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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60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7.08.24 01:17
조회
326
추천
5
글자
9쪽

6화

DUMMY

소녀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형형색색의 천막이 도미노처럼 쭉 늘어선 시장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이른 오후라 그런지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꽤나 북적거렸다. 정신없이 도망칠 때는 몰랐지만, 시장 입구 기둥에 양 쪽 가장자리가 걸린 채 휘날리는 천 쪼가리에 적힌 글자를 보고 소녀는 이 조그만 시장이 이 지역에 남은 마지막 시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장가 구석에는 작동이 멈춰버린 자판기 몇 대가 있었고 그 반대쪽 건너편에는 구걸하는 것으로 보이는 거지들이 죽 늘어져 있었다.


거지들의 연령대는 정말로 가지각색이었다. 소녀보다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의 소년과 소녀들이 있는 한편 청년층이나 중장년층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 팔을 뜬금없이 붙잡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내팽개쳐졌다. 그들은 소녀가 옆으로 지나가자 지나가는 길을 가만히 훑다가 소녀를 올려다보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기는 했지만 소녀는 지금 그들에게 볼일도 없을뿐더러 그들에게 줄 것 역시 없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소녀의 목적은 이 가엾은 거지들이 아니었다. 소녀는 불순한 목적으로 시장 입구에 들어서서 만만한 가게를 천천히 살폈다. 혹시라도 생길 마찰을 대비해서 소녀는 주차장에서 했던 것처럼 후드 모자를 푹 눌러썼다.


빵집에서부터 시작해서 정육점, 방앗간에서부터 떡집까지 소녀의 눈을 유혹하는 여러 가게가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잘 나지 않았다. 결국 소녀는 물건을 사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려고 시장을 나서는 모습만을 반복해서 구경하고 있는 꼴이 되었다.


오후 시간대의 시장은 분주히 돌아갔다. 시장을 나서는 사람들도 많았고 시장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이 둘의 관계가 얽혀 무한한 루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수많은 군중들의 사이에서 교화되지 못하는 전혀 안 어울리는 분홍색 후드 꼬마가 끼여 있었다.


그 꼬마는 무엇을 사지도 않으면서 계속해서 음식점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가게들과 아무런 상호작용도 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다 못했는지 떡이 진열대에 가득 줄지어 늘어선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이 분홍색 꼬마를 두고 소리쳤다.


“아까부터 거기서 뭐 하는 거야?”


분홍 꼬마는 듣고 흘리려다가 바로 자기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였음을 눈치 채고 사정을 말하려고 했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얼버무렸다.


“저, 그러니까......”


“배가 고픈 거야?”


소녀가 제대로 설명하기도 전에 떡집 주인이 소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시원하게 꿰뚫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재빨리 긍정을 표시하고 뭐라도 얻어먹고 싶었지만, 빵을 훔쳤을 때 재빨리 움직여지던 입과 다리가 무슨 이유에선지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가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이 없자 빵집 주인이 혀를 차더니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이거라도 먹거라.”


주인이 소녀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와서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바람떡 두 개였다. 방금 쪄낸 것 같은 흰색 바람떡의 온기가 소녀의 코를 간질였다. 먹을 것을 눈앞에 둔 굶주린 소녀에게 염치 같은 것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소녀는 먹을 것을 나눠준 이 고마운 떡집 주인에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로 소녀는 재빨리 몇 번이고 상체를 90도로 숙이며 주인이 베푼 은혜와 따뜻한 정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똑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고맙습니다!”


똑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어찌나 크게 소리쳤는지 우스꽝스럽게 상체를 몇 번이고 접었다 펴면서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르는 소녀의 뒷모습이 지나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떡집 주인은 말없이 손바닥을 내저으며 얼른 가보라고 손짓할 뿐이었다.


떡집을 벗어나 시장가로 다시 나온 소녀는 기분이 좋았다. 갓 쪄낸 바람떡은 평소에 손바닥에 쥐고 있자면 불이 붙을 정도로 뜨거웠지만 지금 소녀에게는 그저 빨개져서 얼어붙어 버린 손을 녹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소녀는 나중에 장갑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호의를 베풀어 준 떡집 주인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밖으로 나와 분홍색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다시 가게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오후가 지났다. 소녀는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해가 지기 전까지 꽤나 배를 불릴 수 있었다. 어떻게 그랬느냐고? 공자의 성선설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 모든 인간들은 불의를 보면 대부분 참지 못하며, 겸손하고, 받은 정을 머릿속에 꼭꼭 새기며,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동정하게 된다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이용해서도 남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소녀가 배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교묘히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가게 앞을 서성이며 이따금씩 맛있는 것을 사가는 사람들에게 애처로운 시선을 보냈다. 물론 선택은 자신들의 몫이었지만 춥고 배고픈 어린 여자아이가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눈물겨운 시선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덕분에 소녀는 떡도 먹을 수 있었고, 오뎅도 먹을 수 있었고, 빵도 합법적으로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호의를 베푼 고마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컷 얻어먹고 난 후 인사 몇 마디만 해주면 되는 남는 장사였으니까.


마치 소녀의 행동은 예전에 백화점에서 시식 코너만을 중심으로 빙빙 돌면서 맛있는 것들을 먹고 정작 사가지는 않는 진상 손님을 연상시켰다. 소녀가 배를 채우고 난 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점점 하나 둘 씩 닫히는 노점들을 뒤로 하고 시장을 벗어났을 때였다.


소녀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딱히 기척을 숨기려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렇다고 딱히 소녀에게 위협적인 미행도 아니었다. 그저 새끼 새가 어미 새 뒤를 졸졸 따라다니듯이 소녀의 뒤를 꾸준히 밟고만 있었다. 소녀는 등이 간지러운 것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거기에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지저분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머리숱은 별로 없었으며 따뜻해 보이는 하늘색 털 잠바를 입고 있었다. 눈빛은 루비가 부럽지 않을 만큼 총명하게 빛났지만 얼굴은 씻은 지 족히 몇 달은 되어 보일 만큼 더러웠다. 소년의 조그마한 콧등에서는 금방이라도 콧물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소녀는 애써 소년을 무시하고 걸었다. 소년 역시 말없이 따라다니기만 했다. 시장을 훨씬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까지 쫓아오자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소녀가 먼저 소년을 쏘아보며 소리치려고 했지만 찰나의 순간에 소년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누나.”


소녀는 길거리에 자신과 소년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 그 호칭이 자신을 향한 말이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소녀는 그런 호칭을 들을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소녀가 무시하고 갈 길을 가려는데, 다시 한 번 거슬릴 정도로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나는 왜 그렇게 길거리를 방황해? 갈 곳이 없는 거야?”


소년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신경 쓰지 말고 갈 길이나 가. 나는 바빠.”


소녀의 차가운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요하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알려 줘.”


“뭐?”


“이름. 누나는 이름이 뭐야?”


소녀에게는 꽤나 뜻밖의 질문이었다. 귀찮았던 소녀는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이름 같은 거,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


“그래도 알려 줘.”


귀찮게 계속 캐묻는 소년에게 욕을 퍼붓고 그대로 뛰어서 따돌려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 소년이라면 끝까지 달라붙어 알아낼 것 같았다. 게다가 소녀의 머릿속이 뒤틀리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고 소년이 원하는 대로 소녀는 대답했다.


“봄. 외자로 봄. 윤 봄이야.”


작가의말

코멘 주세용 코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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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1화 +1 17.09.28 145 4 10쪽
21 21화 +2 17.09.26 176 3 9쪽
20 20화 17.09.25 169 2 8쪽
19 19화 17.09.23 156 3 8쪽
18 18화 +1 17.09.20 157 2 8쪽
17 17화 +1 17.09.17 205 3 8쪽
16 16화 +1 17.09.13 188 2 9쪽
15 15화 +2 17.09.12 171 2 8쪽
14 14화 +2 17.09.08 190 2 7쪽
13 13화 17.09.01 185 2 10쪽
12 인연 +1 17.08.28 229 2 6쪽
11 11화 +1 17.08.28 225 2 9쪽
10 10화 17.08.27 216 3 8쪽
9 9화 17.08.26 247 3 10쪽
8 8화 17.08.25 265 3 7쪽
7 7화 17.08.24 273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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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2 17.08.21 541 9 9쪽
1 세상 끝에서 +3 17.08.21 1,006 1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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