입구에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안으로 은밀히 들어갔다.


작가의말

오늘은 프롤로그 포함 5편이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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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늘의 문(3) +10 21.05.17 140 7 11쪽
9 하늘의 문(2) +8 21.05.16 154 7 11쪽
8 하늘의 문(1) +8 21.05.15 192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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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태백에서 온 도술사(2) +10 21.05.12 255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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