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남자

제37화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조직은 수평 조직이다. 모든 조직을 팀으로 만들어 팀원, 수석, 팀장으로 단순화해서 진급이나 사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 업무에 집중하게 한다.

다만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서 직위는 대기업처럼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으로 나눠서 일정 기한이 차면 자동으로 승진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조직은 과장 직위라도 팀원 직책으로 일을 할 수 있고 사원 직위로 수석 직책을 가질 수 있다.

이전 삶에서 대기업 임원까지 했던 나는 대기업의 조직 문화가 얼마나 경직한지 잘 안다. 소문으로만 들은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의 수평 조직을 매우 부러워했다.

내가 추진하는 수평 조직 시스템이 한국적 문화에서 성공할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직원들이 법정 퇴직 나이까지 근무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12월 1일, 월요일.

지케이전자 신규 직원들이 출근했다.

대회의실에서 신규사원 환영회 겸 경영진 소개를 끝낸 후 소회의실에서 개발팀과 회의를 했다.

기술개발실 본부장은 이용민 전 교수다. 이 본부장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을 총괄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부 책임자는 이유신 부장. 그는 한국아비엠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휘한 경험자였다.

소프트웨어 개발부에는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오피스팀,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오에스팀, 게임을 개발하는 게임팀이 있다.

오피스팀 팀장은 최철성, 오에스팀 팀장은 강석한, 게임팀 팀장은 김석재다.

김석재 팀장은 미국 엠아이티를 졸업하고 아타리사에서 개발자로 근무하던 중 이용민 본부장의 부탁을 받고 입사했다.

조재석은 오에스팀 소속에 넣어 우선적으로 베이직 언어 개발에 집중시킬 계획이다.

그는 오늘 학교를 쉬고 출근했다.

하드웨어 개발 부서 책임자는 정운석 부장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한국아비엠에 근무하였었다.

하드웨어 개발 부서에는 보드팀 이원홍 팀장, 주변장치팀 최대균 팀장, 비디오/오디오팀 한영철 팀장이 있다.

각각 팀장 밑에는 1~2명의 직원이 있다.

이용민 본부장을 합하면 28명이 된다.

회의실에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하여 환등기가 준비되어 있었다.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지케이전자가 개발해야 할 제품에 대한 브리핑에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환영식에서 소개받았지만, 다시 한번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경영전략실 임선규 실장입니다. 또한 이 회사의 소유주이기도 합니다.”

내가 사주라고 밝히자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내 나이가 어리다고 우습게 생각하던 마음들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중요한 직책인 경영전략실 실장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케이전자의 설립 목적은 사장님이 환영식에서 밝혔듯이 다가오는 컴퓨터 시대를 선도하여 세계 초일류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제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관련하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이 가진 능력을 발휘한다면 계획대로 개발에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개발할 제품들은 시대를 선도할 물건들이므로 절대로 타 회사에 개발 내용이 흘러가지 않도록 철저한 보안이 요구됩니다.

제가 앞으로 소개할 제품의 내용들이 기존에 있는 것을 제외하고 이미 한국, 미국, 일본에 특허를 신청하였고 심사가 진행 중임을 알려드립니다.”

직원들은 특허를 이미 등록했다는 말을 듣고 새로운 제품이라는 생각에 이어질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 첫째로 우리가 개발할 제품은 채용 공고에 쓰인 대로 마이크로컴퓨터입니다. 저는 마이크로컴퓨터란 용어 대신에 개인용 컴퓨터란 용어를 앞으로 사용합니다.

즉 우리가 개발하는 개인용 컴퓨터는 용어 그대로 개인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대용량 메인프레임 컴퓨터와 연결없이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다는 의미입니다.”

이용민 본부장이 물었다.

“우리가 개발할 개인용 컴퓨터의 목적이 개인의 취미용이 아닌 기업용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됩니까?”

“본부장님이 잘 이해를 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미국 시장에 나온 마이크로컴퓨터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제품이 아니라 개인의 취미용입니다.

문제는 메모리 가격이 내려가고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처리 능력이 올라가면서 싼 가격에 예전보다 빠른 처리 속도를 가진 마이크로컴퓨터가 등장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 이 컴퓨터의 수행 능력을 알고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많은 기업체가 관심을 둘 것으로 예상합니다.

즉 기존의 메인프레임이 하지 못하는 업무를 개인용 컴퓨터가 수행한다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됩니다.

즉 마이크로컴퓨터의 패러다임이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는 변화가 생깁니다.”

이용진 본부장이 물었다.

“어셈블리어 사용자를 채용한 목적이 사무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서인가?”

“과연 본부장의 안목이 매우 예리하시군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개인용 컴퓨터만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면 미국 기업과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 점에 여러분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떡여 수긍했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기술이 없는 한국에서 만든 개인용 컴퓨터가 세계 제일의 반도체 기술과 인재들이 포진한 미국이 만든 제품과 경쟁하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둘째로 우리가 개발하는 제품은 사무용 소프트웨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사무용 소프트웨어는 딱 3개입니다.

이 3개만 있으면 우리는 무적이 됩니다.”

나는 환등기로 솥을 비췄다. 솥 안에는 스마트오피스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주제 순서를 둘째 소프트웨어 개발을 이야기한 후에 첫째 개인용 컴퓨터 개발로 바꾸면 제 이야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하려는 사무용 소프트웨어 이름을 스마트오피스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나는 다음 슬라이드를 비췄다.

솥의 다리에는 각각 워드프로세서(스마트 워드), 스프레드시트(스마트 셀), 데이터베이스(스마트 DB)가 쓰여 있었다.

“아시다시피 솥은 3개의 다리를 가질 때 가장 안정적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마트오피스는 3개의 개별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름하여 워드프로세서인 스마트 워드, 스프레드시트인 스마트 셀, 마지막으로 데이터베이스인 스마트 DB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대부분은 컴퓨터 관련 산업에 종사하시던 분이거나 관련 산업을 연구하던 분이기에 워드프로세서나 데이터베이스란 프로그램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스프레드시트란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감을 잡은 분이 없다고 저는 장담합니다.”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은 궁금 그 자체다.

슬라이드를 다음으로 바꿨다. 환등기는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비췄다. 나는 차분하게 스프레드시트가 하는 작업을 하나씩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의 브리핑이 이어질수록 참석자들의 입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이용민 본부장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자네가 면접 때 비밀 병기라고 한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 스마트 셀을 자네가 생각해냈나?”

“그렇습니다.”

“미친? 임 실장은 정말 천재네, 천재.”

모두가 이용민의 말에 동의했다. 스프레드시트의 아이디어는 우리가 하는 일상 업무에서 나왔다. 회사에서 혹은 집에서 만드는 보고서나 가계부를 스프레드시트로 만든다면 손으로 만들 때와 비교해서 업무 효율이 얼마나 올라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 스마트 셀이 우리가 개발하는 소프트웨어의 킬러입니다. 동의하십니까?”

찬성한다는 소리가 우렁찼다.

나는 이어서 스마트 워드와 스마트 DB 개발 방향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 정도로 충분했다.

이미 스마트 셀로 모두의 마음이 들뜬 탓이다.

“다시 첫째 개발 목표인 개인용 컴퓨터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나는 환등기로 초기 아비엠이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의 모습을 비쳤다. 모두 침을 삼키고 나의 설명을 기다렸다.

“지금 미국에서 인기를 끄는 애펄의 컴퓨터는 본체와 키보드가 일체입니다.

일체 컴퓨터의 장점은 저렴한 가격입니다. 단점은 나중에 고장이 났을 때 수리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본체, 모니터, 키보드를 분리하여 만들어 추후에 고장이 났을 때 부품을 별도로 교체하면 그 비용이 저렴하여 유리합니다.”

나는 다음 슬라이드로 S-100 버스를 보여줬다.

마이크로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이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마이크로컴퓨터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라면 이것이 무엇인지 알 것입니다.

지금 미국에서 마이크로컴퓨터 회사들이 채용하고 있는 기본 보드입니다.

문제는 이 보드가 사용하고 있는 프로세서가 인텔의 8080입니다.

아시겠지만 시장에 판매되는 중앙처리장치로 인텔의 8080, 모토롤라의 6800 그리고 최근에 나온 모스 테크놀로지 6502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일로그라는 회사에서 인텔과 호환되는 중앙처리장치를 개발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인 빠른 시일 내에게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려면 S-100 버스 보드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려면 운영체제가 필요합니다. 마침 디알사에서 인텔 8080을 위한 운영체제 CP/M을 개발하였습니다.

우리가 CP/M 운영체제를 사용한다면 개발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인텔 8080의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개발 단계에서는 8080을 사용하되 판매 시점에서 8080과 호환되면서 저렴한 중앙처리장치가 나오면 사용하는 것으로 정하겠습니다.”

이전 삶에서 인텔 8080과 호환되는 자일로그에서 개발한 Z-80이 내년에 나온다.

많은 컴퓨터 생산 업체는 저렴한 Z-80을 사용한 제품을 생산했다.

CP/M 운영체제는 Z-80에서 돌아가기 때문에 16비트 컴퓨터가 나오기 전까지 8비트 컴퓨터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우리가 스마트오피스를 CP/M 운영체제에 맞게 개발하면 타 회사 하드웨어에서 사용이 가능하므로 판매 증가 효과 뿐만 아니라 시장을 선도하는 제품으로 자리를 빠르게 잡을 수 있다.

즉 우리가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은 스마트오피스가 모든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서 독점적으로 판매하는 것이다.

그러면 스마트오피스는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된다.

이것이 내가 품은 원대한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