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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님의 서재입니다.

몸속에서 벌레 군대를 키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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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아아
작품등록일 :
2022.05.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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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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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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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화

DUMMY



원인 제공이라는 점에서 외부효과가 개입하거나 남 탓을 할만한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이다.


순수하게, 그 녀석 잘못이다.


공부를 하면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철학 시간에 들었던 함무라비의 일책십이법, 그리고 논술 과외를 할 때 접했던 벤담의 형벌 비례론 등에서도 비슷한 고민은 이어졌다.


신문 논설을 볼 때에도 관련된 내용이 보일 때마다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을 몇 번 했다.


형벌이 자기가 저지른 잘못에 딱 비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나쁜 일을 저지른 놈들밖에 없다.


왜일까? 애초에 나쁜 일을 저지를 생각이 없는 이들은, 본인이 나중에 받을 처벌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선한 이들이 왜 닥치지도 않는 벌을 미리 두려워하겠는가.


고의적으로 나쁜 일을 저지르는 놈들만이, 그 악행에 대해 이후 혹시나 본인이 받게 될 형벌의 정도에 대해 미리 가늠한다.


감당할 수 있는지. 지금 내가 하는 나쁜 짓이, 이후 받게 될 처벌을 고려했을 때 질러볼만한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나중에 그 잘못이 밝혀져 처벌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 본인이 딱 이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이상의 처벌을 받게 되면 강하게 항의한다.


부당하다고. 이 정도 벌을 받을만큼 내 잘못은 크지 않다고.


처벌의 정도는 내가 저지른 잘못에 딱 맞춰 비례해야 하며 절대 그 이상이 되서는 안 된다고.


그렇다. 미리 앞일을 계산한 악인만이 이런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비례 형벌로 처벌을 하게 되는 경우, 그 모든 기승전결은 악행을 저지른 그 놈의 계획 하에 있는 것이다.


나쁜 일에 대해 처벌이 이루어져 정의가 실현되었다?


아니다. 그냥 그 악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계획대로 돌아간 것뿐이다.


그건 계산된 공정의 껍데기일 뿐 제대로 된 정의 구현은 아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렇게 악의를 가진 이들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형벌이 잘못의 정도에 비례하지 않고 더 가혹해야 한다.


내가 이 악행을 저질렀을 때 향후 받게 될지도 모를 처벌이 본인이 예측하기도 어렵고 감당하기도 어려운 범위라면.


최소한 약간의 생각이라도 있는 놈이라면 그 짓을 저지르기 전에 한 두 번쯤은 더 고민하고 몸을 사릴 것이다.


따라서 형벌은 잘못의 정도에 비례해서는 안 된다. 미리 계산하고 가늠할 수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황윤건의 가치관은 점점 그런 식으로 굳건해졌다.


물론 도중에 이런 생각에 대한 반론을 많이 접했다.


형법의 기본 원칙에서 왜 처벌의 비례를 중시하는지.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가 법가의 원칙을 적용했다가 무너진 이유 등.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더욱.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벌은 충분히 가혹할 때 아직 벌어지지 않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내 타고난 천성이 그쪽 방향으로 기울어져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성적으로 그 어긋난 점을 알면서도 가슴이 따르게 되는 나만의 믿음. 도그마Dogma라고 했던가?


황윤건의 마음 속 세상은 함무라비와 한비자가 집권해야 평화로워지는 곳이었던 것이다.


고3이 되며 성적은 점점 올랐고 전국구에서 놀만한 수준이 되었을 때 황윤건은 학과를 결정했다.


생명과학부에 가서 미생물학을 전공할 것인지, 아니면 의대에 가서 감염내과 전문의가 될 것인지.


꽤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결론은 미생물학 쪽이었다.


의사가 되면 전문의 자격을 딸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병원 의사 입장에서 벌레들을 뜻대로 다루기 위한 운신의 폭도 넓지 않았다.


진료실에 갇혀서 쏟아지는 환자들을 허겁지겁 쳐내야 하는 수동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감염과 유행병이라는 게 또 그때그때 지역 전체에 균종 하나가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것이라, 다양한 세균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면,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낫게 하는 의업이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는 점을 한참 전부터 자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황윤건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생물, 모든 벌레들과 접촉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멸 조건에 대해 파악하고, 자신의 몸속에서 극소량만 남겨 키우면서 언제라도 필요할 때 바로 꺼내쓸 수 있도록.


중2병에 겨워 가끔 상상했던 어설픈 수퍼히어로의 꿈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구체화되며 조금씩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보면 아주 비뚤어져있다고, 혹은 또라이같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황윤건의 안에 들어찬 욕망과 호기심은, 이미 비슷한 여러 가지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할 만큼의 고만고만한 옵션이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 없는, 오직 단 하나의 길이라는 느낌에 가까웠다.



고된 입시를 거쳐 나름 한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대학의 생명과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동기들은 미팅 소개팅에 여행 다니느라 바빴지만, 황윤건은 미생물 쪽 연구실에 자원을 해서 방학에도 일을 돕기로 했다.


말이 업무지원이지 학부 일학년생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온갖 잡일에 청소만 도맡아했지만, 황윤건은 살아있는 미생물 표본을 바로 옆에서 접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다.


수많은 박테리아, 진균, 아메바 등을 여러 다른 조건에서 키우면서 체계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 연구실에 있는 모든 벌레들을 다 살펴본 후 조금씩 몸에서 키우기 시작했고, 연구실에 없는 표본을 보유한 관련 연구기관으로 출장나갈 때에도 떼를 쓰다시피 자원해서 따라나갔다.


선배들과 교수는 정말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알아서 귀찮은 일들을 도맡아해주는데 그런 황윤건을 그들이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대부분의 벌레들을 표본으로 얻은 후에는, 당연히도 본인 몸과 주변인들의 몸에 극미량 이식하여 조금씩 늘리고 줄이는 연습을 반복했다.


벌레마다 생육 조건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항목에서 최적화된 조건을 찾아 기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황윤건은 그런 연습과 시험 하나하나가 너무나 재미있었다.


건장하고 말끔한 외모에 체력도 좋고 건강하기까지 하니 당연히 인기도 따랐고, 그러다가 자연스레 연애도 시작했지만 우선순위가 바뀔 일은 없었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상 강박적으로 벌레들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주변에 보이고 느껴지는 가장 생생한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벌레들이었기에, 황윤건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게 많아지다 보니 벌레들을 부리며 할 수 있는 일도 다양해졌다.


벌레들은, 세균들은 인체에 나쁜 영향만 끼치지 않는다.


특히 유익균이라 불리는 벌레들은 적당한 군집을 유지했을 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소화 효소를 만들기도 했고, 자체적인 항생 물질과 소염 물질을 분비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들 자체가 살아있는 생화학 약품 공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충분한 지식과, 그에 걸맞은 충분한 연습만 하면 원하는 물질이나 효과를 특정 벌레들에게 끌어낼 수 있었다.


발열을 유발하여 체온을 높이는 것도, 거꾸로 체온을 낮추고 혈류순환을 느리게 하는 것도 조절 가능한 기본적인 기능이었다.


지혈 물질을 내보내고 줄임으로써, 출혈을 빨리 막기도 하고 오히려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떤 세균들은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점막을 덮고 새살을 돋게 하는 회복 물질을 분비하기도 했다.


일부러 낸 상처가 최대 네 배 속도로 빨리 아무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흉터도 거의 남지 않았다.


또 다른 세균들은, 뇌 안에서 감정과 동기에 관여하는 여러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조절하는데 쓸모가 있었다.


세로토닌, 옥시토신, 도파민, 가바, 노르에피네프린 등.


사람을 기분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하는, 의욕에 차 밤 새서 움직이게 유도하는 동시에 우울증에 빠져 아무 것도 안 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 이 신경전달물질들이다.


아주 복잡하고 예민한 분야였지만, 연습을 거듭하여 몸에 완전히 익히면 본인을 포함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도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았고, 또 그걸 구체화시키기 위해 미리 연습해둘 거리 역시 끝도 없었다.


밥 먹고 자는 시간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병역도 처음에는 큰 고민거리였다. 2년 넘는 시간을 쌩으로 날려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병무청의 병역검사지침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며, 오만가지 방법으로 면제받을만한 항목을 가능한 것부터 다 시험해봤던 것 같다.


1년 넘는 시행착오 끝에 겨우 성공한 것이 자반증이었다.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지혈 인자에 관여하는 특정한 벌레를 써서 혈소판의 수를 일부러 낮춘 것이다.


진단받고 약물과 주사 치료를 받았지만 마음먹고 벌레를 부리니 혈소판 수가 회복되지 않았고, 결국 5급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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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4 22.05.12 3,605 117 10쪽
» 3화 +13 22.05.11 3,890 149 10쪽
3 2화 +5 22.05.11 4,131 142 9쪽
2 1화 +10 22.05.11 5,149 147 9쪽
1 < 프롤로그 > +4 22.05.11 5,857 14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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