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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님의 서재입니다.

게임 속 천재기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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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일
작품등록일 :
2020.05.18 17:10
최근연재일 :
2020.08.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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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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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크레시에

DUMMY

‘이 정도라면 충분히 메인스트림에 도전해볼만 하다.’


단순히 강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보장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로저는 이제서야 제대로 시나리오를 진행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왕자가 내게 준 시간은 일주일. 오늘로 이틀이 지났으니 남은 시간은 닷새밖에 되지 않는다. 하수도에서 왕자가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찾아오는데 넉넉하게 사흘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틀안에 정보를 모으고 동료를 찾아 팀을 꾸려야 해.’


게임과는 달리 퀘스트창도, 조건이나 보상도 따로 명시되어있지 않지만 로저는 벌써 어느정도 감을 잡고 있었다.


‘아마 메인스트림이 어떤 타입인지 추리할 수 있을만한 단서를 찾아오면 만족하겠지.’


하수도라는 환경만 놓고 본다면 전에 생각했던 ‘지저인의 반역’이 가장 유력하겠지만, 다른 시나리오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바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하수도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일이기도 했고.


‘일단 실종된 하수도 관리자 명단을 조회하고, 그들의 평소 행적을 수소문하는데 주력해야겠지. 그러면서 왕도 내에서 쓸만한 동료도 두세명은 필요할테고. 직업군은 뭘로 데려가는게 좋을까....’


이제 막 검을 다룰줄 알게 된 로저 혼자 하수도에 들어가는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적어도 하수도의 길을 안내해줄 수 있거나, 다양한 유틸성을 가진 팀원을 구하는것이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터.


문제는 왕자의 눈길이 닿는 왕궁 안에서는 동료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사단 내부에서 나 혼자만을 불러서 명령을 전달한 만큼, 왕궁 내 다른 이들에게 임무를 노출했다가는 날 가만두지 않겠지. 적어도 궁 밖에서 팀원을 찾아야 해.’


하수도 탐사 임무는 그만큼 쉽게 해낼 수 있는 종류의 임무는 아니었지만, 로저는 어제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을 구상할 수 있었다.


가장 다급하고 위험한 ‘무력’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나 마찬가지니 이제 로저가 게임에서 건져온 지식들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로저는 이런저런 계획을 생각해보면서 약간 즐거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게임을 할때 느껴지는 이 묘한 무력감이 오랜만에 엘스노지아를 처음 플레이하던 시간으로 돌아간것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로저가 왕도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직업군을 생각하면서 이런저런 후보들을 머릿속으로 추리고 있는 사이, 의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의무실 구석에서 졸고 있던 의무대원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벌써 또 멍청하게 다쳐가지고 의무실에 실려오는 놈이...... 허억!”


“환자가 아니라서 미안하게 됐군, 박사.”


난데없이 짜증스러운 의무대원을 마주친 다이레아가 천천히 자색 눈동자를 깜박였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제가 정신이 나가서 그만.... 정말로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눈밑의 다크서클까지 새하얗게 질린 대원의 허리가 대번에 직각으로 굽어졌다.


아무리 치유술사라고 해도 그녀에게까지 강짜를 부릴 배짱은 없던 모양이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잠시 부관과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대번에 의무대원을 의무실 밖으로 쫓아버린 다이레아가 로저가 앉은 침상 옆에 의자를 끌고 와서 앉았다.


“상처는 좀 괜찮나?”


옆머리를 쓸어넘기면서 로저의 팔을 굽어보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여성미가 넘쳐흘렀다.


차분한 흑발의 생머리가 흔들리면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아릿하게 찔렀다.


그 모습에 넋을 잃기 전에 로저는 재빨리 대답했다.


“하루 푹 자고나면 괜찮아질 정도죠.”


“그럼 어제는 푹 자지 못했다는 소리군.”


“........”


훅 들어오는 날카로운 지적에 로저가 입을 다물었다.


다이레아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쨍쨍한 햇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열기를 따라 새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던 그녀가 말했다.


“오늘 네가 보여준 검술은 단지 손을 바꾼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지나친 감이 있었다.”


“.....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채 말을 이었다.


“너도 알겠지만 재능이라는건 그렇게 쉽게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법이니까. 눈썰미가 좋은 놈들이라면 눈치챘을거다.”


역시 다이레아의 눈을 속일수는 없었나. 로저는 쉽게 납득했다.


그녀에게 영석의 수급을 부탁했던것이 로저 본인이었던만큼, 쉽게 넘어갈 수 있을리가 없었다.


다이레아 필드랭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멍청하지도 않다. 오히려 로저보다는 훨씬 영민한 사람이겠지.


단상위에서 그녀가 로저에게 보냈던 칭찬들은 그녀 자신보다는 다른 간부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영석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어볼테지. 적당히 변명해야 할까,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까....’


로저는 다이레아가 자신에게 꽤나 호의적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떤 성향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대응책을 세우기 어려웠다.


단순히 기사도를 신봉하는 기사라면 로저가 사용한 주술을 편법이라고 매도해도 이상하지 않은것이다.


하지만 로저의 고민보다 다이레아가 입을 여는것이 먼저였다.


“나는 순수한 노력으로 쌓아올린 힘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어떤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만 하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하는 법이지. 이해한다. 다만....”


빠르게 말을 쏟아내던 그녀가 잠시 머뭇거렸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느릿하게 말을 맺었다.


“.....내가 어제 했던 말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를 지켜주겠다고 했던가.


그녀는 무슨 방법을 쓰든간에 스스로 몸을 해치지만 말라고 조심스럽게 돌려말한 셈이다.


왕국의 기사단장이자 나라에서 손꼽히는 천재라고 칭송받는 영웅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태도.


새삼 게임 안에서 레이포드 지역 쪽 스타팅이 그렇게 인기가 많았는지를 실감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기사단장과 시작부터 좋은 인연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다른 스타팅에서는 쉽사리 찾기 힘든 메리트인 것이다.


그리고 로저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것은 수천 수만번의 시뮬레이터로 만들어진 NPC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 숨쉬는 다이레아 필드랭이었다.


손만 뻗으면 잡아당길수 있을법한 가녀린 몸이지만, 지금 그 호의에 대답했다가는 시작부터 모든것이 어그러진다.


다이레아에게 집착하는 왕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손을 댔다가는 그 이상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로저는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단장님이 뭘 걱정하는지 알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없을겁니다.”


“..........”


“제 몸 하나는 기가 막히게 건사하는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의 로지스 와이즈먼이 정말로 이런 성격이었는지 로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게임 안에서 로지스 와이즈먼이 뱉어내는 텍스트가 이런식이었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다이레아는 로저가 농담처럼 던진 말에 나름대로 납득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는 그녀의 등을 보면서 로저가 말했다.


“전하가 내려주신 임무는 금방 해결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말이죠.”


“.....나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



로저는 다이레아가 떠나고 난 뒤에 천천히 의무실을 나왔다.


단장이 직접 병문안을 오는 환자라는것을 인지한 의무대원의 태도가 눈에 띄게 공손해진 탓에, 눈치보지 않고 오랫동안 생각할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끝내 그 영석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건 다이레아가 그만큼 로저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로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왕자의 집착이 심해지기 전까지는 대책을 생각해야겠지.’


지금이야 단지 좋은 친구, 혹은 믿을만한 전우에 가까운 호의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 다이레아 필드랭은 온갖 괴물과 재앙이 날뛰는 메인스트림 후반부에서도 강력한 편에 속하는 영웅이다.


본신의 무력이 뛰어나고 재능이 높아 후반부까지 꾸준하게 성장해가나며, 머리가 좋아 다방면으로 플레이어를 보조하고 한번 신뢰를 얻으면 쉽게 팀을 떠나지 않는다.


동료로 영입할수만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팀원이자 기사가 틀림없다.


그걸 위해서는 결국 다이레아를 향한 왕자의 집착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해야 한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주워들은 방법은 몇가지 알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지랄맞은 난이도를 가진 것들뿐이라 ‘엘스노지아’에 신물이 났던 로저도 상당한 각오가 필요할 정도.


적어도 왕자의 입지가 탄탄한 초반부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얼얼한 팔을 문지르면서 계단을 오른다.


치유술까지 받은 만큼 하루 푹 자고나면 팔뚝에 난 상처는 완전히 회복될 것이다.


내일부터는 정말로 궁 밖으로 나가서 빠르게 임무를 시작해야 했다.


오래된 나무냄새가 풍기는 복도에 올라서니, 누군가가 벽에 기대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늦었군요, 부관.”


“.......크레시에 경?”


환한 백금발의 머리칼을 찰랑이면서 크레시에가 벽에 기댄 등을 떼고 일어섰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게임 안에서도 플레이어와 크레시에의 접점은 굳이 찾아다니지 않는다면 없는 수준에 가깝다.


활발한 성격의 셰인이라면 모를까, 기사단 내부에서도 겉도는 그녀가 먼저 찾아와서 말을 거는 일은 완전히 상정 밖이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싶군요.”


“네?”


그녀는 말없이 로저가 주무르는 오른팔을 내려다보았다.


“부상을 입은줄 모르고 대련을 종용한 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로저가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그녀에게 원한을 가지거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음 그에게 대련을 부추겼던 마커스에게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부상여부와는 별개로 어차피 대련에는 나갈 생각이었으니까요. 크레시에 경에게는 아무런 악감정도 없습니다.”


“어째서죠?”


“예?”


“그 출혈량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상처가 도지는걸 알면서도 대련을 나가려고 했던 이유를 알고 싶군요.”


크레시에는 투명한 눈동자로 빤히 로저를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대련에 나간 이유가 순수하게 궁금하기 때문인것 같았다.


로저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그걸 물어보려고 저를 기다리고 있던건 아닌가요?”


“그건...... 부정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정말로 책임을 느끼고 있던것은 맞아요. 죄송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대련에 나간 이유는 사실....”


말을 꾸며내는것은 간단하다.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다던가, 단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던가 그럴싸한 핑계들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이 왕도 기사단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로저로서는 잠시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임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을수만 있다면 훨씬 일이 쉽게 흘러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일부터 제가 임무를 받아 출장을 나가는터라, 실전감각을 다져두고 싶었습니다. 기사끼리의 대련은 감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임무 말인가요?”


“네. 사실 전하께서 제게 지하수도를 조사하라는 특별 임무를.....”


로저는 그렇게 말하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왕자가 내린 임무를 크레시에에게 설명했다.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요.”


“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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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첫번째 임무 +29 20.05.21 41,813 1,10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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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레시에 +24 20.05.20 45,965 1,237 12쪽
8 메인스트림 +40 20.05.19 45,959 1,287 13쪽
7 평가전 +41 20.05.19 46,345 1,251 12쪽
6 검귀(劍鬼) +42 20.05.18 47,680 1,230 14쪽
5 힘을 빼앗는 법 +36 20.05.18 49,108 1,282 13쪽
4 재능을 찾아 +30 20.05.18 51,229 1,280 13쪽
3 왕자 +27 20.05.18 58,437 1,309 12쪽
2 왕도의 기사 +42 20.05.18 74,192 1,438 13쪽
1 변덕 +65 20.05.18 92,499 1,41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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