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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님의 서재입니다.

노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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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와삽
작품등록일 :
2017.08.12 09:47
최근연재일 :
2018.03.25 20:07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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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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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글자수 :
208,691

작성
18.03.2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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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그 시절 이야기 - 5 (성남최강전2)

DUMMY

“자. 점순이는 왜 주인공의 닭을 괴롭혔을까? 그래. 뭐. 주인공의 관심을 끌려는 것이겠지만. 근데 말이야. 주인공은 그때만 해도 점순이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문학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서 거의 혼잣말을 하다시피 설명하고 있었다. 학생들 중에 그나마 앞줄에 있는 모범생들은 졸음을 힘들게 참아가며 버텼고, 뒷자리에 조금 노는 친구들은 책을 세워놓고 만화책을 보거나 대놓고 잠들어 있었다.


그래도 김형진은 문학 시간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모든 과목에서 성적이 낮았고 별 관심이 없었지만, 유일하게 이 수업만큼은 열심히 들었다.


‘딩! 동! 댕! 동!’


종소리가 울렸지만 문학선생님은 수업을 끝낼 마음이 없어보였다. 자고 있던 학생들은 벌떡 일어나 인상을 찌푸렸다. 매점에 늦게 가면 원하던 카레고로케는 다 나가고 야채만 남는 상황이 연출되었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수업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그럼. 여기까지. 다음 장 미리 딱 한번만 읽고 오자. 오케이??”


“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우다다다’ 매점으로 뛰어 가는 놈, 교과서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놈, 칠판지우개로 농구하는 놈. 그리고 김형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말대로 꼭 대학을 가야 하나. 별로 공부는 하고 싶지 않은데 바로 일을 할까..’


그는 인생의 갈림길 중앙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난. 지성이 넘치는 남자가 좋더라.]


순간 어제 손민희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래. 나도 친구들처럼 대학 가보자. 나라고 못 하겠냐.’


김형진은 갑자기 의욕에 타올라 수학기본서를 펼쳤다. 100번도 넘게 본 집합 부분을 다시 넘기는 순간, 누군가 그의 곁으로 와서 슬쩍 무언가를 내려놓고 갔다.


[선배님. 1학년 신상주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농구장 탈의실에서 뵙겠습니다.]


1학년 캡 신상주의 쪽지를 받고, 김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농구장으로 향했다.


‘끼이익’


탈의실의 철제문이 열리는 소리는 영 듣기 좋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땀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1학년 신상주 인사드립니다.”


“어. 무슨 일이야.”


“정보가 하나 있어서요.”


“뭔데?”


“진상 애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일일찻집을 한다고 합니다.”


“뭐라고? 누구한테 들었어. 확실한 거야?”


“중학교 친구 중에 강필웅이라고 진상애들이랑 같은 컴퓨터학원 다니는 놈이 있는 데요. 정확한 정보 같아요. 그 주최자가 김한수라고 합니다.”


김한수는 다른 지역에서 이번에 진상고로 전학을 와서는 순식간에 2학년 캡을 거머쥔 경계 대상 1호였다. 그에 대해선 숭일고 학생회에서도 별로 정보가 없었다.


“이 와중에 일일찻집이라..”


그 시절에 소위 일진들이 삥을 뜯는 수법은 가지가지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생일껌팔이와 일일찻집이었다.


껌팔이는 한 통에 500원도 안하는 껌을 들고 와서는 그 중에서도 1개만 꺼내어 생일이라며 천원에 팔아 제껴 폭리를 취하는 수법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진들은 거의 매달 생일이었다.


학생주임교사들의 단속과 돈이 크게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껌팔이는 점차 종적을 감추었다.

하지만, 여기서 단념할 놈들이 아니었다.


조금 더 큰 단위로, 그리고 그럴싸한 방법으로 삥을 뜯을 방법을 모색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일일찻집이었다.


외진 지역에 장사가 안 되는 커피숍이나 장소를 빌린 후, 노트를 찢어 대충 티켓을 그리고는 힘없는 아이들에게 만원에 강매를 한다. 그리고 그 티켓을 들고 가면 꼴랑 사이다 한잔을 제공했다.


김형진은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들어보니 잘못된 정보는 아닌 것 같아 고민했다.


“선배님. 3학년 선배님들한테 보고할까요?”


“음..”


김형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이건 우리끼리 해결하자. 일단은 너랑 나랑만 알고 있기로.”


“괜찮을까요?”


“응. 뭐 죽기밖에 더하겠냐. 가서 상황보고 결정하는 걸로.”


김형진은 2학년 때의 이성필 모습을 기억한다. 3학년의 도움 없이 성남 전 지역을 평정했던. 그리고 자신의 친구 한진우도 1학년 때부터 특별한 허락을 받지 않고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서 이성필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항상 그 뒤에 자신이 있었고.


그는 모처럼 온 절대적인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1학년의 리더 신상주도 마찬가지였다. 숭일고 역사상 최강의 라인인 2학년 한진우, 김형진, 3학년 이성필에 대비해 초라한 멤버 구성인 1학년을 이끌며 눈치 보였던 설움을 날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은 되건 안 되건 자신들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로 합의했다.


----------------------------


‘삐익’


[어.. 나야 발업질럿. 어.. 이름이 민희라고? 난 진우라고 해. 김진우. 어..]


‘메시지를 취소하였습니다.’


“야이. 병신아. 대체 ‘어’를 몇 번 하는 거야. 어.. 난 어.. 진우라고.. 어.. 집에서 밥먹고.. 어.. 똥도 싸고.. 어.. 좀 멘트를 생각하고 날리라고. 어만 남발하지 말고. 그리고 수현고님 앞에서 계속 발업질럿이 뭐냐.”


“이상하게 수화기만 들으면 떨리네.”


한진우는 친구 김영민과 공중전화 부스에서 작전 회의 중이었다.


“안 되겠다. 중삐리 같은 삐삐러브는 그만 하고 직접 만나서 해결하는 쪽으로 해야지. 이래선 진도가 다람쥐 쳇바퀴통 구르는 수준이다.”


“만나라고? 실제로?”


“그래. 뭐 죽을 때까지 ‘어’만 하다 끝나느니 얼굴 보고 ‘어’를 하던 ‘아’를 하던. 일단 만나봐.”


“좀 부담스러운데..”


“부담은 무슨. 만나서 파르페 하나 먹고 오는 거지. 이쁘면 더 나가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빠이빠이 하면 되는 걸 뭘 걱정이야.”


“음..”


“자. 다시 메시지 남겨 봐. 그냥 남자답게. 강력하게. 이번 주에 서현역에서 보자고 해.”


한진우는 자신 없는 표정으로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삐익’



----------------------------


‘삐삐. 삐삐. 삐삐.’


“왔어. 왔어. 민희야. 너의 사매고 낭군님이 오셨어!!!!”


친구 이수미가 뒤에서 호들갑을 떨며 뛰어오자, 손민희는 귀에 꽂고 있던 엠씨사퀘어를 빼고는 책을 덮었다.


“민희야. 빨리 가 보자 히히.”


“사매고?”


“응. 그래. 이 놈도 보통이 아니라니깐. 뜸 들일 줄도 아네.”


“그냥. 별로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공부만 하는 애들이라서.”


“나의 촉으로 봤을 때는 선수야. 딱 느낌이 왔어. 프로의 느낌이. 공부도 잘 하고 연애 센스도 있고. 진짜 백마 탄 왕자님일 거 같애. 얼른 가자.”


“난 별로 못 생겼을 거 같은데. 안경 막 이따만한 거 쓰고. 코 훌쩍 거리면서 문제집 풀고.”


“그건 니 생각이고. 얼른 컴온 베이비.”


손민희는 별 관심 없는 척, 못 이기는 척하며 공중전화 부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메시지가 1건이 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1번을 삭제하시려면 2번을’


‘삐익’


[어.. (야이 병신아 어 좀 제발) 알았어. 알았어.]


손민희와 이수미는 저 쪽에서도 남자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시작부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 혹시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돼? 만나서 밥 같이 먹지 않을래? (야이 밥통새끼야 무슨 밥이야. 커피. 커피라고) 조용히 좀 해. 어. 아무튼 답장 주면 좋겠어.]


‘메시지가 끝났습니다. 다시 들으시려면 1번을 삭제하시려면 2번을..’


“와. 대박. 민희야. 얘 진짜 과감하다. 내가 말했지. 공부만 한 샌님이 아니라고.”


그냥 듣기만 했는데도 손민희의 얼굴은 발개졌다.


“직접 만나는 거는 조금 부담스러운데. 난 그냥 지금이 재밌어.”


손민희의 말에 이수미는 친구의 양 어깨를 쥐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도 그만 교과서랑 놀자. 너가 이 꼬인 실타래를 풀어서 우리 모두 하나씩 나누어 주는 거야. 지긋지긋한 성남 쫄바지 놈들이랑 그만 엮이고 샤방샤방한 분당 남학생님들과 핑크빛 사랑을 시작하는 거지. 너가 우리의 원한을 풀어줘야 해. 이러다 우리 반 정문에 열녀비가 세워질 지도 모른다고.”


손민희는 친구의 진지한 표정에 크게 웃었다.


“하하. 알았어. 만나볼게. 그런데 내 스타일 아니면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그냥 밥 먹고 오면 되는 거지.”


“그래도..”


손민희는 한진우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왜소한 체격에 얼굴은 여드름투성이. 큰 돋보기안경을 쓰고 등굣길이나 하굣길에 책을 손에서 떼지 않는 전형적인 모범생.


“자자. 이거 받고 우리도 신세계로 나아가는 거야. 이런 건 바로 답을 해줘야 해.”

이수미는 친구에게 수화기를 건네며 말했다.


손민희는 살짝 웃으며 수화기를 귀에 밀착시키고 전화카드를 밀어 넣었다.


‘삐익’


[나. 민희야. 메시지 잘 받았고. 어.. 그래. 금요일에 보자. 연락해.]


‘찰칵’


“캡숑 깔끔하고 좋았어. 아하하하.”


“정말?”


“응. 연애도사처럼 보였어.”


숭일여고 두 학생이 좋아하고 있을 때 반대편 숭일고에서는 다시 사랑의 삐삐 알림음이 울렸다.


‘삐삐. 삐삐.’


“헉. 시발. 왔다. 존나 빠르게. 진우야!!!!”


“벌써 답장이 왔다고?”


“그래. 빨리 고고. 얼른. 종 치기 전에.”


한진우와 김영민은 교실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순식간에 틀어 공중전화부스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메시지가 1건이 있습니다. 확인하시려면 1번을 삭제하시려면 2번을’


‘삐익’


[나. 민희야. 메시지 잘 받았고. 어.. 그래. 금요일에 보자. 연락해.]


“이야. 드디어 한진우. 수현고 여학생님과 데이트다!!!!!”


“진짜 만나자니깐 갑자기 떨리네.”


한진우는 손민희를 상상했다. 커다란 가방안에는 책들이 가득하고, 주근깨에 커다란 안경. 그리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학교와 독서실을 오고 가는 모습.


그래도 설렜다. 누군가를 온라인에서 만나 실제로 본다는 것은 그 당시 시절에서는 매우 애틋한 감정이 있었다.


그렇게 금요일이 왔다.


‘딩. 동. 댕. 동.’


한진우는 싱글벙글한 미소로 신발을 갈아 신었다. 그때 조금 심각한 표정을 한 김형진과 마주쳤다.


“형님은 수현고님 만나러 갈 테니 넌 독서실에서 뺑이나 쳐라. 내가 잘 해서 하나씩 연결해 줄 테니.”


“지랄. 가서 계란이나 맞지 말고 와라.”


한진우는 환한 얼굴로 정문으로 나갔고, 김형진은 조금 어두운 낯빛을 하고 후문으로 나갔다.


김형진은 마스크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진상고 학생들의 일일찻집이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1학년 신상주도 숨을 죽인 채 앉아있었다.


김형진이 있는 건물 부근으로 숭일고 학생회 1, 2학년들이 사복을 입고 오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안에 몇 명이 있냐가 관건인데. 평수는 크지 않아 보이는데.’


김형진은 고민했다. 큰 무리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의 선택임에 고심했다.


“몇 명이 들어갔지?”


“저희가 온 이후로는 서른 명 정도 들어갔어요. 그런데 다른 학교 교복 입은 애들도 많이 들어가는 걸 보니 진짜 하긴 하나 봐요.”


“음..”


김형진은 다시 고민했다.


그때, 진상고 교복을 입은 무리 4명이 다른 학교 학생을 저 멀리서부터 질질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남학생은 손을 싹싹 빌어가며 두려움에 떨다가 찻집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저 개새끼들이 다른 학교 애들까지..”


김형진은 분노했다. 약한 학생들에게 손 끝 하나 대본 적 없는 한진우와 김형진은 저런 광경을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다.


“선배님. 어떻게 할까요?”


김형진은 크게 숨을 고른 후, 살며시 입을 열었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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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죄송합니다. 리메이크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18.04.07 147 0 -
» 36화. 그 시절 이야기 - 5 (성남최강전2) +1 18.03.25 221 1 12쪽
35 35화. 그 시절 이야기 - 4 (단추의 수) +2 18.03.18 222 1 11쪽
34 34화. 그 시절 이야기 - 3 (성남 최강전1) +2 18.03.11 237 2 11쪽
33 33화. 그 시절 이야기 - 2 (독수리는 사냥에 실패하고) 18.03.05 215 2 10쪽
32 32화. 그 시절 이야기 - 1 (야사의 시대) +2 18.03.04 304 2 10쪽
31 31화. 처음 듣는 이야기 +3 18.02.25 282 2 11쪽
30 30화. 생각이 없는 자와 있는 자 18.02.18 256 2 8쪽
29 29화. 원숭이 떼 18.02.11 309 3 14쪽
28 28화. 우리?? 18.02.04 348 3 12쪽
27 27화. 내일 봐요 +1 18.01.28 355 5 15쪽
26 26화. 새벽에는 +3 18.01.21 380 5 14쪽
25 25화. 오해 18.01.14 300 2 11쪽
24 24화. 전생의 영웅에게 주는 보상 17.12.16 365 4 13쪽
23 23화. 엇갈림 17.12.05 372 2 13쪽
22 22화. 원기옥이 필살기인 이유 (센세의 은혜) 17.12.03 432 3 12쪽
21 21화. 작명 센스 +2 17.11.30 409 5 12쪽
20 20화. 겉표지에 속지 마라 +1 17.11.25 442 3 13쪽
19 19화. 각자의 토요일 저녁 17.11.24 372 3 13쪽
18 18화. 따뜻해요 17.11.23 475 2 16쪽
17 17화. 홍콩할매와의 추억 +2 17.11.22 566 4 14쪽
16 16화. 끌림 +1 17.11.21 490 4 13쪽
15 15화. 새로운 만남 17.11.20 433 2 13쪽
14 14화. 계란은 굴려가며 삶아야 한다 17.11.19 554 3 12쪽
13 13화. 잊혀지지 않는 17.11.18 474 2 12쪽
12 12화. 송충이는 솔잎을 17.11.17 458 4 11쪽
11 11화. 이 구역의 미친 흑기사는 나다 +2 17.11.16 473 2 16쪽
10 10화. 하모니 17.11.15 456 3 12쪽
9 9화. 휘몰아치다 17.11.14 549 4 13쪽
8 8화. 폭풍 전야 +1 17.11.13 45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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