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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마 님의 서재입니다.

운이 좋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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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마
작품등록일 :
2022.05.18 18:08
최근연재일 :
2022.07.12 14:45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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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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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글자수 :
177,935

작성
22.05.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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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1화

DUMMY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나의 첫 번째 기회는 집안이 가난해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외지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집에 정착하면서 중학교를 진학했다.

나의 두 번째 기회는 공고 출신에게 그림의 떡이던 서울대를 정부의 특례로 당당하게 들어간 것이다.

나의 세 번째 기회는······


******


눈을 떴다. 머리가 살짝 아프지만 참을 만했다.

주위는 어두웠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통해 느껴졌다. 특히 어릴 때만 맡았던 메주 냄새도 있었다. 두꺼운 이불의 무게가 몸을 누르고 있었다.


예상하던 약품 냄새는 없었다. 그래서 매우 이상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라 차를 몰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중앙분리대를 침범하여 넘어온 덤프트럭과 내 차가 추돌했다.

사고로 충격을 받아 정신을 잃기 전에 매일 보는 아내나 아이들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곧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겠구나!’라고 생각을 하였다.

만약에 그 사고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온갖 의료 장치를 몸에 달고서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는 병원이 아니었다.


나는 흐릿한 빛이 비치는 곳으로 머리를 돌렸다.

거기에 호롱불이 있었다!

‘호롱불!’

이미 옛날에 사라진 호롱불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몸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누군가 일어났다. 곧 얼굴이 내 눈앞에 나타나면서 말했다.

“선규야, 괜찮니?”

얼굴의 주인은 1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였다. 나는 놀라서 바로 말했다.

“엄마?”

“그래. 머리는 아직도 아프니?”

나는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어머니를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아흔의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오늘은 어머니 기일이다. 그런데 몇십 년은 젊어진 어머니 얼굴이 눈앞에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

내가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재차 물었다.

“머리가 몹시 아프니?”

“아니. 쪼끔.”

그제야 어머니는 안심한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

“깨어나서 다행이다. 어제부터 네가 깨어나지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었다.”

다시 부스럭 소리가 나면서 어머니 옆에서 누군가 일어나 나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15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아버지의 얼굴도 어머니처럼 매우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아버지!”

“그래. 깨어났구나.”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젊어진 부모님의 얼굴과 호롱불을 생각하자 아직도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서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보았다. 조금은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천장 서까래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매달려 있는 메주가 보였다. 내가 맡은 냄새는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손으로 허릿살을 꼬집어 보았다.

매우 아팠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상황은 꿈이 아닌 현실임이 분명했다. 젊은 부모님 얼굴과 호롱불로 판단하면 여기는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시골집이 분명했다.


나는 불교 신자이기에 인과를 믿는다. 결과가 있다면 원인이 있는 법이다.


내가 이전에 살았던 60여 년이 꿈이 아니라면 지금 나는 회귀를 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환생이나 빙의를 믿지만, 회귀는 전지전능한 신이 있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약에 회귀가 있다면 그 여파로 이전 삶에서 태어나야 할 사람이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태어난다. 회귀한 세상은 이전 삶과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그러면 태어나야 할 사람이 태어나지 못하면 그들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으로 나는 회귀는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반면에 환생이나 빙의는 과거 삶에 여행을 끼치지 못하고 다만 미래 삶에 영향을 끼치니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환생은 달라이 라마 같은 분들도 있고 과학자들이 연구한 많은 자료가 있다. 빙의 또한 뉴스에 가끔 나온다.

그러나 회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그러므로 내가 회귀했다면 이곳은 내가 살았던 세상이 아니라 다른 차원인 평행 세계일 것이다. 즉 나는 이곳 세상에서 살던 또 다른 나에게 다른 세상에서 살았던 기억을 가지고 빙의 한 셈이다. 이것이 깨어나서 한 첫 번째 생각이었다.


이어서 왜 나에게 이러한 회귀가 일어나게 한 원인이 궁금했다. 그러나 생각을 여기서 멈춰야 했다. 머리가 아파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생각하기에는 몸과 정신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직 머리가 조금 아파서 잠을 더 자야겠어요.”

아버지가 말했다.

“머리가 아직도 아프면 판피린 먹고 자거라.”

집에는 상비약으로 판피린이 있다. 판피린이 감기약이지만 만병통치약처럼 두통에도 먹곤 했었다. 판피린을 물과 먹으니 두통이 사라졌다. 곧 잠이 쏟아졌다.


눈을 뜨니 방 안이 밝았다. 방안은 따스했다. 이제 더 이상 두통이 느껴지지 않고 몸도 아프지 않아서 일어났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짐작건대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준비하고 아버지는 쇠죽을 끓이고 있을 것이다.

벽에는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는데 1975년 1월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1975년 1월이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개학을 기다리던 시기다. 벽에 걸린 사각형 거울에 까까중이 소년이 보였다. 바로 나의 현재 모습이다.

1975년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으며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다는 사실만 떠올랐다. 이때는 라디오를 통해 세상 뉴스를 들었다. 전기가 없으니 텔레비전은 아예 없었고 신문은 가난해서 받아보지 않았다.

마을에서 신문을 보는 집은 이장 집뿐이었다. 그것도 돈을 내고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공짜이기 때문이다. 사실 농촌에서 돈을 내고 신문을 볼 일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찾아서 읽은 1975년에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을 떠올렸다. 가장떠올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건은 월남 패망과 캄보디아가 캄보디아크메르 루지에 함락되고 발생한 킬링 필드였다. 1984년에 개봉한 ‘킬링필드’라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기억났다. 영화에 나오는 해골들은 정말 끔찍했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1975년의 수출액은 51억 불, 1인당 국민소득은 602불이었다. 환율을 고려하면 이십구만 원이다. 평균 6인 가족으로 계산하면 가구당 백칠십만 원이다. 1973년부터 심기 시작한 통일벼는 기존 일반벼보다 30% 이상 생산량을 올려서 보리밥에서 쌀밥을 먹게 한 일등 공신이었다. 나중에 맛이 없고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통일벼는 사라졌다.

쌀의 생산량 증가는 당연히 농가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우리 마을에서 내 또래 남자아이들 대부분 중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독재자인 박정도 대통령을 싫어했다. 그러나 그가 집권 초기에 이룬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존경하였다.


이불을 개서 윗목에 놓은 후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몸이 으스스 떨렸다.

멀리 앞산에 쌓여 있는 눈이 보였다. 앞집에서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앞집의 지붕은 볏으로 이은 초가집인데 그 지붕 위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흰 눈이 조금 쌓여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매우 평화스러운 풍경이다.


추운 날씨에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 불길로 따스해진 방바닥에 앉았다. 몸은 예전의 굳은 몸과 다르게 매우 유연했다. 새삼스럽게 과거로 회귀했음을 실감했다. 나의 취미가 독서라서 젊었을 때는 문학 소설을 즐겨 읽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가벼운 판타지 소설을 주로 읽었다.

회귀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 사고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설 속 세상을 가지고 가능하냐 아니냐를 문제 삼는 짓은 바보 같은 생각이기에 그냥 인정하고 회귀 소설을 즐겁게 읽었다.


회귀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처럼 나 자신이 회귀하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나의 삶 자체를 성공한 삶이라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소설처럼 회귀한다면 미래 지식을 이용해서 억만장자가 될지는 몰라도 내가 사랑하는 손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내가 회귀해서 현재 아내와 다시 결혼해서 같은 날에 아이를 낳는다 해도 그 아이가 이전 삶의 아이와 같다는 보장은 없다. 수백억의 정자 중에서 이전과 똑같은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은 영에 가깝다.

그 아이가 자라나서 결혼하더라도 절대로 내가 사랑했던 손녀를 낳을 수는 없다. 물론 비슷한 손녀가 태어나고 나는 다시 그 손녀를 사랑하겠지만 왠지 내 앞에서 춤추는 손녀는 아니다.

그렇게 보면 회귀 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은 결혼하지 않았다. 회귀해도 잃을 것이 없으니 회귀를 신에게 빌었고 회귀했다.


그렇다고 회귀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회귀하면 가장 좋은 점은 부모님을 다시 볼 수 있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나이를 얼마를 먹던 자식에 불과하다. 반대로 내가 나이를 얼마나 먹던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가슴에 언제나 남아있다.

이전 삶에서 부모님에게 불효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조금 더 잘 모셨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회귀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쳐다보니 남동생이다. 나와 나이 차는 일곱 살. 그는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형, 이제 괜찮아?”

“이제는 괜찮다.”

“어제는 형이 머리를 다쳐서 큰 걱정을 했었어.”

“그래? 그런데 내가 어떻게 다쳤어?”

동생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기억 안 나? 우물에서 물 지고 오다가 넘어지면서 머리가 땅에 부딪친 것.”

우리 집에는 우물이 없어서 동네 공용 우물에서 물지게로 매일 물을 날라야 한다. 그 일은 형이 서울에 일하러 간 이후부터 나의 몫이 되었다. 이전 삶에서 물지게를 지고서 넘어진 일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이로 비추어 지금 내가 깨어난 곳은 이전에 살았던 차원의 지구가 아니다. 즉 다른 차원에 살았던 나는 죽고 여기에 사는 또 다른 나에게 빙의를 한 셈이다. 즉 이 세계는 나로 인하여 크게 변해도 이전에 살았던 세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짐작한 일이 사실로 판명되자 안심이 되었다. 같은 세상으로 회귀했다면 내가 낳은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여기가 다른 세상인 만큼 그들은 내가 없어도 잘 살 것이다. 아내도 내가 남긴 재산과 사망 보험으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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