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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천재사위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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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작품등록일 :
2024.08.19 21:28
최근연재일 :
2024.09.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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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8.2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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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혼인계약

DUMMY

객잔 한 구석.

작은 창문 덩그러니 박혀 있는 방 속에 세 남자의 뜨거운 입김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직사각형의 나무패를 서로 흘깃 살피던 남자들이 동시에 손을 내려놓았다.


탁!


“아오, 한 끗?”

“씨발, 개 패였네.”

“흐흐흐, 오늘 팻 빨이 나쁘지 않네.”


덥수룩한 머리카락의 사내가 돈을 품 안에 끌어모았다.

남은 두 사내가 연초를 뻐끔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려고?”

“바람 좀 쐬고 올게.”

“갈 때, 앵앵이한테 곡차 한 잔 시원하이 말아 달라고 해주쇼.”

“알았어.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

“형씨들이나 도망가지 마쇼! 재미 보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사내들이 혀를 차며 방을 떠났다.

남겨진 사내가 패를 정리하고 있을 때,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앵앵.....?”

“나도 패 한 번 섞겠네.”


기골이 장대한 중년인이 사내 맞은편에 앉았다.

새까만 도포에 윤기가 흐르는 소맷자락이 범상치 않은 신분처럼 보였다.


“뉘신지.....?”

“패 보러 왔는데 사람 가려 받나?”

“여기는 대인 같은 분이 올 곳이 아닙니다.”

“하하하, 대인? 내가?”


중년인이 피식 웃으며 탁자에 은자를 튕겼다.


“쉰 소리 말고 패나 돌리시게.”


이제껏 본 적 없는 판돈에 사내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중년인과 맞작을 시작했다.


솨솨솩!


패가 손바닥을 타고 중년인 앞에 멈춰섰다.

사내가 패를 들어올리기 무섭게 중년인이 패를 돌려보냈다.


“졌네.”

“흐흐, 양보해줘서 고맙소.”

“양 손잡이인가.”

“그렇소. 뭐, 문제 있소?”

“아니. 패를 섞는 손놀림이 뱀처럼 유려하고, 패를 집는 솜씨가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워서 하는 말이었네.”

“이제 보니 형장은 시인이었구려. 노름꾼 손놀림을 이리 포장해주는 것을 보니 말이오. 으하하하하.”


중년인이 은자를 올렸다.


“다시 하지. 이번엔 내가 패를 섞겠네.”

“그럽시다.”


사내가 선뜻 패를 내어주자, 중년인이 기다렸다는 듯 양손으로 섞기 시작했다.

언뜻 사내의 패 돌림 방식과 비슷해 보였다.


쿵!


사내가 탁자를 두드리자, 중년인이 손을 멈췄다.


“무인이셨소?”

“음?”

“패를 양손에 까딱거리며 흔드는 방식을 보통 무인들이 하더이다.”

“그래서?”


사내가 피식 웃으며 은자를 다시 중년인에게 돌려보냈다.


“안 받은 것으로 칠 테니 여기까지만 합시다.”

“나는 이제 시작이네만?”

“더 하다간 내 목이 잘려나가게 생겼소.”

“누가 자네를 죽이기라도 해?”


사내가 중년인을 노려보았다.


“그리 시커먼 것을 폴폴 풍겨대면서 아니라고 둘러댈 생각이오?”


중년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나?”

“형장이 패를 만질 때부터, 손끝에 거뭇한 뭔가가 어리더군. 내 그런 특징을 가진 자들을 몇 봤던 적이 있지.”

“특징이라?”

“마도쪽 사람들이 꼭 형장 같았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으레 돈을 잃으면 칼부터 들기 마련인지라.”


사내가 두 손을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무에 심기가 불편해서 나와 노름을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 감정도 없소. 재밌게 놀았으면 이만 가주시오.”


그 순간, 중년인 입가에 호쾌한 미소가 그려졌다.


“과연, 제대로 찾아왔군.”


중년인이 손을 움켜쥐자 패가 가루로 변했다.


“절심문의 피를 이어받은 자는 관(觀)이 남다르다고 하지. 사소한 변화에 민감하며, 진초와 허초를 구분하는 특유의 눈썰미가 마치 금싸라기가 내려앉은 것 같다고 하여 금관(錦觀)이라고 불렀어.”


사내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마기마저 판별하고, 손보다 정확한 눈. 동공에 살짝 비치는 금색 싸라기. 그리고 절심문의 검공을 익히기에 가장 중요한 쌍수놀림. 문헌에 기록된 그대로일세. 절심문주 신유월.”


덥수룩한 머리 안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흘러나왔다.


“이제 보니 노름이 목적이 아니었구려.”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구양천이라고 하지. 마교에서 왔네.”


사내의 눈이 번쩍 뜨였다.


“새외를 일통했다는 그 대천마교 말이오?”


중년인, 구양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기운을 일으켰다.

방 안의 모든 문이 닫히자 사내의 솜털이 곤두세워졌다.


“대인이 정말 마교에서 왔단 말이오?”

“그렇다네. 교주님을 모시는 호법장로지.”


등잔의 불빛이 은은하게 번지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내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내 말을 못 믿겠나?”

“천하의 누가 마교의 호법장로를 사칭할만한 담력이 있겠소. 게다가 그런 흉흉한 기세를 드러내놓고, 평범한 무인이라고 하면 그것이 더 이상하겠지.”


한 때, 마교의 간부를 사칭하고 다녔던 사기꾼이 있었다. 마교는 고작 하루 만에 사기꾼을 붙잡아 사지를 찢어발기고 그 목을 만인 앞에 효수했다.

그 날부터 범인(凡人)들은 마교를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신유월에게 비치는 구양천은 아주 새까만 밤 같은 인물이었다.


“대천마교의 호법장로라는 분께서 대체 무슨 연유로 본인을 붙들고 있는 게요.”

“절심문주인 그대를 만나러 왔을 뿐이네.”


절심문.

마도가 대천마교 아래 하나로 통합되기 전.

십이지마문의 일원이었고, 정마의 존망을 건 대붕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가세를 잃고 말았다.

이제는 껍데기만 남겨진 가문의 옛 영광을 구양천이 어떻게 알았는가는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케케묵은 과거를 꺼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멸문한 줄 알았더니, 절심이란 이름이 몇 해 전부터 저자에 나돌고 있더군. 뭔가 찾는 것이라도 있었나?”

“그대야말로 이미 바닥에 처박힌 절심을 찾아온 이유가 뭐요?”

“유익한 거래를 하고 싶어서.”

“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할 것이 없소.”

“절심문이라는 튼실한 배경이 있지 않나.”


까닭 모를 말에 신유월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 정통성을 가지고 본 교주님의 부군이 되지 않겠나?”


순간, 머리가 이해를 거부했다.

눈을 끔뻑이던 신유월이 중얼거렸다.


“교....주?”

“그래. 본 교주님과 혼례를 치렀으면 하네.”

“교주라고 하면.....천마? 지금 사내에게 장가를 가라고?”


구양천이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새로운 교주님께서 취임하셨지. 마교 역사상 최초로 여인의 몸으로 5대 천마가 되신 마후 유설. 자네가 그분의 부군이 되어준다면 절심문의 부흥을 약속하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나를 천마의 부군으로? 데릴사위로 삼겠다는 건가?’


구양천의 서글서글한 눈매 속에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었다.

저 사내는 진실로 마교 교주와 자신을 엮으려 하고 있었다.


“왜?”


황당한 음성이 튀어나오자 구양천은 노골적인 말을 덤덤히 토해냈다.


“본 교에 교주님을 위협하려는 사군이 있네. 그들은 자신의 제자나 세력을 교주님과 엮어 감히 그분의 지위를 탐하려 하지.”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마교 교주의 자리는 대대로 그 피를 물려받은 자만이 거머쥘 수 있다는 말.


“노골적인 욕망이 괘씸하여 우린 결코 그들의 속내를 들어주지 않을 생각이라네.”

“하여, 외부에서 데릴사위를 찾는다?”

“명분 자체는 타당하고, 데릴사위를 들인다면 우리도 사군에 대항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거짓 혼인을 한 다음 사군을 치겠다는 거요?”

“노름꾼답게 눈썰미가 있군. 아니지, 절심문이라서 눈치가 좋은 건가.”


신유월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탐내는 자리겠군. 데릴사위라는 허수아비가 그 자리에 섰다간 목이 남아나지 않겠어.”

“항상 표적이 되겠지. 하나, 그 위험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네.”

“무엇을 주겠단 말이오?”

“모든 것.”


신유월이 헛웃음을 삼켰다.


“마교 교주라면 원하는 사내를 마음껏 품을 터. 굳이 내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요?”

“데릴사위라도 모두가 납득할 배경이나 조건을 갖춰야 한다네. 절심문 정도면 썩 괜찮지.”

“내가 승낙하면 바로 혼인을 치를 순 있고?”

“천거한다고 바로 뽑히겠나. 교주님께 간택 받을 검증이 필요하다네.”

“시험?”

“여러 후보들이 있지. 지금도 계속 시험장으로 향하겠군. 그들 중 시험을 통과한 자들만이 교주님의 반려로서 본 교의 대공이 되는 것일세.”


구양천의 느릿한 목소리 속에 힘이 실렸다.


“절심문에게 다시 십이지마문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지 않나?”


목숨을 거는 대가로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 자리는 가시 밭길 위에 깔린 비단을 걷는 기분일 것이다.

목숨과 영광이 한 끝의 선택으로 갈리는 길 위에서 신유월은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거절하면 이 자리에서 죽소?”

“마도는 의미 없는 살생을 하지 않네. 그저....”


구양천의 눈동자 속에서 희번득한 광채가 번뜩였다.

뇌리부터 발끝까지 감전된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처음부터 없던 일로 만드는 수밖에.”


마도의 섭혼공.

대상의 기억을 흐리거나 변질 시킬 수 있는 마공의 위용은 정파에서도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왔다.

구양천은 오랫동안 출몰하지 않았던 섭혼공을 사용하는 자가 분명했다.


‘기억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으니, 이런 터무니 없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것이겠지.’


어느 날, 노름판에 앉았더니 최고의 패가 느닷없이 찾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한 시진 후에 자네 집 앞으로 찾아가겠네.”


구양천이 손가락을 튕기자 방 안에 맺혔던 답답한 공기가 밖으로 퍼져나갔다.

어느새 문이 열렸고, 눈 깜짝할 사이 구양천은 사라져 있었다.

귀신이라도 홀린 것 같은 그곳에 패를 돌리던 노름꾼 두 명이 나타났다.


“어이, 이봐 신 가.”

“자네 패 안 쥐고 어디 가는 건가?”


신유월은 대답 없이 노름 돈을 챙겨 방을 떠났다.


***


신유월은 봉긋 솟아오른 무덤에 절을 올렸다.


“아버지. 소자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절심문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한 가지 있다.

가문의 직계 혈통이 절심문의 무공을 순차적으로 익히지 못하면, 피에 잠재된 천형이 발작되어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그 대가로 천형을 가진 직계 혈족들은 특별한 눈을 타고났다.

그것이 구양천이 말한 사물의 기운이나 모양새를 구분하는 금(錦)의 관(觀)이다.


“혹여나 절심을 아는 자들이 무공을 가지고 돌아오길 바라며, 저잣거리에 미약한 말을 쏟았었지요.”


대붕 전쟁 이후 절심문의 무공은 많이 소실되어 후대에 온전히 전수되지 못했다.

절심문의 쇠락과 함께 피를 이은 자들이 천수를 누리지 못했으니.

그저 가문의 명맥이나마 이으려고 다들 이른 나이에 혼인을 하였다.

신유월은 씨를 남기려는 의무를 자신의 대에서 마무지 지으려 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는지 직접 보았었고, 본인 또한 천형의 기미가 슬슬 올라와 매번 고통으로 밤을 지샜기 때문이다.

가문의 피를 이어야 한다는 사명만으로 자식에게 이 고통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았다.


“소자는 모든 것을 포기했었습니다. 가문에 남겨진 것이라곤 금관과 손목을 사용하는 방법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으론 절대 천형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절심을 기억하는 자들이 없었다.

당연히 회수될 무공 또한 없었다.

신유월은 제멋대로 살다가 한량처럼 죽더라도 가문을 여기서 끝내는 것이 옳다고 여겼었다.


“훗날, 아버지께 이 죄를 청하려 하였습니다. 하나, 하늘이 끝내 저를 버리지 않은 듯합니다.”


다시 한 번 절을 올린 신유월의 눈동자가 맑은 광채를 띠고 있었다.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낭떠러지 위에 서 있는 몸. 다 타 버린 재가 되버릴 지언정 살 방도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혹여라도 더한 천운이 닿는다면 바라는데 가문의 저주받은 천형을 제 대에서 끊고 천하에 절심문을 우뚝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신유월이 단도로 자른 머리카락을 무덤 앞에 내려놓으며 깊이 읍하였다.


“아버지. 소자 살겠습니다.”


***


한 시진 후 집 앞에 구양천이 다가왔다.

머리를 자르고 허름한 옷을 차려입은 신유월이 그를 맞이했다.


“그대를 따라가겠소.”

“현명한 선택이다.”


미소 짓는 구양천에게 신유월이 물었다.


“한데, 내 한 가지 묻겠소.”

“말해보거라.”

“마교에 혹 절심문의 비급이 있소이까?”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구양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천마교는 무수한 마도와 마맥의 정통성을 보존하려는 시도가 이어져왔다. 십이지마문의 무학이 천마동에 보관되어 있지. 아마, 절심문의 무학도 있을 것이다.”

“내가 시험에 합격하면 그 비급을 볼 수 있겠소?”

“대공의 신분으로 못 할 일이 있겠느냐.”


신유월은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럼 갑시다. 혼인하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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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지현 +2 24.09.13 879 24 13쪽
15 지현 +2 24.09.12 963 23 13쪽
14 무월당주 +1 24.09.11 966 22 15쪽
13 무월당주 +1 24.09.10 963 26 13쪽
12 무월당주 +1 24.09.09 968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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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개안 +1 24.09.06 979 27 15쪽
9 개안 +3 24.09.05 1,016 23 13쪽
8 대천마교 +3 24.09.04 1,020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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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천마교 +2 24.09.02 1,050 29 14쪽
5 대천마교 +1 24.09.01 1,096 26 14쪽
4 혼인계약 +2 24.08.30 1,101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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