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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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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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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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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재능을 찾아

DUMMY

로저는 느릿한 걸음으로 왕자의 집무실을 벗어났다.


‘오히려 문제는 왕자가 아니라 내쪽에 있어.’


태연한 안색과는 다르게 그의 내심은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어느정도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왕자와는 다르게, 로저의 재능은 쉽게 답이 보이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게임 안이었다면 왕자가 내려주는 어려운 임무들을 통해 레벨업하고 강해지기만 하면 그만이다.


레이포드 스타팅은 수시로 내려주는 왕자의 임무를 통해 초반부에 안정적으로 레벨을 올리는것이 가능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이 세상은 현실이고, 레벨이나 상태창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술쪽을 연습해둘걸 그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법이다.


차라리 로저 자신이 게임을 할때 검술을 많이 연습해봤다면 모를까, 검사나 기사는 너무 식상하다고 생각해서 별로 손을 대본적이 없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플레이하고 있던 회차는..... 도움이 안되겠군.’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파고들고 있던 직업군은 주술사.


마법보다도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직업군 이지만, 지금 로저의 몸으로는 주술을 익히는것조차 불가능하다.


주술 시전 보조를 도와주는 촉매 없이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까다롭고 소모품에 의존하는 스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플레이했던 회차인만큼 관련 지식들은 아직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었지만, 재료가 되는 촉매 없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식들이었다.


“기사님.”


로저가 의미없는 고민을 되뇌이고 있을 무렵, 그를 안내했던 시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전하께서 기사님께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알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지만, 로저는 그리 기뻐하지는 않았다.


왕자가 겉으로 보이는것과는 달리 얼마나 집요하고 끈질긴 성격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지원이라고 해봤자, 대외적으로 생색내기 적당한 수준의 장비들에 불과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로저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얌전히 시종의 뒤를 따랐다.


“여긴?”


지하로 내려오자 삽시간에 주변이 어두워졌다.


“왕궁의 비품창고로 향하는 길입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물건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죠.”


한마디로 쓸모가 없어진 물건들을 처박아놓는 창고라는 말이다.


유물급 장비같은 진귀한 보물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전혀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대답에 저절로 로저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다이레아에게 왕궁 보물창고에서 하사품을 내릴 왕자의 말까지 생각한다면, 다분히 의도적인 조치이리라.


창고 앞에 도착한 시종은 열쇠를 꺼내 철문을 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원하시는 물건을 하나 고르시고 제게 말씀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로저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발을 디디는 순간 어두웠던 창고가 환하게 밝혀졌다.


널찍한 선반 위에 검이나 창, 활을 비롯해서 다양한 무기나 방어구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어있었다.


지속적으로 관리를 하는지 먼지가 쌓인 기색은 없다. 장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리하고 깔끔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있는 장비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영웅급 초인들이 사용하는 최상급 유물이나 장비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수준이 높은 장비들은 마력을 내포하기 마련인데, 이 창고 안에서는 그리 눈에 띄는 장비들이 없었다.


자체적인 스펙이 부족한 만큼, 도구로 간극을 메울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리 형편좋게 상황이 흘러가지는 않는것이다.


드넓은 창고를 한바퀴 죽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찾을수는 없었다.


실망을 머금고 미리 봐두었던 그나마 괜찮은 창 한자루를 들어올리려던 찰나, 등 뒤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졌다.


기사단 본부를 나오기 직전에야 마력이라는 감각을 자각한 만큼, 예민해져있던 로저의 감각이 이뤄낸 일이었다.


느껴지는 마력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창고의 흐릿한 그림자 사이로 굳게 닫힌 작은 쪽문 하나가 보였다.


로저는 곧바로 시종을 불러서 쪽문에 대해서 물었다.


시종은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안에는 워낙 위험한 물건들이 많아서 저로선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위험한 물건이라면?”


“연원을 알 수 없는 장비이거나, 원념이나 저주를 품어 아예 사용조차 불가능한 그런 물건들을 따로 구분하여 격리시켜놓은 곳입니다. 아마 기사님께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당장 거기로 안내해줘.”


“네?”


시종은 무심코 고개를 들고 로저를 쳐다보았다 깜짝 놀랐다.


그의 두 눈동자가 흉흉하게 번뜩이고 있었던 것이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줄기 희망을 발견한듯한 기분이었다.


로저는 시종을 다그쳐서 그대로 쪽문에 걸린 자물쇠를 풀고 안쪽에 들어설 수 있었다.


부정한 기운이 옮을것 같다고 손사래를 치는 시종을 밖에 놓아둔 로저는 쪽문 안쪽에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창고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방 안에, 한눈에 보기에도 정상이 아닌듯한 각종 비품들이 놓여있었다.


귀퉁이가 거무튀튀하게 물든 책, 완전히 부식되어버린 창날이나, 뚝 부러진채 흔들거리는 활대, 보랏빛 마력이 흘러나오는 투구같은 장비들.


제대로 착용하기는 커녕 만지기조차 꺼려져서 정리는 커녕 구석에 대충 던져놓은 듯한 장비들이지만, 로저에게는 밖의 모양만 그럴싸한 장비들보다 훨씬 가치있어보였다.


일반적으로 저주를 받거나 원념이 들어간 장비들은 성능이 훨씬 더 강력한 경우가 많다.


그 대부분이 사용자에게 부작용을 떠안기는 흉험한 장비들일지라도, 지금 로저에게는 그런 단점을 감수할만한 강력한 장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ㅡ


“난 파주법사(破呪法士)로도 플레이해본적이 있다고.”


애매한 직업만을 찾아다니던 로저에게는 이런 종류의 장비들이나 물건들만을 한회차 내내 다뤄본 적도 있었던 것이다.


맨몸으로 저주나 원념을 피해가는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어떤 종류의 해를 끼치는 물건인지는 구분해낼 수 있었다.


“투구는 무조건 정신지배쪽일테니 버리고, 부채는 그나마 괜찮아.... 책은 절대 안될것 같고, 컵은 뭐야? 이런게 왜 여기 있어?”


밖의 창고에서 집어온 창대로 장비들을 뒤적이면서 빠르게 장비들을 구분해나간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때문에 직접 손을 댈수는 없었다.


“흐음.....”


몇가지 후보군을 추려낸 로저는 고민에 잠겼다.


가장 먼저, 일단 이 자리에서 멀쩡하게 들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손으로 만질수도 없을만큼 위험한 기운을 흘리는 장비들은 모조리 제외했다.


두번째로는 그러면서도 이신이 만족할만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밖의 비품창고에 흔하게 널린 장비들보다는 확연하게 좋은 스펙을 가진 물건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왕자의 심기에 거슬리지 않는 장비여야만 했다.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것처럼 시종을 통해서 그에게 장비를 지원해주었지만, 왕자는 틀림없이 로저가 무엇을 가져갔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적어도 값어치가 있어보이거나, 혹은 왕가의 권위에 거스르는 장비들은 빼내야했다.


그렇게 기준을 세우고 장비들을 골라내다보니, 세가지 물건이 남았다.


첫번째는 소용돌이 형태의 문양이 그려진 작은 단검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단검이었지만, 로저는 단검에 그려진 문양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보았다.


이것은 이 대륙의 물건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까마득히 먼 남쪽바다에서 흘러들어온 아주 오래된 조직의 유산.


사용조건을 만족시킨다면 그만큼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겠지만, 로저는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후환이 두렵군.”


이 문양을 사용하던 이들은 강력했으나 수만명을 인신공양한 아주 잔혹한 학살자였다.


게임안에서도 이 문양을 알아보는 이들이 이유불문하고 사용자를 적대할만큼 악명이 자자한 물건이다.


그런 연원을 고려한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도 사람들의 반응 역시 다르지 않을것이다.


두번째 물건은 보랏빛 음영을 두르고 있는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역시 손으로 만져도 아무런 이상이 없고, 겉으로 보기에도 무난하다.


로저는 가죽주머니의 비릿한 피 냄새를 맡아보고는 이것이 샤먼이 만든 장비라는것을 깨달았다.


샤먼은 신에게 여러 제물을 공양하는것으로 힘을 얻는 원시부족의 정신능력자들을 일컫는 말로, 그들이 만드는 장비는 강력한 효능과 내구성을 자랑하는것으로 유명하다.


당연히 로저는 샤먼으로도 플레이해본적이 있기 때문에 주머니가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지만, 결국 얌전히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 필요해....”


아무리 주머니가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전투에 도움이 되는 물건은 아니다.


로저는 알고 있었다.


게임 ‘엘스노지아’는 플레이어에게 끝이 없는 무한한 능력과 다양성을 허락했지만, 지금 그가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이 세상은 이제 게임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 무력은 언제나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확실한 힘.


아무리 많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 메인스트림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몸을 지킬 무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진 세번째 물건.


“으으음.....”


날이 빠진 검의 손잡이.


한쪽 귀퉁이가 검게 물들어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이점도 없다.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것 같은 망가진 무기지만, 로저는 한참을 고민하다 그것을 집어들고 다른 저주받은 장비들이 내뿜는 마력광에 그것을 가져다대었다.


후웅...!!


그러자 마력광에 비춰진 손잡이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일렁이더니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그림자 인영은 한손에는 비죽한 칼을 들고 흐릿한 불빛을 헤집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자 로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군.”


이걸 여기 던져놓은 사람은 단지 그림자가 춤추는 꺼림칙한 장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로저가 봤을때 이 검 손잡이는 드넓은 창고 안에서 가장 특별한 물건이 분명했다.


마력광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춰진다는 것은 그만큼 존재력이 강한 영혼이 깃들어있다는 증거.


다시말해 이 망가진 검 손잡이 안에는 누군가의 영혼이 스며들어있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존재의 영혼이.


그림자가 검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아마 아주 뛰어난 검사가 틀림없겠지. 로저는 파주법사로 플레이했던 경험 덕분에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다.


왕자의 함정이 아닌지 의심해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왕자라고 해도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았다면 고작 로저를 엿먹이기 위해 이런 창고안에 버려두지는 않았을것이다.


영혼을 다루는 기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면 강력한 존재의 영혼을 사용할 방법은 무궁무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로저가 무엇을 선택할지는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고민하던 문제를 근본적으로 뒤집어버릴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었다.


로저는 망설이지 않고 검 손잡이를 집어들고 밖으로 나왔다.


시종이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하셨군요.”


“그래.”


낡은 손잡이를 흔들면서 시종에게 보여주자,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보다 더 멀쩡한 장비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새로 칼날을 주문해서 달면 강력한 장비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로저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종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고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로저가 지상으로 올라와 궁을 나가는것을 지켜보던 시종은 천천히 왕자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공손하게 문을 세번 두드리고는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왕자는 그런 시종을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창고로 안내해주었나?”


“그렇습니다.”


“무엇을 골랐지?”


“손잡이였습니다. 칼날이 빠져있어서 무기로 사용할 수 없을만큼 망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시종의 대답에 왕자가 디스플레이를 건드리던 손을 멈추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서늘한 시선에 시종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는 칼날을 새로 만들어서 사용할거라고 말했습니다.”


“......”


잠시 고민하던 왕자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어차피 거기에는 쓸모없는 쓰레기들밖에 없어. 설마 내 눈을 피해서 무언가를 챙길수는 없었겠지.”


그 차가운 목소리에 시종은 더욱 깊게 고개를 숙였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놈이 왕궁밖으로 나가면 감시는 풀어도 좋다. 더 이상 쓸데없는 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것 같군.”


왕자는 의자에 기대면서 생각했다.


무엇을 골라도 그 비천한 재능을 가진 기사가 자신이 내려준 임무를 해결할수는 없으리라.


자신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기나 하는 그 한심한 놈에게 숨겨진 묘수가 있을리도 없겠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원하는것을 손에 넣기 마련이다.


멀지않은 미래를 상상하면서 왕자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시종만이 가늘게 몸을 떨었을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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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해묵은 악연 +29 20.05.20 44,433 1,182 12쪽
9 크레시에 +24 20.05.20 45,946 1,237 12쪽
8 메인스트림 +40 20.05.19 45,942 1,287 13쪽
7 평가전 +41 20.05.19 46,321 1,251 12쪽
6 검귀(劍鬼) +42 20.05.18 47,658 1,230 14쪽
5 힘을 빼앗는 법 +36 20.05.18 49,084 1,282 13쪽
» 재능을 찾아 +30 20.05.18 51,206 1,280 13쪽
3 왕자 +27 20.05.18 58,407 1,309 12쪽
2 왕도의 기사 +42 20.05.18 74,138 1,437 13쪽
1 변덕 +65 20.05.18 92,420 1,41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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