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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림 님의 서재입니다.

캣츠비안나이트 (catsbian night)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수양림
작품등록일 :
2020.10.26 23:36
최근연재일 :
2024.01.06 21:00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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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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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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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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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부. 옥실이

DUMMY

"재미없다옹."


고양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학생의 귀에 고양이의 말은,


"야옹."


이라고만 들렸다.

그 때 학생의 귀에 집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밀 메이커가 들어왔다.


"늦는 줄 알았네. 좀 일찍 오지. 왜 이렇게 늦게 와서는······."


밀 메이커는 어쩐지 혼잣말을 하면서 들어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모양이었다. 문 밖에서부터 형상은 없지만, 연기가 길게 깔리기 시작했다. 밀 메이커는 커다란 연기 뭉치와 함께 집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연기 뭉치는 무언가 특정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연기 뭉치 그 자체였다.


학생은 자신의 두 눈을 믿기 힘들게도, 연기의 중심에 파이프 담배가 짙은 연기 속에서 흐릿하게 허공에 떠 있는 게 보였다. 그 파이프에서는 연기가 계속 무럭무럭 피어나오고 있었다.


학생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들을 눈으로 쫓았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밀 메이커는 그렇게 말하고 연기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방문을 닫아도 연기는 연기인지, 밖에서부터 바닥에 길게 깔린 연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잔여물처럼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연기는 아주 천천히 흩어졌다.


학생은 밀 메이커의 방문이 닫히자 길게 깔린 연기의 근원을 따라 눈으로 바깥까지 쫓았다.


"야옹."


학생은 고양이의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고, 방으로 들어간 밀 메이커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생은 조용히 연기를 따라 밖으로 나가봤다. 연기의 흔적은 뒷마당으로 이어져 있었다.


"···와. 뭐야?"


학생은 뒷마당에 이상한 물체가 세워진 것을 보고 놀라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것은 마치 외계나 미래에서 온 첨단 과학의 집약체 혹은 심플함을 극도로 강조하는 디자이너의 작품처럼 보였다. 그것의 외양은 매끈한 건물 혹은, 날카롭지 않은 원통형 막대기 같았다. 그 물체는 철제 문 같은 것이 달려 있었는데, 지금은 열려 있고 바닥으로 계단이 내려와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 물체의 내부에서부터 연기가 나온 흔적이 남아있었다.


학생은 조심스럽게 내부에 머리를 들이밀어 구경을 했다.


안은 제법 밝았다. 내부는 작은 건물의 일부 같기도 하고 작은 방과도 비슷해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것은 마치 미래 도시의 어느 방을 그대로 이곳에 옮겨온 듯 했다. 그리고 이 이상한 물체의 벽체가 얼마나 두꺼운 건지 몰라도 내부가 그리 넓지는 않았다.


"어?"


학생은 이 물체 안이 좁아보이는 원인을 하나 더 찾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의 벽 쪽에 매립된 수조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엔 웬 아이의 몸을 쪼개서 기계와 섞어놓은 듯한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온갖 내시경 호스 같은 것을 꽂고 있었다. 학생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것이 일반적인 생명체가 아닌 로봇임을 깨달았다.


"와, 과학 발전이 이렇게 무섭네."


학생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젠 머리만이 아니라 걸음을 옮겨 몸까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서 살펴보니 비행기 조종석 같은 부분도 보이고, 책장 같은 것도 보였다. 그곳에는 책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책이 아닌 작은 박스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거기엔 얼마 전에 새로 붙인 듯한 견출지가 붙어 있었고, 정보가 쓰여 있었다. 심지어 학생의 모국어로 쓰여있었다.


「우주의 역사」

「우주의 언어」

「문화와 우주」


학생은 그 박스들은 아마도 외장하드나 데이터 박스 같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그리고 책장 위에 낯익은 회중 시계가 놓여있는 것도 발견했다.


"···어? 이거?"


학생은 예전에 발 수술을 할 뻔 했을 때 입원해 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친구가 잠깐 놔두고 간 시계였다. 학생은 그 날, 아주 생생하고 이상한 꿈을 꾸었던 기억이 있기에 아직도 그 시계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번에 알아본 것이었다. 학생은 이 시계를 친구의 시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에 잠시 밀 메이커의 집에 왔었을 때 밀 메이커 손에 넘어간 것을 봤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계가 지금 여기에 있었다. 학생은 시계가 왜 여기 있는지 의아해졌다.


"···대체 이 시계는 뭘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왜 이렇게 만든 건지."


학생은 그렇게 투덜거리며 시계를 집어 들고는 뚜껑을 열었다.


그 시계는 보통의 시계보다 과하게 많은 여러 개의 시곗바늘이 있었고, 뒤에는 거울이 있었다. 시간을 아예 못 볼 것 까지는 없었지만 보기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홀로그램인지 아니면 액정 패널인지 몰라도, 거울 같은 뒤판이 숫자와 모양이 계속 변하는 이상한 시계였기 때문이었다.


"어?"


학생은 순간 그 거울 너머로 뭔가 어둡고 공허한 것을 본 듯 했다. 그리고, 반짝이는 촘촘한 무언가도 본 듯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일반적인 시계와 거울처럼 보였다.


"잘못 봤나?"


학생은 그렇게 말하며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갖다대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덕분에 벽면에 몸이 부딪혀서 그만 알 수 없는 버튼이 눌렸다.


쿠르르르


"어어, 뭐야?"


학생은 갑자기 수챗구멍으로 물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랐다. 소리가 나는 곳은 아까 조각난 아이 모양의 로봇이 들어있던 곳이었다. 그 안에 들어있던 액체가 빠지고 있었다. 동시에 로봇에게 여러 개 붙어 있던 호스들이 다 분리되고 있었다.


철컥 철컥 드르륵 철컥


열린 채로 해체되어 있던 로봇은 자동으로 조립되더니 연갈색 머리의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렇게 액체가 다 빠지고 아이가 조립되자 수조의 투명한 벽이 내려가며 열렸다. 투명 벽이 열리자 수조 안의 벽과 로봇에 약간 남아 있던 액체는 순식간에 휘발되어 말라버렸다. 이윽고 투명 벽이 완전히 열리자 로봇이 마치 사람처럼 눈을 떴다.


"···아 뭐야. 또 뭐가 들어온 거야?"


아이는 학생을 보자마자 학생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짜증을 냈다.


"주인님은 어디 가신 거야? 야! 너 뭐야?"


학생은 얼어붙은 채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학생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학생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했다.


"···인간이네? 그 분 보러 오신 건가? 아, 얘를 어떻게 처리하지? 죽여도 되나? 기억만 지워서 보내야 되나?"


아이는 중얼거리며 벽면의 어딘가에 손을 뻗어서 열더니 옷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야! 어떡할래? 죽을래? 아님 기억만 지울래?"

"···둘 다 싫은데?"


넋 나간 채로 바라보던 학생이 말했다.


"로봇이지? 인간···은 아니지? 안드로이드? 설마 외계인인가?"


학생이 아이가 옷을 입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옷을 계속 입으며 아이가 말했다.


"아마 주인님이 여기 온다고 인간형으로 바꿔오셔서 인간처럼 보일걸."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책장 쪽으로 걸어가더니 말했다.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컴퓨터에 주요 능력을 돕는 장치 정도? Auxiliary device라고 하면 알아듣겠지? 주인님의 시계를 보조해서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주인님의 일을 돕기도 하고···"

"기계 노예?"


학생이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멈칫하더니 돌아보며 말했다.


"죽여야겠어."

"시계라는게 이거 말하는 거지?"


학생이 손에 들고 있는 시계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가 그걸 보더니 말했다.


"심지어 도둑놈이네. 내놔. 죽이기 전에."

"도둑은 너네지. 이거 내 친구꺼야."

"친구?"


학생의 말에 아이는 피식 비웃었다.


"친구는 무슨. 주인님이 너랑 어떻게 친구야? 야. 네 분수에 넘치는 물건을 탐내면 죽어."


그 말을 하더니 아이의 입이 갈라지더니 총포 같은 부분을 꺼내 머리통을 겨눴다. 진짜로 학생을 죽일 태세였다.


"어?"


아이는 갑자기 놀란 듯 눈이 커지더니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가만히 서서 학생을 쳐다봤다.


"···어?"


아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쳐다보더니, 갑자기 중세 기사들 같이 무릎을 꿇으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명령하십시오."

"뭐, 뭐야? 왜 이래?"


학생이 당황해서 말했다.


"당신은 제가 섬겨야 할 다른 주인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컴퓨터로 치면 관리자 계정 외에 다른 이용 계정 같은 거죠. 이해가 되실까요?"


아이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 말에 학생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엥? 왜? 왜 그렇게 되어 있는데?"

"초기 설정값입니다."

"초기 설정값???"


학생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가 학생에게 물었다.


"새롭게 세팅 하시겠습니까?"

"뭐, 뭐를?"

"제 설정을 새롭게 설정하시겠습니까?"

"설정?"


학생은 당황한 채로 얼어 있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일단 그러고 있지 말고 좀 일어나 봐."

"네."


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학생은 또 깜짝 놀랐다.


"아오, 깜짝이야! 조금만 더 인간 같이 굴어봐."


그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팔짱을 끼고 약간 짜증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정도면 될까요?"

"···너무 짜증난 표정 아니냐?"

"당신이 갑자기 날 지시하게 돼서 짜증나거든요. 제 주인님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이시고······."

"그래, 이해한다······. 근데 너 로봇 맞지?"


학생이 물었다.

아이는 건방지게 건들거리며 말했다.


"당신의 지식의 한계로 말하자면, 대충 그런 거랑 비슷하죠. 그냥 안드로이드라고 칩시다? 딱히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이니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네요."

"끝내주게 인간 같아졌네."


학생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난 듯 물었다.


"야! 너, 그럼 로봇이니까 뭐든지 다 아냐?"

"뭐든지 다 아는 건 아니고요. 기록된 부분들이나, 주인님이 절 데리고 다니면서 경험 시킨 부분들은 대충 알죠."

"그래? 그럼 우펜자에 대한 건 알아?"


학생의 물음에 아이가 대답했다.


"당연하죠."

"얼마나 대단해?"

"우펜자, 우주 역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존재. 통칭 위대한 우펜자. 행동하는 평화주의자, 실천하는 자, 우주 대통합의 선구자. 그리고 찢어진 우주 사건 이후 우주 대전쟁의 종식에 힘쓴 존재. 대전쟁 이후 대담한 행보로 평화와 부흥을 이끈 존재로 평가 받죠. 그리고 정점 중에 정점이라고 불리는 우주 연합체의 초대 총장이구요."


옥실이 정보 전달에 학생의 눈이 더 반짝였다.


"···와 죽인다."


문득, 옥실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근데 인간이 그 정보를 어떻게 알죠? 진짜 다른 주인님은 맞나 봐요?"

"아, 뭐 어쩌다 책 보고 알게 됐는데······."

"책이요? 우펜자에 관한 책이 지구에 있다고요? 데이터상 말이 안 되는데요?"


아이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학생이 물었다.


"그거 지구에 있으면 안 되는 책이야?"

"아마 지금은요."


아이의 말에 학생은 인상을 찌푸렸다. 밀 메이커와 자신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잠시 생각했다. 학생은 잠시 침묵을 하다가 물었다.


"근데, 네 이름은 뭐야?"

"설정 하시는 대로 부르시면 돼요."

"내가 마음대로 이름 붙이면 되나?"

"네."


학생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까 Auxiliary 어쩌구 했지? 부르기 쉽게 '옥실'이 어때?"

"작명 센스 한 번 끝내주네요. 주인님 같고 아주 좋네요, 참. 어찌나 촌스럽고 좋은지. 왜 다 그 모양인지 모르겠네요."

"옥실아, 그거 욕하는 거지?"

"칭찬도 포함됐어요. 이딴 이름 붙이고 칭찬만 듣길 바라는 건 개자식 아닐까요?"

"젠장. 빌어먹을 기술 발전."


옥실이의 말에 학생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욕했다. 그러다가 또 물었다.


"근데 찢어진 우주 사건이 정확히 뭐야? 우주 대전쟁은?"

"우펜자는 알면서 그걸 몰라요?"

"알아서 잘났다, 이 깡통 로봇아."


학생의 말에 옥실은 비웃으며 책장 쪽으로 다가갔다.


"하하! 전 당신의 뇌로는 넘보지도 못할 기술로 만들어졌거든요?"


옥실은 책장에서 책처럼 생긴 우주의 역사라는 데이터 박스를 꺼냈다. 손가락이 열리더니 그 데이터 박스와 케이블이 연결됐다. 그리고 다시 꽂아놓고 다가오며 말했다.


"뇌가 과부하 와서 죽을 수도 있으니 필요한 부분만 이식시켜드릴게요."

"이식 한다고?"

"네. 뇌에 심어드릴게요."

"뭐? 자, 잠깐만···!"


옥실이 학생이 못 움직이게 붙잡았다. 옥실의 눈알이 튀어나오더니 학생의 동공에 접촉시켰다. 학생은 그대로 마비된 듯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이내 옥실의 눈알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학생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엎어졌다.


"···미쳤어?"


학생이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옥실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시간 들여서 전달하는 것보다 시각 데이터를 뇌에 간접으로 꽂는 게 낫지 않나요? 두개골을 뚫고 뇌에 주입하는 건 싫을 거 아니에요? 인간이라서 회복력도 느리잖아요. 그래도 이게 싫으면 다음부터 뇌에 꽂아서 주입시켜드릴게요."

"···미쳤냐? 그 딴 걸 하게!"


학생이 버럭 소리 질렀다.

옥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죠? 전 나름 그 쪽 생각해서 타협한 거예요. 인간 방식대로 하면 몇 년이나 걸릴 거고요."

"인간 방식은 뭔데? 적어도 물어는 봤어야지!"

"학습이요. 제가 설명 하거나, 책 읽고, 강의 하고, 그쪽은 영상 자료 천천히 보고. 시험도 치고. 대충 그런 거죠."

"···그래. 몇 분 고통받는 게 낫긴 하다."


학생이 수긍했다. 그러자 옥실이 말했다.


"몇 분은요. 28초 밖에 안 걸렸는 걸요."

"28초? 야야, 다시는 안 해. 절대."

"알겠어요. 다음부터는 인간 방식으로 온건하게 진행해드리죠."


학생은 방금 주입 된 기억을 더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그런데 역사 안에도 우펜자의 자서전에 나온 유학시절 부분은 없네."

"기록에 없으니까요."

"알아낼 방법 없나?"

"있죠."

"어떻게?"

"그 시대로 가면 되잖아요. 우펜자의 유학 시절로 가서 그 학교에 가서 알아내면 되죠. 우펜자에게 뭔 일이 생겼었는지 직접 만나서 알아보는 거죠."


그 말에 학생은 눈을 끔뻑이더니 말했다.


"우펜자는 죽었잖아?"

"살아있을 때로 가면 되죠."

"어떻게?"


옥실이 학생이 들고 있는 시계를 가리켰다.


"그 시계랑 제가 있으면 당신도 갈 수 있어요. 방법도 계산해서 찾아드릴 수 있고요. 주인님은 둘 다 없어도 어디든 가지만요."

"···그런게 가능해?"


학생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네. 아, 근데 지금 당신 육신으로는 못 가요. 시간과 공간을 버티기에는 너무 약해요. 대체해서 가게 되면 기억은 그대로 이식 해드릴게요."

"잠깐. 죽으라는 거냐?"


학생이 기겁하며 말했다.

옥실은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여행할 대체품을 찾아야된다는 거죠. 그 행성이나 그쪽 우주 구역의 구성물질로 생명체나 껍데기를 잠시 구성해서 갔다 오는 방식이죠. 여기서는 1초도 안 흐른 것처럼 다녀올 수 있어요. 그게 싫으시면, 지금 그 육체에 그쪽 물질로 덮어 씌워드리거나 재구성해드릴게요. 노화나 상처, 문제가 생기지 않고, 원래 몸은 멀쩡하게 말이죠."


옥실이의 말에 학생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것들이 된다고?"

"되죠. 근데 위험해요. 그리고 하나 더 문제는 범죄를 저질러야 돼요. 그리고 지금 시계도 그렇고 당신이 가진 게 전부 다 당신의 소유가 아니잖아요? 멋대로 가서 사고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러니까 그냥 의문은 의문인 채로 역사 속에 묻어두는 게······."


그러나 학생은 냉큼 물었다.


"무슨 범죄?"

"주인님의 재산을 훔쳐서 사용해야 해요. 학교가 세워질 때 기부자로 이름 올리고 학교에 자유롭게 출입하는 거죠. 기부자라는 명성과 지위는 심리적 경계를 허물고, 돈은 상대방에게 원하는 정보를 얻고 현혹시키는 좋은 도구니까요. 하지만 물론, 이건 대형 사고구요."

"···그거 좋은데?"

"······."

"아주 현대적이고, 더럽고, 나쁘고, 위험하네. 맘에 들어."


학생의 말에 옥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봤다. 학생이 물었다.


"근데 주인 재산이 얼마인데?"

"인간의 돈 기준과 지금 당신의 국적으로 따지면 0이 12개는 넘게 붙어있겠죠? 오랜 세월을 사셔서 많은 재산을 모으고 있···"

"야."


그 말에 학생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면 100억 쯤 써도 몰라. 껌 하나 사 먹은 정도라고 생각할껄?"

"···설마 진짜 하려고요? 방금 나쁘고 위험하다고···"

"그러니까 당장 해야지."


학생의 말에 옥실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예에?"

"야, 아까 그쪽 육신으로 갈아타거나 덮어 씌운다고 했지? 그거 내가 원하는 대로 가능해?"

"네, 되긴 되는데······."


떨떠름 하게 대답하는 옥실에게 학생이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왕 할 꺼 미남으로 만들어줘. 키 크고 잘생기게!"

"······."

"아, 이왕이면 발 크기는 적당하게 부탁해. 지금은 너무 크니까. 아, 커야 될 데는 크게. 무슨 말인지 알지?"

"······."


학생이 신나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옥실은 매우 짜증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옥실이 당부했다.


"···시계 잃어버리지 마세요. 못 돌아올 수도 있어요."

"알겠어."


옥실이가 잠시 가만히 한쪽 손으로 학생의 손과 시계를 잡고 서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학생을 쳐다보며 말했다.


"갈까요?."

"뭐? 벌써?"

"네. 저쪽으로 가요."


옥실이 손으로 학생의 등 뒤를 가리켰다.

학생이 뒤를 돌아보니, 문 정도 되는 크기가 빛나고 있었다.


"뭐야 이거?"

"당신이 알기 쉽게 문처럼 시각화한 거예요. 그냥 문 통과하듯이 걸어 들어가면 갈 수 있어요. 바로 원하는 시간대, 원하는 장소로 가는 거죠."


학생이 문 앞에 서서 들어가려다 멈칫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 마타마이니 행성?"


옥실이 주절주절 설명을 시작했다.


"위치는 행성 마타마이니 구레아국 수도의 최상급 학교, 그러니까 지구로 치면 대학 설립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곳이요. 시간대는 마타마이니력 4255년으로 갈 거예요. 4257년에 학교가 완공돼서 개교식을 하니까요. 기부하고 다시 시간대를 옮겨서 개교식으로 갈 예정이에요. 일단 장소만 가까워지면 시계가 있으니까 시간대 이동은 훨씬 쉽거든요. 문제는 지금 제 상태가···"

"좋아. 가자."


바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학생을 옥실이 붙잡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진짜 갈 거에요?"

"응."

"자칫하면 과거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알죠?"

"네가 다 계산한다며? 다 커버쳐줄 수 있는 거 아냐?"

"그건 그런데······. 이제 뇌에 정보를 드렸으니 그 시대가 어떤 때인지 아시잖아요? 그냥 관련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 자료나 보면서 추측으로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거기 사는 거주민들을 고려하고, 역사적인 후대의 평가를 알게 되셨으니 굳이 가지 않는 게···"

"싫어."


학생은 옥실의 말을 단칼에 거절했다.

옥실은 다시 한 번 설득했다.


"그곳 거주민들은 자신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길 염원해서 배움을 위해 기부금을 모으지만, 우주 대전쟁 전범 구역은 그걸 이용하려 든다구요. 외부의 존재인 당신 욕심으로 개입했다가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역사가 바뀌기라도 하면···"

"니가 커버 쳐."


학생이 옥실의 말에 따분해하며 말했다.

옥실이 애원하듯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아니, 제가 만능도 아니고, 지금 상태도 나빠서 한계가···"

"고!"


학생은 더 듣기 싫다는 듯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가 3부 마지막 회차입니다. 질문 받습니다.

20221105 1차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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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4부. 운 좋은 날 23.12.16 5 0 13쪽
88 4부. 좋아하는 것/ 헌터 23.12.09 5 0 11쪽
87 3부. 뒷수습 (3부 完). 후기 22.09.24 25 1 17쪽
» 3부. 옥실이 22.09.17 24 0 20쪽
85 3부. 학생의 우상 22.09.10 23 0 15쪽
84 3부. 고양이의 생일/ 안다미로의 비밀 22.09.03 19 0 9쪽
83 3부. 또 봐/ 리모컨 쟁탈전 22.08.27 26 0 12쪽
82 3부. 마마스 클라우드(Mama's cloud) 22.08.20 27 0 13쪽
81 3부. 광대/ 토끼와의 재회 22.08.13 26 0 12쪽
80 3부. 신화 下 22.08.06 29 0 9쪽
79 3부. 신화 上 22.07.30 30 1 17쪽
78 3부. 책 반납/ 토끼 22.07.23 33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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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2부. 오래 전의 고양이 2 22.02.19 37 0 19쪽
72 2부. 엑스칼리버/ 오래 전의 고양이 1 22.02.12 28 0 17쪽
71 2부. 탐사 22.02.06 32 0 12쪽
70 2부. 기형 - 나를 위한/학생의 보은 22.02.05 27 0 7쪽
69 2부. 기형 - 마지막 선택 22.01.29 35 0 12쪽
68 2부. 기형 - 돌고 돌아 22.01.22 27 0 13쪽
67 2부. 기형- 쳇바퀴 22.01.15 26 0 14쪽
66 2부. 기형 - 정점 22.01.09 32 0 15쪽
65 2부. 기형- 마지막 칸 21.12.29 26 0 9쪽
64 2부. 기형 - 네명의 아이들과의 대화 21.12.27 25 0 10쪽
63 2부. 기형- 일곱 남매 21.12.20 28 0 14쪽
62 2부. 기형 - 래 21.12.15 24 0 12쪽
61 2부. 기형 - 거울방 21.12.13 29 0 12쪽
60 2부. 기형 - 장악 21.12.08 31 0 9쪽
59 2부. 기형 - 출사표 21.12.06 25 0 13쪽
58 2부. 기형 - 다행이다 21.11.24 23 0 10쪽
57 2부. 기형 - 이면의 생각 21.11.22 34 0 16쪽
56 2부. 기형 - 기대치 21.11.17 2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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