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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전쟁 프리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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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4.18 11:13
최근연재일 :
2020.05.1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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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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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전쟁_한스 짐버의 이야기(11)

DUMMY

한스 짐버의 이야기


- 기록 아직 19일째.


정신이 들자마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 났다.

아무리 말도 안되는 일들을 겪고 있지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원주민의 소굴에서 잠이 들다니!


또 어디 묶인 건 아닌가 싶어 팔다리를 흔들어 보았지만 구속된 것은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뻗어 잔거야.


뭔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악! 레이나. 이런 미친! 기사님이 없다!


움박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그새 또 해가 졌는지 깜깜했다.

찌륵찌륵 벌레 소리만 울릴 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어김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수풀 여기저기에서 안개가 가득 차오른다. 부락을 왔다갔다하며 볼일을 보던 원주민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레이나에게 해코지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그녀는 어디로···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보였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시커먼 형상 위로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 옆에 빛을 내는 용의 무기를 든 그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 아까 죽인 독수리 용의 시체.

그녀는 주변에서 큰 나뭇잎들을 모아 차갑게 식어버린 용의 몸뚱이를 덮어 주었다.


크라켄을 든채 고개를 숙여 기도를 올리는 레이나.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른다.

용의 무기가 빛을 내는 걸 보니, 그녀의 감정이 격해짐을 크라켄도 느끼는 듯 하다.


순수한 죽음에 대한 애도였다.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하는 자연의 이치를 따랐을 뿐이지만, 레이나는 죽음 그 자체를 슬퍼하는 것 같았다.


내가 나타남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흔들어 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기도를 마무리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기절하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깨어났고 강력한 공포감을 맛 본 원주민들이 생각보다 고분고분해져서 필요한 것들을 얻었다고 했다.


무려 순간이동을 한데다가 이틀내내 정글을 헤맨 탓인지 넝마가 되어 버린 옷을 대신해 걸칠 것들을 얻었고, 내게도 마른 덩굴을 촘촘하게 엮은 상의를 건네 주었다.


마침 비도 오고 하니, 움막 뒤편 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몸과 장비들을 씻어내고 움막에 피운 작은 불씨 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 내 의지에 따라 움직였던 독수리 용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레이나는 아예 보지도 못했다고 하니, 아마 내가 기절하자 정신이 들어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 용은 갑자기 내 의지를 따랐을까.

그러고보니 용이 나에게 공격하려던 찰나 내가 내던진 돌멩이가 생각났다. 왜 내 주머니에 돌멩기 같은게 있었지.


아, 그건 그냥 돌멩이가 아니었다.

고원에서 정령사들을 따라 결계를 위한 아티팩트들을 설치하러 따라 나섰었다. 결계가 완성될 때쯤 우두머리 용이 나타난 것이고, 불덩이가 쏘아져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제단에 놓여져 있던 아티팩트를 손에 쥐었던 것 같았다.


순간이동이 되면서 함께 따라 왔고, 그게 그 용의 목구멍으로 들어갔었다.

살고 싶다는 나의 강렬한 의지가 함께.


이 현상에 대해 레이나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아마 용의 무기가 주인과 공명하여 의지를 공유하듯, 정령사의 결계 아티팩트가 절박했던 나의 의지와 공명하였고 그 상태로 용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용에게 직접적인 사념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꽤 흥미로운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대포식활동 전은 당연하고, 우두머리 용을 쓰러뜨린 그 후에도 마찬가지로 용은 인간과 교감하지 않았다.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모든 짐승들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인간과의 교감이 이루어졌다.

호랑이나 늑대 같은 독립적인 짐승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조련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이 되어 버린 모든 짐승들은 자연으로 사라졌고, 필요에 따라 나타날 뿐이었다. 조상님의 기록을 살펴봐도 용은 그 우두머리의 명령을 따를 뿐, 오히려 본능조차도 절제할 정도로 특이한 행동양식을 보인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 라는 것도 결국 대포식활동 때 나타난 헬리코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 굉장히 표본이 적은 연구결과일 뿐이었다.


만일 당시 헬리코프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용은 어떤 것의 지배도 받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생명체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아까 일어난 현상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잠깐이긴 했지만, 적어도 적의를 가지고 목숨을 노리던 용이, 갑자기 태세가 변하여 그렇게 행동했다는 점은 굉장히 놀랍다.


만일 그 상황에서 레이나가 깨어 있었다면, 크라켄과의 공명을 통해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무기의 주인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교감은 나누고 있는 레이나였기에 아쉬운 부분이었다.


몸과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되어 차분해지자, 잊고 있던 우리의 처지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즉석해서 재앙을 뱉어 내던 우두머리 용은 그 후로 어디서 어떤 재앙을 또 일으키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안전한 곳에 이동되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날 그자리에 모였던 수많은 영웅들과 보통 사람들은 다시 모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전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밀림의 밤이 깊어 간다.


- 기록 20일째.


원주민들은 아직 어제의 공포를 잊지 못한 듯, 내 주변에 다가오지 않았고 나는 적의가 없음을 보이며 그들과 소통하려 했다.


당장에 밀림을 헤매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이 부락에서 준비를 하고 떠나야 한다. 옷은 적당히 정리되었으니, 필요한 것은 식량과 물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도구들 정도겠지.


우리가 이동해 올 때 함께 옮겨진 갑옷들은 두고 가기로 했다. 이렇게 더운 밀림에서 얼마나 있어야 할 지도 모를 판에, 저런 방어구들이라니 당치도 않다.


간단하게 착용할 수 있는 아대나 무릎보호대 정도만 착용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머물렀던 움막에 넣어 두었다.

항상 습한 지역이다보니 이들은 음식을 저장할줄 몰랐고, 그저 필요할 때마다 사냥하거나 채집해서 식량을 확보하는 듯 했다. 육포 같은 게 있으면 좋을텐데.


그나마 말린 과일들이 있기에 잔뜩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떠나가려는 참에 보니, 아직도 원주민들은 공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들을 이용한 것은 우리였고 그마저도 많은 젊은 남자들이 다치거나 죽었다. 용에게 제물을 바치는 행위는 그들만의 당연한 의식이었을텐데···


영 찜찜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부싯돌을 그들에게 전해 주었다. 한두 번 사용방법을 보여주고 불을 피워줬더니, 엄청 놀라며 신기해했다. 매 번 나뭇가지를 비벼대며 불을 피웠을 그들에게 또 한 번의 한 걸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불을 피우며 신나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레이나와 나는 부락을 빠져 나왔다.


그나마 원주민들이 이동하던 동선을 따라 움직이니, 막무가내로 수풀을 뚫고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았다.

물론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지는 그들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지만, 적어도 늪이나 낭떠러지는 피할 수 있겠지.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밀림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확실히 훈련을 받은 몸이라 그런지, 레이나는 크게 힘든 내색없이 잘 이동했고 나 역시도 어쨌든 숲을 내 집처럼 타던 숲지기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게 한 나절정도 이동하다 보니 그래도 시야가 탁 트인 등성 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녹색 물결이 바람 불 때마다 출렁인다. 이 광활한 자연 안에서는 인간이나 개미나 나무나 그저 다같은 생명일 뿐인데.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이치도 결국 대자연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닐까.


고원에서 함께 있었던 정령사가 했던 말들이 생각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령이라는 것은 뭔가 새로운 생명체나 에너지가 아니다. 정령과 그 힘은 이 세상이 흐르는 ‘흐름’을 잠시 잡아두는 것이고 숨을 쉬는 것만큼 당연하고 쉬운 일이라고 했다.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잡을 수 없는 것이란다. 정령사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드리는 수양을 한다는 것이다.


음··· 정령사가 될 생각은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조금 적용해 봐야겠군.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과 만족을 버무려 가슴 속에 구겨 넣어보려했다.

이제는 말린 과일 한 조각, 푸석한 감자 한 개가 내게 당연한 것이 되었지 않은가. 이 또한 언제 바뀔 지 모르니, 최대한 감사하게 즐겁게 맛있게 먹어야겠다. 으··· 퍽퍽해.


고개를 돌려 레이나를 바라봤다.

참 존경스러운 이 기사님께서는 내가 쓸데없는 공상에 휩싸인 이 때에도, 나아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보고 방위를 계산했고, 일단 북쪽으로 일관되게 향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륙은 둥그니까 앞으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고향에 도착할 수 있겠지.


어? 근데 저게 뭐지?

아주 멀리 보이는 밀림의 한 부분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나는 것이 보인다!


또 다른 원주민? 아니면 설마···


아니다, 원주민이 아니다.


시커먼 연기를 만들어 내는 불길은 숲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불길은···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불을 토해내는 용의 그것처럼.


레이나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했다.

지금 보이는 저것이 용 이고, 그 아래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군대일 수도 있다는 말이고,


지금 밀림에 있을만한 군대는···

리아 왕국 최남단의 ‘줄리안 밀림’ 에 집결한 또 다른 왕국연합토벌대!


오오, 정신나간 마법사여!

그가 우리를 날려버린 곳이 대륙 최남단 ‘줄리안 밀림’ 이란 말인가!


다시 한번 전쟁터로 안내해 준 그에게 저주를 퍼 부어야 할까. 아니지, 이 볕도 잘 들어오는 첩첩 밀림 한 가운데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할까.


어쨌든 우리의 목적지는 이제 정해졌다.

레이나는 이 곳에서 그 쪽까지의 이동경로를 쭉 살펴본 후, 원주민 부락에서 들고온 말린 동물가죽 위에 칼로 새겨내기 시작했다.


와, 가죽으로 지도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나같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영민함이군.

둘이 앉아 말린 과일 몇 개를 씹어 먹고는 움직였다.


목표가 생기니 확실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돋아 난다.


토벌대가 아니라면?

아니면 아까 그 공격으로 모두 몰살해 버렸다면?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같은 꼴이 될 수 있다.

그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이런 밀림에서 흙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용한테 칼이라도 한 번 던져보고 죽는게 낫다 싶었다. 레이나도 말은 안했지만, 기대 반 걱정 반인 것 같았다.


가는 길도 썩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뛰어 나오는 길짐승들 때문에 부지기수로 깜짝 놀랐고, 손 닿는대로 쳐 내고 있지만 엄청나게 뒤덮인 가시돋힌 덩쿨들 때문에 생채기도 많이 생겼다.


그렇게 고난의 시간 끝에 하루 나절 밀림을 돌파해 나갔고, 해가 떨어지기 전에 휴식을 취할만 한 적당한 곳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 자리잡은 곳은 나즈막한 폭포가 있는 계곡의 물 웅덩이 근처였다. 아무래도 물도 채워야 했고 더위도 가라앉힐 수 있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폭포가 떨어지는 쪽 바위덩어리들 가운데 동굴같이 보이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만 되면 급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는 밀림의 특성상,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거처는 반드시 필요했다.


며칠 째 먹은 거라고는 말린 과일과 감자같은 것 밖에 없었기에, 쉽게 배가 꺼지고 허기가 진다. 어제 그렇게 강력한 힘을 쏟아내고 실신까지한 레이나는 나보다도 더욱더 기력이 없을 것이다.

숲지기의 재주를 좀 피워 봐야겠군.


레이나의 기대하는 눈빛에 부응하기 위해 호기롭게 계곡물에 뛰어 들었다.

이래뵈도 이 몸이 왕년에 맨손 물고기 잡기 좀 해본 놈이라고!


역시 폭포 주변이라 그런지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깊다.

당연히 깊은 물 속에 더 크고 실한 고기가 잡히는 법이지!


아니나 다를까. 계곡 물 속 바위 아래에 제법 여러 마리의 산천어들이 모여 있었다. 물 살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서 물고기들을 뭍으로 몰기 시작했다.


적당한 거리에 들어갔다고 생각했을 때! 크게 팔을 휘둘러 물을 밖으로 밀어냈고, 넘친 물과 함께 몇 마리의 물고기가 함께 뭍으로 튀어 나왔다.

평평한 바위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유심히 지켜보던 레이나가 놀란 얼굴로 박수를 쳤다.


하하, 이 정도라고요 제가.

몇 번 물질을 더하고 나니, 열 마리가 넘는 물고기들을 잡을 수 있었다.


절반은 지금 먹고, 나머지는 잘 추려서 보관해야겠군.


한 바탕 나름 사냥을 끝내고 나니, 어느새 해가 떨어졌다. 해가 떨어졌다기 보다는 키 밀림의 키 큰 나무들의 무성한 잎 때문에 금새 햇볕이 가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두워진 계곡가에 앉아 모닥불을 피워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언제나 쉽게 먹을 수 있었던 흔한 산천어 구이일 뿐인데.

무려 공작가의 제 1공녀께서도 엄청 기대하는 눈빛으로 멍하니 구워지는 물고기를 바라본다.


한바퀴··· 두바퀴··· 나뭇가지에 꽂은 물고기를 천천히 돌려 구우니 온 세상이 맛있는 냄새에 침을 흘리는 것 같다.

몇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주고, 지금도 구해주고 있는 고마운 기사님께 제일 먼저 익은 물고기를 건네었다.


그녀는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태어나 처음 먹는 것인냥 행복하게 산천어 구이를 뜯었다.

그래도 뭔가 하나 보답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으로, 나도 게걸스럽게 고기를 삼켰다. 아 진짜 너무 행복하다. 역시 인간은 육식을 해야 해···


한참을 정신없이 먹어대다 바라본 그녀.

여자의 몸으로 그 힘들다는 기사 훈련을 다 받아내고 정식 기사가 된 강한 사람.

하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옆 집 누이 같은 느낌이다.


오랜만에 기름진 것으로 배를 채우고, 따스한 모닥불을 쬐니 왠지 모르게 고즈넉한 기분이 든다. 근처 숲으로 잠시 여행이라도 나온 듯한, 지금이라도 당장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서글픈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레이나의 막내 동생은 영지의 보물이고 사랑이었다고 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그녀는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 드리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쏟았다. 동생의 탄생 이후, 모든 관심을 동생에게 돌아갔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늦은 후사였던 것도 있지만, 태어난 아이는 세상의 모든 순수와 맑음을 빨아들인 것 같이 아름다운 아이였다. 가문 특유의 새파란 벽안과 황금색 머리카락이, 바르셀 가문 제 2의 부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줬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만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문의 모든 이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청천벽력과도 같은 용 들의 위협.


페인 왕국의 제 1 기사 가문으로서, 그리고 용의 무기 ‘크라켄’이 선택한 핏줄로서, 바르셀 가는 그 전쟁의 선봉에 서야만 했다.


하지만 선봉에 서기에는 이미 노쇠해 거동조차 불편한 바르셀 공작과, 아직 유모의 품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어린 막내 아들이 나설 수는 없었다.


가문의 모두가 모인 가운데, 그들의 가보인 ‘크라켄’의 선택을 기다렸고 자아를 가진 용의 무기는 가문의 첫 번째 딸을 선택했다.


항상 용의 무기가 허락한 주인의 핏줄은 바르셀 가문의 ‘남자’ 였지만, 신기하게도 크라켄은 레이나의 손에서 푸른 빛을 내었다.


50년 전, 용들의 대포식활동 때 앞장섰던 용맹한 페인 왕국의 제 1기사단장 바르셀 공작은 덤덤한 장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크라켄의 선택은 오히려 고마운 것 이었다.

사랑하는 가문과 동생을 위해 그녀는 잠시 놓았던 검과 갑주를 걸치고 전쟁으로 나섰다.


고원에서의 패배로 인해 무너진 목적이 그녀의 책임감을 더 짓누르는 것 같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단 한번의 등장에 추풍낙엽처럼 쓸려가버린 토벌대와 그녀. 그 초조함이 지금 그녀가 이 밀림을 헤쳐 나가는 주요한 원동력이라 말한다.


사실 나는 실제로 용의 재앙을 두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직접적인 체감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끔찍한 재앙이 우리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우리 집을 불태우고, 내 어머니를 다치게 해야 느끼게 될까.


용들은 왜 균형을 깼을까.

아니, 용들이 균형을 깬 건 맞을까.

50년 전 사라져 버린 ‘로만 왕국’의 전철을 이미 전 세계가 밟아 버린 건 아닐까.

다시 뒤죽박죽 되버린 머리속이 복잡하다.


모닥불을 바라보는 레이나의 푸른색 눈빛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인다. 아마 나보다 더 복잡한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겠지.

내일이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또다른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마주하게 될 상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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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학살전쟁_한스 짐버의 이야기(5) 20.05.03 24 1 10쪽
4 대학살전쟁_한스 짐버의 이야기(4) 20.05.02 29 1 13쪽
3 대학살전쟁_한스 짐버의 이야기(3) 20.05.01 26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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