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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빌런 님의 서재입니다.

복권 당첨 대신 천무지체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마파빌런
작품등록일 :
2023.05.10 17:47
최근연재일 :
2023.05.17 08:1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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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70

작성
23.05.1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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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사지 않습니다 긁지 않습니다

DUMMY

1. 사지 않습니다 긁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강호 무림에서는 홀로 다니는 여자와 노인과 아이를 조심하라고 하였다.

무림이 어떤 곳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칼부림이 벌어져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곳 아닌가.

호위가 됐든 동료가 됐든, 사지 멀쩡하게 살고 싶다면 여럿이 짝을 이루어 다니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헌데, 여자나 노인이나 아이가 일행 하나 없이 혼자 돌아다닌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인이사(奇人異士)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곳, 산서의 오태산 자락에 자리 잡은 객잔이야말로 지금 강호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홀몸으로 찾아온 여자와 노인과 아이가 전부 모여있었으니까.

하필이면 그것도 ‘객잔’에.


술김에 뒷담하다 “감히 우리 사문을 모욕하다니!”라며 칼부림이 벌어지고.

술김에 “크흐, 내가 이번에 꽤 괜찮은 것을 손에 넣었는데 말이지.”라며 괜한 자랑을 하다 칼부림이 벌어지는.

만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장소에, 무림 3대 위험 요소가 모두 모여있었으니, 소동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만사에는 순번이 있는 법이지요. 제가 먼저 손을 잡았으니, 이 아이는 제 것입니다.”


아이의 오른손을 잡고 있는 것은 휘황찬란한 비단 궁장을 걸친 묘령의 여인이었다.

소녀라기에는 다소 연륜이 느껴지는 여인의 의복은 그야말로 유려하고 또 우아했으나.

그에 어울리지 않게, 가슴팍에 굵은 서체로 문자가 수 놓여 있었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감히 그 누구도 여인의 의복에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가슴팍의 문자가 다름 아닌 남궁(南宮)이었으니까.


“허허, 내 저 아이가 객잔에 들어올 때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건만, 자네가 가타부타 않고 냅다 낚아챈 것 아닌가? 자네야말로 순번을 지키지 않은 것 같으이.”


아이의 왼손을 붙잡고 있는 것은 정정한 것을 넘어서 건장하게 보일 정도의 노인이었다.

도무지 노인의 것이라 여겨지지 않는 강건한 육신을 감싼 도포의 가슴팍에도 역시 두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점창(點蒼).


남궁세가와 점창파.

각각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두 문파의 고수가 대립하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객잔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남궁과 점창의 고수들이신 것 같은데 누구신지 모르겠군. 자네는 아나?”

“내가 어찌 알겠나? 그저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할 뿐이지.”


대놓고 가슴팍에 남궁세가와 점창파 소속이라 써놨다고 한들, 민초들로서는 저들이 누구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땅이나 파먹고 사는 범부들에게 명문대파는 별세계와 다르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이름을 어찌 전부 알 수 있을까?

설령 이름과 별호를 들어봤더라도 그게 그 사람인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어지간해서는 평생 동안 마주칠 일도 없는데.

그렇게 구경꾼들의 웅성거림만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을 때.


“남궁의 창뢰검후(蒼雷劍后) 남궁연화 님과 점창의 광속신검(光速迅劍) 진명천 님이신 듯하군요.”


청년에서 장년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남자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찌하여 그렇소?”

“남궁세가가 윤택하다고는 하나, 저리 값진 옷을 걸칠 수 있는 여인이라면 한 분뿐이지요. 은은하게 느껴지는 뇌기 역시도 그 증거이고요.”


“오호라! 그럼 점창의 노고수께서 광속신검 님이신 연유는?”

“검을 패용한 위치가 반대이기 때문이지요. 극쾌(極快)를 추구하는 점창의 무공에, 통상적이지 않은 좌수검이 더해져, 맞수가 보기에는 마치 빛살과 같이 느껴진다 하여 붙은 별호가 광속신검이라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군! 대협의 식견이 참으로 대단하시구려!”

“대협이라니요. 그저 일개 마부일 뿐입니다. 그저 오고 가며 주워들은 것이 많을 뿐이지요.”


어느새 구경꾼들의 중심에 자리 잡은 사내가 멋쩍다는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겸손하시기는! 보아하니 선생도 무공깨나 익히신 것 같은데.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소?”

“풍소원이라 합니다.”

“풍소원······ 풍소원! 하남의 추풍쾌거(追風快車) 아니신가?”

“일천 근의 표물을 싣고도 하룻밤에 일천 리를 달린다는 그 추풍쾌거시라고?!”

“과분한 별호이지요.”

“크흐! 오늘이 진짜 무슨 날인가 보군. 창뢰검후와 광속신검, 그리고 추풍쾌거 대협까지 한자리에 모이다니.”

“헌데, 풍 대협께서는 저 꼬맹이, 아니, 저 동자도 누군지 짐작 가는 바가 있으시오?”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의 객잔.

그 폭풍의 눈에 있는 것이 바로 강호 무림의 3대 위험 요소 중 마지막인 ‘아이’였다.


“글쎄요······.”


왼손과 오른손을 각각 두 고수에게 붙잡힌 소년의 외양은 무척이나 기괴했다.

얼핏 보기에는 10살을 갓 넘었을까 싶었지만 확실치 않았다.

삐쩍 골아 피골이 상접하여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어디서 넝마라도 주워 입은 것 같은 몰골이 겹치니.

그 생김새가 말라비틀어진 목내이(木乃伊, 미라)에 가까웠다.


‘호흡에서 느껴지는 기력조차 희미한 것이, 정녕 산송장이나 다름없는데······.’


대체 사람이 어떤 일을 겪어야 저런 몰골이 될 수 있는 걸까?

역병이 창궐하고 기근에 허덕이는 곳에서도 저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저 지경이 된 것을 본 적은 있었어도, 그건 이미 시신이었지 산 사람이 아니었다.


‘말로만 듣던 강시인가? 아니지. 숨을 쉬는 강시가 어디 있다고?’


마차를 끌고 천하를 주유하며 무림 정세에 해박하다고 자부하는 풍소원조차 도무지 소년의 정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소년이야말로 강호 무림의 진정한 기인이사가 아닐는지······.’


한참이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풍소원은 어렵사리 한 마디를 내뱉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만 같군요.”


뜻밖에도 정답이었다.

창뢰검후와 광속신검에게 양손을 붙잡힌 소년, 차시현은 진짜 이쪽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변이 온통 새까맸다.

낯선 공간에 떨어졌음에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니까.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 벌써 반년 전이었다.

죽을 때가 됐으니 죽었고, 말로만 듣던 사후세계에 왔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사후세계가 아니랍니다.”

“누······구세요?”


고개를 돌려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새하얀 여자가 있었다.


“대충 차시현 님의 육신을 구매하고자 찾아온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된답니다. 일종의 거래 중개인이랄까요?”

“예?”

“아, 오해하지는 마세요. 성적인 의미가 아니니까요. 차시현 님이 보유하신 육신의 권리를 구매하려는 것이죠.”


저게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성매매를 하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 육신의 권리를 구매한다?

그럼 인신매매인가? 거래 중개인이라고 했으니, 인신매매 브로커고?


시한부 암 환자의 몸을 사서 어디다 쓰려는 걸까.

남태평양에서 새우잡이를 시킬 수도 없을 테고, 장기를 떼다 팔 수도 없을 텐데.

혹시.


“시신을 기증해달라는 겁니까? 연구용이나 해부실습용으로?”


그건 불가능한데.

이미 사후에 내 시신을 국립암센터에 기증하기로 했으니까.

착실히 치료받고, 성실히 연구에 협조하고. 그 대가로 지금까지 무료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희귀사례도 아니고 최초사례인 덕분이었다. 센터장님 말로는 내 암세포가 헨리인지 헬라인지 하는 사람의 암세포만큼이나 특이하다는데······.


그게 뭐 중요한가?

치료는 힘들 것 같고, 나는 곧 죽을 예정이라는 게 중요하지.


“그럴 리가요. 저희가 원하는 것은 육신이지 시신이 아닌걸요.”

“그러니까 정확히 뭘 원하는 건데요?”

“음······ 회귀, 빙의, 환생, 이런 것들에 대해 아시나요?”

“모르진 않죠. 웹툰이나 웹소설에서 자주 쓰는 소재 아닙니까.”

“맞아요! 회빙환의 소재로 차시현 님의 육신을 사용하고 싶다는 뜻이랍니다.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이제야 좀 알아듣겠네.

회귀자인지 빙의자인지 환생자인지 모를, 대충 퉁쳐서 회빙환생자 쯤 되는 주인공이.


─이, 이곳은······?


하고 새로운 몸에서 눈을 뜨는, 그 몸이 되어달라는 모양이었다.


<시한부 희귀암 환자가 살아남는 법> 같은 제목이라도 붙일 생각인 걸까.

그보다.


“주인공이 제 몸을 차지하면 저는 어떻게 되는데요?”

“대가로 무엇을 원하시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뭘 원하세요?”


내가 원하는 것?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암 완치요.”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든 이 지독한 통증을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항암치료가 문제가 아니었다. 오장육부에서 암세포가 자라는 것만으로도 진짜 미칠 것 같았다.

요즘 들어서는 진통제를 맞고도 잠들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프고 아프다가 지쳐서 겨우 잠드는 느낌이랄까.


“그건 좀······. 암을 치료해 드리면 죽지 않게 되잖아요? 일단 차시현 님이 죽으셔야 해서요.”


어처구니가 없네.

미친년인가?


“그럼 그냥 지금 죽여주세요.”

“그것도 좀······. 수명이 다한 다음에 죽으셔야 차시현 님의 몸에서 빙의·환생을 할 수가 있어서요.”

“장난해요?”

“그럴리가요! 차시현 님의 요구가 뜻밖이라서 그런 것뿐이랍니다. 보통 시한부 상태에 계신 분들은 새로운 삶을 원하시거든요.”

“저더러 환생을 하라는 겁니까?”

“그렇죠! 육신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차시현 님이 직접 회빙환의 주인공이 되는 거죠. 다른 몸이나 다른 세계에서요.”

“글쎄요.”


반년 전이었다면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너무 막막하고 답답해서, 환생 트럭과 한강 포탈 중에 뭐가 더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5단계를 거치다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아니더라.

평생 개똥밭에서만 구르다가 개똥 같은 암에 걸려서 뒤지게 되니까, 그냥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개똥 같았다.


“됐습니다. 저는 얌전히 죽을랍니다. 회빙환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천국이든 극락이든 뭐가 됐든 간에 고통 없이 행복한 곳에 보내주세요.”


이젠 너무 지쳤다.

다시 태어나면 뭐 하나?

결국 다시 죽을 텐데.


재수생한테 삼수해야 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전역자한테 재입대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내 기분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감정이 비트코인 차트마냥 널뛰기하는, 죽음을 앞둔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했다. 이제는 그만 상장폐지 시켜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음, 그것도 좀······.”

“아니, 암도 못 고쳐줘, 죽여주지도 못해, 천국도 못 보내줘. 대체 뭐가 되는 겁니까?”

“그치만 존재하지도 않는 곳에 보내드릴 수는 없잖아요.”

“천국이 없어요?”

“당연하죠. 영원히 행복하기만 한 곳이 어떻게 존재하겠어요? 아무리 좋은 일도 점차 적응해서 무덤덤해질 텐데요.”


쓸데없이 현실적이네.

회빙환처럼 비현실적인 말을 늘어놓는 주제에.


“그럼 됐습니다. 거래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그냥 돌려보내 주세요.”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새로운 삶이 싫으시면, 지금의 삶이 풍족해지는 건 어떠세요? 돈을 왕창 받는다든가?”

“더 관심 없는데요.”


억만금이 있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그 돈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세계에서 암 치료로 유명한 것이 한국이고, 한국에서도 암 치료의 선두에 있는 것이 바로 내가 입원한 국립암센터였다.

돈이 부족해서 치료를 못 하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 의학으로 불가능하니까 그런 거지.

애초에 희귀사례도 아니고 최초사례인 덕분에 병원비도 무료였고.


“제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시면 안 될까요? 네? 돈이 있으면 차시현 님이 하고 싶지만 못했던 것들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것들이 있긴 했지.

더블린의 기네스 공장에서 맥주도 마셔보고 싶었고, 몰디브에서 모히또도 마셔보고 싶었고.


하지만 나는 말기 암 환자인걸?

이딴 몸으로는 술을 마시기는커녕 비행기를 타지도 못할 게 뻔했다. 항공사에서 탑승 거부를 할 테니까.


“그것들을 다 즐기고도 남을 만큼 드릴게요. 유산도 넉넉히 남기실 수 있게요.”


이거 어쩌나.

안타깝지만 나는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사람이 없는데.


내 나이가 고작 27살이라 처자식도 없었고, 부모님도 나보다 먼저 돌아가셨고.

유산을 남기면 아마 큰삼촌이나 외숙모가 받을 것 같은데······.

어머니 장례식 때 깽판 쳤던 거 생각하면 그 양반들한테는 한 푼도 남겨주기 싫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됐고요, 암이나 치료해 주십쇼.”

“그건 진짜 안 돼서······.”

“그럼 팔 생각 없습니다.”

“으으으으! 자꾸 그러시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 드리지 않을 거예요? 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한 5억 년쯤 썩어보실래요?”


이건 또 뭔 부조리야.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저는 5억 년 버튼 같은 거 누른 적 없는데요.”

“지금 누르고 계시거든요? 이렇게 거래에 비협조적인 태도가 제 마음속의 버튼을 마구 누르고 있거든요?”


아, 진짜. 겁나 귀찮게 하네.

모르겠다.

진짜 여기서 5억 년이나 있어야 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그냥 대충 거래해 버리는 게 낫겠다.


“뭐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5억년 버튼처럼 1000만원 주고 퉁치려는 건 아니죠?”

“으흐흥, 저희는 그렇게 쩨쩨하게 장사 안 해요. 화끈하게! 무한리필로 드린답니다!”

“······?”


무슨 고기 뷔페도 아니고 돈이 어떻게 무한리필이 된다고?

내가 입원한 사이에, 현실에 돈 복사 버그라도 생겼나?


“지금부터 차시현 님이 죽을 때까지, 그러니까 127일 12시간 8분 5.25초 동안 구매하시는 복권은 무조건 당첨이 될 거예요.”


미쳤네.

저게 진짜면 돈 복사 버그랑 다를 게 없겠지.


“아, 제한 사항이 좀 있긴 해요. 즉석복권은 발행된 매수가 정해져 있어서 항상 1등 당첨이 되는 것은 아니고요, 로또는 자동으로 구매하실 때만 1등 번호가 나올 거예요.”

“그 정도는 문제 될 거 없죠.”


애당초 돈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당첨금이 10억이든 100억이든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대충 받아들이는 척하고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끝낼 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그럼 거래하시기로 한 거예요? 복권에 당첨시켜 드리는 대가로 차시현 님의 육신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시기로 한 거예요?”

“예, 예. 알겠습니다. 알았으니까 이만 돌려보내 주세요.”

“그래야죠! 복권 사셔야 하니까요! 잘 가세욧!”


여자가 손을 흔들었고, 온통 어두웠던 공간이 빛으로 가득 찼다.


밝아지는 시야 속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죽을 때까지 복권을 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복권 당첨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내 몸에서 환생하기로 한 주인공은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쩌면.

소설 제목이 <시한부 희귀암 환자가 살아남는 법>에서.

<회빙환에 실패한 썰 푼다>로 바뀌지는 않을까?


그거 재밌겠네.



***



하지만 세상일이 대부분 그렇듯, 이번에도 시현의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약 4개월 뒤.

시현은 안타깝게도(?) 영면에 들지 못한 채, 산서의 오태산 자락에서 눈을 뜨고야 말았고.

근처 객잔에 들어오자마자 창뢰검후 남궁연화와 광속신검 진명천에게 양손을 붙잡히고야 말았다.


“이 아이의 혈도를 보세요.”


남궁연화가 시현의 오른손을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일말의 탁기조차 쌓이지 않았을뿐더러 막힘없이 뚫려있는 이 혈도야말로, 뇌기를 채우기에 적합하지 않겠어요?”


시현의 왼손을 붙잡은, 광속신검 진명천 또한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겨우 그 때문인가? 천의무봉과 같은 혈도가 탐나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이 아이의 몸이 천무지체에 근접할 수 있던 것은 균형 잡힌 근골 덕분이거늘.”

“그러니까 더욱 ‘천’뢰검법이 적합하죠. 그야말로 ‘천’무지체에 가까운 몸이니까.”

“하늘에 어디 번개만 치던가? 뇌운보다 높은 것이 태양이요, 그 태양에 닿고자 하는 것이 사일검법이니, 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무지체에 어울리는 무공이지.”

“닿고 싶은 것이지 닿지 못하셨잖아요. 하지만 저는 천뢰를 내릴 수 있거든요?”


두 고수가 이토록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설전을 벌이는 이유.


‘내가 긁지 않은 복권이 됐다고?’


죽을 때까지 복권을 사지 않은 시현에게 ‘강제로’ 주어진 복권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연재는 매일 오전 7시 20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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