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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백 님의 서재입니다.

내 귀농이 너무 행복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공모전참가작

장진백
작품등록일 :
2024.05.08 10:40
최근연재일 :
2024.05.13 15:30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933
추천수 :
120
글자수 :
82,221

작성
24.05.08 10:41
조회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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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
19쪽

제1화.

DUMMY

제1화.


“장팀장. 내일부터 좀 쉬어.”


나른한 담배 연기 같은 음성이었다.


“잘못 들었습니다?”


오후 2시쯤 듣는, 점심 식곤증에 잘못들은 환청 같음에 악몽 같은 신병 시절로 돌아간 말투가 절로 나왔다.

그 뒤에 정신적 갈굼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줬던 선임의 표정을 고스란히 찍어낸 중년인이 ‘쯧’ 혀를 차더니 입을 열었다.


“잘못 듣지 않았어. 내일부터 좀 쉬라고.”


식곤증 환청도 아니었고, 선임의 예술적 갈굼이 있던 내무반도 아니었다.


“어···”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라 눈이 껌벅껌벅.

꺼졌다 켜지는 세상 아래 부장 김춘석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하고 7년이 지난, 군대보다 더 지독한 세상에서 만난 사회선임이자, 상사의 성함이 보이자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다.

정신이 깨어나면서 왜 지금 같은 상황이 일어났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왜요?, 라고 철없이 굴며 묻는 나이기엔 이제 부끄러운 앞자리가 삼이라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제 게이트 내 일 때문이죠?"


잠깐 조용해졌다.


뭐, 알긴 아나 보네.

조용해서 직장 상사님의 작은 혼잣말이 잘 들렸다.

담배 연기같이 나른한 표정은 곧장 필터가 끝나 아쉬움 남은 표정이 되었다.


“맞아. 어제 일 때문이야. 어제 장팀장이 대들었던 사람. 우리 길드의 위대하신 길드 장님의 아들이라서, 자신에게 대든 놈이 길드 내에 있는 거 싫다더라고.”

“······.”

“뭐 말이 나와서 그런데, 잘됐다 싶더라. 안 그래도 장팀장, 이딴 곳 남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가좆 같은 회사잖아 여기. 어차피 계약 기간도 끝나가고. 아, 여기에 빌린 것도 거진 갚았지? 그럼 바이바이 해버려. 아쉬워 남지 말고.”


어제 협업한 길드 소속 헌터를 꼬시려다 안된 걸 조달팀인 우리에게 화풀이하는 걸 막아서 길드의 악을 차단했다,

사냥 중에 발정 난 숫캐마냥 딴 짓 말고 목숨 아까우면 게이트에 네놈의 숫 정력을 쏟아 부어라한 것이 잘못 된 것이냐,

조달팀 팀장 주제에 주제넘었구나,

여러 변명이 생각났지만,

가좆 같은 길드라는 말에 쏙 들어갔다.

하기야 말처럼 딱히 회사에 아쉬운 것 없고, 어쩔 수 없이 찬 족쇄도 풀렸겠다.

말대로 벗어나는 게 나았다.

그리고 날 보내는 게 아쉬운 것이 아니라, 이런 기회 있을 때 나가지 못하고 어쩌다 남은 자신에 대한 아쉬운 이었던 모양이었나보다.

고개 끄덕이며 오른쪽 가슴에 찬 당근 모양 배지를 떼어 직장상사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가만히.

나른한 눈과 함께 당근 모양 배지를 향했다.


“내가 알기로 이거, 30년 전 광고한 무과장 따라 한 거라고 했죠? 저랑 동갑내기려나?”

“약 35년쯤 될 거다. 대부업계 대선배님이시지. 게이트 세상에서도 대부업이 유행하도록 만든.”

“유기농 사업에 덤벼들려고 해서 바꿨다면서요?”

“무나 당근이나. 유기농이랑 뭔 상관이라고. 그리고 대부업도 포기하지 않았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그렇게 됐다.”

“알겠습니다. 퇴직금은요?”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챙겨 줄 거다. 남은 원금 빼면··· 내일쯤 입금하겠네.”

“감사해요. 유기농하세요.”

“작별인사 참 좆 같이한다.”


피식.

상사의 얼굴에 나른한 웃음이 서렸다.

그런 웃음 보며 식곤증이 완전히 깨어 버린 그 날 오후에,


“야.”

“예?”

“유기농 해라.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그래 볼까 해요.”


7년간 몸 받친 회사에서 퇴직했다.

장마루에게 일어난 나른한 담배 연기 같은 일이었다.


***


핵이라는 절대적 무기를 가졌던 국가의 원수 중에 분노조절 도화선 끈이 짧았던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도화선 심지가 다 불타버렸는지.

어느 날 갑자기 과감히 하늘 위로 폭죽 마냥 핵을 분사해버렸다.

이어서 너도나도 원자폭죽놀이에 끼어들었다.


“씨벌 좃 됐네.”


그날만큼 세계인이 하나 되어 욕을 입에 담을 일도 없었겠지.

세상을 돌고 돌아 손에 손잡고 만난 이름 모를 머리 검은 사람도, 눈깔 파란 이들도 그렇게 진짜 하나가 될 날이 올 줄 누가 알았을까.

핵이라는 이름의 멸망의 폭죽이 세계 곳곳 하늘에서 ‘뻥’ 하고 터지면서 망하는가 했는데.


[시나리오에 의거 가이아 프로텍터가 실행됩니다.]


잠깐 시간이 정지되었고,


[멸망을 불어 일으킨 무기의 수와 위력에 따라 세상이 오염도가 정해집니다.]


홀로그램 같은 메시지 창이 전 세계인으로부터 나타나더니만,


[50% 이상의 대지와 해양이 오염됩니다.]

[인류와 동식물 50% 이상이 변이 화를 이룹니다.]

[이계와 연결과정이 생겨납니다.]

[던전이 생겨납니다.]

[각성자들이 생겨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로부터 인류는 대격변의 시절을 맞이했다.

쉽게 말하자면, 세상에 이계와 연결된 탑이 나타나고,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사냥하고, 그 괴물을 사냥하는 각성자 '헌터'가 등장했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웹소설의 흔한 클리셰 장르가 핵전쟁으로 인해 세상에 도래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찌 되었든 인류는 그런 대격변시대 맞아 어찌어찌 살아남아 근 15년간 종족의 번영과 발전을 도모했다.

물론, 인류라는 종이 뚝 끊겨, 누군가가 마지막 남은 종자가 될뻔한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식량난이 대격변 1년 만에 ‘도래할 뻔’했기 때문이다.

대격변 초기에는 인류가 밟고선 땅의 50% 가까이 복구 불가능이라, 식량난은 흑사병마냥 자연스레 일어날 징조가 있었다.

재미있게도 요 현대의 흑사병에 가까울 치명적인 식량난이 고쳐질 이유인데,

극도로 부족한 현상은 기업이라는 거대한 집단 앞에 부와 권력을 쌓는 중요한 아이템이 되어 그리 자연히 고쳐져 버렸다.


“지금이야말로 대 식량 사업의 시대다!”


기술과 문명의 발전에 일바지한 기업은 곧장 셀 수 없는 이들을 식량사업의 역군으로 초빙.

그로 인하여 던전 내 인류의 먹거리가 발견되고, 또한 대체음식이 개발되어 식량난을 해결.

초기에야 어마어마한 인명 재난의 일이 발생해서 인구 감소화시대를 광속으로 앞당겨 왔다지만, 식량난이 해결함에 지금에 와선 죽어간 만큼 복구 한지 오래였다.

인류는 그간의 멸종 위기의 무진장 잘 버틸 수 있도록 쌓아온 재난의 데이터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야근으로 인명을 갈아 넣은 또 하나의 인재(人災)로 막았다던가.

그리고 이렇게 인류의 재난을 막아서는데 일등 공신한 식량사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며, 현재로선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였다.

말이야 해결했다지만,

여전히 메꾸지 못한 목마름이 위대하신 기업의 회장님들 목에 껄끄럽게 남아 메마르게 했기 때문이다.

까놓고 보자면 정말 별거 아니다.


유기농.

신선함.

대격변이전의 그 생동감 있는 맛.


정말 별거 아니지만, 그 맛 기억하는 거대자본러들이 어찌 그 신선한 맛 잊을까.

지금의 대처 식품은, 던전에서 발견한 모종으로 피워낸 것들.

고작해야 인류가 먹던 것의 약 50% 정도 흉내 내고 있으니, 그 아쉬움은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이전 시대의 것은 당장 못 먹으니까.

더군다나 이제 고작, 격변 15년.

그 이전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던 이들은 그 젊음과 전성기 시대가 여전히 남아 있을 시기인지라 추억과 회상을 복구하고자 목마를 수밖에.

그리하여 식량 사업은 꾸준히 발전되었고, 누군가의 추억의 맛을 살리고자 많은 이들이 오늘도 길드라는 이름이 되어버린 기업에서 야근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이런 니미! 망했으나 안 망하나 어찌 삶이 팍팍한 건 같냐, 썅!”


격변해도 변치 않는 제 인생이 답답함에 참지 못한 걸쭉한 욕이 회사원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들리지 않게 자그마하게 대답.


칙.


그리고선 욕들 안주 삼아 캔맥주 하나를 딴다.

하연 거품이 보글 올라오기에 조건반사적으로 입을 갖다 댔다.

혀끝 살짝 스치는, 거품 가득한 맥주 맛 느끼며 그대로 벌컥벌컥.


“크으······”


반쯤 마시고선 시원한 탄성을 흘렸다.

안주 구워주던 회사원들이 탄성이 들려오는 곳으로 일제히 고개 돌렸다.

벤치에 앉아 있는, 풀어 헤쳐진 정장 차림의 사내가 보였다.

얼굴은?

햇살처럼 따뜻했다.

키도 큰 듯.

앉은키가 제 만하다며 회사원 중 누군가 시무룩하며 중얼거렸다.

풀어 헤쳐진 새하얀 셔츠가 썩 어울리고, 반쯤 맨 넥타이가 패션 같다.

이야.

그림이네.

넋 놓고 보는 시선 문득 느꼈는지.

그림 같던 이가 회사원들을 쳐다봤다.

담담한 눈빛.

초목 같은 포근함을 가져, 보는 것만으로도 담담히 따뜻해져 갔다.


“너무 부러워 마세요, 짤렸습니다.”

“아······ 에?”


초목의 따뜻함이 지금 뭐라고?


“지금 야근할 때. 좋다고 하세요. 각종 공과금 생각하면. 아, 그리고 보아하니 옆 건물 던전 ‘식량 조달팀’ 같은데. 얼른 복귀하시죠? 휴식 시간 곧 끝나잖아요? 흐지부지하다가 저처럼 짤립니다.”

“앗!”


담담한 눈빛만큼.

나오는 음성마저 너무 담담해서 무슨 말인가 싶었다가, 짤렸다는 말에 사색이 되어 부리나케 자신의 회사로 달려갔다.

그림 같은 사내 말대로 흐지부지하다간 잘릴 가능성이 선뜻 다가와 다음 달 카드 값에 큰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 제 직장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 달려가는 직장인들을 보며 사내, 마루는 반쯤 남은 맥주를 담담히 들이부으며, 담담히 중얼거렸다.

역시 50% 부족한 맛이야.


“······그나저나, 맥주 먹다가 격변의 시대 생각할 줄은 몰랐어. 하기야 격변의 15년을 겪기 전 먹어본 술맛을 기억하노라면, 50%부족한 지금의 맥주는 술이람 이름을 빗 된 보리차니까.”


추억팔이로 잠깐 떠올릴만했겠지.


“그래도 기가 막히게 팔린단 말이지. 어디 보자. 지금 시중가가 한 캔에 만원이었던가?”


외국물 먹은 것도 아닌, 국산 물 먹은 놈이 그랬다.

더욱이 코끼리 그려진 그 녀석이 그렇다.

두 캔이면 2만원.


“편의점 할인가로 두 캔 15000원. 크. 빌어먹게 비싸구나.”


4캔 만원하던 시절이 엊― 그제는 아니네.

잘린 놈에게 더없는 사치품이지만.


“잘렸으니 사치도 부려 보는 거지.”


맥주 거품 같은 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칙.


마지막 사치품 뚜껑을 따 한 모금 마셨다.

술맛 살짝 첨가된 격변 된 세상의 맥주맛처럼,

짠맛 살짝 담긴 웃음은 맥주 한 모금에 거품처럼 사라졌다.


“······후우······”


거품이 한숨이 되었다.


“이제 뭐 하지.”


잘렸단 말 듣고 담담히 나왔다.

그 담담함 끝까지 갈 줄 알았는데.

회사 정문 나와 자연스럽게 편의점 들려 맥주 사고선 벤치 앉고 나서 보니, 와······

이게 별일이라 생각할 것도 아니고, 담담한 모습 끝까지 유지할 게 아니더라?


“공과금, 월세······ 뭐··· 사정사정하면 몇 달 시간을 벌 수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애는?

어, 그러니까.

내 자랑스런 동생은 어쩌지?


“······.”


마루는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바탕화면에 자신의 자랑스런 동생이 어깨동무하며 같이 찍은 사진이 떡하니 나타났다.

만년 ‘F급 적성’ 각성자라 번듯한 길드, 공대도 못 가는 자신에 비해 적성 등급 A급을 받은,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는 내 새끼 같은 내 동생.

그 미래, 더욱 밝게 빛내기 위해 헌터 전문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지 않던가.

비록 국립아카데미지만.

그래도 국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 졸업만 하면 든든한 철밥통이 기다린다.

아직 격변의 상처가 깊숙이 남은 세상에선 국가직과 대길들 직군만큼 더없이 안정적인 곳 없으니까.


“원래 머슴도 대궐집 머슴을 하라는 이유가 있는 거야.”


문제는, 지금 내 새끼 같은 동생, 대궐집 머슴밥 먹게 하려는 일에 지장이 생겼다는 것이다.

가좇같은 회사에서 잘려, 돈벌이가 막막해졌지 않은가.


“······어찌어찌 적금 든 거랑, 내 종신 보험으로 든 거 깨고······”


국립이라도 들어가는 돈이 한 두 푼이 아니다.

한 학기당 3천.

1년이면 6천이다.

요놈의 국립 헌터 아카데미는 고등교육 때부터 시작하는 곳이라, 제 동생 위해 들이부은 연간 수업료만 현재까지 계산 하면,


“1억 8천.”

학비만 놓고 보면 1억 8천이지, 기숙사. 생활비, 식비, 교재값을 놓고 보면 2억은 가볍게 넘었다.


“고등교육이 끝나면, 곧장 대학 교육과정으로 넘어간다고 했었지? 그럼 못해도 3년은 더 다닐거고.”


최소 든 만큼 더 돈이 든다 생각해야―

아니지?

배는 생각해야겠지?

고등교육이랑 대학교육이 같을 일 없을 테니까.

담담히 현재 상황을 중얼중얼 늘어놓고 보니, 마루는 숨이 턱 하고 막혔다.


“하······ 대궐집 마당쇠 되는 과정 참 무섭다······”


돈으로 주먹을 휘두른다면 가히 핵폭탄급이다.

거품이 절로 물렸다.


“하아······ 그래도, 해야지. 여기까지 왔고, 발전도 가능한 내 새끼인데. 일단, 종신을 깨면 1년치는 가능해.”


그간 쏟아부은 돈 보람이 있었다.


‘종신을 깨면 실비도 깨져서 당장은 보험 들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뭐, 일단은 녀석들부터 잘 키워놓고 보자. 그 사이에 직장이나 혹은 돈 벌 방법을 찾아봐야지. 한시라도 빨리.’


알바라도 하면 되겠지만, 하하.

헌터는 ‘일반인’이 가능한 알바는 모든 것이 제한되었다.

그 흔한 편돌이가 되어 폐기 음식 영접할 기회도 없었기에 생각도 말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알바는 무슨. 일 년에 최소 못해도 1억이 필요한데 알바로 충당할 수 있을 일은 아니야.”


지금처럼.

F급 각성자로서 ‘팀장’자리까지 올려준 스킬 하나 믿고, 가좆 같은 기업에 목숨 걸고 나대야 했다.


“에휴. 이 상놈의 팔자.”


내 새에는 대궐집 갈 수 있었으면.

마루는 남은 맥주 털어 내며 현생 좆같다 중얼거리며 가좆 같은 기업 찾아 구인 어플을 켰다.

첫머리부터, 눈에 익은 기업 하나가 들어왔다.

조금 전 자신을 자른 그곳이다.


“이야. 벌써 구인광고 쳐올리셨구나. 아니, 날짜 보니, 오늘 새벽이네.”


이미 밤새 잘릴 운명이 결정 되었구만.

빌어먹을 곳이다, 정말.


‘유기농 해라.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이제는 ‘전’이 되어버린 가좆같은 기업의 발 빠른 일 처리에 칭찬 같은 욕을 입에 담을 때쯤.

문득.

정말, 그렇게 스쳐 지나가듯, 부장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볼까 해요’라고 했었지?”


자신이 기억상실증의 주인공이 아니라면 몇 시간 전 일 기억 못할 건 아니었기에, 마루는 그랬지, 라고 고개 끄덕였다.

담담함에 나온 별 뜻 없는 말이긴 했지만, 막상 돈이 궁해질 일들이 생각나니 ‘해볼까?’라고 생각이 들었다.


<동글동글 고구마~>

<껍질을 벗겨내면 노란 속살이~ 어머어머 부끄러워요~>


고구마 노래가 생각을 가로막았다.

마루는 표정을 찡그리며 고구마 노래를 틀어버린 막돼먹은 이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이었다.


“아. 무료 벨 소리 받았었지? 어디 보자. 누구더냐. 어이쿠.”


어머나, 세상에.

내 새끼 같은 자랑스러운 내 여동생이다.

지금 시간이 오후 5시.

매일 이 시간 학교 수업 끝나고 연락했었다.

어떻게 된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지.

가끔은 오싹할 정도로 떨릴 만큼 엄격하다.

살짝 손끝 떨며, 마루는 전화를 받아 보았다.


[오라버니. 강녕하셨습니까.]


어떤 약속이라도 칼같이 잘 지킬 것 같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럼. 나야 잘 지내지! 우리 서아도 잘 지내고 있지?”


[오라버니의 걱정 어린 마음을 담아, 소녀는 잘 지내고 있사옵니다.]


“······.”


애는 어쩌다 이런 말투를 얻었을까?

좌뇌로는 기억조차 없는 여동생 성격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쳐준 일을 억지로 생각하고, 우뇌로는 여동생과의 즐거운 일상적 통화내용을 이어갔다.

대부분 안부였다.


[5분이 되었군요. 허면, 소녀는 내일도 이 시간에 연락 드리겠사옵니다. 오라버니. 그럼, 강녕하십시오.]


“저기. 서아야. 오빠가 고구마나, 감자 좀 심어서 유기농 사업 해보려고 하는데 어때?”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뚝 끊어내려는 기계 같은 녀석을 마루는 급히 막아보았다.


[······.]


전후 사정없는 너무 뚱딴지같은 말이었을까.


“······.”


마루는 처음으로 제 여동생의 말문이 막혀버린 일을 목격함에 어쩔 줄 몰랐다.

충격받은 모양인가 싶어, 조심히 사과하려고 할 때쯤.


[오라버니라면, 믿사옵니다.]


“······응?”


[허면, 내일도 전화 드리겠사옵니다.]


이어지는 답 없이, 전화가 끊겼다.

조용해진 휴대폰을 마루는 한동안 받아들여 보았다.

통화화면이 넘어가, 자랑스러운 동생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그 배경화면.

그 속에서 기계 같이 웃고 있는 새하얀 얼굴의 예쁜 소녀가 눈에 담긴다.

서아다.

조금 전, 마루와 통화한 그의 여동생,

지금 보니 팔짱은 자연스럽네.


“믿는다고 했지?”


······짜식.


“다 컸네. 이 오라비 생각도 다 하고. 됐다. 유기농 사업은 무슨.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일자리나 찾자.”


유기농 사업은 뭐, 아무나 하나.

스킬 하나 믿고 덤벼들기엔, 내일 상장 폐지될 코인 믿고 덤벼드는 어리석은 일이나 다름없었다.

포기해야지.

생각지도 말고, 안정적인 ‘던전식량조달팀’이나 되야지.


<동글동글 고구마~>

<껍질을 벗겨내면 노란 속살이~ 어머어머 부끄러워요~>


휴대폰이 연달아 울렸다.

어플 보기가 참 힘들다.

혹시, 서아가 다시 전화한 것인가 싶어서 봤는데 아니다.

070으로 시작되는 번호.


“대체, 이 스팸은 왜 격변의 시대에도 있는 걸까?”


지독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잘도 살아남았다 싶어 당장 종료 버튼을 누르려다, 070밑, (서울 종합 대학병원)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대학병원이라는 문자에 기억 속 한 곳에 박아둔 것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아······ 오늘이구나? 종합 건강검진 내용이 나오는 날.”


두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몇 시간 전, 팀장 명찰 달고 야근과 함께 신나는 월급 벌이를 하게 해준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해서 했던 검진.

그거 안 하면 벌금 물린다고 해서, 참석하라고 했던 사장의 후덕한 얼굴 또한 마루는 기억났다.

공짜니까, 일단 했지만.

그동안 돈 번다고 너무 바빠 생각지도 못했다.


‘검진받고 바로 게이트 들어가라고 전화 수십 통 했었지.’


그리 쥐잡듯이 잡혀 살았으니, 기억이 날 일 있나.

아무튼, 스팸은 아니다.

안심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장마루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울 종합대학병원입니다. 종합건강검진은 결과가 나와서 연락 드렸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나왔고, 결론은 찾아오라는 이야기였다.


“공짜로 확인한 건강검진이니까.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지. 건강하다는 걸 알면 더 열심히 일 찾을 수 있을 거고.”


당장 할 일도 없고.

지금 상황을 대변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루는 빈 캔을 구겨 봉투 안에 넣었다.

넥타이 똑바로 매고, 옷매무새 다듬고.

마루는 서울 종합대학병원으로 이동했다.

지옥철을 타고.

30분 걸려 도착한 서울 종합대학병원의 종합건강검진은 센터의 한 병원장실.


“암입니다.”

“······예?”


맥주 두 캔 먹고 술에 취했던가.


“이미 퍼질 대로 깊게 퍼졌더군요.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


마루는, 곱게 단정히, 맸던 넥타이를 다시 풀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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